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여기에서 뜬다. 그리고 그가 있는 곳에서도 뜬다. 그가 동해에 해를 보러 간다고 중얼거리던 밤, 서해에 떠오르는 해가 보고 싶었다. 마음 저편을 알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해가 그가 바라보고 있는 해라면. 그가 7번 국도를 걸어 해에게로 갈 즈음 나는 77번 국도를 걸어 해에게로 가고 있었다. 마음의 길을 찾듯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가자 작고 소박한 마음을 만나듯 영광의 법성포 마을에 닿았다.
바다로 달음질쳐 가기 전에 불갑사(佛甲寺)로 향했다. 주변에 상사화(相思花)가 지천인 절이라는데, 지금쯤엔 어떤 기다림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남아 있을까. 잎이 나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버리는, 그래서 늘 그리워해야만 한다는 꽃. 8월에서 10월까지 자주색 꽃이 핀다는 상사화와 꽃무릇은 푸르게 잎을 틔우고 있었다. 얼마나 그리워해야 하기에 모두들 땅 속이나 나무 둥치 속으로 숨어든 겨울, 푸른 얼굴을 내밀고 있는가. 때론 만나지 못해 아름다운 만남도 있다지만 그 낯빛이 너무도 적막해 사천왕문까지 이어지는 고요한 상사화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그리움이 깊으면 속울음마저도 고요해지는가 보다고.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건물인 대웅전이 먼저 보인다. 쌩한 날씨인데도 창살엔 꽃이 피었다. 연화문(蓮花紋), 설발문(雪髮紋), 국화문(菊花紋), 목단문(牧丹紋), 보상화문(寶相華紋)이 차례로 다섯 가지 꽃을 피우고 있는데, 보기 드문 설발문을 여기에서 만난다. 한겨울 눈꽃이 여기 핀 것이다. 새로이 채색이 되어 그 맛을 덜어내는데 법당 안에 들어서서 불상 위의 닫집과 벽면의 오래된 불화를 보니 오랜 시간이 느껴진다. 대웅전을 조각한 조각가가 피를 토하며 죽자 그 피가 까치가 되어 날아갔다는 전설이 담긴 불상 뒤의 그림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불상의 방향이다. 대부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부처님이 앉아 계시기 마련인데 불갑사의 부처님은 건물의 좌측에 앉아 계신다. 영주 부석사에 갔을 때 이런 형태를 보고 놀랐던 적이 있는데 불갑사의 불상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숨은 가르침이 있을까 싶은데 남방불교의 영향이라고도 한다. 다시 마당에 서서 대웅전을 바라보는데, 까치 한 마리 날아와 뒷산의 참식나무 위에 앉는다. 시선은 까치를 좇다가 지붕의 용마루에 툭 솟은 보주(寶珠)에 닿는다. 일종의 사리탑으로 인도에서 유래된 양식이란다. 불갑사는 인도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백제 침류왕 1년(384년)에 불교를 전하면서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고, 법성포(法聖浦) 또한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을 거쳐 첫발을 디딘 곳이기에 그리 이름 붙였다니 영광 곳곳 인도불교의 자취가 남은 이유를 알겠다.
불갑사를 떠나 바다로 향하는 길엔 작은 마을들을 지나며 미륵불, 당산 할아버지 할머니, 석조불두상을 만난다. 군남면 설매리 서고마을 미륵골에 있는 석조불두상은 바위 위에 불상의 머리만 조각하여 올려놓은 형상이다. 생김은 온화하고 편안해 보이는데 몸체 없이 머리만 따로 있는 것이 의아스럽다.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데 여기에 소원을 빌면 모두 이루어진단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때론 길을 걷다가 바람에게도 푸득 날아오른 새들의 날갯짓에도 소원을 빌듯, 자주 발걸음 멈추고 마음을 달래던 우리 할머니처럼. 백수읍 지산리 서봉마을에서 고인돌을 만났을 땐 그 곁에 오래도록 앉아 생각했다. 사람들과 바람이 새기고 지우는 세상 모든 무늬에 대해, 세월이 흐를수록 그 위에 겹겹이 쌓이는 수많은 사연들과 소원들에 대해…. |
염전 사람들은 소금이 ‘온다’고 한다. 그리고 소금꽃이 ‘핀다’고 한다. 바다와 해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그 꽃맛은 짜고 달고 쓰고 시다. 그래서 일까, 그들이 소금에 대해 말할 땐 참 귀히 여기듯 느껴진다. 천일염전이 많아 이름 붙은 염산면(鹽山面)에서 을씨년스러운 염전을 만난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다고 해도 해가 짧은 겨울은 소금이 ‘오는’ 때가 아닌 것이다. 푸성귀도 과일도 물고기도 다 때가 있듯 소금도 때가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 밀도가 달라지는 우리의 모든 ‘만남’과 ‘이별’처럼, 영광에서는 많은 인연이 소금처럼 왔다가 파도처럼 밀려갔다. 염산면에선 ‘두우(斗牛)’ ‘야월(野月)’이라는 지명을 만났다. 언젠가 중국 땅에서 북두칠성을 믿는 소수민족을 만났을 때처럼 달과 소를 믿는 이들을 만날 것만 같은 땅 이름, 그들만의 언어를 손짓 발짓으로 나누고 싶어지는 땅이다. 야월리 야장마을 정류소상회 앞에서 볼 붉은 아이들과 마주쳤다. 야월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아이들이 달빛 환한 들판의 새들처럼 지저귄다. 까륵까륵 쏟아지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그들만의 언어 같다.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그들의 말을 귀에 담으며 야월의 오후 햇살을 받는다. 햇살이 촘촘해지는 만큼 아이들과의 만남도 농밀해지는데, 늘 그렇듯 아이들은 새떼처럼 금세 어딘가로 사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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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코름한 맛이 일품이랑께. 곰삭고 곰삭아야 사람도 젓갈도 다 제 맛을 내는 법이여.” 털모자를 뒤집어쓴 아주머니들은 간신히 포장만 친 작은 노점에서 새우, 백합, 망둥어, 꽃게를 판다. 가게 이름은 충남2호, 신성호, 신광호, 금성호, 모두 그 집 남정네들이 직접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작은 통통배 이름이다. 노점 안에 불을 지핀 아주머니들이 몸 녹이고 가라며 손 붙잡는다. 그 손짓만으로도 눈발은 허공에서 녹아 진눈깨비로 떨어진다. 스륵, 얼었던 마음 한켠 풀리는 소리를 듣는 작은 포구에서 아주머니들의 짜디짠 바다 이야기를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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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해에서 돌아왔을까. 영광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 77번 국도에서 보내는 내 타전 소리가 서해의 밤하늘을 가로질러 동해의 밤하늘 별 하나로 떠올랐으면. 그렇게 우리 삶의 이 편과 저 편이 하나의 마음이라면, 멀리에 있어도 행복할 것이다. 올 한해도 지난해만큼 행복할 것이다. 언제라도 행복할 것이다. 뜨고 지고,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하며 우리는 함께 아이에서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 이 생과 더 친밀해질 것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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