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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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도립공원 등산코스 안내도 | | 팔영산(八影山 608m)은 고흥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특히 제1봉인 유영봉(儒影峰)에서 성주봉(聖主峰), 생황봉(笙簧峰), 사자봉(獅子峰), 오로봉(五老峰), 두류봉(頭流峰), 칠성봉(七星峰)을 거쳐 마지막 제8봉인 적취봉(積翠峰)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 종주 코스가 유명하다. 산세가 험하고 기암 괴석이 많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대마도(對馬島)까지 볼 수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이 일품이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팔영산의 원래 이름은 팔전산(八顚山)이었다.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의 봉우리가 비쳐 그 산세를 중국에까지 떨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부터 팔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경관이 빼어난 신선대와 강산폭포 등 명소가 있고, 또 산 밑 북서쪽 기슭에는 화엄사(華嚴寺), 송광사(松廣寺), 대둔사(大芚寺)와 함께 호남의 4대 사찰로 꼽히는 능가사(楞伽寺)가 자리잡고 있는데, 1,500여년전 아도(阿道)가 세워 처음엔 보현사라 했던 것을 정현이 인도의 명산을 능가 한다하여 능가사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팔영산은 높이 608.6m로 전남에서는 보기 드물게 스릴 넘치는 산행을 즐길수 있는 곳으로 산자락 아래 징검다리처럼 솟은 섬들이 펼쳐진 다도해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둘도없이 좋은 곳이다. 고흥읍에서 동쪽으로 25km 떨어진 소백산맥의 맨 끝자락에 위치한 산으로 8개의 봉우리가 남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아있다.
일설에 의하면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감탄한 중국의 위왕이 이산을 찾으라는 어명을 내렸고 신하들이 조선의 고흥땅에서 이 산을 발견한 것이 그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산은 그렇게 높은편은 아니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변화 무쌍하여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수 있으며 위험한 곳에는 철계단과 쇠줄이 설치되어 있어 별다른 준비없이도 산행에 나설수 있는 가벼운 암릉 산행지이다. 또한 봉우리를 끼고 곳곳에 우회로가 나 있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초보자들도 안전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저멀리 대마도까지 조망되는 등 눈 앞에 펼쳐지는 다도해의 절경이 일품이다.
98년초 고흥군에서는각봉우리의 고유이름(1봉/유영봉, 2봉/성주봉, 3봉/생황봉, 4봉/사자봉, 5봉/오로봉, 6봉/두류봉, 7봉/칠성봉, 8봉/적취봉)을 표지석에 새겨 등산객을 반기고 있으며 대표적인 주변 관광지로는 팔영산 암봉의 동쪽 깊은 계곡에 휴양림이 있고 신라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4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던 능가사가 있다.
이 곳에 능가사 대웅전(전남유형문화재 95호), 능가사 범종(전남유형문화재 69호), 능가사 사적비(전남유형문화재 70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능가사 주변에는 용의 눈이 아홉개 들어 있다는 구룡정이 있다. 팔영산 가까이에 용바위, 남열해수욕장, 유청신피난굴, 여호 바다 및 강산호 낚시터 등이 있다.
남동쪽 능선 계곡에 1998년 7월에 개장한 팔영산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과 야영장, 물놀이터 등의 휴양시설과 각종 운동기구가 갖추어져 있고, 굴참나무, 갈참나무, 고로쇠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를 이루는 천연림에는 고라니, 산토끼, 노루, 꿩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인근의 용바위와 남열해수욕장, 유청신(柳淸臣) 피난굴, 원효(元曉)가 창건한 금탑사(金塔寺), 여호바다, 강산호 낚시터, 고흥 내발리 백로 및 왜가리도래지(전라남도기념물 33호), 나로도해수욕장 및 난대림,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등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산행로는 능가사에서 시작해 마당바위를 지난 뒤 암릉종주를 마치고 탑재를 거쳐 능가사로 하산하는 능선 종주코스다. ◐ 성기리 능가사→마당바위→제1봉인 유영봉(儒影峰)→성주봉(聖主峰)→생황봉(笙簧峰)→사자봉(獅子峰)→오노봉(五老峰)→두류봉(頭流峰)→칠성봉(七星峰)→적취봉(積翠峰)→사거리 우회전→성기리 능가사
제1봉 앞의 이정표에 왼쪽으론 제1봉 (절벽, 위험)이라 되어 있고, 오른쪽으론 제1봉과 제2봉 중간 기점이라 되어 있는데 오른쪽 방향을 선택하여 제1봉을 올랐다가 다시 제2봉으로 간다. 왼쪽 방향으로 들어서면 노약자나 여자들은 오르기가 위험하고 힘들다.
