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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은신처, 삼둔(三屯)

박상규 2009. 7. 14. 13:21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은신처, 삼둔(三屯)

정감록 "조선 땅 12승지 가운데 하나" 기록
지금은 외지인들 즐겨 찾는 명승지
이제 막 봄이 꽃피는 은밀한 공간

영상 사진 글 = 박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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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둔에 있는 살둔산장. '살고 싶은 집 100선'에 오른 집이다.

 

강원도 홍천에 이상한 공간이 있다. 사람들은 삼둔(三屯)이라고 한다. 각각의 이름은 살둔(‘生屯’), 월둔(月屯), 달둔(達屯)이다.

예전에 정감록 삼척 이본(異本)에 따르면 이들 세 공간은 전쟁과 환란과 온갖 갈등을 벗어나는 피난처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되니, 그 피난처들이 지금은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산세에 가로막힌 이들 공간이 지금은 안락하고 평화로운 휴식처로 변한 것이다. 봄은 강원도에 늦게 찾아온다.

서울에서 일찌감치 잎새를 떨궜던 목련꽃이 강원도에는 지금 피어난다. 은밀한 공간, 삼둔(三屯)에는 이제사 산벚꽃이 가득 피었다.

봄을 놓친 분들, 삼둔으로 가보시라.

 

▲ 살둔에 있는 폐교 생둔분교장에 흐드러진 벚꽃.

 

#삼둔 1 - 살둔

홍천이 가지고 있는 가장 멋진 관광지는 미산계곡이다.

서울에서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을 거쳐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홍천을 지난 다음에,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해서

451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31번 국도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상남 방향으로 직진해 31번 국도를 타고 가면 상남면소재지가 나온다.

이어서 446번 지방도로로 우회전해 내린천을 따라 들어가면 그 미산계곡이다.

절경이다, 한 마디로. 서울이라는 괴물 도시에서 2시간 남짓 왔을 뿐인데 어찌 이런 깊고 맑은 계곡이 있을고!

유장하게 내린천이 흐르는데, 그 물은 천(川)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깊고 깊다. 여기에서 그치면 비경이라고 할 수가 없다.

계곡 초입을 지나 10분 정도를 더 가면 살둔이 나온다.

▲ 살둔 마을 전경
▲ 살둔마을의 상징, 살둔 산장.

10년 전만 해도 살둔은 정감록적인 땅이었다. 뚜렷한 길이 뚫린 것도 아니었다. 딱히 길이 있으면 그 길에서 한참을 더 가야 살둔에 닿을 수 있었다.

그 ‘오지’라는 맛에 그 때에도 살둔을 찾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이제는 오지는 아니다.

미산계곡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정표 확실하게 서 있는 살둔마을을 만난다.

내린천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이정표를 따라 급하게 우회전을 하니, 갑자기 평탄한 들판이 나온다. 360도를 돌아보니 산이다.

그런데 그 안에 강이 흐르고, 수평선을 그을 정도로 평탄한 공간이 있는 것이다. 거기가 살둔이다.

삼둔 가운데 첫 번째 마을, 살만한 곳 살둔, 생둔(生屯)이었다.

갖 피어난 벚꽃이 바람에 날렸다. 산 그늘 아래 기이한 집이 하나 보인다. 살둔 산장이다.

통나무를 우물 정(井) 자 형태로 엮어 올리는 귀틀집 방식을 현대화해 이층으로 올렸다.

통나무로 얼개를 짜고 그 사이를 석회 푼 황토로 메운 산장 안은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 집 100선’에 올라 있는 집이다. 집과 들판과, 그리고 강물과 산줄기가 어울려 신비하기까지 한 풍광을 창조한다.

숙박도 겸하고 있으니 삼둔 여행객들은 반드시 들러볼 일이다.

 

▲ 원당국민학교 생둔분교장. 1996년에 폐교됐다. 지금은 수련원으로 이용중.

산장 앞에는 ‘국민학교’가 하나 서 있다. 1996년에 문을 닫은 원당초등학교 생둔분교장이다.

녹슨 ‘반공’ ‘방첩’ 구호부터 잣나무 숲과 벚꽃나무까지 고스란히 세월을 잊고 멈춰 있다.

산장과 생둔분교장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둔 여행의 목적은 충분히 건지고 남는다.
강변을 따라 장장 6km에 걸쳐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산새 소리에 물 소리,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산꽃들로 인해 가슴이 무척 산만했다.

 

 

#삼둔 2 달둔(達屯)

살둔에서 나와서 양양쪽으로 달린다. 56번 국도다. 한참을 가다 보면 경사로도 없어지고 어느덧 평탄한 송림이 나타난다. 달둔이다.

달둔으로 가기 전에 월둔에 들렀다. 월둔은 피폐했다. 아니, 외지인이 방문하기에는 특별한 풍광이 없다. 나물을 심고 농사를 짓고,

그래서 옆에 있는 방태산까지 외길이 나 있는 정도. 월둔은 피하기로 한다.

달둔을 에워싼 펜션 집단을 조금만 지나면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니 10분 만에 길이 끝나 있다.

“외지인들이 하도 오니까 자연휴식년제로 막아버렸다”라고 한 할머니가 말했다.

