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사에서 사찰의 참 맛을 느끼다
절을 찾아가서 느끼는 오묘한 절 맛도 이와 같습니다. 하루의 일과에 찌들어 심신이 피로해진 오후나 수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시간에는 조용한 산사에서 우러나는 그 깊고도 깔끔한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절 맛을 제대로 느끼고 음미하려면 충분한 수면과 신선한 아침공기로 몸과 마음을 충분히 헹군 새벽산사를 찾아보십시오. 비워진 찻잔에 채워지는 찻물처럼, 헹군 입안에서 맴돌던 차 향처럼 새벽산사의 오묘한 맛과 환희심이 몸과 마음에 스며들 것입니다.
오가는 이 하나 없는 조용한 새벽길 산사 진입로가 좋습니다. 달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울창한 나무들이 달빛조차 가렸습니다. 아직 가람의 향기보다는 주변 나무가 뿜어내는 싱그러운 초목 향이 진합니다. 어두컴컴하지만 잘 다듬어져 보행에 문제될 게 없는 진입로가 편안하게 맞아줍니다. 쭉 곧은 진입로 내내 산사 찾는 이를 맞아주는 고요함과 솔바람이 농무(濃霧)처럼 깔려 있습니다.
넓은 길을 택해 조금 더 올라가니 저만치 또 하나의 문이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四天王門'이란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불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듯 세월의 때가 보이질 않습니다. 사천왕문 왼쪽으로 적멸의 경지에 든 고승들의 유혼이 잠들어 있을 부도가 나란히 밭을 이루었습니다. 나란한 부도가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 세월 탓도 있겠지만 이끼 낀 부도가 왠지 인생무상은 사후무상으로도 이어지는 듯 묘한 감정을 자극합니다.
천장이 둥그스름하고 두 명 정도 나란히 걸을 만한 계단 진입로로 들어섭니다. 어떤 문이란 걸 알려주는 편액 하나 걸려 있지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해탈문으로 받아들일 듯합니다. 한단 높게 있는 대웅전 앞마당은 이 해탈문을 통해 올라 갈 수도 있고, 누각처럼 네 발을 아랫단에 걸치고 있는 강당 왼쪽으로 난 비탈길을 걸어서 올라 갈 수도 있습니다.
탑을 중심으로 한 마당 주변으로 강당과 대웅전, 진해당(振海堂)과 요사인 적묵당(寂默堂)이 동서남북으로 배치되어 □자 형태의 가람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웅전 좌우로 응향각과 삼성각이 있고 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 강당과 아치형 해탈문 사이에는 아래에 있는 누각 형태의 범종각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또 하나의 종각이 보입니다. 보물 제 478호인 갑사동종이 있는 사모지붕 종각입니다. 대웅전 마당을 나와 남쪽 끝으로 가면 계룡산 금잔디고개로 가는 등산로와 오른쪽 찻집으로 가는 소로가 나옵니다. 지금은 등산객과 산사에 찾아 온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려 들리는 찻집으로 가장해 앉아 있지만, 한때는 조선 말기 세도가인 윤덕영 별장이었다고 하니 아직 청산되지 않은 일제치하의 역사적 상흔은 갑사에도 남아 있는 셈입니다. 소의 공덕을 기리는 '갑사 공우탑' 찻집 앞을 지나 조그만 개울 건너에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경사가 급하고 산죽이 삐죽삐죽 자란 배경에 장소마저 협소하니 탑이 세워지기에 썩 좋아 보이는 자리는 아닙니다. 3·2층 탑신에 '功牛塔'이라는 글씨가 음각이 되어 그 탑이 '공우탑'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도 아닌 소(牛)의 공을 기리는 탑이니 얽힌 설화쯤 하나 있을 듯합니다. 한 겨울 추위를 막아주기 위해 소등을 덮어주던 덕석처럼 층층의 옥개석에 두툼히 낀 이끼에도 묻혀 있을 우공의 설화를 들어 봅니다.
졸다 깨어난 듯 벌떡 일어난 스님은 너무 생생한 꿈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꿈에 나타나 "제 힘을 보태겠다"고 말을 하던 바로 그 소가 커다란 눈을 끔벅이며 스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 스님은 소에게 여물을 주고 거두니 다음날부터 소는 불사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소는 쉬지 않고 무겁고 큰 목재나 돌을 하나씩 지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큰 나무나 돌도 가리지 않고 날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절이 차츰차츰 모습을 갖추어갈수록 소는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돌과 나무를 얹었던 등과 목덜미는 허물이 벗어져 피멍이 들었고,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축생인 소였지만 그토록 우직하게 불사 공덕을 하고, 변함없는 수행 자세를 보이니 부처님이 이를 기특히 여겨 불사를 회향하던 날, 소에게서 축생의 굴레를 벗겨 준 것이 인간들에겐 죽음으로 비춰졌을지 모르지만 적멸로 든 소에겐 부처님의 가피일지도 모릅니다. 공우탑을 지나 몇 걸음 더 올라서면 돌담 속 고옥과 또 한 채의 전각이 보입니다. 고옥을 가두고 있는 돌담을 지나면 대적전(大寂殿)이 있고, 그 앞에 또 하나의 부도탑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이 생동감을 줍니다. 천왕문 옆 부도 밭에서 보았던 부도들과는 그 격이 다릅니다. 고상함과 조각한 이의 정성이 뭉툭뭉툭 배어 있습니다. 대적전 지붕의 흑색기와, 옆으로 길게 늘어 선 돌담 그리고 돌탑이 흑백배경을 만들어 그런지 활짝 핀 배롱나무의 선홍색 꽃이 가일층 산뜻한 색감으로 다가옵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왼쪽으로 조금 언덕진 곳으로 올라가면 팔상전과 표충원이 있습니다. 표충원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던 유정, 휴정, 영규 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보면 개울 건너 쪽에 작은 전각이 보이는데 이 전각이 석조 보살입상과 월인석보 판목이 보관되고 있는 응향각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곳입니다. 갑사엔 국보인 삼선불 괘불탱화도 있지만 야단법석이 있어 내걸어야만 볼 수 있으니 일반인들에겐 화중지병(畵中之餠)같은 보물입니다.
갑사를 창건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뻗어 나는 불광(佛光)을 쫓아 계룡산을 찾아드니 그곳이 바로 신흥사에 있는 천진보탑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불광을 쫓아 계룡산으로 들어온 화상이 터를 잡고 절을 지으니 그 절이 바로 갑사라고 하니 창건 설화 속 중심지인 신흥사 천진보탑엔 꼭 가볼 일입니다. 패배감·우쭐함 버리고 산사 찾아가 명상의 시간이라도 갖기를... 선거를 치르고 난 직후라 그 결과에 따라 울화병 같은 속앓이를 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럴 때 마음의 눈에 매달려 있는 좌절감과 패배감쯤 눈곱 떼어내듯 떼어내 줄지도 모를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마음을 상하고 건강을 잃는데 비하면 그깟 권력이나 명예는 풀잎에 맺힌 이슬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이른 새벽에 찾아가 맛본 절 맛,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깊고도 오묘한 절 맛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절 맛 한번 제대로 맛보고 느껴보려면 심신의 피로가 비워지고, 온갖 번뇌가 헹궈진 아침시간에 목탁소리와 염불소리 따라 마음의 젓가락질을 펼쳐보십시오. 혹시 압승이라는 결과에 우쭐해지는 마음이 드는 무리나 사람들이 있다면 새벽산사를 찾아 감로정을 찾아 냉수 먹고 속 차리는 그런 기회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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