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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렇게 종주했다 - 백두대간 종주자료집 44권 사례분석]

박상규 2009. 8. 21. 12:35

 

 

백두대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산악인들이다. 허구헌날 산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이 산줄기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지 몰랐다가 벼락처럼 떨어진 소리-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그 후로 산악인들은 갑자기 불거져 나온 이 소리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정말 산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백두산까지 이어져 있는지, 풍수지리설에 의한 추상의 개념은 아닌지, 태백산맥이 한반도의 등뼈가 아닌 백두대간에서 가지쳐 나간 낙동정맥이 확실한 지를 자기 발로 걸어서 확인해보고 싶어하는 산꾼들이 꼬리를 물고 종주를 나섰다. 그렇다면 고산자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대간과 정맥을 종주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

95년 한 해 동안 본지 MM뉴스란에 소개된 종주팀은 23팀(정맥 종주 포함)이다. 종주자의 절반 정도가 본지에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40팀은 넘을 것이란 추정을 해 볼 수 있다. 비과학적인 조사방법일 수도 자장 정확할 수도 있는, 강원도 갈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구룡령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1년 내내) 아주머니는 1년에 50팀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종주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종주기간 동안 보통 3, 4팀은 만난다고 한다. 종주기간을 45일로 가정하고 5팀이 종주한다고 보면 대략 40팀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위의 수치를 조합해 볼 때 종주가 활성화 된 92년 이후 5년 동안 적어도 200팀이상이 종주를 했다는 결론이다. 이 글은 이 중 접수한 종주 보고서 44권을 토대로 분석했다.

종주 방식은 어떻게 변했나

백두대간 종주방식은 크게 대학 산악부 종주 - 일반 산악회 종주 - 단독 종주 - 구간 종주 - 안내 종주의 형식으로 바뀌어 왔다. 백두대간이 산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후 실제 종주를 통해 이를 확인하는 작업에 대학산악부가 백두대간 종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름, 겨울 방학이 있어 오랜 시간 동안 산행을 하더라도 별 지장을 받지 않고, 새로운 것에 민감한 청년 정신이 주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한국대학산악연맹은 88년 7월 2일부터 9일까지 백두대간을 15구간으로 나누어 동시다발로 49명이 종주를 했다. 이 때 백두대간 개념이 전국대학산악부로 확산되었고 백두 대간 종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학산악부의 종주는 주로 방학을 이용, 지원조를 둔 전구간 종주자 2, 3명과 구간별로 한 두명씩 지원 산행(89년 충북대산악부)을 하거나 5, 6명이 전구간을 종주하는 형태 (90년 강릉대산악부)가 일반적이었다. 지원대를 둔 종주 등반은 지금도 가장 많이 행해지는 방식이다.

대학산악부에 의해 불이 당겨진 종주 등반은 91녀도부터 일반 산악회로 퍼져 나갔다. 일반 산악회의 종주 등반은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어 일시 휴직을 하거나 아예 직장을 때려치고 종주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둘이나 셋이 팀을 나눠하던 종주방식에서 산악회에서 후원하는 단독종주나 아예 함께 할 사람이 없어 단독으로 종주하는 방식도 있었다. 종주 등반과 함께 구간종주 방식이 94년도부터 일반 산악회나 개인 종주자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무박 2일로 산행을 하고 돌아와 다음 날 출근하는 경우나 집단 휴가를 받아 해마다 구간종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

백두대간 종주 경험이 축적되면서 95년부터 안내종주도 성행하기 시작했다. 안내종주는 개인의 능력으론 종주가 어렵고 산행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참가할 수 있어 전문산악인이 아닌 경우에도 종주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등반대장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 만다는 비판도 있다. 이 밖에 지원 종주, 식량을 준비하지 않고 생식으로만 종주, 정맥과 대간을 연결해서 종주(호남, 금남호남, 백두대간 연결 종주) 등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었다.

종주 목적은 무엇일까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들의 일관된 이야기는 우리 산줄기에 대한 애정이다. 일제에 의해 왜곡되었던 우리 산줄기를 직접 걸어본다는 데서 숭고한 애국심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이 숭고한 애국심은 종주를 하면서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승화되어 이북의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는 그 날을 기원하게 된다. 이 외에도 장기 등반을 통한 등반능력 향상, 해외 원정을 위한 후련 등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간다는 모험심(안내종주에 참가하는 동호인들의 경우), 기타 개인적인 고민을 해결하려 가는 경우 등 다양한 목적으로 종주가 이루어 지고 있다.

