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정보/백두대간

[지리산/ 천왕봉~노고단~성삼재 - 백두대간을 가다 3]

박상규 2009. 8. 21. 12:29

 

 

천왕봉(天王峰 1,915m)에서 '백두대간 종주'라는 굳은 각오와 함께, 멀리 묘한 형태로 솟아있는 반야봉을 향하여 경쾌한 발걸음으로 바윗길의 마루금을 걷기 시작한다. 여기서 성삼재까지는 약 30km로 부지런히 걸어서 이틀정도 걸린다.

사실 지리산 주능선은 해발 1,500m 이상의 험한 고산이지만, 오래된 국립공원답게 많은 산악인들이 등산을 즐기며 곳곳에 길 표지판과 산장 시설이 잘 되어있어 고생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역시 큰산이기 때문에 간혹 예상치 못한 날씨 상태가 급변함으로 항상 조심해야 하며, 산행장비 또한 확실하게 갖추어야 한다.

오래 전 벌목과 산불로 인해 여기저기 고사목이 서있는 황량한 분위기의 제석봉을 지나, 한시간 정도면 산장이 있는 장터목에 도착한다. 흔히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이곳에서 연하봉 등 세석평전까지는 강한 바람과 흰구름이 바위봉과 절묘한 선경을 이루며, 종주대는 마치 날아갈 듯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옛날에는 산길 어디서든 하늘보기 어려울 정도의 원시림으로 울창했다고 하며, 실제 길고 긴 백두대간을 타면서 지리산처럼 유장하고 멋진 정취의 산행을 경험하기도 쉽지 않다.

세석으로 내려서기 전 바위봉인 촛대봉(1,703m)에 오르면 사방으로 툭 터진 장대한 지리산 줄기를 조망할 수 있다. 이 일대는 여름철엔 다채로운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는 사뭇 편안한 곳이다.

5월말 드넓은 고원을 붉게 물들이는 철쭉으로 이름높은 세석평전에서 올라선 영신봉(1,652m)은, 국토의 최남단을 달리며 멀리 마산과 김해의 낙동강 하구로 뻗어나가는 '낙남정맥'(산경표, 1913년 조선광문회 출간)의 분기점으로 시원한 풍경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편, 현재 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여지편람'(輿地便覽)의 산경표 필사본에는 정맥이 아닌 '낙남정간'(洛南正幹)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는 백두대간 줄기인 함경도의 원산(圓山, 큰 두류산 2,309m)에서 시작되어 국토의 최북단인 두만강으로 향하는 '장백정간'(長白正幹)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 '세석평전과 반야봉 풍경' photo/ 2002년 여름

  영신봉에서 전망이 기막힌 칠선봉과 선비샘을 지나 도착하는 벽소령엔 양쪽으로 군사도로가 나있으며, 새로 지은 산장은 항상 여유가 많은 편이다. 이어 험준한 바위절벽인 형제봉을 지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주목 군락지가 있는 연하천 산장의 차가운 샘은, 명선봉의 가히 '산삼 썩은 물'로써 지리산 최고의 물맛을 자랑한다.

지리산처럼 능선이 긴 산에서는 그저 앞만 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걸어온 천왕봉을 되돌아보는 즐거움은 참으로 기분이 좋다.

우뚝 솟은 반야봉의 위용과 날씨가 좋으면 남쪽 저 멀리 섬진강 건너 아스라히 솟아있는 백운산(1,218m)도 보이는 토끼봉(1,534m)에 오르면, 전에는 총각(?) 한사람이 찌그러진 양재기에 구수한 미숫가루를 팔았으나 언제부터인가 보이질 않는다.

뱀사골 산장이 있는 화개재는, 옛부터 지리산 남쪽의 화개와 하동 그리고 북쪽의 함양, 운봉 등지의 사람들과 산물을 연결하는 주요 고개로서, 이곳에서 경사가 심한 산길을 힘들게 올려치면 크고 널찍한 바위가 나온다. 여기가 바로 경상남도와 전라남, 북도가 만나는 경계 지점인 삼도봉(1,499m 일명 날날이봉)으로, 남한의 백두대간에는 총 3곳의 삼도봉이 있다.

  대간 길에서 약간 벗어난 오른쪽 지점에 삼신할매가 산다는 반야봉(1,751m)이 있으며, 진달래가 많이 피는 임걸령 왼쪽 계곡은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가을이면 피빛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 지역은 특히 해방 전후 남북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본거지였다. 민족 고유의 사상 결여로 인한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비참한 현실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질곡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유사이래 신라, 백제 시대의 뺏고 뺏기는 영토 전쟁과 일본의 침략, 빨치산 등 지리산 전역을 무대로 벌어진 수많은 생존 투쟁은, 결국 큰 산의 존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현실 정치, 문화 등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리라.

