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걷기 좋은 길 비석길 따라 타박타박… 마음 속 번잡함도 ‘싹~’ 외곽길 한바퀴 한시간 코스, 사당.상도동쪽 후문 입장땐 사달산 능선길 순례까지 '덤 선조 조모陵 자리 '풍수 명당', 내달 14~21일 벚꽃축제 강추
1970년대 초반쯤의 어느 봄날이었던 것 같다. 벚꽃놀이 나온 어른들의 손을 잡고 현충원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국군묘지였다. 만개한 벚꽃, 한복에 양산을 받쳐 든 아주머니들의 행렬, 줄 맞춰 늘어선 비석들…, 빛바랜 영상의 조각들이 남아 있다. 서울에 창경원 외에 별다른 공원이 없던 시절에 동작동 현충원은 몇 안 되는, 녹색이 충만한 서울 시민들의 공원이었다. 지금도 봄철에는 벚꽃놀이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에 가 보니, 참 좋은 도심공원인데 지척에 두고도 찾지 못했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아직은 봄내음이 나지 않아 쓸쓸하지만 4월이면 수양벚꽃이 지천으로 필 것이다. ◆ 한반도의 명당 묘역길은 항시 걷는 이들을 차분하게 만든다. 고즈넉한 풍경이 번거로운 마음을 쉬게 하기 때문이다. 그게 동작동 현충원의 매력이다. 걷고 나면 다리는 피곤할지 몰라도, 뭔가 푹 쉰 거 같은 기분…, 그게 현충원 순례길의 매력이다. 지금 현충원 자리는 풍수적으로 명당이다. 왜 안 그랬을까. 적어도 이 땅의 애국자들이 묻힌 자리인데. 예전에 ‘국립현충원’과 ‘국립묘지’라는 명칭을 놓고 혼선이 있었다. 신문사 기자들 사이에 그랬다. 예컨대 새해 초 “신년을 맞아 아무개 대통령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라는 보도가 나가면,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며 논란이 됐다. ‘현충원’은 국립묘지를 관리하는 기관이고, 참배한 곳은 ‘국립묘지’이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을 참배했다면 웃기는 일이다. 2006년에야 이게 법률적으로 정리됐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가 ‘국립서울현충원’(이하 현충원)으로, 묘소와 관리 주체의 명칭이 통일됐다. 거기 누워 계신 분들은 웃을 일이다. 언제 이곳이 이 땅의 ‘애국자’들이 영면하는 장소가 됐을까. 이승만 정권 때인 1953년 ‘국군묘지’로 시작됐다는 게 공식 기록이다. 그렇지만 이미 조선시대부터 이 자리는 명당으로 꼽혔다. 현충원 순례길을 돌다 보면, 김대중 대통령 묘소와 이승만 대통령 묘소 사이에서 다소 생뚱한 푯말을 만난다. ‘창빈 안씨’ 묘역을 가리키는 안내판이다. 국립묘지에 웬 사묘(私墓)일까? 아니다.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의 할머니(昌嬪 安氏·1499~1549) 묘역이다. 예전 TV 사극 ‘여인천하’에도 등장한 인물이다. 이곳은 이미 450년 전에 ‘동작릉’이었다. ‘창빈 안씨’의 묘소는 조선시대에 몇 차례 이장을 거쳐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왕통을 이을 핏줄이 아니었던 선조가 이곳 묫자리로 인해 천하를 얻었다는 영험한 자리다. 풍수가들 사이엔 ‘동작동의 주혈’이란 주장도 있다. 현충원은 옛 풍수가들이 꼽았던 명당이었다. ◆ 멀고도 고적한…멋 소설가 황석영의 초기 소설 중에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이란 짧은 단편이 있다. 분단의 상흔이 현재에도 대물림되는 것을, 돌아간 부친의 이장(移葬) 과정을 통해 잔잔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지난 14일 현충원을 둘러보면서 이 소설의 분위기를 느끼는 듯했다. 현충원을 제대로 걷자면 바로 정문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우회를 하는 것이 좋다. 승용차로 가도 주차장이 널널해서 편하지만, 그래도 지하철이 좋다. 4호선 동작역 3번 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면 바로 왼쪽에 가파른 계단길이 나온다. ‘서달산’ 순례길의 초입이다. 산꾼들 사이에도 이름이 낯선 서달산은 동작동 현충원을 죽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야산이다. 초입 계단만 가파르게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휘파람을 불면서 갈 수 있는 편한 능선길이다. 이 길은 이수에서 사당을 거쳐 상도동에 이른다. 