얼마나 걸렸나

백두대간 종주는 종주 방식에 따라 30일에서 10년까지 걸린다. 무지원 단독 종주자의 경우 34일 걸려 종주를 마친 이도 있다. 산나물과 약초로 끼니를 때우는 생식을 하며 종주를 해 기간을 줄였다. 동계종주를 빼놓고 여섯 번 지원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대부분 45일에서 55일 정도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동계종주의 경우는 대략 60일에서 70일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해 적설량이 얼마나 되는가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구간 종주의 경우 한 달에 몇 번 산행을 하는가와 매 번 산행 시 얼만큼 가는가가 종주 기간을 결정한다. 산행 횟수는 보통 40회에서 60회까지 다양하면 기간은 1년에서 3년까지 다양하다.

어느 계절이 가장 힘드나

계절별로 대간과 정맥 종주 팀을 살펴보면 봄 10팀, 여름 21팀, 가을 2팀, 겨울 13팀으로 나타났다. 종주자들은 여름이 가장 종주하기 어렵고 봄이 가장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종주한 팀이 유난히 많은 것은 여름 방학을 이용해 종주에 나선 대학산악부팀이 많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추운 날씨, 폭설, 종주 기간이 길어 겨울이 가장 힘들 것 같지만 오히려 여름보다 쉽다고 한다. 그 이유는 숲이 우거지지 않아 시야가 트여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설산을 만끽할 수 있고, 등반 성취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름은 뜨거운 날씨, 정글에서 길찾기의 어려움, 모기나 뱀 등의 공격이 있어 가장 힘들다고 한다. 물만 신경을 쓰면 되는 봄, 가을이 종주하기에 가장 편한 계절이다. 그러나 두 달 정도 종주를 하다보면 계절이 한 번은 바뀐다고 한다.

지원 장소

지원대를 두고 종주를 하는 경우 일주일 단위로 적게는 4번, 많게는 8번 정도의 지원을 받았다. 지원을 받은 장소로는 교통편이 편리한 고개가 많았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종주를 하는 경우 대표적인 지원 장소는 육십령, 추풍령, 큰재, 화령재, 불란치재, 이화령, 죽령, 화방재, 피재, 백복령, 삽당령, 대관령, 진고개, 구룡령, 한계령 등이다. 그러나 운행 계획을 세울 때 큰 고개를 중심으로 잡아 놓았다 하더라도 종주하다 길을 잃어 헤매거나 하는 등의 사정으로 인해 지원장소가 바뀌기도 하고 약속한 날 지원장소에 가기 위해 구간을 빼먹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위험 구간

백두대간 종주는 산줄기를 따라 걷는 등반이 주가 되기 때문에 암벽 등반 기술이 필요하거나 목숨 내놓고 지나는 구간은 별로 없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여름철에는 별 어려움이 없이 갈 수 있었던 곳도 살얼음이 얼거나 눈이 쌓이면 위험한 구간이 된다. 종주자들이 뽑은 위험 구간은 육십령에서 장수덕유 사이, 추풍령 휴게소 지나 384봉(채석장이 마루금까지 훼손시켜 없던 절벽이 생겼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눌재, 대야산에서 불란치재, 은티재에서 희양산, 이화령에서 조령 3관문, 차갓재에서 황정산 정상, 망대암산에서 한계령, 마등령에서 황첳봉 사이를 꼽는다. 동계에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는 보조 자일을 갖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종주자들은 말한다.

독도가 어려운 구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가장 피곤하고 힘든 일이 산마루금을 찾아 가는 일이라고 한다.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산으로 가 있거나 계곡으로 빠지는 수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다시 돌아가야 하는 짜증스러움과 지원대가 있는 경우 지원날짜에 맞추느라 허둥대며 산행을 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구간을 빼먹기도 한다.

어떤 팀은 보고서에 1. 출발 전 지도 확인, 2. 산행 중 자기 위치 파악, 3. 내리막 길 조심, 4. 순간 느껴지는 이상 감각을 믿을 것, 5. 지도를 불신하지 말 것, 6. 자신의 독도 능력을 괴신하지 말 것 등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전 독도법을 기록해 놓았다.

종주자들이 꼽는 독도가 어려운 구간은 정령치 - 주촌마을 - 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 황악산에서 궤방령, 추풍령에서 화령재, 속리산 문장대에서 눌재, 피재에서 덕항산, 삽당령에서 닭목재다. 이 외에도 순간적으로 방심하면 딴 길로 빠지기 쉽상인 곳을 하루에 한 두 번은 만나게 되고 종주를 하다보면 산줄기를 찾아내는 감이 생긴다고 한다.

무엇이 제일 필요한가

종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추었다하더라도 등반 능력이나 팀웍이 무너지면 완주를 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종주자들이 꼽은 것을 보면, '풍부한 산행 경력', ' 50일 이상을 버텨낼 수 있는 체력',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인내심', '주말 휴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산행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자기 강제성' 등이다.

