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섬들이 붉게 탄다 5월은 진도가 가장 예쁠 때. 향동재 넘어가는 굽이굽이 고갯길에는 아지랑이가 어지럽고 들녘에는 노란 무장다리꽃이 환하게 핀다. 드넓게 펼쳐진 보리밭은 봄바람에 일렁이고 운림산방 연못가 수양버들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는다. 진도는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이 이어지는 물목, 진도대교에 올라서면 다리 밑으로 하루에 네 차례씩 시속 11노트로 흘러내리는 거센 물살을 볼 수 있다. 소용돌이치는 울돌목의 물소리는 마치 커다란 황소 떼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그만큼 물살이 세다. 1597년 이순신이 군선 12척으로 133척의 왜선을 맞아 싸워 33척을 수장시킨 명량대첩의 현장이다.
진도 여행에서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운림산방이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머물렀던 곳. 초의선사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통해 그림을 익히기 시작한 소치는 추사 김정희에게 서화수업을 받았다. 추사는 소치를 두고 ‘압록강 이남에는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했다. 시서화로 당대를 휘어잡은 소치였지만, 1856년 스승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소치의 화맥은 아들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 증손자 임전 허문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운림산방은 4월 중순 무렵부터가 가장 예쁘다. 수양버들에는 아기손톱만한 싹이 돋고 운림산방 뒤에 자리 잡은 첨찰산도 봄빛을 띠기 시작한다. 여린 봄 햇살을 쬐는 연둣빛 새싹들. 운림산방에서 보낸 소치의 말년은 더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운림산방을 나와 향동재로 간다. 진도 동쪽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고갯마루에 진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발아래 금호도, 모도, 두력도, 무저도, 대삼도 등이 바둑알처럼 떠 있다. 해무에 지워졌다가 불쑥 나타나는 수많은 섬들의 모습이 신비롭다. 향동재는 진도 주민들 사이에 일출 조망지로 알려진 곳.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향동재 넘어 만나는 의신면 모도리는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하다.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의 약 2.8㎞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1년에 3~4차례 갈라진다. 진도 사람들은 이것을 ‘영등살’이라고 부른다. 1975년 랑디 주한 프랑스 대사가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에 기고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물길이 완전히 갈라지는 때는 봄(4·5월)과 가을(10·11월)에 각 3일 정도씩. 가을에는 새벽에 갈라지기 때문에 제대로 보기 힘들고 봄에 열리는 물길이 가장 좋다.
영등제의 역사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회동리 사람들은 호랑이를 피해 모도로 피신했다. 하지만 급하게 가느라 뽕할머니가 혼자 남겨졌고 뽕할머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용왕에게 기도를 올렸다. 감동한 용왕은 바다를 열어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뽕할머니는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후 사람들은 뽕할머니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바로 영등제다. 진도 서쪽 바다는 일몰이 아름답다. 특히 지산면 세방리는 중앙기상대가 꼽은 한반도 제일의 낙조 명소. 도로변에 낙조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낙조 전망대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올망졸망 모여있는 다도해의 섬 사이로 붉게 떨어지는 햇덩이를 목격할 수 있다. 양덕도, 주자도, 혈도, 광대도 등 섬들이 낙조 속으로 붉게 타들어가는 모습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석성을 둘러싼 개울에 놓여있는 2기의 예쁜 다리도 놓치지 말고 볼 것. 동쪽에 있는 것이 단홍교, 서쪽에 있는 것이 쌍홍교다. 우리 옛 ‘무지개 다리’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글·사진 최갑수/여행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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