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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에서는 ‘2덕(德), 3절(節), 5의(義)’라 하여 10분을 ‘장수를 빛낸 인물’ 로 꼽는다. 예전엔 ‘3절’ 만 내세웠는데,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면서 ‘2덕’ 과 ‘5의’ 가 추가됐다. 3절은 의암 논개와 충복 정경손, 순의리 백씨를 일컫는다.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 남강에서 왜적장의 허리를 안고 강물에 떨어져 순절했다. 정경손은 장수향교를 불태우려 침입한 왜적을 꾸짖어 감동시켜 향교의 원형을 온전히 보존케 했다. 백씨는 민정을 시찰하다가 장척애에서 꿩이 갑작스레 날아가는 소리에 놀라 깊은 소에 빠진 현감의 뒤를 따라 순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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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는 논개가 태어난 고장답게 논개사당(의암사), 논개생가, 주촌민속마을 등 논개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 논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 선조 26년(1593) 6월 최경회 장수현감을 따라 2차 진주성 싸움에 참전했다가 성이 함락되자 기생으로 가장하여 왜군 승전연에 참석,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와 진주 남강에 투신 순국한 겨레의 여인이다. 매천 황현 선생은 논개의 충절을 “신내 나루에 물까지도 향기롭구나. 내 얼굴 깨끗이 씻고 의랑에게 절하니…(중략) 천만년 역사에 제일 빛나는 휘황한 인물이 되었도다” 라고 칭송했다.
논개사당(의암사)을 찾았다. 주차장에서 잔디밭을 지나 사당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외삼문인 숭앙문(崇仰門)에 들어서니 전면의 산봉우리 자락에 휘광문(輝光門)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안 충의문(忠義門)에 지방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된 의암사(義巖祠)가 우뚝 서 있다. 처마엔 1955년에 쓴 함태영 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고, 영정각 안에는 고고한 자태의 논개 영정이 있다. 그 아래 휘광문 자락 북쪽에 논개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기념관 앞 남쪽으로 10m 거리를 두고 ‘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 가 서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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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방마다 향교가 있지만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 복원한 건물이다. 더구나 큼직한 자물쇠로 잠겨 있어 안을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이에 반해 장수향교는 500여년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향교 안의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해 명륜당(明倫堂), 사마재, 진덕재, 경성재, 부강문(扶綱門) 등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12칸짜리 대성전 건물은 구조가 특이해 역사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이 인식되고 있다. 낮은 석축기단 위에 세운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과 측면 4칸의 건축물로 좌우 측면 하단에 석벽을 쌓았다.
향교가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에는 향교지기 정경손이라는 사람의 공이 컸다. 임진왜란 때 정경손은 일개 교지기의 신분이면서 향교를 떠나지 않았다. 왜적의 장수가 목을 겨누어 내리 치려했을 때도 조금도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여기는 성전이니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꼭 들어가려거든 나를 죽이고 들어가라” 고 소리를 질렀다. 정경손의 호담한 의기에 감복한 왜장은 “이 성역을 침범하지 말라” 는 신표를 써주고 물러갔다. 정경손이 이 신표를 향교 정문에 걸어 놓으니 그 뒤에도 왜적들이 향교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향교 앞에 이 분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마지막 3절의 한 명인 순의리 백씨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천천면 장판리에 타루비(墮淚碑)가 세워져 있다. 장척 마을 옆 산기슭에 서 있는 이 비석은 자기가 모시던 현감이 비명횡사하자 “이는 주인을 잘못 모시어 죽게 한 것” 이라며 주인을 따라 순사한 한 관노의 충정을 기리고 있다. 그는 손가락을 깨물어 절벽에다 꿩과 말의 그림을 그리고 바위에다 ‘타루’ 두 글자를 쓰고 현감이 빠졌던 소에 몸을 던졌다. 그림과 타루 글자는 1967년 도로개설 공사를 하면서 없어지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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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산(長安山·1237m)에 올랐다. 장수읍, 계남면, 번암면 경계에 솟은 장안산은 백두대간의 영취산(1076m)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이 가정 먼저 빚은 산이다. 남서쪽은 덕산계곡, 남동쪽은 지지계곡 등을 품고 있을 정도로 숲이 깊고 짙다. 장안산의 상봉을 일명 쇠봉(金峯)이라 부른다. 예부터 이 산에다 묘를 쓰면 가뭄이 계속됐다고 한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으면 주민들은 산에다 묘를 썼는가를 먼저 조사했다. 또 국가에 질병이 돌거나 흉년이 드는 등 큰 흉사가 있으면 산이 운다고도 한다.