지원대를 둔 종주팀의 경우 지원대와 헤어지는 순간을 가장 힘든 순간으로 뽑았고, 독도에 실패해 되돌아가야 할 때나, 더위, 추위, 물, 배고품 등이 하산을 유혹하는 손길들이라고 한다.

식량은 무얼 가져갔나

어떤 이는 식량 조건으로 입맛에 맞을 것, 가벼울 것, 영양가가 높을 것, 변하지 않을 것, 포장이 쉬울 것이라고 보고서에 명시했다. 각 산악회마다 배고픔을 달래는 방법이 있었다. 어떤 팀은 간식으로 사탕, 땅콩, 초코파이, 건바나나, 건포도를, 어떤 경우는 비싸더라도 고칼로리 식량으로, 어떤 이는 매 끼니 식량을 개별 포장해 더 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다.어떤 팀은 45일 간의 식량을 지고가 철저하게 가벼운 것을 택했고, 간식은 무조건 산에서 캔 더덕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쌀은 전혀 가져가지 않고 빵만으로 연명했으나 일주일이 지나자 구역질이나 한 끼를 떡라면으로 바꿨고 곶감이 가장 좋은 간식이었다고 한다. 어떤 팀은 식수를 구하기가 어려우면 사각 플라이를 나무 아래 쳐놓고 나무의 이슬을 털어서 식수로 사용했고, 어떤 이는 설탕과 식초를 물에 타서 마시면 갈증 해소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고 비법을 소개했다. 반찬으로는 대부분 젓갈류를 가져갔고 김치가 있으면 좋지만 무게 때문에 가져 갈 수는 없었다고 한다.

장비는 무얼 가져갔나

장비의 원칙은 '무조건 부피를 줄여라'와 망가지고 찢어진다는 전제아래 '비싼 것보다 싸고 부담없는 것을 사용하라'였다. 김장용 비늘을 배낭 안에 넣으면 방수가 확실하다. 키가 높은 배낭은 피하고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방수에 철저히 신경을 써야 한다. 독도를 할 수 없는 곳에서 고도계(오차주의)가 현재의 위치를 찾는데 유용하며 동계엔 고글을 반드시 챙겨야 설맹을 예방할 수 있다. 단체일 경우 호르라기를 준비하면 서로간의 위치를 찾는데 유용하게 쓰이고 의복은 야영할 때 입는 옷과 운행복 두 가지만 가져간 경우도 있다.

종주자들은 가져간 의약품을 대부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고 한다. 어떤 팀은 의약품 방수에 특히 신경을 쓰고 알약은 필름통에 넣어 이름을 표기해 두면 좋다고 한다. 더러운 물을 먹을 때가 많아 배탈약은 필수며, 찰과상 등 작은 상처에 유용한 마데카솔, 근육을 푸는 맨소래담 로션 등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어떤 팀은 텐트안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털고 들어가야 진드기에게 피를 빨리는 아픔이 없다고 하며 여름에도 감기 몸살이 올 수 있어 감기약과 식중독에 대비해 지사제를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특히 땀띠나 사타구니 쓸림에는 아기 엉덩이 진무르지 말라고 바르는 파우다와 여성용 팬티스타킹을 잘라입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화상 치료제나 소화제, 진통제(치통)가 사용된 경우도 있었고, 몸 상태가 안좋을 때 우황청심원을 먹으면 바로 효과를 봐 펄펄난 경우도 있었다 한다. 이 밖에도 압박 붕대와 1회용 반창고, 소독약과 빨간약은 필수, 영양제는 선택 사항이라 한다.

종주 어떻게 변해야 하나

종주자들은 이제 산줄기의 실체 확인 작업은 의미가 없다며 종주 형식의 다양화와 백두대간 이외의 정맥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지역의 특성,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문화 등을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보는 백두대간 인문지리를 탐구하는 종주를 해야된다'며 ' 백두대간의 마루금만 따라 가는 종주 방식은 변해야 한다' 고 말한다.

서양학과 전공의 어떤 이는 '산에 다니는 사람으로 마루금은 가능하면 정확하게 타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대간자락에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들도 의미있는 일이며 그런 것들이 오히려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 많았다.' 고 한다. 어떤 산악회는 백두대간 종주와 아울러 지역의 산줄기를 종주해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노력했다. 부산의 어떤 산악회는 낙남정맥 주변의 향토 문화유적을 조사 소개했고, 대구의 어떤 산악회는 대간 상의 주요 고개의 유래와 전설 등을 기록하는 열의를 보였다.

월간 「사람과 산」1996년 3월호에서 정리 편집.

홈지기 덧붙임) 자료가 5년 전의 기록이라 변동 사항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참고 자료로만 활용을 하시고 대간 종주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사정이나 팀별 사정이 있을 것이므로 거기에 맞게 꼼꼼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자료의 오류가 보이면 연락 바랍니다.(04/6 처음 작성. 06/2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