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모든것

선달산 르포

박상규 2010. 1. 7. 15:09

 

[백두대간 대장정 제14구간] 선달산 르포

‘겨울 참나무숲의 침묵에서 어떻게 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배우라’
고치~마구령~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답사

▲ 마구령을 지나 각곳산을 향하는 취재팀. 거의 눈이 없다시피하지만 등성마루에는 바람이 옮겨놓은 눈이 제법 쌓여 있어 발바닥의 감촉을 부드럽게 한다.

                        소백과 태백 사이. 이른바 양백지간(兩白之間)의 남쪽 들머리인 고치(古峙)에 선다. 우리말로 ‘옛 고개’인 이곳은 아주 오랜 옛날에도

                        옛 고개로 불린 모양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밝혀 놓은 지명 유래를 보면, 신라 때 이 고개 아래에 대궐터를 잡을 때 이 고개를 일러

                       ‘옛 고개’라 했다 한다. 이 말대로라면 고대부터 백두대간의 이 쪽과 저 쪽을 연결해 주는 통로였던 셈이다.

▲ 각곳산을 내려 서서 선달산을 향하고 있다.


 

 

▲ 늦은목이에서 선달산으로 나아가는 취재팀.

이 고개 위 대간 등선에 있는 산신각이 최초로 세워진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백’과 ‘태백’ 두 산신을 함께 모시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옛날부터 이 고개를 넘던 사람들은 허리를 낮추어 인정(人情)을 통하게 해준 두 ‘백산(白山)’에 대한 경배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대간 종주자들의 산마루길과 산허리를 타고 넘는 고갯길은 만나는 순간 이별을 해야 하는 관계다. 산마루길은 이 산과 저 산을 이어가는 길이고, 고갯길은 가장 빨리 산을 벗어나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산마루길이 자연의 길이라면 고갯길은 인간의 길이다. 이 두 길의 교차점이 바로 고갯마루인데, 인간의 길과 자연의 길이 한 몸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성황이나 산신각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따라서 산신에 대한 경배는 신앙적 의례이기 전에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본연의 자연에 대한 공명이기도 한 것이다.

‘걸음이 나를 데리고 간다’

▲ 박달령을 향하는 길. 바람이 부려놓은 눈이 심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산신각을 뒤로 하고 대간 마루에 두 다리를 세운다. 이 순간부터 우리의 모든 행위는 오로지 한 가지밖에 없다. 걷기! 산에서 ‘걷기’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종종 산길을 걸으면서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음이 나를 데리고 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산길 걷기는, 일종의 제의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 두 다리로 걷기다. 바로 이것이 아직도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곰, 참새, 펭귄도 두 다리로 걷기는 하지만, 그들의 주종목은 기고, 날고, 헤엄치는 것이다. 두 다리로만 인간만큼 오래 잘 걷는 동물은 없다. 인류 최초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오직 두 다리로만 걷기 시작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s·직립원인)를 위하여 건배를! 왜 호모 에렉투스와 건배를 해야 하는가. 대부분 술 잘 먹는 인간들이 걷기도 잘 하기 때문이다. 우리 백두대간 취재팀도 다르지 않다.

나는 지금 걷는 행위의 자연 친화성에 대해 거의 신앙인 투로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또 다음과 같은 통찰 앞에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 박달령으로 가는 길. 바람이 쌓아놓은 눈 덕분에 심설 산행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자연에 속하면서도 일종의 비정상적인 자연의 산물, 요컨대 이 쪽도 저 쪽도 아닌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세상사람들의 책에서 발간한 <자유를 생각한다>에서 재인용).

그렇다. 인간은 자연에 동화될 수는 있어도, 풀이나 나무나 개미나 사자처럼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앞으로 ‘공동체’의 범위 속에 인간계와 자연계를 아우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전개될 과학 문명이 인간 복제까지 완벽히 실현시킨다 하더라도 자연이라는 토대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과 밀착해서 살았던 시대보다 더 자연을 가까이 하며 닮아가야 한다. 맹수라 할지라도 인간처럼 쾌락을 위한 사냥은 하지 않는다. 다람쥐가 필요 이상 도토리를 모으기는 해도 그 도토리가 산을 벗어나는 일은 없다.

늦은목이 서쪽 계곡서 산중 일박

▲ 옥돌봉 오름길.

고치 산신각 위 헬기장부터 남동쪽 950m봉으로 향하는 대간길은 아주 가파르다. 바람은, 막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팽팽한 탄력을 볼떼기에 그대로 전해온다. 여름 같았으면 기진맥진했을 텐데 오히려 걸음이 빨라진다. 텅 빈 참나무숲의 의연한 침묵이 묘한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마치 참나무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950m봉에서 북서쪽으로 몸을 비트는 대간길은 미내치까지 부드럽게 허리를 낮춘다. 미내치(美乃峙·820m,)는 희미한 기억처럼 옛 고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미내치에서부터는 잔잔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다가 제법 큰 파랑을 일으키며 헬기장이 닦여져 있는 1097m봉에 닿는다.