장안산 등산로는 여러 갈래가 있지만 주차장과 간이휴게소가 있는 무룡고개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룡고개에서 영취산까지는 15분이면 오를 수 있다. 무룡고개에서 장안산 정상까지는 약 3㎞. 대략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장안산은 가을 억새로 유명하다. 키 큰 억새가 바람 따라 흔들리며 은색 물결로 출렁거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가을이면 이 억새를 보기위해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덕산계곡은 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골짜기다. 옛날 장수로 유배 온 황희 정승이 귀양살이가 힘들 때면 이곳을 찾아와 바둑을 뒀다고 한다. 또 영화 <남부군>에서 수백 명의 빨치산들이 옷을 벗고 목욕 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지지계곡을 따라 걸어서 한 시간쯤 올라가면 무룡고개에 이른다. 무룡이란 용이 춤을 춘다는 뜻으로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 기상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무룡고개에는 연산군 때 역적으로 몰린 유자광이 참수된 후에 금부에서 그의 뒤를 추적한 결과 조상의 묘가 이 곳에 있었다고 한다. 조상의 묘소 덕분으로 왕후장상이 끊이지 않았다며 나졸을 보내 묘소를 파헤쳤다는 전설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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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읍에서 남원 쪽으로 19번 도로로 약 8㎞ 정도 가면 소백산맥에서 노령산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인다. 이 줄기를 수분재(水分峙)라 하며 재 옆에 마을을 수분마을 또는 물뿌랭이 마을이라고 부른다. 예전엔 재의 중앙에 외딴집이 한 채 있었다. 비가 오면 몸채의 용마루를 경계로 남쪽으로 떨어지는 지붕 물은 섬진강으로 흐르고, 북쪽으로 떨어지는 지붕 물은 금강으로 흘렀다고 한다.
수분마을 밑에는 장수읍과 번암면 경계지점인 해발 600m의 수분령(水分嶺)이 있는데 여기에서 섬진강과 금강의 두 강줄기로 나눠진다. 예전에 여기는 남원 등지를 통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주막이 많아 지나는 길손들의 애환이 서린 휴식처였다. 이 수분령 주막 터는 계속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90년대 들어 헐렸다. 1996년 그 자리에 가든과 주유소가 들어앉아 휴게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수분마을 뒷산 계곡을 따라 2.5㎞ 올라가면 금강의 발원처인 뜬봉샘(飛鳳泉)이 있다. 겨우 차가 한 대정도 지나갈 만큼 길이 좁다. 마을 회관이나 산 중턱 임도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 최근에 마을부터 샘까지 나무계단을 깔고, 군데군데 조망대를 설치 중이다. 뜬봉샘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얽힌 설화가 있다. 이성계가 천지신명의 계시를 받으려 이곳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백 일째 되는 날 봉황새가 무지개를 타고 나타났다. 황급히 봉황새가 뜬 곳을 가보니 풀숲으로 가려진 옹달샘이 있었다. 이후 봉황새가 떴다고 해서 샘이름을 뜬봉샘이라고 했다고 한다. | |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 장수IC에서 빠지면 된다. 익산-장수고속도로 장수IC를 이용해도 된다. 대구나 광주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88올림픽고속도로 남장수IC를 이용하면 편하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서울-장수를 1일 4회 왕복 운행한다. 기차는 남원역이나 전주역에서 내린 후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연락처 장수군청 산림문화관광과 063-350-2312 방화동가족휴가촌 063-353-0855 장안문화예술촌 063-352-4560 논개사당(의암사) 063-350-2561
*승마체험 장수는 승마체험의 일번지다. 천천면의 장수승마장은 각종 승마대회와 외승, 승마 등을 즐길 수 있다. 장계면의 장수경주마목장은 내륙지역 경주마 생산 육성의 전초기지로서 다양한 목장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월곡목장은 8만4000평의 면적에 마사, 승마장, 보행장, 야욕장, 보행기, 주행로 8㎞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장수승마공원은 체험승마를 위주로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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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 장원수 기자 ] 출처 : [ 경향닷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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