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사진으로본 풍경

운문사 사리암(邪離庵)를 찾아가는 길

박상규 2009. 10. 20. 17:26

 

 

나반존자의 기도처인 운문사 사리암(邪離庵)를 찾아가는 길 

 

 

 늦가을 들판에는 황금빛이 일렁이는 들녘과 붉게 타들어가다가 지쳐서 단풍의 고운 빛깔이 조금씩 그 고운 빛깔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오늘은 비구니승이 계시는 청도 운문사와 나반존자의 기도처인 운문사 사리암을 찾아 나선다.

 

운문사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번지에  '천년의 숨결이 태동하는 호거산(虎踞山) 산자락에 운문사(雲門寺)가 자리잡고 있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며 대찰인 운문사를 뒤로하여 올라가면 호거산 중턱에 운문사 산내 암자인 사리암(邪離庵)이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기도처 가운데

하나이다.

 

 운문사 사리암에 있는 천태각(天台閣)  @2009년  

 

 

먼저 언양을 거쳐 석남사를 지나 가지산 능성을 자동차로 넘어 가는데, 가을산은 마치 불이 난듯 붉게 타오르고, 등에 베낭을 둘러 맨 등산객들이

가을을 만끽하려는 듯 하나 둘씩 산을 오른다

문득 차안에서 바라다 본 가을산에 보고싶어 차를 잠시 주차하여 두고 차에서 내리니 이렇게도 가을산이 고을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맑은 공기가 나의 큰 숨을 한번 내 쉬고 드리킬 때 마다 나의 심장 깊은 곳에 자리를 한다.

 

아름다운 가을산의 비경에 젖어 어떻게 왔는지 차량은 운문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운문사로 가는 길에는 청도 고장의 특산물인 감나무가 길가에 가로수 인양 줄지어 서 있는데, 벌써 가을 수확을 했는지 감나무에는 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운문사 입구에 도착하니, 차량통제원이 차량을 입구 주차장에 주차하고 운문사까지만 가라고 한다.

운문사를 거쳐 사리암에 가려면 조계종 신도증이 있거나 아니면 운문사 종무소에서 참배증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리암 통과여부를 두고 종종 시빗거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운문사까지는 관광이 허용된 구역이고 사리암은 관광지가 아니라 수행하는 도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화를 막고자 하는 최소한의 방편이란다.

 

 단풍으로 수놓은 가을산

 운문사 앞 산

 

주차장에 차량을 파킹하니 주차지를 2,000원 주라고 한다(시간은 관계없다고 함)

차량을 파킹해 놓고 일행 4명은 주차장에서 걸어가니 운문사 입장료를 징수한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운문사 입구하면 생각나게 하는 소나무 숲길이다

그 길을 솔향을 맡으며 걸어간다. 솔밭길에 옆으로 이번에 새로이 올레길이 만들어져서 자동차를 피해가는 혼잡함이 없이 호젓이 걸어갈 수가 있어 너무나 좋다 

 

 운문사 소나무 숲길

 

 운문사를 향하여 걸어가는 올레길가에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오래된 고목에 아름다운 단풍과 개울가의 억새가 늦가을 햇살을 받으며 반짝입니다

 

 

 억새와 고목의 고운단풍이 가을의 정취를 더욱 아름답게 가슴에 들어옵니다

 

 

 

 

 

 

 운문사와 사리암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입니다. 여기에서 직진하면 운문사이고, 좌측으로 올라가면 사리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9월 초하루이고 입시철을 앞둔 일요일이라서 사리암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불자들로 정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 갈림길에서부터 자동차들이 줄지어 정체되어 있고, 우리들은 그 사이 자동차를 피해서 사리암으로 걸어갑니다.

 

 저기 보이는 운문사 대찰앞에는 비구니승이들이 잘 가꾼 배추가 가을 한 가운데서도 푸르름을 더해 줍니다.

 

 운문사와 배추밭

 

 

 

 

 조금만 더 걸어서 올라가니 운문사 문수선원 입석이 보입니다

 학소대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로 지르는 수월교 다리를 건너면 문수선원입니다 (이곳에 흐르는 맑은 물은 스님들의 식수로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사리암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세속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맑은 청정수가 맑고 푸르다 못해 옥색(에메랄드)빛으로 보입니다. 마치 부처님 마음같기도 합니다

 

 옥색빛의 계곡 청정수

 

 

 

 

 사리암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길가에는 마치 아름다운 단풍의 숲속터널을 지나가는 듯 합니다. 길가에는 울긋불긋 단풍과 구절초가 보입니다

 

 

 

 

  

 구절초

 

 

 사리암 주차장에 도착

 사리암 주차장 입구에는 큰 쌍송(雙松)이 우리들을 반겨줍니다

 

 저 멀리 산중턱에 사리암이 아주 작게 보이는 듯 합니다

 이제부터 사리암을 가기 위해서는 등산(?)을 하여야 합니다/  마치 올라가는 입구에는 조금전에 내려오신 분이 나무 지팡이를 두고 가시네요 ... 

