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법

빛을 이해하면 사진이 보인다(1편 - 단순함과 강렬함의 은은한 조화, 실루엣 사진)

박상규 2013. 4. 29. 10:27

 

 

 

 

 

 
실루엣 사진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영어로 Shadowgraph라 불리는 실루엣 사진은 18세기 말, 극단적인 절약을 부르짖으며, 초상화도 검은색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프랑스의 재무상 실루엣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실루엣 사진은 인물 등의 피사체를 일부러 역광 상태에서 노출을 적게 주고 촬영하여 그 피사체의 형태만이 검게 나오게 한 사진을 말합니다. 실루엣 촬영은 일반적인 촬영과 방법에 차이가 있습니다. 역광으로 비치는 피사체를 직접 찍어야 하기에 빛이 강하게 비치는 배경에 노출을 측정하고 피사체를 촬영합니다. 역광으로 인한 노출 차이를 응용한 것입니다. 실루엣 촬영은 빛의 원리를 잘 알아야 구사할 수 있는 고급 사진 기법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보여주는 실루엣 사진은 역광은 물론, 불, 물의 반사광, 조명 등을 이용해서 찍기도 합니다.

실루엣 사진을 찍기 위한 팁이 궁금하시다고요? 그 동안 필자가 촬영했던 사진들과 함께 하나, 둘씩 보따리를 풀어놓도록 하겠습니다.


