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영월 단양간 상류 드라이브

박상규 2009. 7. 11. 16:25
길은 본디 강을 따라 난 것이었다. 강원 영월에서 충북 단양까지 남한강 상류 100리. 정선 아우라지 나루에서 출발한 뗏목은 이 강을 따라 한양으로 갔다. 뗏목도 나루도 사라진 지금, 강변에는 자동차 도로가 나 있다. 88번 지방도로, 595번 지방도로, 59번 국도로 이어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뗏목 대신 자동차에 몸을 싣고, 강물 대신 차도를 따라 내려갔다. 자동차 미터계로는 45㎞ 정도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 가곡초등학교 앞 플라타너스 길은 영월~단양 남한강 100리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다.
“여기서 충주까지 다슬기 천지래요. 강원도에서는 골뱅이, 충청도는 올갱이, 표준어로는 다슬기. 그냥 쓸어담으면 되지. 다슬기도 큼지막하잖아.”

영월 동강 어라연 근처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던 이병용씨는 “이것 보래요” 하며 갓 잡아올린 다슬기를 두 손 가득 담아보였다. 영월서 단양까지 다슬기 해장국집이 줄줄이 이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같은 강이다.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을 이뤄 단양까지 흘러간다. 두 강물이 만나는 영월읍 동강대교 아래가 남한강의 출발점이다.

동강은 여름철 래프팅 명소. 그러고보면 예나 지금이나 동강엔 뗏목이 떠다니는 셈이다. 100여년 전엔 떼꾼들을 실은 뗏목이 가파른 급류를 헤치고 나아갔고, 지금은 관광객을 태운 래프팅 보트가 급류를 타고 내려온다. 떼꾼들이 배를 채우고 잠을 청하던 주막 자리엔 래프팅 업체와 민박집이 가득 들어섰다. 급류 덕에 래프팅이 발달했지만, 급류는 떼꾼들에겐 ‘무덤’이었다. 어라연 입구 ‘된꼬까리 여울’은 ‘되게 고꾸라진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어라연 입구에서 어라연까지 왕복 3시간30분 코스. 물길로는 모퉁이만 돌면 되지만, 뭍으로 가려면 재를 하나 넘어야 한다.

두 물이 만나는 합수머리를 뒤로 하고 영월을 빠져나오면 88번 지방도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드라이브의 시작이다. 오른쪽으로 강을 끼고 왕복 4차선 도로가 이어진다. 가뭄 탓에 물이 말라붙어 강은 좀 볼품이 없다. 단풍도 들다 말고 타버린 것처럼 오그라들었다. 지난 여름 수해 때문에 도로 곳곳엔 무너진 구간도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물 위로 산과 하늘이 그대로 비친다. 왕검성(정양산성)과 정조 태실비를 지나면 고씨동굴이 나온다.

고씨동굴은 임진왜란 때 고씨 일가가 피신해 살았다는 석회 동굴. 수학여행 단골 코스다. 단양 근처에 이름이 비슷한 ‘고수동굴’이 있는데, 고수동굴은 고수동이란 지명에서 유래했다. 오래전부터 관광지로 개발돼 식당 등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남한강은 고수굴 앞 3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자동차는 595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나루의 흔적은 ‘뱃나드리’ ‘맛밭나루’ 같은 지명으로만 남았다. 뗏목이 아우라지에서 한양 마포나루까지 가는데 보름은 걸렸다. 그러나 단양 영춘이 고향이라는 한 할머니는 “한양 다녀오는데 1년 걸렸다”고 말했다.

“남자들이 떼 타고 가면서 구경하고, 술 먹고, 마누라도 하나 만들고 하다보면 한해 걸렸어. 산 여럿 갖고 있는 부자들이나 떼 탔지. 산에서 남구(나무)를 해 와야 떼 만들지. 보통 사람들은 떼 탈일 있나. 쌀자루 이고 장에 다녔지.”

뗏목이 요즘의 유람선 격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뗏목이 ‘한량’들만 실어나른 것은 아니었다. 19세기말 배를 타고 한강을 따라 금강산까지 여행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한강은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도 북동부의 많은 곳을 연결하는 큰 간선 수로”라며 “한강을 따라 모든 잉여 생산물이 서울로 흘러 들어간다”고 기록했다. 하루 평균 75척의 배가 다녔으며, 한강과 영월 사이의 강변에만도 176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수로로서 한강의 기능은 1928년 충북선 개통과 함께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595번 지방도로는 충북 단양군 영춘면 앞에서 내륙으로 꺾어진다. 단양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전설의 무대. 온달산성과 온달동굴을 중심으로 조성한 ‘온달관광지’가 있다. 온달산성은 가파른 산길로 왕복 1시간이 걸리지만 한번쯤 올라볼 만하다. 돌만으로 쌓아올린 삼국시대 산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원형도 잘 보전된 편이다.

