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붉은 노을 토해낸 바다위 연꽃

박상규 2009. 7. 13. 22:27

간월도, 붉은 노을 토해낸 바다위 연꽃

 
 

초겨을은 나들이하기가 꺼려지는 때이다. 가을빛은 지고 눈은 아직 없을 때여서 볼만한 풍경도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다른 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사찰로 향하는 여정에는 초겨울의 묘미가 듬뿍 담겨 있다. 그중 바다와 접해 있는 임해사찰(臨海寺刹)은 절해고도에서나 느껴 볼 수 있는 호젓함과 빼어난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산중가람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늦가을 낙엽이 수북이 쌓인 일주문을 지나 절 앞마당에 서면 툭 트인 바다가 펼쳐지고 누구라도 저절로 서원(誓願)을 떠올리며 손을 모으게 된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간월암(看月庵)은 바위 위에 지어진 자그마한 암자 주위로 감도는 붉은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간월도을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홍성IC로 빠져나가 서산A지구 방조제까지 가면 된다. 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시골 풍경을 만끽하는 드라이브를 즐기려면 614번 지방도로를 타고 은하면과 결성면을 거쳐 가는 코스도 좋다. 초겨울 볏짚 태우는 냄새가 구수하고 들일하는 촌로들의 모습이 마냥 정겹기만 한 길이다.

◆붉은 노을 토해내니 어슴푸레 달빛에 시심이 돋고

간월암은 국내 대표적 바닷가 사찰로 손 꼽힌다. 섬 사이로 달이 뜬다 해서 간월도라 불리는 작은 섬에는 그 섬만큼 작은 절이 있다. 말이 섬이지 손바닥만한 발뙈기 크기에 암자 하나가 간신히 앉아 있다.


하루 두 번씩 밀려오는 밀물 때는 물이 차 섬이 됐다가 썰물 때 물이 빠져 육지와 연결되는 간월암은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 마치 구름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아름답다.

간월도 앞 선착장에 마련된 횟집촌을 지나 오후 5시쯤 새로 개설한 도선을 타고 간월암에 들었다.

손님을 반기는 듯 활짝 열려있는 철문을 통해 암자에 드니 아담한 도량(道場)이 길손을 반긴다.

간월암은 대웅전과 산신전, 기도각 등 4~5개의 건물이 전부다. 기도각 너머 가로로 뻗은 안면도가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고, 뒤로는 충남 홍성군의 남당항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간간이 갈매기가 관광객의 방문에 화답하듯 홱 지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절의 모습은 고요함에 잠긴 정물화를 연상케 한다.

간월암을 창건한 스님은 조선왕조의 도읍을 서울로 정한 무학대사다. 달빛을 보고 깨달음을 얻고 이곳에 암자를 짓고 '무학사'라 불렀는데 그 뒤 퇴락한 절터에 만공대사가 1941년 새로 절을 지어 '간월암'이라 이름 지었다. 지금도 절 앞마다에는 만공이 심었다는 멋스러운 사철나무가 가람의 석탑을 대신해 절간을 지키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서면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어선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등 이색 풍광을 접할 수 있다.

특히 바다를 향해 촛불을 밝힌 채 소원을 비는 여인들의 모습은 새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감동의 장면이다.

이른 아침 일출도 아름답지만 해질녘 일몰은 가히 압권이다. 특히 뭍에서 바라보는 간월암의 해넘이는 진한 여운을 드리우는 한 폭의 수채화와 다름없다.

절집을 둘러보고 서둘러 간월암을 빠져나왔다. 유명한 간월도 일몰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온통 붉은 빛을 발하며 섬과 바다를 감싸고 있다.

횟집촌을 지나 방조제 방향으로 길을 잡자 해는 붉은 물감을 바다에 풀어 놓은 듯 마지막 기운을 토해내며 바다속으로 숨어든다.

초겨울 대지를 따뜻하게 달군 태양이 수면 아래로 잠기면서 뿜어내는 붉은 열기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인다. 그 즈음 둥실 떠올라 간월암을 어슴푸레 비추는 달빛에 나그네는 절로 시심이 솟아 오른다.

◆천수만 위로 솟아오른 저 철새처럼ㆍㆍㆍ



간월도를 찾았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철새탐조다.

1980년대 간척사업으로 15만5000ha에 이르는 바다가 농지와 담수호로 변한 천수만(여의도 면적 17배)은 큰기러기와 가창오리, 혹부리 오리 등 40여만 마리 철새가 모여드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다.

특히 30여㎞에 이르는 간월호 제방 주변은 말 그대로 철새들의 삶의 터전이자 낙원이다. 생명이 살아 숨쉬는 천수만에서 펼쳐지는 철새탐조는 감동의 드라마을 연출한다.

간월호 따라 탐조버스가 움직이자 허공을 가르는 요란한 날개짓과 거친 새 울음소리에 천수만의 대지가 놀라 부르르 몸서리를 떤다.

큰기러기떼의 비상은 어디로 뛸지 모를 정도로 무질서의 극치다. 하지만 서로 부딪치는 법 없이 잘 훈련된 비행편대처럼 능수능란하다.

천수만에는 곳곳에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탐조객들이 편하게 철새들을 볼 수 있다.


조망대에서 철새를 관찰하던 김승하(27)씨는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연출하는 장관은 경이로움과 함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수많은 새가 천수만을 찾지만 최고의 손님은 역시 가창오리다. 가창오리의 고향은 러시아 바이칼호. 날씨가 추워지면 먹이를 찾아 천수만으로 날아온다.

첫 기착지인 천수만에서 11월 중순까지 나고 그 이후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해 금강 하구나 해남 고천암호 등으로 흩어져 겨울을 난다. 이번 주말에도 일부 가창오리떼를 관찰할 수 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변하자 간월호의 수면에 뿌연 먼지 회오리가 일어났다. 가창오리떼가 먹이를 찾기 위해 노을을 배경으로 쏴∼악 대숲을 훑는 바람소리를 내며 일제히 날아 올랐다.

수십만 마리가 4~5km의 대열을 이룬 채 거대한 부메랑과 도넛,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 모양을 연출하며 허공을 화폭 삼아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가창오리의 군무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예술품보다 감동적이며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약 5여분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군무를 선보인 가창오리 떼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 짧지만 여운이 남는 공연은 끝이난다.

간월도(서산)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nomy.co.kr

◆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 홍성 IC를 나와 천수만 간월도까지 13km 정도 걸린다. 간월도입구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서산A지구 간척지와 간월호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먹거리=궁중의 진상품이 됐다는 '어리굴젓'이 유명하다.

보통 젓갈보다 훨씬 적은 20%정도의 소금을 넣어 발효시켜 매콤하면서도 톡 쏘는 뒷맛이 일품. 굴은 11월 중순부터 4월까지가 제철이다.

또 은행, 호두, 대추 등을 넣어 많든 영양굴밥도 좋다. 굴밥에 어리굴젓을 얹어 먹는 맛도 그만.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생전에 자주 들러 직원들과 회식을 즐기던 곳으로 잘 알려진 간월도 바다횟집(041-664-7821~2)은 싱싱한 자연산 회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