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걷기 좋은 길 (2) 서울 부암동 백사실 계곡

박상규 2012. 8. 7. 14:00

 

 

 

 

 


[문화] 걷기 좋은 길
(2) 서울 부암동 백사실 계곡

도심서 10분 거리… ‘짠~’하며 나타난 원시의 깊은 숲길

흰 돌 많다하여 '백석동천' , 여름엔 도룡뇽.가재 서식
북악산 쪽으로 조금 오르면, 청와대 뒷동네에 농가들이...
팔각정까지 걸어가도 'OK'


▲ 꽃샘추위가 여전히 물러나지 않고 있던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 계곡에 나들이객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김호웅기자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나오는 것이 부암동이다. 자하문 밖이라고도 불렀다.
세검정 쪽으로 내려가는 길가에 높이 2m의 구멍이 숭숭 뚫린 부침바위(붙임바위·付岩)가 있었다는데, 거기서 부암동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이 바위에 돌을 붙이면 옥동자를 얻는다는 전설로 수많은 여인들이 정성껏 돌을 붙여놓고 절을 했다고 전해진다.
1960년대 중반 자하문길을 넓히면서 돌을 치워버렸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구룡초부’란 블로그가 있다.
주인장은 머리가 희끗한 어른으로 좋은 글들을 많이 올려놓았다.

그 중에 부침바위와 관련해 새로운 설(說)이 나온다. 조선후기 진경산수 시대를 연 겸재 정선(1676∼1759)은 인왕산 아래에서 태어나 일생을 마쳤으니 당연히 인왕산을 많이 그렸다.

그런데 그의 인왕산 그림에는 항시 제일 끝 봉우리인 벽련봉(碧蓮峰·지금은 기차바위라는 뿌리 없는 이름으로 부른다) 위에 동그란 바위가 하나 그려져 있다. 벽련봉 아래 동네 부암동(付岩洞) 이름은 이 부침바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부침바위는 벽련봉 위에 있는 것이다. ‘구룡초부’주인장은 실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부침바위를 찾아 사진을 올려놓았다. 근거가 약하지 않은 만큼 종로구나 부암동 사무소 차원에서 한번 탐사를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부암동의 진짜 뿌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부암동만큼 역사와 문화가 빽빽하게 자리잡은 동네와 골목도 드물 것 같다. 그것이 자연생태와도 잘 연결돼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백사실계곡이다.

종로구에서 일목요연하게 둘러볼 수 있게 곳곳에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다. 벽련봉에서 부암동 쪽 골짜기가 무계동(武溪洞)이다. 동(洞)은 아름다운 계곡을 의미한다.

안평대군 이용의 집터인 무계정사가 이곳에 있다. 안평대군이 꿈에 무릉도원에서 노닌 광경을 안견에게 말해 그가 3일 만에 그린 것이 천하의 걸작 ‘몽유도원도’다. 어떻게 이야기만 듣고 3일 만에 그렸을까. 바로 이곳이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웠으니 그냥 그리면 됐다는 얘기다. 1970년대만 해도 이곳에는 자두밭과 능금밭이 많았다.

백사실계곡을 둘러보자면 부암동의 이곳저곳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시작은,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에서 내리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여기서 무계정사와 소설가 현진건 집터, 대한제국 시기에 법부대신을 지낸 반계 윤웅렬의 별장터 등을 우선 둘러본다. 조금 산을 오를 각오가 돼 있다면 부침바위를 찾아볼 수도 있다.

자하문 고개에서 유명한 자하손만두 집 쪽으로 가다가 두 갈래 길에서 아랫길로 들어가면 동양방아간이 나온다. 동양방아간 오른쪽으로 죽 올라가다보면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였던 산모퉁이카페가 나오고 죽 더 올라가면 꼭대기에서 백사실계곡으로 내려서 길이 나온다. 백사실계곡 주변은 요즘 찻집 등 여러 채의 집들이 새로 생겨 다소 번거로워졌다.