구인사를 지나면서 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휘고 비틀린다. 어찌나 구불구불한지 고개 정상에서 보니 ‘도로’보다는 산에 그려놓은 나선형 ‘무늬’처럼 보였다. 길은 소백산 자락을 넘어 가곡면 향산리에서 59번 국도와 만난다.

가곡초등학교 앞의 300m 정도 되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은 이 도로의 하이라이트. 갈대 핀 남한강을 끼고 쭉 뻗은 도로가 이어진다. 덕천교 앞에서 다시 고수령을 넘으면 멀리 단양 시가지가 보인다. 단양 시내로 이어지는 고수대교를 지나자 올갱이 해장국 간판이 나왔다. 남한강 물길은 ‘한양’까지 400리를 더 이어진다.

-한상 푸짐하게 밥먹고 가요~-

남한강변 드라이브길. 주막은 없지만 밥집은 많다. 보리밥, 칡국수, 감자떡, 올갱이 해장국, 도토리묵, 마늘정식 등이 대표적인 토속의 맛이다.

# 다슬기 마을

영월역 앞엔 다슬기 해장국집 2곳이 나란히 붙어있다. 왼쪽이 ‘다슬기 마을’, 오른쪽이 ‘다슬기 향촌’이다. 다슬기 껍데기로 ‘원조’ 글씨를 만들어 붙여놓은 ‘다슬기 마을’로 갔다. 다슬기 해장국, 전골, 부침개 등 다슬기 요리만 내는 집이다. 다슬기와 시래기를 넉넉히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해장국이 대표메뉴. 나물, 더덕무침 등의 곁반찬도 깔끔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까먹을 수 있도록 다슬기 한 접시를 미리 준다. “동강 다슬기만 쓴다”는 주인 박복동씨의 말에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바깥양반’이 잠수복을 입은 채 다슬기 그물을 들고 들어서는 덕분에 신뢰도가 대폭 높아졌다. 3년전 경기 안양시에 2호점을 냈다. 다슬기 해장국 5,000원, 다슬기 부침개 1만원. (033)373-5784

# 장릉 손두부

산초두부구이가 별미다. 추어탕에 양념으로 들어가는 산초로 짠 기름에 두부를 구워서 낸다. 따뜻할 때 김이나 김치에 싸 먹는다. 산초두부구이 1인분에 1만원. 납작하게 썬 두부 7~8조각이 나온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자 주인 할머니가 “직접 콩 심어서 키워 거둬서 만든 두부인데 그래도 비싸냐?”고 되물었다. “술 마시고 떠드는 손님은 내쫓는다” “음식 남기면 안된다”면서도 “부족한 것 없냐”고 몇번이나 다시 챙겼다. 3년동안 묵혔다는 묵은지가 별미다. 두부전골 6,000원, 손두부 5,000원. 36년째 영월 장릉 앞에서 영업중이다. (033)374-6006

# 장다리 식당

서울에 마늘요리전문점 ‘매드 포 갈릭’이 있다면 단양엔 ‘장다리 식당’이 있다. 마늘 요리로 한 상을 차려낸다. 전채로 마늘을 껍질째 튀겨 소금과 참기름을 뿌린 통마늘튀김, 마늘빵이 나오고, 마늘 간장 장아찌, 마늘 고추장 장아찌, 젓갈에 박은 마늘, 마늘쫑 장아찌, 마늘쫑을 튀겨 양념을 입힌 마늘쫑튀김, 마늘맛살샐러드 등이 반찬으로 나온다. 마늘솥밥정식을 시키면 마늘, 해바라기씨 등을 넣고 안친 돌솥밥(사진)을 주는데, 마늘 장아찌를 얹어 상추에 싸먹는다. 마늘솥밥정식 1만원, 솥밥 대신 산채비빔밥이 나오는 산채마늘비빔솥밥정식 1만원. 고수대교를 건너 단양시내로 진입하자마자 오른편 골목에 있다. (043)423-3960


〈영월·단양|글 최명애기자 3Dglaukus@kyunghyang.com">glaukus@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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