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이나 정맥을 종주하고 난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산행야말로 히말라야 등 외국의 큰 산을 오르는 것에 못지 않은 의미있는 산행"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 조명된 전래의 산줄기를 밟으며 선조의 슬기를 배우는 깊은 의미 외에 산행 자체의 등반성도 크다는 것이다. 이제 여러 산악인의 이력에 백두대간종주라는 것이 들어있을 정도로 대간을 종주해 본 사람들이 늘고 있다.
종주를 계획하고 나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계획서를 내는 일이다.종주에 나서기 전의 철저한 준비가 산행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할 수 잇는데 사전에 준비한 모든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계획서다. 계획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원을 정하고 운행 일정을 수립하며 장비, 식량, 의료에 대한 계획을 확정하여야 한다. 대원확정은 종주 준비를 같이 하고 산행 훈련을 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한다. 단독종주를 제외하고는 셋 또는 네 명을 한 파티로 구성한다는 원칙을 고려해 대원수를 결정한다. 다섯 명은 한 파티로 하기에는 많고 두 파티로 하기에는 적은 인원이어서 특별한 운행방식이 없는 한 곤란한 인원이 된다.
대원이 확정되면 체력을 다지는 한편으로 운행에 대한 자세한 계획을 세운다. 운행일정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필요한 지도를 구입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자료는 이미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다른 팀의 보고서를 구해 참고하고, 산악전문지의 백두대간 관련 기사를 모은다. 다른 팀의 기록은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백두대간 종주를 위한 기초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지도는 국립지리원의 지형도를 기본으로 하는데 보통 2만 5천분의 1 지형도를 사용한다. 2만 5천분의 1 지형도는 55장이 필요하다.<표2> 2만 5천분의 1 지형도는 막영지에서 물을 찾을 때나 지형이 복잡한 지역을 지날 때에 유용하지만 지도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5만분의 1 지형도 25장을 재편집하여 사용한 종주대도 있다. 백두대간 종주는 능선을 따르는 산행이기 때문에 5만분의 1 지형도로도 가능하다. 종주에 나서기 전 지형을 숙지할 때에 2만 5천분의 1 지형도를 참고해 막영지, 중식지, 휴식지 등과 함께 지형에 대한 특별한 사항들을 5만분의 1 지형도에 옮겨 적어두면 많은 도움이 된다.
5만분의 1 지형도에 마루금 그어
마루금 긋기는 지형도 상에 능선을 따라 선을 긋는 일, 즉 종주할 백두대간의 길을 지도에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에 따라 계곡을 한 번도 건너지 않는 능선을 찾는다. 백두대간 마루금 긋기를 실제로 해보면 시간이 꽤 걸리고, 헷갈리는 구간도 나타난다. 천왕봉에서부터 물을 건너지 않고 진부령까지 간다는 대원칙을 따른다고 하지만 말처럼 쉽지 만은 않다.
먼저 5만분의 1 지형도를 이어붙인(풀로는 아니다) 다음 백두대간 위에 있는 대표적인 산들을 지형도에 표시한다. <표4>의 주요 봉우리들이 참고가 될 것이다. 그 외의 봉우리들은 다른 팀의 보고서 등에서 찾아내면 된다. 보고서나 참고 자료가 없는 경우 (몇몇 정맥은 아직 구체적인 보고서가 없다)에는 『산경표』를 참고해서 산줄기를 이어간다. 대표적인 산들을 표시한 다음에는 그 산들을 이어 마루금을 긋기 시작한다. 형광펜을 이용해 줄을 그어가면 좋은데 형관펜은 뚜렷이 구분되어 눈에 잘 띄고 펜이 지나간 부분의 등고선이 그대로 남아 있어 좋다.