 

 

 사리암 가는 길

 

 

 

 2/3쯤 올라가면 감로수가 있습니다

 이제 거의 다 올라왔습니다. 저기 눈 앞에 사리암이 보입니다

 

 

 운문사 사적에는 사리암에 대해서 기록이 나와있다. 고려초 보양국사(寶壤國師)가 930년에 초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양국사는 달성군에 있는 비슬산 용연사도 보양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는 동일한 스님이다. 조선 헌종 11년(1845)에 정암당(靜庵堂) 효원대사가 중창하였으며 1924년인 계해(癸亥年)에 증축(增築)하였고, 1935년 갑술(甲戌)에 중수(重修)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1977년 비구니 혜은(慧隱)스님이 원주(院主)로 부임하면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사리암은 1978년 전기불사를 시작으로 1980년에 전 부산 거림회 회장 이인희 거사의 후원으로 3층의 요사를 신축하였고 1983년 현재의 관음전, 자인실, 정랑 등을 개축하였다

 

 사리암 전경입니다

 

사리암의 현판

 

 

 사리암 마루에 앉아 장독대 너머 저 멀리 가을산을 바라봅니다 / 장독대는 대중공양으로 쓰일 된장 단지입니다. 

 사리암과 공양소 사이로 나반존자를 모신 천태각이 보인다. 

 

 산신각과 단풍

 

 

사리암의 관음전

  

 

관음전의 현판

 

관음전의 정면에 있는 주련을 살펴보자!

 

補陀山上琉璃界  正法明王觀世音  影入三途利有情  刑分六道曾無息
보타산상유리계  정법명왕관세음  영입삼도이유정  형분육도증무식

 

보타산 위에 해맑은 유리세계  정법명왕 관세음보살
그림자처럼 삼도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하고
몸을 육도에 나투어 일찍이 쉴 사이가 없어라  
  

 

  사리암의 자인실

 

 자인실의 현판

 

                                                            자인당은 사리암의 요사체이다. 주련은 관음예문에서 나오는 글이다.

                               因修十善三祇滿 果秀千花百福嚴 逈寶山王碧海間 佩珠瓔珞白衣相
                               인수십선삼기만 과수천화백복엄 형보산왕벽해간 패주영락백의상

 

                                      인행(因行)에서 십선(十善)을 닦으시느라 삼아승기겁 동안을 채우셨으며
                                      결국에는 천 가지 연꽃으로 피어나고 백 가지 크나큰 복으로 장엄하셨도다.
                           보배 산 왕은 푸른 바다에 아스라이 계신데 흰 옷 위에 구슬 영락을 두르고 계시는 도다 

 

 사리암의 연혁을 적은 안내판

 운문사 사리암 사리굴(邪離窟)은 운문산에 있는 네 곳의 굴 중 하나이다.    네가지 굴을 살펴보면  동쪽은 사리굴(邪離窟), 남쪽은 호암굴(虎巖),    

서쪽은 화방굴(火防窟), 북쪽은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큼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나라 절에 자랑인양 전해져 내려오는 되지도 않은 병 주고 약주고 하는 속설(俗說)이 으레 등장을 한다. 하루는 공양주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어 구멍을 넓히고 부터 쌀이 나오지 아니하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장소는 나반존자(那般尊者)상이 모셔진 바로 아래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도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이 이루어지면서 유생(儒生)들이 스님을 비하(卑下)하고 욕하는 내용이 저변에 깔려있다.

  그러나 불교는 이런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마치 자랑삼아 늘어놓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관음전 내부에서 천태각을 향하여 기도를 하고있는 불자들

 

관음전 오른쪽옆에 있는 사리굴에서 기도를 하고있는 참배객 

 

나반존자를 모신 천태각 

  천태각 현판 밑에는 나반존자라는 불패(佛牌)가 있습니다

 

천태각과 나반존자(那畔尊者)

 

이쯤에서 사리암의 주존격인 나반존자인 독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반존자(那畔尊者)는 누구일까?

나반존자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된 사람"이라는 게, 보편적인 해석이다. 말세의 복(福) 밭이라고 신앙하는 나한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십대제자에도 나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16나한에도 그리고 500나한에도 존재하지 않으니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정설이고 주장이다. 사학자이며 단군조선을 비롯한 민족의 상고사를 깊게 연구한 육당 최남선(崔南善)은 독성(獨聖)은 우리민족고유의 신앙이 불교에 흡수된것이라고 하기도 하였으며. 다시 말해 단군(檀君)이라고 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매 한가지이다. 어떤 학자들은 독성은 16나한의 우두머리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국역경원의 불교사전에도 나반존자는 명확한 해설을 달지 못하고 빈두로존자일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독성을 봉안한 전각이 바로 독성각(獨聖閣)이다. 우리나라에서 독성각이 사찰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대략적으로 조선의 제19대왕인 1693년(숙종19년)이며, 그 후 세월이 흘러 180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찰에 세워지기 시작하게 된다. 불교가 한창 흥성하고 전법되던 신라불교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나반존자가 수행했다고 하는 산의 이름도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이다. 천태산은 우리가 잘 아는 한산(寒山) 그리고 습득(拾得) 또한 법화경의 대가를 이룬 천태지자 역시도 이 천태산이 수행의 근거지이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해가 뜨고 잎이 피고  봄에 꽃이 피는 것, 가을에 열매가 맺는 것 등 변함없이 운행되는 우주의 법칙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며 그대 홀로 수행을 하였다고 하여 독성(獨聖)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나반존자를 신성시하게 하기 위함이 역력히 보여진다.

 

사리암의 천태각(天台閣)은 일명 독성각(獨聖閣)이라고도 하며 조선 헌종 11년(1845)에 신파대사(新派大師)가 초창하여 나반존자상을 봉안하였다. 이 나반존자상의 후면에는 조선 철종 2년(1851)에 봉안한 독성탱화(獨聖撑畵)와 1965년에 통도사 극락암 경봉(鏡峰)화상이 점안한 산신탱화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