언제부터 백사실계곡으로 불렸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원래 이름은 백석동천(白石洞天)이다. ‘백석’이란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白石山)’에서 따온 것으로 흰 돌이 많은 백악산(북악산의 옛이름)을 거기에 비견한 것이다. 입구의 바위에 ‘白石洞天’을 새겨놓았다. 이곳의 경치 좋은 중앙에는 담장과 석축 일부가 남아 있는 건물터와 육각정자의 주춧돌과 돌계단이 남아 있는 연못터 등이 보존돼 있다. 일설에 이 건물터가 백사 이항복(李恒福·1556~1618)의 별서(別墅·별장)였다고 해서 그의 호를 따 ‘백사실(白沙室)’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이곳이 이항복과 관련이 있다는 자료는 없다. 단지 이곳에서 가까운 인왕산 자락 필운동에 있는 필운대(弼雲臺)가 이항복의 본가였기에 이곳을 그의 별서로 추정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어쨌든 부산한 서울 중심의 찻길에서 빠져나와 10여분 지났을 뿐인데, 갑자기 ‘짠∼’하며 깊은 숲길이 나타나기 때문에 백사실 계곡에 들어서면 감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도심의 숨겨진 정원’이라고 부른다.

백사실은 바로 청와대 뒷동네다. 백사실 계곡에서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로 바로 연결이 된다. 좀 길게 걷자면 북악산 팔각정까지 걸어볼 수 있다. 백사실 계곡에서 북악산 쪽으로 조금 오르면 농가들이 나온다. 바로 청와대 뒤편에 이같은 농가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난 6일 찾았을 때 아직 계곡에는 얼음이 풀리지 않았다. 아직 봄기운이 이곳까지 치고들어오진 못했다. 한여름에는 도롱뇽과 가재를 볼 수 있는 1급 청정계곡이다.

인왕산 자락의 무계동이 제대로 보존돼 있다면 북악산의 백사실과 짝을 이뤄 좋았을 듯싶다. 서울 도심에서 십분거리에 있으면서 선경(仙境)과 옛 선인들의 풍류를 맛볼 수 있는 길이 백사실 코스다.

엄주엽기자

놓치기 아까운 코스
추억의 방앗간… 어린 시절 살던 동네 온 듯

부암동에서는 묵직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을 흔히 본다. 마치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한 골목길을 촬영하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다. 뉴타운이다, 재개발이다 해서 사라지는 것이 서울의 골목이다. 이제 서울의 옛 골목을 찾기란 쉽지 않다.

부암동은 오랜된 집들의 골목, 조선시대 고택들, 카페와 화랑 등이 어우러져 있는 보기 드문 동네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가 적지 않다. 영화 ‘동감’(2000)을 촬영한 집과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에서 삼순이네 집,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 ‘찬란한 유산’(2009) 촬영지 등이 있다. 이곳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버스가 다니는 자하문길을 사이에 두고 무계정사로 가는 길과 백사실계곡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백사실 길은 다시 동양방아간 삼거리에서 능금나무길, 환기미술관길로 나뉜다.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양방아간(사진)은 지금도 운영을 한다. 떡을 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능금나무길은 백사실계곡으로 가는 골목으로 예전에는 사과나무가 많았던 모양이다. 환기미술관은 한국 근대회화의 선구자인 화가 김환기(1913~1974)를 기념해 1992년 개관한 미술관이다. 이곳의 골목들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일부러 꾸민 듯한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 같은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낀다.

세검정 쪽 흥선대원군 별장인 ‘석파정’도 놓칠 수 없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인 석파정은 개인 소유인 탓에 일반인이 출입할 수는 없다. 석파정은 원래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 사랑채만 이곳에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한 채이며 대원군이 사용한 큰 방과, 손님 접대공간인 작은 방, 난초를 그릴 때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대청방 등으로 이루어졌다. 엄주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