EOS-1D Mark III | EF 16-35mm f/2.8 L II USM | 23mm | 1/800sec | F8 | ISO-100
차세대 골프 황제로 손꼽히는 로리 매킬로이의 티샷 장면입니다. 골프 촬영 시 티샷은 보통 초 망원 렌즈로 클로즈업해서 골퍼의 생생한 표정을 포착하고는 합니다. 여느 날과 달리 이날은 극적인 구름을 볼 수 있었고 본능적으로 실루엣 사진을 생각한 필자는 잔디에 엎드려 노출을 구름에 맞춘 후 로우앵글로 매킬로이 선수의 티샷을 포착했습니다. 위 사진은 구도가 단순하므로 검게 나오는 실루엣 피사체는 경쾌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EOS-1Ds Mark III | EF 16-35mm f/2.8 L II USM | 19mm | 1/125sec | F11 | ISO-200
서울 N 타워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창 밖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실루엣으로 표현한 사진입니다. 실루엣이라고 반드시 역광에서만 찍는 것은 아닙니다. 창 밖과 실내의 노출 차이를 활용하여도 실루엣을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일렬로 배치된 피사체의 윤곽이 재미있는 패턴으로 표현되었습니다.
EOS-10D | EF 16-35mm f/2.8 L USM | 20mm | 1/250sec | F18 | ISO-200
삶의 현장입니다. 갯벌에서 이용하는 널배를 탄 어민들이 꼬막을 잡으러 일제히 바다로 나갑니다. 미끈거리는 갯벌에 나무 썰매가 속도를 냅니다. 땅을 차는 어민들의 발 놀림이 경쾌합니다. 갯벌에 남아 있는 물기에 햇빛이 반사되어 있습니다. 즉, 반사광을 이용한 실루엣 사진입니다. 노출은 빛이 반사된 갯벌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민들의 뒷모습이 검게 나오는 것입니다.
EOS-20D | EF 16-35mm f/2.8 L USM | 16mm | 1/200sec | F18 | ISO-200
같은 장소인데 다른 앵글로 포착한 어민의 실루엣 사진입니다. 사진 1에서 보신 바와 같이 낮은 자세의 로우앵글은 하늘을 많이 보여주면서 피사체의 실루엣을 포착할 수 장점이 있습니다. 1.6 크롭 바디를 사용해서 광각렌즈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OS-20D | EF 16-35mm f/2.8 L USM | 16mm | 1/80sec | F13 | ISO-100
캐나다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브리티시 컬럽비아주 빅토리아 항구의 해질녘 풍경입니다. 정원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 맞는 꽃바구니가 가로등에 걸려 있습니다. 이 실루엣 사진의 포인트는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피사체의 움직입니다. 하늘 위를 날아가는 갈매기가 정적인 사진에서 동적인 움직임을 더해 주었습니다. 사진은 기다림의 예술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가로등에 앉아 있던 갈매기가 날 것이라 예상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사진입니다.
EOS-1D Mark II N | EF 16-35mm f/2.8 L USM | 33mm | 1/40sec | F10 | ISO-100
제 20회 동계 올림픽이 열린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촬영한 실루엣 사진입니다. 올림픽 로고가 새겨진 배경과 행인의 노출차이가 극명하여 자연스럽게 실루엣이 표현되었습니다.
EOS-1D Mark III | EF 16-35mm f/2.8 L II USM | 16mm | 1/64sec | F16 | ISO-100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풍경입니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실루엣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여러 번의 테스트 끝에 1/64초의 셔터속도를 선택했습니다.
EOS-1D Mark II N | EF 16-35mm f/2.8 L USM | 16mm | 1/500sec | F10 | ISO-100
방글라데시 폐선처리장 노동자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표현했습니다. 배경에 보이는 배와 각종 폐자재의 디테일이 남아 있어 현장의 분위기를 함께 보여주는 실루엣 사진입니다.
EOS-1Ds Mark III | EF 16-35mm f/2.8 L II USM | 19mm | 1/640sec | F14 | ISO-100
콤바인을 운전하는 농부의 실루엣입니다. 이 역시 황금 들판의 디테일이 모두 죽지 않아서 추수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진입니다.
EOS-1D Mark III | EF 16-35mm f/2.8 L II USM | 16mm | 1/500sec | F22 | ISO-400
자동차 수출부두의 실루엣 풍경입니다. 배경이 복잡하지만 곳곳에 배치된 피사체들이(배, 사람, 자동차) 수출부두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주었습니다.
EOS-20D | EF 24-70mm f/2.8 L USM | 65mm | 1/200sec | F20 | ISO-200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이었던 캐나다 토론토의 CN타워입니다. 건물의 유리창에 반영된 모습을 이용해서 자연스러운 실루엣 사진을 포착하였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실루엣 촬영의 기본은 역광이나, 물의 반사광, 불, 조명 등을 이용해서 찍기도 합니다.
EOS-20D | EF 70-200mm f/2.8 L USM | 200mm | 1/250sec | F14 | ISO-100
오리 가족의 나들이입니다. 석양으로 반짝이는 황금 물결이 오리 가족의 실루엣을 더욱 고급스럽게 표현해 주었습니다.
EOS-1Ds Mark III | EF 16-35mm f/2.8 L II USM | 35mm | 1/500sec | F20 | ISO-100
포스코 공장이 위치한 포항 형산강 변을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공장 위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과 자전거가 어우러져 힘 있는 실루엣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EOS-20D | EF 70-200mm f/2.8 L USM | 70mm | 1/500sec | F11 | ISO-100
렌즈 노하우 5편에서 보셨던 연인의 댄스의 장면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실루엣 사진이라 이번에도 여러분들께 보여주고자 합니다. 실루엣 사진의 기본은 단순한 배경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합니다. 경쾌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피사체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복잡한 배경이지만 가장 매력적이고 힘 있는 실루엣 사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EOS-1D Mark III | EF 70-200mm f/2.8 L IS II USM | 200mm | 1/160sec | F3.5 | ISO-1600
얼마전 열린 한미 FTA 집회에서 한 시위자가 물대포를 맞는 모습을 실루엣으로 포착했습니다. 사실 시위사진 취재 시에는 현장의 상황이 급박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경찰이 쏜 물대포와 뒤에서 비치는 헤드라이트 그리고 우산, 이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강렬한 느낌의 실루엣 사진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촬영한 실루엣 사진들을 보며 상황에 따른 촬영법을 이해하셨는지요? 여러 팁을 말씀드렸지만 실루엣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을 읽는 능력입니다.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진의 어원처럼 빛은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기에 제가 설명한 다른 방법들을 더하신다면 여러분 역시 단순함과 강렬함이 은은하게 조화된 실루엣 사진을 쉽게 촬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가 조성준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했다.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현재 프리랜서 외신기자로 블룸버그 통신, 월스트리트 저널, 론리 플래닛 등 해외 매체에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sjcho.com에서 그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