산은 해발 6백m대로 낮지만 능선은 암릉으로 이어져 있어 꽤나 까다롭다. 그러나 위험구간은 사다리.로프.철제난간등으로 안전장치를 설치해 주의만 하면 어린이도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에서 10여분을 걸으면 계곡에 접어들고 약 30분을 오르면 마당바위가 나온다.
여기서 가파른 길을 따라 20분을 더 오르면 제1봉인 유영봉에 닿는다. 비로소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여덟 개 봉우리중 4~5봉 구간이 산행하기에 까다롭다. 6봉에서 7봉을 오르려면 통천문을 지나야 하며 7봉에 올라서면 정상에 오른 듯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왼편으로 펑퍼짐하게 뻗은 암릉을 따라 10여분 더 가야 정상인 8봉에 닿는다. 하산은 8봉에서 5분쯤 남쪽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울창한 송림을 뚫고 지나는 하산길은 마치 강원도 산림을 걷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총 산행시간은 천천히 걸어서 4시간정도 소요된다.
◐ 팔영산휴양림 마지막 주차장→2봉과 6봉갈림길→신선대삼거리→2봉→8봉→헬기장→사거리 좌회전→야영장→팔영산휴양림 마지막주차장 (약 2시간 소요) ◐ 성기리 능가사→마당바위→1봉→8봉→사거리 우회전→성기리 능가사 (약 4시간 30분소요) ◐ 성기리 능가사→마당바위→유영봉(儒影峰)→성주봉(聖主峰)→생황봉(笙簧峰)→사자봉(獅子峰)→오노봉(五老峰)→두류봉(頭流峰)→칠성봉(七星峰)→적취봉(積翠峰)→사거리 우회전→성기리 능가사
▣ 능가사 대웅전(보물 제1307호) 능가사는 삼국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하였으며 팔영산 하단부에 있는 평지형 사찰로 일명 보현사라고도 전한다.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인조 22년(1644)에 벽천대사가 현 위치에 2개동의 사찰을 중건하여 능가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다포계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이다. 일단의 시멘트 기단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약간 거칠게 다듬은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에 비하여 조그마한 기둥머리가 창방과 용머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 위에 다시 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장식한 용머리가 외 3출목, 내 4출목의 공포를 받쳐주고 있다. 살미첨차의 앙혀의 굽변은 완만한 곡면을 이루고 위로 올라갔으며 첨차의 곡면 역시 약간 경사를 두고 비스듬하게 깎았다.
중앙칸은 4분합문이며 기둥 사이 포가 3조 있으며, 협문은 2분합문으로 기둥 사이 포가 2조, 퇴간은 외여닫이문으로 주간포 1조가 설치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겹쳐마이며 직경이 큰 서까래가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설치되어 있다.
내부는 조그마한 닷집이 4개의 높은 기둥에 결구되어 있으며 넓은 공간을 4개의 대량과 4개의 높은 기둥이 지지하고 있다. 내부공포는 운공형으로 조식되어 있는 살미첨차가 커다랗게 결구되어 있으며 맨밑에는 용의 몸통 부분으로 받쳐지고 있다.
