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갑사

박상규 2009. 7. 13. 23:08

새벽 산사에서 사찰의 참 맛을 느끼다

 

 

 

▲ 절 맛! 제대로 맛보려면 몸이 비워지고 마음이 헹궈진 새벽시간에라야 제격입니다.
ⓒ 임윤수
가득 채워진 찻잔에 아무리 향기롭고 맛난 차를 따른다 해도 그 맛난 차는 흘러 넘칠 뿐 담기지 않습니다. 유달리 맛나고 향이 좋은 차라도 자극이 강한 뭔가를 먹어 입이 텁텁할 때 마시면 은은한 향도 느낄 수 없고 제 맛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맛난 차를 찻잔에 채우려면 찻잔을 비우고, 차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깨끗한 물로 입안이라도 깨끗하게 헹구고 차분한 마음으로 음미해야 합니다.

절을 찾아가서 느끼는 오묘한 절 맛도 이와 같습니다. 하루의 일과에 찌들어 심신이 피로해진 오후나 수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시간에는 조용한 산사에서 우러나는 그 깊고도 깔끔한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절 맛을 제대로 느끼고 음미하려면 충분한 수면과 신선한 아침공기로 몸과 마음을 충분히 헹군 새벽산사를 찾아보십시오. 비워진 찻잔에 채워지는 찻물처럼, 헹군 입안에서 맴돌던 차 향처럼 새벽산사의 오묘한 맛과 환희심이 몸과 마음에 스며들 것입니다.

▲ 새벽 산사는 몸과 마음을 한결 정갈하게 해 줍니다.
ⓒ 임윤수
절을 찾아갈 때는 서둘러서도 안 됩니다. 느릿느릿 움직이고 여여(如如)한 마음으로 다가갈 때 자연과 산세, 주변의 풍광에 스며든 부처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고 마음에도 담을 수 있습니다. 항상 그렇게 마음먹으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번뇌의 조급함을 떨치지 못해 총총걸음으로 갑사를 찾아갑니다.

오가는 이 하나 없는 조용한 새벽길 산사 진입로가 좋습니다. 달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울창한 나무들이 달빛조차 가렸습니다. 아직 가람의 향기보다는 주변 나무가 뿜어내는 싱그러운 초목 향이 진합니다. 어두컴컴하지만 잘 다듬어져 보행에 문제될 게 없는 진입로가 편안하게 맞아줍니다. 쭉 곧은 진입로 내내 산사 찾는 이를 맞아주는 고요함과 솔바람이 농무(濃霧)처럼 깔려 있습니다.

▲ 목탁소리와 염불소리 그리고 바람과 속삭이는 풍경소리가 속세의 번뇌쯤 닦아줍니다.
ⓒ 임윤수
계룡산 서쪽에 위치한 갑사는 국보와 보물 등 문화유적을 간직한 천년고찰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일주문을 들어서 곧장 올라가면 작은 계곡을 건너게 됩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떨치고 가는 세속의 먼지라도 씻어내려는 듯 계곡엔 끊임없이 맑은 물이 흐릅니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서면 갑사의 대표적 유물인 철당간지주로 가는 길입니다.

넓은 길을 택해 조금 더 올라가니 저만치 또 하나의 문이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四天王門'이란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불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듯 세월의 때가 보이질 않습니다. 사천왕문 왼쪽으로 적멸의 경지에 든 고승들의 유혼이 잠들어 있을 부도가 나란히 밭을 이루었습니다. 나란한 부도가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 세월 탓도 있겠지만 이끼 낀 부도가 왠지 인생무상은 사후무상으로도 이어지는 듯 묘한 감정을 자극합니다.

▲ 활짝 핀 배롱나무 꽃도 좀 더 가까이서 범종 소리를 들으려는 듯 종각에 기대었습니다.
ⓒ 임윤수
부도전을 지나 조금 더 들어서니 높게 쌓은 석축 위로 전각들이 보입니다. 갑사의 가람배치 형태를 보면 계룡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앞에 두고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비스듬한 오르막길 왼쪽에 있는 돌담은 차츰 그 높이가 낮아지다 어느덧 평지에 끝이 닿아 있습니다. 경사면을 메우느라 쌓아올린 석축이 돌담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올라선 평지 동쪽으로 한 길이 훨씬 넘을 석축 위로 또 다시 돌담이 얹혀 있습니다.