이곳에서부터 대간은 길게 허리를 낮춰 다시 고갯길 하나를 연다. 마구령(810m)이다. 고갯길의 남쪽은 경북 영주시 부석면과 봉화군 물야면으로 연결되고, 북쪽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영월군 하동면으로 이어진다. 남쪽에서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지만, 대부분 시멘트로 포장이 돼 있다. 옛날에는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다 하는데 지금 고개를 넘는 건 바람과 대간꾼밖에 없다.

마구령에서 각곳산(966m)까지는 커다란 표고차 없이 거의 동쪽으로 순하게 오르내린다. 각곳산에서는 거의 정북으로 허리를 비튼다. 반대쪽으로 가지줄기에 봉황산(819m)이 맺혀 있는데, 이 산의 남서쪽 기슭에 앉은 절이 무량수전으로 널리 알려진 부석사다.

▲ 박달령. 산령각 옆에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에 좋다.

각곳산 북쪽 기슭의 분위기는 어둡고 깊다. 눈대중으로도 고개 하나쯤 열려 있을 것 같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그곳이 늦은목이(800m)임을 알겠다. 길이 열렸다 할 정도의 고개는 아니지만 품새가 제법 넓다. 서쪽으로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동쪽으로 봉화군 오전리를 잇는 등산로가 나 있다. 서쪽 기슭에 샘까지 있어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에 적당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내일을 맞기로 했다.

대충 텐트를 친 다음 저녁밥을 짓기 위해 생수병을 꺼내자 주둥이가 얼어 있다. 얼음을 꾹 누르자 가느다란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예기치 않은 물총세례의 알싸한 통증이 오늘 밤의 추위를 예감케 한다.

▲ 옥돌봉을 지나 도래기재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간다. 취재팀으로 참가하고 있는 진주 진서산악회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 했는데, 그중 아리따운 처녀가 한 사람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사진기자가 총각이어서 우리는 먹기 싫은(?) 소주까지 억지로 마셔가며 오작교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 둘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 것인지는 가늠할 길이 없다.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인지, 이성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도 처녀와 총각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취재팀의 분위기는 추위를 아랑곳 않을 정도 부드러워진다.

흔히 처녀 총각들이 이맘때면 옆구리가 시리다고 엄살을 떠는데, 이번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순전히 거짓말인 게 분명해 보인다. 볼 장 다 본(?) 나 같은 유부남의 눈에 비친 그들은 우아하고도 화려한 싱글이다.

모두들 밤새 안녕하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다. 침낭 사이에 끼워둔 물 말고는 꽁꽁 얼어버렸다. 옆집에서는 떡국용 육수를 녹이느라고 법석이다. 만약 집에서 가족을 위해 이런 노력을 기울였다면 아내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을 텐데. 이 대단한 의지의 한국인들에게 딱 2% 부족한 점이 바로 그거다. 어쨌든 우리는 제대로 격식을 갖춘 떡국으로 화려한 아침을 먹었다(대한민국의 아내들이여, 남편과 함께 산으로 가십시오. 그곳에서는 당신이 왕비입니다. 왜냐고요? 아웃도어 체질의 남자들은 산으로 가야 기쁜 마음으로 머슴 기질을 발휘하는 법이랍니다).

 

옛 보부상들이 넘던 고개 박달령

▲ 허허로운 참나무 숲길. 겨울 산의 적요. 도래기재로 내려서는 길이다.
늦은목이에서 선달산(1,236m) 오름길은 선달(先達)처럼 걸어야 한다. 비록 아직 벼슬길로 나가지 않은 신분이긴 하지만, 과거 급제는 한 몸인데 어찌 종종걸음을 칠 것인가. 초입은 거의 설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완만하다. 서서히 키를 높이면 둥두렷한 자태의 봉우리가 눈에 걸린다. 딱 선달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다. 정승, 판서격인 태백산과 소백산에 견주어도 그렇다.

사실 선달산은 백두대간 종주가 아니라면 전국적으로 알려졌을 산이 아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밝혀 놓은 지명 유래는 조금 뜻밖이다. 한자로 ‘先達山’이라고 표기해 놓고는(1:50,000 지도도 마찬가지) ‘산세가 너무 웅장하여 속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로 신선들만 거처한다 하여 선달산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한자음의 어감으로 부회(附會)를 한 것 같은데, 심한 과장이다. 정상도 밋밋하다. 겨울이 아니라면 조망도 즐길 형편이 아니다. 그나마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름값을 한다.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의 풍모는 지니고 있다.