나이 열아홉에 달둔으로 시집와서 일흔 셋이 되도록 달둔에서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육이오 전쟁 때 인민군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다들 도망갔고,

1990년대에 무장공비들이 달둔으로 들어와 사람 여럿 죽이고 월둔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또 사람들이 외지로 나갔다.

” 이게 정감록에 적힌 승지라고? 여하튼 그 계곡에 흐르는 물은 참으로 맑았고, 강변에 핀 꽃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여름이 되면 달둔 계곡은 외지인으로 법석을 떤다고 했다.
지금의 달둔에서 볼거리는 계곡이 아니다. 길을 돌려 달둔 계곡을 헤매는데, 내 눈 앞에 그 숲, 그 찬란한 은행나무 숲이 보인 것이다.

▲ 달둔계곡의 은행나무 숲. 한 사내가 20년 넘도록 가꾼 숲이다.

서울 사람 유기춘(64)씨가 말했다. “1982년에 묘목 2000그루를 사서 심었다. 세월이 지나니 이리 되었다.”

은행나무집 주인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25년 세월이 쉬운 시간인가. 잎새 하나 없는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며 내 눈 앞에 서 있는데,

그 장면에 숨어 있는 세월은 숲이 아니라 대장엄(大莊嚴)이었다. 달둔계곡에 있는 한 식당 여주인이 말했다. “가을에는요, 황홀해요.”

비단 가을만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장 달둔으로 떠나시기 바란다. 제비꽃, 아기똥풀, 기타 등등 흔하게 잊혀지는 이 땅의 야생화가 지천이다.

 나무를 가꾸는 진한 인생이 그 들풀 위에서 숨을 쉰다. 그곳에서 만난 들풀들, 이리 생겼다.

 

 

 

 

 

 

#4 삼둔 3 비조불통(非鳥不通) 계곡

소개인동에 다리가 하나 있다. 10년 전만 해도 수제 케이블카로 오가던 땅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의젓한 다리가 놓여 있다.

초입에는 매발톱꽃이 가로수처럼 피어 있다. 듣기로, 이 다리를 건너면 계곡이 하나 있는데 새가 아니면 갈 수 없이 깊다고 하여

비조불통(非鳥不通) 계곡이라고 했다.

그래서 갔는데, 계곡 앞에 뜬금 없이 ‘맹견 조심’이라는 너무나도 세속적인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즉슨,

계곡과 다리 사이에 개인이 사는 집이 하나 있고, 그래서 비조불통으로 들어가려면 이 집 뜰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통과

의례가 바로 맹견 조심이라는 것이다. 말이 되지 않았다. 저 계곡은 도대체 누구의 소유인고. 계곡과 강물을 잇는 공간이 이 산장인데,

산장이 먼저인가 계곡이 먼저였나. 초입만 보아도 아드레날린이 솟는 그런 풍광이었으나, 맹견의 공포가 그 공간과 이

나그네를 단절한 탓에 통과를 청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산계곡을 거슬러 홍천 읍내로 향하는데, 온갖 곳에 봄꽃들이 피어 있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신록(新綠)이 타 방향으로

나를 유혹해 쉽사리 서울로 돌아가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봄이다. 3월달 봄나들이를 놓친 사람들은 반드시 홍천과 인제로 갈 일이다. 미산계곡과 개인동, 그리고 정감록과는 맞지 않았으되

여전히 평화로운 풍광으로 사람을 매혹하는 삼둔으로 가 볼 일이다.

 

 

<여행수첩>
▲가는 길(서울 기준) : 6번 국도로 양평→44번 국도 홍천→철정교차로 검문소에서 우회전,

               451번 지방도→31번 국도 만나는 삼거리에서 상남 방향 직진, 상남면 소재지→446번 지방도로 우회전하면 미산계곡.

               여기에서부터 운전자는 오로지 앞만 볼 것. 좌우로 펼쳐지는 비경에 한눈 팔면 큰 일 난다.
▲살둔 : 미산계곡 끝무렵에 오른쪽으로 270도 꺾어지는 작은 시멘트포장도로로 들어갈 것.
▲월둔 : 살둔에서 나와 양양쪽으로 가다 보면 첫 번째 270도 급회전길 직전에 왼편으로 이정표가 있다. 볼 것 없음.
▲달둔 : 월둔에서 나와서 양양쪽으로 곧장 갈 것. 구절양장길이 평탄하게 변하고 그럴듯하게 생긴 펜션들이 나타나면 거기가 달둔이다.

               달둔 계곡은 펜션 집단을 1분 지나 오른편 숲 속에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은 달둔 계곡, 왼편은 위에 언급한 은행나무집.

               은행나무집은 문이 잠겨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큰 기대는 하지 말 것. 차를 끌고 들어가거나 나물 혹은 사유 재산을 들고 가겠다는

               심보만 없으면 주인 유기춘씨에게 양해를 구하면 된다.
▲먹을 곳: 오대산 내고향 쉼터. 달둔계곡에서 양양쪽으로 승용차로 5분이 안 걸리는 곳. ‘모든 것’이 맛있다. 산채비빔밥(6000원),

              두부전골(6000원)부터 메뉴 다양. 민박도 한다. (033)435-7787, (011)9879-7786
▲묵을 곳:
              1.살둔:생둔분교장 수련장(010-5279-0366), 살둔산장(033-435-5984)
              2.달둔:하얀집(011-748-3880), 티롤(033-435-5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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