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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에서 백두까지/ 지리산 - 백두대간을 가다. 2]

박상규 2009. 8. 21. 12:31

 

 

 

백두산과 함께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智異山)은 광범위한 지역의 크기만큼 깊은 역사와 민중의 애환을 품고있는 대표적인 산이다. 백두에서 일으켜 세운 대간의 장대한 산줄기가 남쪽으로 달려와 마침내 멈춘 곳이라 하여, 옛 사람들은 지리산을 '두류산'(頭流山)이라 불렀다.

* '지리산 표지석' Photo/ 2002년 7월, 중산리  

조상들은 옛부터 지리산을 병란과 재화, 생사를 맡아 다스리는 태을성신(太乙星神)과 여러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였고, 봉래 금강산과 영주 한라산 그리고 방장 지리산을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이라 부르며 섬겨왔다. 서산대사 또한 지리산,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을 4대 명산으로 꼽았다.

웅장하고 풍광이 수려한 국립공원 제1호(1967년 지정)인 지리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위치는 경상남도의 함양, 산청, 하동, 전라북도 남원과 전라남도의 구례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전체 약 1억3천만평에 달하는 면적을 지니고 그 산자락의 둘레가 장장 팔백리가 넘는다고 한다.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지리산 천왕봉(1,915m)에서 노고단(1,507m)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는 제석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1,751m) 등 고산 준봉들이 연이어 솟아있으며, 산 전체에는 약 백여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특히 절경으로 잘 알려진 지리산 10경은 천왕봉 일출, 연하선경, 칠선계곡, 벽소명월, 피아골 단풍, 반야봉 낙조, 노고단 운해, 세석철쭉, 불일폭포, 섬진청류로서, 지리산은 봄철 세석과 바래봉의 철쭉, 화개장에서 쌍계사의 터널을 이루는 벚꽃, 여름의 싱그러운 숲과 계곡, 가을이면 피아골의 환상적인 단풍과 만복대의 억새, 겨울철 설경 등 계절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불가분의 관계로 지리산 자락에는 두개의 큰 강으로 흘러내리는 물길이 있으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덕천강과 경호강이 함양,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 팔공산(전북)으로부터 임실, 순창, 남원, 곡성을 거쳐 구례와 하동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이다.


▲ '멀리 섬진강 지류가 보이는, 지리산의 아침 풍경'  Photo/ 2002년 7월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라 지리산은 뱀사골, 피아골, 백무동, 한신계곡, 칠선계곡 등 비경의 수많은 계곡과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는 원시림을 간직하고 있다. 최근 지리산에는 반달곰 서식지를 보호하고 있는데, 필자가 중학생 시절인 1960년대 중반 약장수들이 잡아온 어린 반달곰을 서울의 길거리에서 약용으로 파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다.

대지의 어머니처럼 너른 품과 높은 덕(德)을 지니고 있는 지리산은, 신라시대 고찰인 화엄사를 비롯하여 쌍계사, 실상사, 대원사 등 많은 사찰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가슴속에 간직되어 오르고 싶어하는 동경의 대상이다.

자연(自然)이라는 큰 산의 정기가 결국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큰 영향을 주고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농경과 일상적인 생활은 물론 무엇보다 항상 든든한 정신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진주에서 산청에 이르면 최근 새롭게 조성한 성철 스님의 생가가 바로 대로변에 있고, 중산리로 향하는 시천면에는 인상적인 구곡봉(961m)과 덕천강이 흐르는 곳에 남명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의 산천재(山天齋)가 자리잡고 있다. '산천'은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에서 퇴계 이황(李滉 1501~1570)과 쌍벽을 이룬 남명(南冥)은 두류산(지리산의 옛 지명) 기슭인 덕산에 살면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德山卜居
春山底處無芳草 (봄 산 어디엔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마는)
只愛天王近帝居 (산신령 사는 곳 가까운 천왕봉을 사랑했네)
白手歸來何物食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銀河十里喫有餘 (은하수 물줄기 십리로 흐르니 마시고도 남으리)
 

이곳에서 상류로 조금 올라가면 2002년 7월에 완공된 국내 최대 규모의 산청 양수발전소 하부댐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보인다. 지리산의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여론과 반대를 물리치고 정부의 강력한 개발논리가 승리를 한 것이다.