때문에 병란과 재화, 생사를 맡아 다스리는 여러 산신들이 살고 있다는 지리산은 옛부터 구름 위로 솟은 천왕봉, 노고단 등지에서 하늘을 향해 제를 올리는 신앙의 대상이요 성산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돌로 쌓은 커다란 둥근 형태의 제단이 세워진 노고단(老姑壇 1,507m)은, '신라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매년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노고단을 오르는 초입에 자리잡은 전라남도 구례의 천년 고찰인 화엄사는, 지리산을 닮아 웅장하며 주변의 산세와 경이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필자가 지리산을 처음으로 찾아간 때가 이십대 초반으로, 그때 구례 지방을 흐르는 반짝이는 섬진강과 화엄사를 둘러 본 기억이 난다.

 





















*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국보 제35호)
photo/ 2002년 7월, 아침


성삼재로 가는 백두대간 길은, 노고단에서 무냉기(코재)와 종석대(1,356m)를 지나 우측의 경사진 숲길을 내려서면 바로 도착한다. 커다란 휴게소와 주차장이 있는 성삼재(1,090m)는 구례에서 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싱겁기는 하지만 많은 등산객들이 힘들이지 않고 노고단을 쉽게 오를 수 있다.

지난(2002년) 8월말, 백두대간 줄기를 따라 남쪽의 전북과 충북을 거쳐 강원도로 북상하며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을 강타한 태풍 '루사'로 인해, 지리산 북쪽 지역인 남원과 함양, 무주, 영동, 김천, 삼척, 정선, 강릉, 양양 등지에서 대단히 큰 수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山內)면은, 말 그대로 지리산의 큰 봉우리들인 반야봉과 노고단, 만복대, 고리봉 등에 둘러싸인 곳으로, 심원과 달궁, 뱀사골이 한 곳으로 모여 흐르는 계곡에 자리잡은 산 속 마을로써 곳곳에 난 산사태로 길이 끊어지고 인명피해와 많은 가옥들이 파손되었다.

9월 초, 남원에서 운봉을 거쳐 도착한 인월은 지리산 끝자락의 한적한 분위기의 고장으로, 여기서 뱀사골로 들어가는 산내, 마천 지역과 경남 함양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산내면 입석리의 신라시대 고찰인 실상사가 위치한 터는,   지리산의 천왕봉과 중봉, 하봉이 한눈에 보이는 조용한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 산 속에 들어앉은 사찰과는 다르게 큰 길에서 다리를 건너 논과 밭이 있는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사찰보다는 '절 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에서 발원한 만수천과 운봉 지역에서 흘러오는 광천이 합류하여, 멀리 진주의 남강으로 향하는 물줄기가 임천강이다. 그 상류에 위치한 실상사는 "백두대간의 지맥을 모아낸 지리산과 그 산을 휘돌아 흐르는 만수천이 피워낸 연꽃"으로 비유되고 있다.

실상사(實相寺)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한 노인은 여기 지리산에 갇혀 평생을 살아간다면서, 산내(전북 남원)와 이웃한 마을 마천(경남 함양) 등지에서 많은 인명과 산사태 등 큰 피해가 났다며, 산들이 워낙 '악산'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끝내 웃음을 잃지 않는다. 절 입구의 마을 역시 산사태로 계곡이 범람하여 큰 수해를 당했고,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 '실상사 초입 석장승'

백두대간은 물론 평소 높고 넓은 어미 품과 같은 덕산인 지리산은, 이처럼 때에 따라서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다.
/200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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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종주 - 배낭 무게

종주대의 대부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진부령으로 향합니다. 즉 백두산 천지를 최종 목표로 삼아 북진하고 싶은 소망일 것입니다.   그리고 가슴 설레이며 대간을 시작하는 날, 해발 1,915m의 지리산을 올라갑니다.  

특히 장기종주를 하는 경우, 의욕이 넘치는 첫날 배낭이 제일 무겁고 -보통 25kg 이상- 하루에 고도 천미터 이상을 올려쳐야 하는 지리산에서 자기도 모르게 힘을 쏟아붓기 때문에 자연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게됩니다.

필자도 대간을 타면서 지리산을 오르고 난 후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생긴 이후 여러날 고생했으며, 특히 강원도 죽령~ 백복령 구간에서는 한쪽 무릎이 완전히? 나가  한동안 집에서 걸어다니지도 못하고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배낭 무게가 관건인데, 무더운 여름철 대간 종주할 때는 무엇보다 소중하게 채워야 할 것이 '물' 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 산에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물이 쌀보다 무겁다.' 라는 사실이지요.

최근 진부령에서 지리산으로 내려가고 있는 친구와 함께 가끔 대간을 뛸 때, 저의 배낭의 무게는 텐트와 쌀, 물을 포함하여 평균 18kg을 넘지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장터목 석양' /1998년 여름,

/ 2004, 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