선달산에서 박달령(970m)까지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정상을 내려서면서부터는 시야가 활짝 열리면서 멀리 태백산과 함백산의 웅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크게 밝은 형국이다.

박달령에서 우리는 또 대간종주의 행복감을 만끽한다. 산령각(山靈閣) 옆에 아담한 정자가 세워져 있어 편안하게 쉬면서 점심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산의 정령에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경배를 올릴 만하지 않은가. 박달령 마루에 선 안내판에 따르면,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고개로, 마루에는 옛날부터 산령각이 있었는데, 매년 사월 초파일에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선달산에서 바라본 옥돌봉은 박달령 산령각 지붕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시각적 느낌과 판이하다. 그 사이에 첩첩 주름을 숨겨 두고 있다. 만만히 봤다가는 상당한 허탈감을 맛보게 된다. 작은 한 봉우리를 넘으면 그만큼 옥돌봉은 뒤로 물러나고 또 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옥돌봉은 이름과 달리 육산

이렇게 1시간쯤 씨름하다보면 북동쪽으로 옥돌봉, 남쪽으로 주실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쉬어가기에 딱 좋은 곳이다. 산림청에서 벤치까지 마련해 놓았다. 군데군데 숲 해설도 해 놓아서 일석이조다. 이곳은 80년대까지 방화선으로 벌목을 해놓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신갈나무와 물푸레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아이들 허벅지 굵기 만한 나무들이 제법 근사한 숲을 이루고 있다. 벌목한 나무의 밑동에서 올라온 싹이 자란 것이라고 한다. 사람도 한 25년쯤 자라면 푸릇하면서도 늠름한데, 지금 이 숲의 분위기도 딱 그렇다.

▲ 선달산 오름길.

옥돌봉(1,242m) 정상은 이름과 달리 육산이다. 이름 치레를 할 양으로 바위 몇 개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느긋이 쉬어갈 만한 곳이다. 시계만 좋으면 남서쪽으로 소백산에서 북동쪽으로 구룡산을 향해 달려오고 달려가는 대간의 꿈틀거림을 한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옥돌봉에서 도래기재를 향하는 1시간 남짓 내리막길은 소박하면서도 우아하다. 진달래와 철쭉 같은 관목 옆으로 군데군데 특급의 금강송이 서 있다. 대간이 차츰 강원도 심산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옥돌봉 정상을 내려서자 말자 왼쪽으로 조금만 트레일을 벗어나면 나이 500살 먹은 철쭉을 만날 수 있다. 이 정도 나이의 철쭉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도 상당히 을씨년스러웠던 도래기재(780m)의 절개면에는 나무계단이 놓아져 있다. 고갯마루 위로는 생태이동통로가 산허리를 잇고 있다. 생태에 대한 배려가 과거에 비할 정도가 아니어서 미더운 모습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도로에 의한 생태 단절보다 이동해야 할 동물들의 개체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데 있음을 우리 모두가 자각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산행의 기점인 고치에서 종점인 도래기재까지는 도상거리 약 18km, 실거리 약 26km다. 예년처럼 눈이 많이 쌓였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구간이다.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단 한 순간도 스패츠가 필요 없었다. 심지어 남쪽 기슭은 대부분 먼지가 날릴 정도로 눈 가뭄이 심한 상황이었다. 갈수록 예측 불가능성이 짙어지는 기상이변은 세계적이면서도 국지적인 양상을 띤다. 하늘을 원망하기에 앞서 어머니 지구에 대한 인류의 패륜을 통절히 성찰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소백과 태백의 위엄과 달리 은둔자의 매력을 지난 양백지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겨울 참나무숲의 침묵에서 어떻게 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배우라.’

 

글 윤제학 / 사진 허재성 기자

 

[백두대간 고샅의 명소] 봉황산 부석사

고건축의 최고 걸작 무량수전

부석사를 품에 안은 봉황산은 백두대간의 주능선에서 조금 벗어나 있긴 하지만 등성마루가 아닌 줄기 전체로 보면 분명 대간의 일부다. 안양루에는 ‘봉황산 부석사’라는 편액을 걸고 있지만,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란 편액을 달고 있다.

이번 구간은 한국 고건축의 최고 걸작이라 할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마구령에서 하산하든 도래기재에서 하산하든 중앙고속도로를 타려면 부석면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부석사는 건물의 아름다움도 최고지만, 건물들이 산과 이룬 최고 경지의 조화를 보여주는 절이다. 그것은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한 몸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자연은 인간이 없을수록 좋지만, 인간은 단 한순간도 자연에 빚지지 않고 살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부석사는 최고의 생태교육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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