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모든것

'삼재' 없는 오대산

박상규 2010. 1. 13. 23:58

 

 

 

월정사에서 시작해서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1563m)에 이르는 길은 엄동설한에도 인적이 끊이지 않는다. 성지를 찾는 순례객과 명산을 찾는 등산객의 발길 때문이다. 이들은 대개 오대산장, 상원사,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을 거쳐 정상에 이른다.

 

 

 

12km 정도 되는 이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상원사 입구까지 차로 갈 수 있고 거기서 비로봉까지는 3km에 불과하다. 흙산인 데다 산세도 험하지 않아 4시간 정도면 너끈히 왕복할 수 있는 코스다. 그렇다고 해서 서둘렀다가는 오대산의 겉모습만 보기 십상이다.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부처의 정골 사리를 모신 불교의 성지이며 우리나라 1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을 다녀온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오대산은 그 오묘한 사연과 멋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산이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명소 주변을 차분하게 더듬으면 오대산은 그 은밀한 부분을 조금씩 열어준다.


 

 

 

오대산의 연원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자장율사에 의해 ‘1만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산’으로 개산된 것이 가장 오랜 기록이다. 8세기 들어서는 보천과 효명 태자에 의해 오류성중(五類聖衆)이 머무는 곳으로 발전되었다. 동대에 관음보살 진신 1, 서대에 대세지보살 1, 남대에 지장보살 1, 북대에 500 대아라한, 중대에 1만 문수보살이 머무른다 해서 5대가 형성됐고, 부처의 정골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중대 위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오대산의 속살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오대산장 안의 연화탑, 상원사 입구의 관대걸이, 중대 사자암의 고사한 단풍나무에 얽힌 사연을 음미하고, 적멸보궁에 이르러서는 주변의 지세를 눈여겨봐야 한다. 1965년 여름 사망한 남녀 대학생 10명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연화탑에서는 산의 깊이와 자연의 엄격함에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조선 초 세조가 목욕하며 의관을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에서는 오대산의 후덕함을, 한암 스님의 일화가 서린 단풍나무 앞에서는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조 태종과 세조가 원찰로 삼았던 상원사에 얽힌 이야기는 오대산의 품성을 알기 쉽게 일러준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는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직접 만나고 병을 고쳤다고 한다. <오대산>(대원사, 1996)을 쓴 소설가 용수 씨는 이런 후덕함과 온유함이 오대산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하면서 어머니 젖가슴에 비유하기도 했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가까운 이들의 목숨을 빼앗은 태종과 세조가 머리 숙여 정신적 안식을 구하였고, 그런 이들을 받아들인 산,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고 누나의 등처럼 향기로운 산, 세상살이를 어느 정도 겪은 뒤에야 그 가슴의 넓이와 깊이를 느끼게 되며 나이가 지긋해져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알아보고 뒤늦은 깨달음[晩覺]에 탄식하게 되는 산, 이런 산이 바로 오대산이다.

 

 

 


‘나라 안의 명산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곳으로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라고 했던 일연의 예언대로 불교의 성지가 된 것은 오대산의 이런 품성 덕분일 것이다. 불교와는 다른 측면에서 오대산을 명산으로 꼽은 이도 많다. 이중환은 “오대산은 흙산이면서 천 바위, 만 구렁이 겹겹으로 막혀져 있다. 가장 위에 다섯 축대가 있어 경치가 훌륭하고 축대마다 암자 하나씩 있다. 중대에 부처의 사리를 간직했다. 상당 한무외가 이곳에서 선도를 깨치고 시해(尸解)하였는데, 연단(鍊丹)할 복지(福地)를 꼽으면서 이 산이 제일이라고 했다”고 <택리지>에 썼다. 조선 중기의 도사 한무외는 허균에게 신선이 되는 연단법을 전해주었고, 스스로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오대산은 또 조선시대 사고가 위치했던 곳이다. 월정사와 오대산장의 중간에서 왼쪽으로 800m 지점에 사고터와 영감사가 있다. 상원사, 적멸보궁, 비로봉에 이르는 길과 달리 사람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지만 <택리지> 이후 오대산의 지리와 역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다.