천장이 둥그스름하고 두 명 정도 나란히 걸을 만한 계단 진입로로 들어섭니다. 어떤 문이란 걸 알려주는 편액 하나 걸려 있지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해탈문으로 받아들일 듯합니다. 한단 높게 있는 대웅전 앞마당은 이 해탈문을 통해 올라 갈 수도 있고, 누각처럼 네 발을 아랫단에 걸치고 있는 강당 왼쪽으로 난 비탈길을 걸어서 올라 갈 수도 있습니다.

▲ 아치형 해탈문으로 올라서면 대웅전 마당입니다.
ⓒ 임윤수
건축한 지 오래 되지 않아 단청의 산뜻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누각으로 범종루가 있습니다. 배롱나무가 범종루 쪽으로 기울어 가지를 뻗었고, 종소리 법고소리를 좀 더 가까이 들으려는 듯 분홍색 꽃들이 귀들을 활짝 열고 만개한 모습입니다. 어느 곳을 통하든 한 계단 올라서면 오층석탑이 가운데 서 있는 대웅전 마당입니다.

탑을 중심으로 한 마당 주변으로 강당과 대웅전, 진해당(振海堂)과 요사인 적묵당(寂默堂)이 동서남북으로 배치되어 □자 형태의 가람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웅전 좌우로 응향각과 삼성각이 있고 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 강당과 아치형 해탈문 사이에는 아래에 있는 누각 형태의 범종각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또 하나의 종각이 보입니다. 보물 제 478호인 갑사동종이 있는 사모지붕 종각입니다.

대웅전 마당을 나와 남쪽 끝으로 가면 계룡산 금잔디고개로 가는 등산로와 오른쪽 찻집으로 가는 소로가 나옵니다. 지금은 등산객과 산사에 찾아 온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려 들리는 찻집으로 가장해 앉아 있지만, 한때는 조선 말기 세도가인 윤덕영 별장이었다고 하니 아직 청산되지 않은 일제치하의 역사적 상흔은 갑사에도 남아 있는 셈입니다.

소의 공덕을 기리는 '갑사 공우탑'

찻집 앞을 지나 조그만 개울 건너에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경사가 급하고 산죽이 삐죽삐죽 자란 배경에 장소마저 협소하니 탑이 세워지기에 썩 좋아 보이는 자리는 아닙니다. 3·2층 탑신에 '功牛塔'이라는 글씨가 음각이 되어 그 탑이 '공우탑'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도 아닌 소(牛)의 공을 기리는 탑이니 얽힌 설화쯤 하나 있을 듯합니다. 한 겨울 추위를 막아주기 위해 소등을 덮어주던 덕석처럼 층층의 옥개석에 두툼히 낀 이끼에도 묻혀 있을 우공의 설화를 들어 봅니다.

▲ 수북한 장작, 깔끔하게 손질된 솥단지에도 산사의 별미가 담겨있습니다.
ⓒ 임윤수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갑사를 중건하기로 인호 스님과 성안 스님 그리고 사부대중 모두는 원력(願力)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원만한 중건불사를 위해 시주 탁발을 나서는 등 다각적으로 울력을 모았지만 깊은 산 속의 불사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지부진한 불사에 노심초사하던 인호 스님은 어느 날 깜빡 잠이 들어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도 불사를 걱정하고 있는 스님 앞으로 소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미약하나마 절을 짓는데 제 힘을 보태 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하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졸다 깨어난 듯 벌떡 일어난 스님은 너무 생생한 꿈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꿈에 나타나 "제 힘을 보태겠다"고 말을 하던 바로 그 소가 커다란 눈을 끔벅이며 스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 스님은 소에게 여물을 주고 거두니 다음날부터 소는 불사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소는 쉬지 않고 무겁고 큰 목재나 돌을 하나씩 지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큰 나무나 돌도 가리지 않고 날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절이 차츰차츰 모습을 갖추어갈수록 소는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돌과 나무를 얹었던 등과 목덜미는 허물이 벗어져 피멍이 들었고,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다 보면 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울창한 숲길도 걷게 됩니다.
ⓒ 임윤수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도 소는 쉬지 않고 묵묵히 짐을 날랐습니다. 소는 묵언의 수행이라도 하듯 그렇게 말없이 불사를 위한 일만을 했습니다. 드디어 중건 불사를 회향하던 날이 되었으나 어제까지만 해도 힘든 일 마다 않고 묵묵히 해내던 소는 제 역할을 다한 듯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에 사부대중이 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 바로 공우탑이라고 합니다.

축생인 소였지만 그토록 우직하게 불사 공덕을 하고, 변함없는 수행 자세를 보이니 부처님이 이를 기특히 여겨 불사를 회향하던 날, 소에게서 축생의 굴레를 벗겨 준 것이 인간들에겐 죽음으로 비춰졌을지 모르지만 적멸로 든 소에겐 부처님의 가피일지도 모릅니다.