십여년 전 만해도 종주하면 지리산을 떠올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던 곳이었다. 산이 크고 능선이 길기 때문에 보통 2박3일 이상이 소요되었고, 배낭 속에 식량과 텐트를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므로(최근에는 야영을 할 수가 없다) 무척 힘이 들지만 산행을 마친 후의 보람과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90년대 들어 일부 산악인들을 통하여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지리산~진부령까지의 백두대간 종주가 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대간 종주를 즐기고 있다.

물론 종주를 통하여 자신이 태어난 국토의 산하(山河)를 직접 몸으로 부딪쳐 체험하고, 호연지기와 인내의 정신을 터득할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경험이다. 더 나아가 금강산을 거쳐 개마고원과 백두산 천지까지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대간 종주는 대체로 구간종주와 장기종주 두가지 방식이 있다.
구간종주는 30여개의 소구간을 2, 3년 동안 주말을 이용해서 정기적으로 부지런히 산행을 하는 방법으로, 주로 직장인들이 선호하며 대부분 단체로 행동한다. 한편 장기종주는 보통 두달 안팎의 연속적인 산행으로서 산에서 지낼 야영도구와 침낭, 쌀, 음식 등 20kg 이상의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는 상당히 길고 힘든 고행과 같은 방법이다. 그리고 가장 큰 관건인 식량 조달은 최근 백두대간의 큰 고개에 들어선 휴게소와 마을의 민가를 최대한 활용한다.

대한민국 남녘 땅에서 백두산이 솟아있는 북쪽을 향해 올라가는 대간 종주의 시발점은 지리산 천왕봉이다. 천왕봉을 오르는 깃점은 주로 경남 산청의 중산리와 대원사 코스를 택하는데, 실재 지리산 줄기의 끝자락은 천왕봉에서 중봉(1,874m)과 하봉(1,781m)을 거쳐 새재와 왕등제, 웅석봉(1,099m)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오르는 코스는 천왕봉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4시간 소요)이지만 계속 오르막 산길로 경사가 심하다. 천왕봉 아래 바위 절벽에서 흘러나오는 천왕샘(1,850m)은 백두대간의 남쪽 구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으로, 대간을 종주한 사람이라면 첫눈에 예사로운 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날은 장터목산장(인터넷 예약 필수)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컴컴한 새벽 한시간 가량 천왕봉으로 다시 올라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장엄한 일출을 맞이해 보자.

 종주대는 끝없이 펼쳐진 운해 위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의 신성한 땅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의 장쾌한 대간 종주를 간절히 염원하고 목적지까지 몸 건강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산신령께 기원한다.

강풍이 불어오는 정상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서있고, 멀리 서쪽 방향에는 반야봉을 비롯하여 앞으로 가야 할 지리산의 장대한 능선이 웅장하게 이어져 있다. 이제 그곳을 향하여 백두대간 종주의 한발을 힘차게 내딛는 것이다!

/200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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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형 선생 - 회상

필자가 지난 2000년 12월 중순 경,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우형 선생님을 처음 만나뵙게 된 것은, 당시 '백두대간'이라는 제목으로 미술전시회를 기획하였던 관계로 전시도록에 선생의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무엇인가 " (월간 산/ 1993년 6월호) 글 게재를 부탁드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흔쾌히 만남의 약속을 해주신 덕분에 서울 용산역 근처의 어느 조용한 다방에서 뵙게된 선생은, 무척 친절하고 겸손한 자세로 크지않은 체구에 우렁찬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약 2시간 정도 차를 마시며 선생과 함께 나눈 백두대간과 대동여지도에 관한 대화는 많은 공부가 되었으며, 특히 "나의 것, 우리 것에 대한 강한 자존심과 자신감을 가지라!"에 대한 말씀은 상당한 격려와 힘이 되었지요.
그리고 그 소중한 말씀을 하실 때 저는 선생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이후 무심하게 지내던 중에 2001년 5월 어느날, 이우형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는 상당히 놀랬으며, 결국 가시는 길에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 비바람 속의 지리산 야생화

/ 2004,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