 

 

 

이곳이 사고지로 지정된 데는 사명대사의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영감사 원주인 각수 스님에 따르면 사명대사가 이곳 영감암에 5년 동안 머물면서 퇴락한 월정사를 복원하려고 했다. 이때 사명대사가 이곳이 오대산의 복장이고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고 주청해서 사고를 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조선 조정에서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을 사고지로 삼은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왜군이 왕조실록 등 중요한 기록이 보관된 사고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먼저 고려시대 이래 가장 많은 전적을 소장한 충주 사고가 왜군에 의해 불탔다. 성주 사고의 실록은 땅에 묻었으나 왜군에 발각돼 유린됐다. 춘추관 사고는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피난간 뒤 백성의 방화로 사라졌다. 유일하게 전주 사고의 실록을 포함한 서책만 현지 관리와 민간 유생, 승려들이 내장산 깊숙한 암자로 옮겨 전화를 피할 수 있었다.

 

 

 

임란이 끝난 뒤 선조는 전주 사고본을 토대로 실록을 4부 더 만들어 춘추관태맥산묘향산마니산오대산 등 이른바 5대 사고에 보관했다. 이 가운데 오대산 사고본은 전주 사고본을 재출판하면서 만들었던 교정본으로서 먹 또는 붉은 색으로 교정한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오대산 사고본의 역사는 우리 기록문화의 수난사를 압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과 불과 바람의 삼재가 들지 않는다는 사명대사의 주장대로 오대산 실록은 300여 년 동안 안전하게 지켜졌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인 1914 5대 사고본 중 유일하게 일본으로 강제 반출되는 비운을 맞았다. 식민지 연구 자료로 삼기 위해서였다. 동경제국대학 부설 도서관에 있던 오대산 사고본은 1923간토대지진 때 대부분 불탔다. 남은 것은 교수들이 밖으로 대출해간 74책뿐이었다. 일제는 1932년 이 가운데 27책을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나머지 47책은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2006년에야 서울대에 기증 형식으로 환수됐다.


 

 

일제가 실록을 수탈해간 뒤에도 오대산 사고 건물은 무사했다가 625 와중에 우리 군의 작전에 의해 불태워졌다. 삼재를 피하더라도 인재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일제의 수탈을 피하지 못했고, 북한 인민군의 퇴각로와 무장공비의 침투로로 이용된 것에서 보듯이 오대산은 누구든 막지 않고 품에 안을 뿐인가. 사고 터에는 영감사가 들어섰다가 1992년 다시 사고에 자리를 내주고 그 뒤에 옮겨지었다. 원래 영감암으로 불리다가 사고를 지키는 사고사(史庫寺)의 임무를 맡으면서 사()라는 칭호를 받은 영감사의 역사 또한 우리의 기록 수난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오대산은 소금강 지역까지 영역을 넓혔다. 두 지역은 여러 면에서 성격이 다르다. 우선 행정구역상 월정 지구는 평창군 진부면, 소금강 지구는 강릉시 연곡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후도 백두대간 서쪽의 월정 지구는 내륙성, 동쪽의 소금강 지구는 해안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 부드러운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월정 지구와 달리 소금강 지구는 기암괴석과 폭포, 소 등이 어울려 절경을 연출한다. 소금강이라는 이름은 무릉계에서 시작해 노인봉(1338m)에 이르는 약 10km의 계곡이 금강산의 축소판이라 해서 유래했다. 율곡 이이가 춘추관 기사관으로서 명종실록을 편찬한 뒤 이곳에 들렀다가 청학산(靑鶴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고, 이를 식당암에 새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소금강 지구는 국립공원이 되기에 앞서 1970년 우리나라 명승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주요 명소로는 무릉계, 삽자소, 연화담, 명경대, 식당암, 구룡폭포, 만물상, 백운대, 낙영폭포 등이 있다. 구룡연 동쪽 능선에 마의태자가 재기를 위해 쌓았다는 아미산성이 있고, 그 병사들이 식당암에서 밥을 먹었다는 등의 전설이 곳곳에 서려 있다.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나와 가우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월정사, 진고개, 소금강으로 통한다. 방아다리약수로 가려면 가우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버스로는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까지 2시간 20, 진부에서 월정사까지 시내버스로 15분 정도 걸린다. 소금강 지구로 가는 시내버스는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 있다


'산의모든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남의 금강 - 내장산  (0) 2010.01.19
우리나라의 산은 몇 개나 될까?  (0) 2010.01.15
부산 금정산  (0) 2010.01.13
소백산 눈꽃터널을 지나며 마음의 세례를 받다  (0) 2010.01.07
천안 광덕산  (0) 2010.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