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불 지핀 지리반야
노고단-반야-반야성지-뱀사골-반선
2008. 9. 20.
밤새 지친바람 다리쉼에 하늘가득 고인구름
해오름 길목마저 막아선채 어둠은 늘어지고
반선에서 뜬눈 밟힌 보람도 없이
더딘 여명과 함께 끝나버린 해오름 못내 아쉬워 발 길 머무는데
그 마음 알았는지 구름 젖히며 빼꼼이 고개내민 햇님
꽃가마 새악시 언뜻비친 얼굴마냥 스치듯 구름속에 숨어든다
아쉬움 접어 마음에 담구고 어스름 걷으며 잽싸게 채색되는 반야를 바라본다
묵묵함이 도도하고 침묵은 금과 같이 귀중함을 일깨워주는 반야
이따금씩 구름을 째는 붉음으로 정막한 시공은 오묘해지고
노고에서 천왕까지 불그스레 익어가며 깨어나는 능선이 아름답다
언제나 바람과 운무에 허덕이는 노고 사면길 오늘은 마고할멈의 심술도 보이지 않고
저멀리 80리 섬진강 한눈에 아우르는 왕시루봉이 안개강 가운데 홀로 떠 외롭다
지리 주능선에서 가장 편안한 길
제 아무리 걸어도 질리지 않을 돼지평전 이 유순한 길에서 지리의 德을 갈구한다
돼지령 조망대에서 불무장등 사면과 용수골로 쏟아지는 빛 내림과 마주한다
불무장등 단풍불 지피면 피아골 삼홍소 피물넘쳐 섬진강에 이르니 그것이 정녕 지리의 가을 이리라
지리산 가을은 억새숲에 웅크린 쑥부쟁이로 부터 시작되고
바위무덤 등 밝히는 구절초에서 비롯된다
바람도 쉬고 구름도 쉬고 사람도 쉬어 간다는 노루목
종주길에 나선 산객들로 다소 번잡해도 스치는 땀내음이 향기롭다
누가 시켜서 하는일이 아닐지언데 새벽길을 달려 상봉으로 향하는 발걸음
힘겹고 고단한 이 길을 스스로 걸으려 함은 명예와 재력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저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루목 암봉에 서서 불무장등 등팍을 핥으며 불어온 따스운 바람과
심원골 냉기를 실은 차거운 바람을 이름모를 산새와 같이 쐬어본다
섬진강 피어오른 운무 피아골 굽이돌아 돼지령에 밀려들면
누렇게 변해가는 반야산정 양지뜸 바위등에 눈물떨군 구절초 흐느낌이 애처롭다
오랜지기 친구의 어깨마냥 듬직한 반야
그래서 늘 그곳에 기대고 싶고
펑퍼짐한 아내의 가슴마냥 포근하여
늘 그곳에 잠기고 싶은 반야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듯
조심스럽게 반야를 더듬어 오른다
토끼봉과 명선봉 그리고 저멀리 촛대봉과 상봉까지
주능선에 올라탄 구름무리가 한가로히 운무놀음에 젖어들고
목통골 피어오른 운무가 삼도봉 콧등타고 반야산정까지 올라와
늦으막이 꽃잎펼친 구절초 잎새에 주렁한 눈물망울 매달고 사라져간다
눈 시리게 푸른 반야의 하늘이 감춰진 탓에
눈꺼플 활짝열고 산정을 주시하지만 유난히 파란 반야의 하늘이 그립다
지고나면 초췌하고 퇴색되면 남루해 지는게 세상 만물들이 지닌 속성이나
지리에서..반야에서는 그 진리마저 비켜감을 눈으로 확인한다
먼지가루 얹혀진 바위틈에 홀론핀 구절초
운명이란게 이토록 질기고 지독한 것을..
사시사철 푸른 구상나무 바늘잎새처럼 촘촘히 떠오르는 기억들
향기론 추억을 되새기며 더 이상 오를수 없는 반야산정 그 정점에서 걸음을 멈춘다
사랑하는 아내와 그리고 친구들
반야에서 멈춰진 저 모습은 내 삶의 마지막까지 행복한 순간으로 기록되겠지
살고나서 후회한들
흘러간 세월 되짚어 볼 수 없는일
하고 싶을때 해야되고
보고 싶을때 보아야 한다
슬퍼할때 눈물 흘리고
기쁠때 맘껏 웃어야 한다
거짓없이 진실된 이곳에서 오른자만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자유와 존재의 가치
이거야 말로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믿음이자 인생이다
가을이 보인다
여름내 흘린 땀방울이 모아져 혼신을 다한 마지막 열정
이미 불지핀 단풍화신
반야는 가을로 가고 나도 따라 가을로 간다
상심없는 가을은 가을이 아님을
쓰러진 고목에서 세월의 무상함이 싹트고
산사 처마밑 풍경소리에도 상심은 흐느끼는데
그리운 품에 안겨 있음에도 그리움 물든 상심을
이 계절이 다할때 까지 가슴에 묻어 아파하고 애태워 하며 음미하리라
반야성지 홀로남은 스님을 등뒤에 두고 속세로 향하는 길
고독은 남은 스님보다 떠나는 내게 멍에를 씌운다
역사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채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리 깊은골 메마른 그곳에도 가을은 터를 잡는다
속세와 이상은 거칠고 험한 길로 나뉘고
그 경계를 넘어선 발걸음은 늘 휘청거리며 위태롭다
그러나
같이하는 마음이 있어 위로가 되고 힘이된다
산정에 서면 오름의 고통은 지워지고
날머리 나올때면 지루했던 하산의 힘겨움 오간데 없으니
오로지 행복한 마음만이 그리움 물들인다
그곳이 지리기에 그리움 마음벽 닥닥 긁어 더 아리고 더 쓰려도
그 아픔이 내겐 희열이 된다
- 감사합니다 -
아름다운 산을 찾아서..(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