공우탑을 지나 몇 걸음 더 올라서면 돌담 속 고옥과 또 한 채의 전각이 보입니다. 고옥을 가두고 있는 돌담을 지나면 대적전(大寂殿)이 있고, 그 앞에 또 하나의 부도탑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이 생동감을 줍니다. 천왕문 옆 부도 밭에서 보았던 부도들과는 그 격이 다릅니다. 고상함과 조각한 이의 정성이 뭉툭뭉툭 배어 있습니다. 대적전 지붕의 흑색기와, 옆으로 길게 늘어 선 돌담 그리고 돌탑이 흑백배경을 만들어 그런지 활짝 핀 배롱나무의 선홍색 꽃이 가일층 산뜻한 색감으로 다가옵니다.

▲ 갑사를 중건 할 때 살신의 공덕을 지은 소의 공덕을 기리는 공우탑입니다.
ⓒ 임윤수
부도탑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은 가느다란 대나무가 ∩자형 숲 터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길이는 20여m밖에 안되지만 바람조차 파고들지 못할 만큼 빼곡한 대나무 숲은 컴컴한 터널입니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갑사의 대표적 유물이며 보물 256호인 철 당간지주가 나옵니다. 두 개의 돌기둥을 버팀목으로 철 당간이 솟대처럼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 높이가 12m쯤은 될 듯합니다. 동안(童顔)의 피부를 가진 듯 그 오랜 세월 비바람 속에 서 있었으면서도 철 당간 표피는 별로 녹슬지 않았습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왼쪽으로 조금 언덕진 곳으로 올라가면 팔상전과 표충원이 있습니다. 표충원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던 유정, 휴정, 영규 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보면 개울 건너 쪽에 작은 전각이 보이는데 이 전각이 석조 보살입상과 월인석보 판목이 보관되고 있는 응향각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곳입니다. 갑사엔 국보인 삼선불 괘불탱화도 있지만 야단법석이 있어 내걸어야만 볼 수 있으니 일반인들에겐 화중지병(畵中之餠)같은 보물입니다.

▲ 대적전 앞에 있는 부도는 그 조형미가 아주 뛰어납니다.
ⓒ 임윤수
전각에 들려 부처님께 참배하고 경내를 두루 돌아보았다면 금잔디고개 쪽으로 산책이라도 하듯 조금은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계속 올라가면 계룡산 동쪽에 있는 동학사로 가게 되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산내 암자인 신흥사로 가게 됩니다. 신흥사엘 가야 갑사의 창건설화가 담긴 천진보탑엘 들릴 수 있습니다.

갑사를 창건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뻗어 나는 불광(佛光)을 쫓아 계룡산을 찾아드니 그곳이 바로 신흥사에 있는 천진보탑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불광을 쫓아 계룡산으로 들어온 화상이 터를 잡고 절을 지으니 그 절이 바로 갑사라고 하니 창건 설화 속 중심지인 신흥사 천진보탑엔 꼭 가볼 일입니다.

패배감·우쭐함 버리고 산사 찾아가 명상의 시간이라도 갖기를...

선거를 치르고 난 직후라 그 결과에 따라 울화병 같은 속앓이를 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럴 때 마음의 눈에 매달려 있는 좌절감과 패배감쯤 눈곱 떼어내듯 떼어내 줄지도 모를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마음을 상하고 건강을 잃는데 비하면 그깟 권력이나 명예는 풀잎에 맺힌 이슬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 새벽 산사에는 오묘한 맛과 행복의 열쇠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 임윤수
아직은 이른 시간, 풍경소리만 뎅그렁거리는 새벽산사를 찾아가면 잘 우려진 찻물과 같은 그윽한 절 맛과 불향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 절 맛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깊은 안목의 맛이며 참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음미의 맛입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가득 담아온 산사의 맑은 아침은 깊은 산 속에서 만나는 옹달샘의 맑은 물만큼이나 은은한 초목 향으로 하루, 한 달 아니 어쩌면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이른 새벽에 찾아가 맛본 절 맛,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깊고도 오묘한 절 맛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절 맛 한번 제대로 맛보고 느껴보려면 심신의 피로가 비워지고, 온갖 번뇌가 헹궈진 아침시간에 목탁소리와 염불소리 따라 마음의 젓가락질을 펼쳐보십시오. 혹시 압승이라는 결과에 우쭐해지는 마음이 드는 무리나 사람들이 있다면 새벽산사를 찾아 감로정을 찾아 냉수 먹고 속 차리는 그런 기회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