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와 시루섬을 연결하는 모래톱은 양쪽으로 바다가 있다. 여름이면 이쪽도 바다, 반대편도 바다인 이른바 ‘양면 해수욕장’이 되는 곳이다. |
▲ 사도와 모래톱으로 연결된 시루섬의 얼굴바위. 이마와 코의 선이 마치 조각작품인양 완벽하다. |
▲ 1년에 서너차례 사도와 바닷길이 연결되는 추도. 이곳에는 공룡이 찍고 달려간 발자국이 남아있다. | | |
# 무슬목의 봄 바다가 들려주는 경쾌한 춤곡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곡 ‘가고파’의 무대는 경남 마산이다. 하지만 바다를 고향으로 두지 않았음에도 ‘내 고향 남쪽 바다’라면 전남 여수의 바다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향’이란 말에서 푸근한 여수의 쪽빛 바다가 선연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여수의 바다가 주는 안온한 느낌 때문이 아닐까.
향일암과 오동도 그리고 돌산대교와 거문도…. 이즈음 전남 여수에 가면 벼랑에 위태롭게 세워진 향일암 앞마당에서 일출을 만나거나, 붉은 동백이 툭툭 꽃모가지를 떨어뜨린 오동도의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또 흰 등대가 아름다운 거문도의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거나, 돌산대교의 야경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곳들은 일찌감치 개발돼 워낙 유명세를 떨치는 곳. 여기까지는 누구든 여수를 찾으면 밟는 행로다.
이렇듯 유명한 여행지는 그 유명세로 다른 여행지들을 가려버리고 만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여수에 도착하면, 누구든 망설임없이 돌산대교를 건너 향일암을 향하거나, 오동도를 찾는다. 하지만 여기에다 여수의 명소 몇 곳을 더 보태라면,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심지어 여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도 그렇다. 그러나 어디 여수에 이곳들뿐일까.
그렇게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바로 무슬목이다. 여수에서 한적한 봄바다의 정취를 만나고 싶다면, 무술목의 바다가 단연 첫손으로 꼽히지 싶다. 오동도와 돌산대교 쪽의 바다는 고요하지만, 무슬목의 바다는 육지 쪽으로 제법 높은 파도를 밀어낸다. 그래서일까, 무슬목의 해안은 파도를 만나 둥글어진 돌들로 가득하다. 다른 바다의 몽돌해안에 뒹구는 돌이 자갈 크기라면, 이곳 무슬목의 돌들은 굵다. 보통 배구공만해서 웬만한 파도에는 꿈쩍도 안한다. 파도에 자그르르 돌이 구르는 소리야 들을 수 없지만, 파도가 둥근 돌에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경쾌하고 맑은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파도가 때린 물살이 돌에 닿아 거품을 만들어내는데, 거품이 꺼지면서 마치 막 마개를 따낸 탄산음료를 컵에 담았을 때처럼 ‘싸아~’하는 소리가 여운처럼 남는다.
무슬목의 바다는 동쪽으로 열려 있어 일출이 아름답다. 어둑어둑한 여명 무렵에 무슬목의 바다를 찾아가서 맑은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멀리 바다 끝을 붉게 물들이며 불쑥 솟아오르는 장엄한 해를 마주해 보자. 무슬목은 비록 눈이 확 뜨일 만한 절경은 없지만, 자그락거리는 갯돌을 밟고 서서 노래 ‘가고파’의 한 소절을 나지막이 불러보면, 봄 바다의 파도가 박자를 맞춰주리라.
# 쪽빛 바다의 화음으로 가득 찬 사도의 바다
사도에는 ‘자연이 만든 음악당’이 있다고 했다. 봄 바다의 소리를 찾아가자면 사도를 빼놓을 수 없다고, 사도에서는 파도 소리가 마치 음악 소리처럼 들린다고도 했다.
여수항에서 남서쪽으로 27㎞ 떨어진 섬. 모래로 이뤄졌다 해서 ‘모래 사(沙)’자를 쓰는 사도는 하나의 섬 이름이기도 하고, 사도와 함께 물때에 따라 열렸다 닫혔다 하는 추도와 중도, 시루섬, 장사도, 나끝, 연목 등 7개의 손바닥 만한 섬을 한꺼번에 이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일곱개의 섬을 다 더해봐야 면적은 28만㎡(약 8만4700평) 남짓. 이중 사도와 추도만 유인도고 나머지 다섯개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두 섬을 다 합쳐도 스물다섯 가구에 주민들은 50명이 고작이다.
사도에서는 어디서건 파도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워낙 섬이 작은 탓에 어디에 서 있건 파도 소리가 따라온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로를 따라 섬을 한바퀴 돌아보는 길에서도 파도 소리가 따라온다. 민박집 툇마루에 앉아도, 산책로의 벤치에 누워도, 파도소리는 따라온다.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파도 소리도 다 다르다. 조용조용 모래 해변을 핥듯이 찰랑이는 소리도 있고, 켜켜이 쌓인 퇴적암을 살짝살짝 때리는 찰싹거림도 있다.