애매한 구간이 나타나면 청색 샤프심으로 계곡을 연장해보거나 적당한 높이의 등고선 사이를 연필로 칠해가본다. 얼마쯤 가다 연필 칠한 부분은 만나고 그 가운데 선이 생길 것인 바 거기가 마루다. 가끔은 5만분의 1 이나 2만 5천분의 1 지형도로는 물을 건너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정확히는 확인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틀리게 그리는 수가 많다). 이 경우에는 5천분의 1 지형도(없는 곳도 상당히 있음)를 구해서 보든가, 현지를 답사해야 한다.
마루금 긋기가 까다로운 지역은 쇠나드리 부분, 백복령 부근, 고리봉에서 모랫재 구간, 신의터고개에서 큰재 구간, 대야산에서 장성봉까지의 불란치재 부근, 저수재에서 벌재재 구간, 눌재 부근 등이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도계, 군계, 읍,면계를 따르는 구간이 많은데 대간이 이러한 경게선과 달리질 때 유의해야 한다. 대미산 ~ 차갓재 ~ 황정산9황장봉산) ~ 벌재재 ~ 저수재 구간에서 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이 부근의 도계는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다 모녀재에거 계곡을 거슬러 벌재재로 이어진다. 또 속리산 문장대 ~ 696봉 ~ 눌재 ~ 청화산(984m)으로 이어지는 구간과
그러한 예다.
백두대간이 높고 뚜렷한 산줄기를 비껴서 희미한 산줄기로 이어지는 구간도 있는데 고리봉에서 모랫재 구간이 그 예다. 이 구간은 정령치 북쪽의 고리봉(1305m)에서 서북으로 방향을 틀어 전북 남원군 주천면, 이백면, 산동면계를 따라 이어지는데, 이 산줄기는 고리봉에서 세걸산, 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지는 동북릉에 비해 미미하다. 또 600미터 이하의 구릉성 산지를 지날 때는 마루금 긋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2만 5천분의 1 지형도를 참고하면 좋다. 약수봉 ~ 큰재 ~ 백학산(615m) ~ 신의터고개 ~ 437봉 ~ 화방재에 이르는 35킬로미터의 구간에서 예를 찾을 수 있다.
마루금 긋기가 끝이 나면 지형도를 숙지한다. 마루금 긋기에 애를 먹은 구간은 실제 산행에서도 독도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들 구간은 특히 신경을 써서 지형을 숙지해둔다. 이런 구간에 대해서는 현지 답사도 필요하다. 주말을 이용해 체력도 다지고 지형정찰도 할 겸 다녀오면 좋다.
지원은 10일에 한번 정도
구간확정이라 함은 하루하루의 운행 거리를 정해 막영지를 선택하고, 나아가 지원조를 만날 곳을 정하는 것이다. 하루 운행거리는 도상거리 10킬로미터 내외로 잡는다. 하루 10시간은 걷는 거리다. 겨울에는 8킬로미터 쯤으로 한다. 막영지를 선택할 때는 물을 구하기 쉬운 데로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원들의 속도가 종주를 시작해 10일은 느리고 그 다음 10일은 보통, 그 다음부터 빨라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좋다.
종주 중에 지원을 몇 차례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원들의 체력, 식량의 종류,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에는 지원을 몇 차례 더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도상거리 100킬로미터 전후, 겨울에는 80킬로미터 전후해서 10일에 한 번 꼴로 지원을 받는 것이 알맞다. 지원없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식량의 무게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지원조를 만날 때쯤 해서 하루 정도의 예비일을 두어 운행의 차질이 생기는 경우에 대비한다. 지원조를 만나는 장소는 보통 고개가 되는데 이는 지원조가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대간을 지나는 고개 중에서 포장길이 난 곳이 30여곳에 달하므로 이를 이용하면 좋다. <표 3 참조> 종주 중에 4차례의 지원을 받는 종주대의 경우 육십령, 추풍령, 죽령, 대관령 또는 육십령, 불란치재, 화방재, 대관령을 지원 장소로 많이 이용한다.