천장은 층단천장으로 되어 있는 우물천장이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창호의 무늬는 빗살무늬문을 하고 있다. 또한 특이한 것은 건물 방향이 입구 때문에 북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후기의 건물이지만 규모나 양식면에서 귀중한 유산이라 하겠다. 건물 전체가 기울어 1999년부터 완전 해체 하여 2000년 12월 완전 복원하여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 능가사 명동종(보물 1557호) 이 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주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강희삼십칠년 무인삼월일 흥양팔영산능가사……(康熙三十七年 戊寅三月日 興陽八影山楞伽寺……)」라 양각되어 있는 바 그 연대는 숙종 24년(1698)으로 능가사가 창건된지 54년 후에 조성된 것이다. 그런데 능가사 사적비에 의하면 능가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이미 이곳에 보현사가 팔영산에 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세부양식을 보면 용뉴는 쌍용으로 정상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음관(용통)을 두지않고 조그마한 원형 구멍으로 대신하고 있다. 천판(天板)은 이중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는 바 상단은 16엽이고 하단은 활짝된 무늬다. 그 밑으로 상대(上帶)에는 범자문(梵字文)을 돌렸으며 4면에 장방형의 유곽안에 9개의 유두를 뚜렷하게 조각했다. 양옆에는 천의를 걸친 보살입상과 문짝모양을 장식하였는데 그 안에 「주상 전하수만세」라는 문구가 양각되었다.
또 종신 중앙부에는 주역에서 나타나는 전양(全陽)인 건(乾·三)에서 전음(全陰)인 곤(坤·三三)에 이르기까지의 팔괘를 양각으로 둘렀는 바 이는 조선 범종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팔괘 밑에 음각의 명문대가 있는데 여기에 능가사 창건주인 정현대사(호·벽천)의 이름이 보인다. 하대로 내려와서는 두줄의 띠를 둘렀고 그 안에 꽃잎과 당초문대(唐草紋帶)를 돌렸다.
▣ 금탑사 괘불탱(보물 제1344호) 이 괘불은 비현(丕賢)과 쾌윤(快允)이 1788년에 함께 그린 것으로, 옆으로 긴 폭에 삼세불(三世佛)을 표현한 독특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사천왕 등의 권속을 배제하고 주요 협시보살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구도이다.
삼세불은 화면을 횡으로 3등분하여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형태는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인 원만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의 표현, 옆으로 퍼진 육계에 큼직한 정상계주, 각이 진 어깨, 발목의 치견(侈絹)장식 등을 보여준다.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괘불궤는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괘불보다는 약 100여년 전에 만든 이른 시기의 것이다. 소재지 : [548-884] 전남 고흥군 포두면 봉림리 700
▣ 금탑사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39호) 고흥군 군청 소재지인 고흥읍으로부터 남쪽으로 15.5km 거리에 해발 550m의 천등산이 있으며, 그 동쪽 산허리에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금탑사가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포두면 봉림리 700번지이다. 이 사찰을 중심으로 하여 아랫편 입구의 계곡과 윗편 산지의 사면에 걸쳐 표고 190 ~ 410m 범위내 39,937평에 집단적으로 3,313주가 분포하고 있으며 천등산은 북위 34°32′50″, 동경 127°17′30″범위에 위치하고, 북동쪽은 포두면, 동남쪽은 도화면, 서쪽은 풍양면을 이루고 있다.
금탑사의 뒷편에 있는 비자나무숲의 수고(樹高)는 8 ~ 14m에 이르고 가슴높이 둘레는 16cm에서 121cm에 이르고 있다. 계급별로는 50cm이하가 31.4%이고 100cm 이상이 17.2%인데 대하여 51 ~ 100cm 범위의 비자나무는 51.4%로서 절반을 넘고 있고 또 91cm이상 121cm까지가 28.6%에 이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수령은 최고 100여년생으로 추정된다.
이 비자나무숲의 다른 한편에는 140cm되는 것도 발견되었다. 자연생이 아니라면 1800년대 중엽이나 말엽에 처음으로 심은 듯 하고 그 후 하종갱신 된 것이 있어 50cm이하가 31%나 된다. 비자나무는 상록침엽교목으로 자생지는 산록곡간지이고 분포는 수직적으로 표고 150 ~ 700m, 수평적으로는 전남북, 경북까지이고, 지리적으로는 일본(日本) 사국(四國), 구주(九州)이다. 목재는 치밀하고 심재가 황색을 띄고 있는데다 독특한 향기와 광택이 있어 바둑판, 조각재, 의장재 등에 값있게 쓰여지고 있으며, 종자는 기생충 구제용으로 생식하기도 한다.