사도에서는 왜 이렇듯 귀가 예민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적막 때문이리라. 섬을 다 돌아보는 데는,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두시간이면 충분한 작은 섬에는 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경운기 한 대 찾아볼 수 없다. 동력을 지닌 것이라고는 두세척의 어선과 낡은 소형 스쿠터 한 대가 전부다. 파도 소리마저 없었다면 사도는 아마도 텅 빈 진공상태 같은 적막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사도의 ‘자연이 만든 음악당’은 사도와 모래톱으로 연결된 시루섬에 있었다. 바위가 동굴처럼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마치 남산의 야외음악당처럼 생긴 곳. 그곳에 들면 기암괴석의 바위 사이를 드나드는 바닷물 소리가 반원형의 벽에 부딪혀서 동글동글하게 울린다. 햇볕이 따스해서였을까, 봄날의 파도 소리는 겨울의 것보다 훨씬 더 유순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 사도가 숨겨두고 있는 것들
소리를 찾아 들어온 길이지만, 사도에는 의외로 볼거리가 많았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사도 선착장에 세워진 거대한 공룡 모형. 배에서 내리자마자 마주친 공룡 모형이 뜬금없다 싶었는데, 사도와 인근 섬에 남겨진 공룡발자국이 3800개나 된단다. 일대가 호수였던 7000만년 전의 것이라는데, 몇몇 발자국은 방금 찍고 달려간 것인 양 선명하다.
사도는 또 물빠짐이 많은 때인 정월대보름과 2월 영등날, 그리고 4월 중순 무렵에 인근에 떠 있는 일곱개 섬과 바닷길이 연결된다. 썰물때 섬과 섬을 잇는 길이 드러나는 것은 남쪽 바다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은 일.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느라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못마땅하긴 하지만, 사도와 추도를 잇는 바닷길이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은 장관을 이룬다.
사도에서 다리를 건너가는 중도를 지나면 모래사장으로 시루섬과 연결된다. 시루섬에는 사람의 선명한 옆얼굴 모습을 한 ‘얼굴바위’가 있다. 대부분의 관광지에는 대충 비슷한 형상을 따서 바위이름부터 붙이고 ‘똑같지 않으냐’고 강요하지만, 시루섬의 얼굴바위는 마치 솜씨좋은 석공이 쪼아 만든 듯,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대번에 바위에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하게 된다. 그 곁의 거북바위 또한 머리를 높이 치켜든 거북의 모습이 금세 떠오른다.
사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을 뒤편 언덕으로 나있는 산책로. 길지는 않지만, 바다 전망이 그만이다. 나무울타리가 쳐져 있는 산책로에는 자연석이 깔려 있고, 돌 틈으로 진초록의 풀과 야생화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울타리 너머로 쪽빛 바다와 퇴적암이 내려다보이는 그 길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배를 타고 사도까지 온 보람이 느껴진다.
# 대웅전 문고리를 쥐고서 마음을 들여다보다
여수의 절집들이란 죄다 향일암의 명성에 가려져 외지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찬찬히 둘러보자면 여수에는 운치있는 절집들이 즐비하다. 장쾌하게 동쪽으로 열린 바다를 끼고 있어 일출이 아름다운 용월사도 있고, 암벽과 동백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은적암도 있다.
봄이면 붉은 진달래가 불붙는 영취산 아래 호젓하게 들어선 흥국사는 ‘문고리를 잡으러 가는’ 절집이다. 흥국사는 대웅전의 문고리 하나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흥국사 대웅전의 여섯개의 문고리는 그야말로 ‘슈퍼 사이즈’다. 서너사람이 두손으로 돌려가며 잡아도 남을 정도다.
이 문고리에는 한번 잡기만 해도 ‘삼악도’를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불가에서 삼악도란 ‘악인이 죽어서 간다는 괴로운 세상’을 뜻한다. 죄지은 중생이 가는 지옥의 세계를 이르는 ‘지옥도’, 동물로 환생하게 된다는 ‘축생도’, 그리고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게 된다는 ‘아귀도’를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문고리에 전해오는 이야기의 내력은 이렇다. 1624년 대웅전을 지을 때 편수로 힘을 보탠 마흔한명의 승려들이 천일기도를 하면서 누구든 이 문고리를 잡는 중생들이 삼악도를 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원력을 세웠다는 것. 그리고 38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회 속에서 문고리를 쥐었을까. 문고리는 아예 반들반들 윤이 난다.
까치발을 하고 높이 매달린 문고리를 살며시 쥐면, 별 뜻없이 살아온 시간 속에서 혹시 누군가에게 죄를 짓지나 않았는지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차가운 문고리를 쥐고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쩌면 승려들이 문고리에 그런 원력을 세운 것도 중생들의 구원보다는 이런 작은 깨우침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흥국사에서는 거북이·자라와 같은 바다 생물들을 새겨 놓은 돌들이 석등이며 기단에 숨겨져 있다.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으로 향하는 상상의 배인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것이겠다. 절집이 통째로 배인 셈이니 대웅전으로 오르는 소맷돌에 새겨진 머리를 곧추세운 용머리는 뱃머리를 상징하는 것일 터. 나른한 봄날, 그 배에 올라 피안으로 두둥실 떠가는 꿈을 꾸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