두 달 가까운 시간을 한꺼번에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주말산행을 이를 연결종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의 연결종주는 한꺼번에 종주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접근로와 하산로를 선택하는 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교통편, 접근 지점의 도로사정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여 구간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표 4 참조>
텐트플라이는 긴요한 장비
장비는 텐트, 배낭, 등산화, 버너가 중요하다. 공동장비 중에서는 텐트와 버너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장비다. 텐트는 가볍고 통풍과 방수가 잘되는 제품이어야 한다. 폴이 망가져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튼튼한 것을 준비하되 예비로 두어 개 더 갖고 간다. 폴은 텐트에 끼울 때 고리나 벨크로테잎으로 연결하는 것이 치고 걷는 데 간편해서 좋다. 펙은 10센티미터쯤 되는 못으로 대치하면 무게를 줄일 수 있다. 플라이는 운행 중 비를 피할 때도 요긴하고 산 중에서 비를 만났을 때 물을 받을 수도 있어 꼭 필요하다. 플라이가 텐트에 닿으면 방수가 안된다는 점을 명심한다.
버너는 휘발유나 석유버너 중 하나와 가스버너 하나를 같이 가지고 가면 좋다. 주의할 점은 휘발유버너는 정제되지 않은 주유소의 휘발유를 쓸 경우 금방 노즐이 막혀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종류라도 연료소모 정도가 다르므로 출발 전에 측정을 해보아야 한다. 개인장비는 배낭과 등산화가 중요하다. 배낭은 종주대원들이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장비로 큰맘 먹고 외제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다. 종주에 사용하는 배낭은 멜빵과 허리부분이 두텁고 몸에 맞아 장기간 메고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 함께 등판의 공기소통이 잘 되어 땀띠가 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등산화는 가볍고 방수가 잘 되는 것을 선택한다. 고어텍스나 심파텍스를 사용한 방수등산화를 눈여겨 봄직하다. 보통은 등산화 한 켤레로 종주가 가능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두었다가 지원조 편으로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타이츠는 사타구니 쓸림 막아줘
이 밖의 장비로는 보조자일, 모자, 슬리퍼, 물통, 수선구 등을 준비한다. 자일은 거의 필요하지 않지만 겨울에는 한계령에서 망대암산 부근 등 몇 군데 보조자일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이 좋다. 종주 중 모자는 해를 가려주기도 하지만 비가 올 때 더욱 요긴하게 쓰인다. 땀도 닦을 수 있고 목도 가려주는 정글모자형이 좋다. 가벼운 슬리퍼가 텐트에 한 개 정도 있으면 유용하다. 바늘과 실은 옷이나 등산화, 배낭수선에 사용할 수 있다. 물통은 개인 물통 외에 텐트 당 합께 8리터 정도의 것이 있어야 한다. 막영지에 도착하면 대원 중 2명은 저녁이나 아침에 쓸 물을 뜨러가야 하는데 그 때 필요한 자바라형 등 대형물통을 준비한다.
장비와 관련해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텐트 안에서 가스랜턴을 켜고 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겨울 야영객에게 간간이 일어나던 사고는 지난 겨울 오대산 두로봉 부근에서 대간을 종주하던 산악인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에 이르렀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의약품은 말 그대로 상비약이므로 종주가 끝났을 때 사용하지 않고 고스란히 남는다고 해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소화제, 항생제, 진통제, 비타민제, 화상거즈, 일회용 반창고, 압박 붕대, 소독약 등을 준비한다. 한 종주대가 의약품을 사용한 것을 보면 소화제는 지원 받은 날 과식 때, 항생제와 진통제는 충치에, 화상거즈는 사타구니 쓸림에, 개관은 쐐기풀에 쏘였을 때 사용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사타구니 쓸림이나 땀띠에 대비해서 베이비파우더를 준비하면 좋다. 그러나 타이츠를 입고 가면 필요가 없다. 반창고는 배낭커버나 오버트라우저가 찢어졌을 때 사용할 수 있어 준비해 두면 유용하다. 야영 시 백반을 텐트 주변에 뿌리면 뱀이 접근하지 않으므로 준비해 가는 종주대도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진드기를 조심해야 한다. 이 진드기는 살을 파고 들어 곪게 하므로 이 지역을 통과할 때는 저녁에 진드기가 몸에 붙었는지 살펴야 한다.