▣ 류몽인 위성공신 교서(보물 제1304호) 이 문서는 광해군 5년(1613) 위성공신 3등에 책훈된 한성좌윤 유몽인(柳夢寅)에게 내려진 교서로 원명은 ''교갈충진성위성공신가의대부한성부좌윤영양군유몽인서''이다. 위성공신이란 임진왜란 때 왕세자 광해군을 호종, 분조를 호위하고 국난 극복에 공헌했다 하여 훈적에 올린 신료들을 말한다.
1등에는 최흥원 등 10명을 ''갈충진성동덕찬모좌운위성공신'', 3등에는 유몽인 등 53명에게 '갈충진성위성공신'이란 공신호를 하사였다. 이에 의하면, 3등 공신인 유몽인에게 본인은 물론 그의 부모 처자에게도 1계가 가자되었을 뿐 아니라 노비·전결·은자·기마·표리 등이 아울러 내려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유몽인(1559 ~ 1623)은 「어우야담」의 저자로서 조선중기 설화문학의 대가이다. 자를 응문, 호를 어우당 또는 양재, 본관은 고흥이다. 사간을 지낸 충관의 손자이며 탱의 아들이다. 성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혀 1589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함으로 문명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임란 직전에 명나라에 파견되었다가 왜란 발발 직후에 돌아와 의주 행궁에서 복명한 후 세자시강원 사서로 있으면서 왕세자 광해군을 호종하였다. 난후에 황해도 감사, 한성부좌윤, 승정원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인목대비에 대한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 가담하지 않는 관계로 인조반정 당시 화를 면하였으나 곧 바로 유응시 등 반대파의 고변에 의해 아들과 함게 체포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정조 때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고흥 운곡사에 배향되었으며 의정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이 문서는 임란직후에 시행된 조정의 반급문서로서 당시 공신에게 내려진 교서의 형태와 그 사례 연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문서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 있어서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소재지 : [548-801] 전남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 730
▣ 목마산성(사적 제65호) 측면식(側面式:山腹式) 또는 반면식(半面式) 산성의 대표적 보기이다. 산성 둘레는 약 1,900 m이고, 석축(石築)도 현재 남아 있는 산성으로는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산성으로서는 큰 편에 속하여 부근의 화왕산성(火旺山城)과 거의 같은 규모이나, 이 산성이 반면식인데 대하여 화왕산성은 마안형(馬鞍形)으로 그 형식만 다른 점도 산성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축성하였다는 설과, 말을 기르기 위한 성이었다는 설이 있다.
▣ 봉래면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362호) 상록수림의 소재지는 외나로도의 북서쪽 해안에 인접해 있으며 바로 그 남서쪽에는 청소년수련원이 있다. 위도상으로는 북위34°28′, 동경127°27′에 위치하며 난대북부에 해당된다. 이런 관계로 평균기온은 섭씨 14℃, 강수량은 1,400mm에 이르러 상록활엽수가 번성하는데 알맞는 기후조건을 이루고 있다. 난대특유의 임상을 지니고 있으며 수령 100년이상 흉고직경(胸高直徑) 1m에 이르는 동백나무 100여주, 수령 300년이상 수고 10m이상의 구실잣밤나무 300여주, 수령 50년이상 수고 8m이상의 후박나무 50여주가 임상을 표현하는 주요 수종이며 그밖에 황칠나무, 감탕나무, 생달나무, 보리밥나무, 자금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재지 : [548-943] 전남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 산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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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교통 ◐ 광주나 순천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과역에서 하차하여 능가사행 버스로 갈아탄다. 과역에서 15분 거리로, 하루에 8회 운행. ◐ 광주나 순천은 열차가 연결되는 곳이므로 철도와 연계시켜 산행을 계획하는 것도 편리하다. ▶ 도로안내 호남고속도로 주암IC→27번 국도→벌교→고흥방향 15번, 27번 공통 국도→연봉교차로 진출 후 좌회전→855번 지방도→점암면 소재지-점암중 삼거리 좌회전-능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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