임화(1908~1953)는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문학운동을 표방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핵심 멤버로 카프의 서기장을 지낸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화는 모던 보이였다. 영화 '유랑'과 '혼가'에서 주연을 맞기도 해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었다. 그는 계급주의 문학의 선봉에 서서 카프를 이끌었지만, 막상 1935년에는 카프 해산계를 직접 내야 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 종로 한청빌딩에 조선문학건설본부라는 간판을 내걸어 좌익 계열 문인들을 규합했다. 그 후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 시는 사건적이고 소설적인 데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소박하고 '된 그대로의 말'을 사용했고, 노동자들의 낭독에 편한 리듬을 씀으로써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단편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사(製絲) 공장 여직공이었다가 이제는 백 장의 봉투를 붙이면 일전을 버는 일을 하는 화자가 오빠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글 형식이다.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봐서 오빠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로에 '오빠' 혹은 '혁명가의 정신'을 빗대어서, 역경―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지는―이 지금 닥쳐왔지만 굴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뜻을 밝혀 놓았다.
임화는 올해로 김기림, 김유정, 최재서, 백철과 함께 탄생 100돌을 맞았다. 임화는 1936년에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라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0'에서 '임화'라는 시를 통해 '아직껏 한국문학사에는 버려둔 무덤이 있다/ 마른 쑥대머리 무덤/ 그 무덤 벙어리 풀려 열리는 날/ 그 무덤 속 해골/ 뚜벅 걸어나오는 날/ 임화는 오리라// 아름다운 얼굴 다시 오리라 부신 햇살 뿜어 오리라'라고 써 왕양(汪洋)한 기상의 소유자였던 그를 추모했다.
문태준 시인. 편집:오뚜기 김창룡.
▒☞[출처]조선일보(http://www.chosun.com) 2008.2.18. (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