식랑은 여러 면에서 가장 중요
짐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식량이고 예산에서도 식량구입비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백두대간 종주에서 식량은 매우 중요하다. "계획된 식단대로 못가고 무거운 것부터 먹었다."고 하는 종주대가 있는 반면 점심 때 먹을 라면을 지원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45일치 식량을 한꺼번에 메고 간 종주대도 있으니 기존의 산행 식단을 과감히 바꾸어 보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아침과 저녁은 주로 밥을 먹게 되는데 일인당 한 끼에 200그램의 쌀과 부식을 준비한다. 국이나 찌개로는 마른 나물을 곁들인 된장찌개, 곰탕, 육개장, 미역국, 배추국 등을 많이 준비한다. 고등어나 꽁치는 비린내가 나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며 카레라이스도 냄새가 나므로 아침 식사로는 좋지 않다. 부식으로는 멸치볶음 등의 마른 반찬과 함께 젓갈류를 준비하면 좋다. 젓갈은 오래 보관해도 부패하지 않으며 염분을 섭취할 수 있어 좋다. 때가 맞다면 더덕, 취나물, 두릅순 등 산나물을 현장에서 조달하는 것도 좋은 부식거리가 된다.
점심으로 식빵은 부패의 위험이 있으므로 지원받은 후 3일까지만 먹을 수 있다. 빵은 잼, 마요네즈, 꿀에 잣이나 호도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좋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으로 독일빵이 있으나 딱딱해서 먹기에는 나쁘다. 제과점에서 식빵 부스러기를 기름에 튀겨 말린 것을 구해 점심으로 하는 것도 좋다. 참기름과 참깨, 소금을 넣은 주먹밥형 김밥도 권할 만하다. 점심으로 라면을 준비했다가 생라면만을 먹은 종주대도 있다. 라면은 입맛을 돋을 수는 있으나 끓여 먹을 만큼 충분한 물을 가지고 다니기가 쉽지 않으며 열량이 부족해 장기간 식량으로는 부적합하다고 보겠다.
오전과 오후에 먹는 간식은 약과, 연양갱, ,육포, 어포, 건포도, 초콜릿, 사탕, 곶감 등을 준비한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장기간의 종주산행에서는 간식이 하루 산행 때의 그것과는 달리 중요한 에너지원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녁 식사 후의 차는 전대원이 둘러 앉아 하루를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무료할 수 있는 저녁시간의 청량제로 좋다.
이상의 사항들이 준비되면 계획서를 작성하고 장비, 식량, 의약품을 구입하고 패킹한다. 배낭 안을 전부 싸는 대형 방수포(지물포에 가면 김치독용으로 나오 것이 있다)를 각자가 반드시 준비하고, 비상식, 의약품, 기호품, 여벌옷 등을 각기 하나로 모아 작은 단위로 포장한다. 식량은 하루 분씩 포장한다. 저녁, 아침, 오전간식, 점심, 오후간식을 한 묶음으로 해서 포장한다. 막영지에 도착하면 그 날 저녁부터 시작되는 식량 주머니를 꺼내 다음날 오후 간식까지 먹도록 한다. 이러한 식량포장 원칙을 지원조가 가지고 오는 식량에도 적용해야 한다.
다음은 백두대간으로 떠난다. 그리고 산쟁이로 끝나는 산악인 되지 않기 위해서 꼭 기록을 남길 일이다.
월간 「사람과 산」1994.11월호 288 ~ 293쪽.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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