사당과 상도동에 각각 현충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후문이 나 있다. 서달산의 정상은 공작봉(孔雀峰) 혹은 공작대로 불린다. 풍수적으로 전체의 형국은,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공작장익형(孔雀張翼型),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의 명당이라고 한다. 상도동 개방문을 통해 현충원 순례길로 들어가는 게 좋다. 크게 현충원 전체를 외각으로 돌아볼 수 있다. 초입에서 여기까지 천천히 가자면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상도동 개방문으로 내려가면 ‘호국 지장사’라는 사찰이 나온다. 14일 찾았을 때는 바람에 울려대는 풍경 소리가 정겨웠다. 지장사에서 조금 내려가면 대통령 묘역 순례길로 연결된다. 박정희-김대중-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역이 이어진다. 현충원 순례길은 어디로 걸어도 좋다. 묘간(墓間) 도로를 따라 걷다가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그중에도 솔냇길과 배롱길로 이름 붙여진 길이 명품길이다.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죽 늘어선 길이다. 걷다가 묘비의 뒷면에 간략하게 적힌 망자의 약력을 보면서 어떤 분이었구나, 하고 돌아볼 수도 있다. 현충원에는 수양벚꽃이 유명하다. 가지가 수양버들 같이 양옆으로 축 늘어져 수양벚나무라고 불린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효종이 국력을 키우기 위해 활을 만들려고 많이 심었다고 전한다. 올해도 4월14일부터 8일 동안 현충원 벚꽃축제가 예정돼 있다. 현충원 외곽길은 약 3.7㎞, 묘역길은 3.4㎞ 정도다. 정문으로 나오면 바로 동작역 입구가 기다린다. 엄주엽기자 | |
놓치기 아까운 코스 그 아래 장군 묘역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김대중 대통령 묘소(사진)를 가리키는 작은 표지석이 나온다. 김 대통령 묘소는 박 대통령 묘소와 일직선으로 있지 않고 묘하게 방향을 틀어 앉아 있다.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가졌던 모진 인연을 보는 것도 같다. 영면해서도 어쨌든 지척에 같이 누워 있으니 질긴 인연이긴 하다. 글쎄, 느낌이긴 한데 살아 생전 두 분의 역정 탓인지, 박 대통령 묘소가 크고 화려하면서 다소 서늘한 분위기인 데 비해 김 대통령 묘소는 규모는 훨씬 작지만 푸근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더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1953년 바로 이곳을 국군묘지로 확정하는 데 사인을 했던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묘소가 나온다. 4·19혁명으로 하야한 뒤 1965년 하와이에서 서거해 가족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하고 이곳에 안장됐다. 그 오른편 건너에는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 등 임시정부 요인의 묘소와 독립운동을 했던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묘소가 있다. 여기에는 ‘충렬대’를 만들어 이름 없이 돌아간 애국선열들을 기리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는 그다지 좋은 인연을 갖지 못했던 분들일 것이다. 충렬대 기념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생전에 썼을 ‘민족의 얼’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 또한 애국지사 묘역과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현충원에는 17만여분의 구한말의병,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국가유공자들이 모셔져 있다. 지난해 참배객이나 관람객 등 이곳을 찾은 이들이 26만명 정도 되는데 규모에 비해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다. 언제든지 찾아도 한적하게 순례길을 즐길 수 있다. 엄주엽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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