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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 중에는 유별나게도 산의 형태나 모양으로 인해 붙은 이름들이 많다. 이는 풍수지리나 음양오행에 따른 숫자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음양오행설은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음과 양의 소멸과 성장으로 설명하는데, 양이 홀수이고 음은 짝수다. 그래서 양의 홀수를 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홀수는 불완전한 수지만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숫자로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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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서리가 내린다고 하여 서리산, 한자로 상산(霜山)이라고 표기하는 오봉산.
-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삼봉산, 오봉산, 칠봉산이 전국에 여럿 있는 것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물론 산봉우리의 생김새에 따른 것이기는 하겠지만, 이봉산, 사봉산, 육봉산 등의 짝수를 이루는 산이름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경남 함양군 함양읍과 전북 남원시 인월면을 가르는 오봉산(五峰山)도 보는 방향에 따라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산이다. 정상부에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다섯 암봉은 멀리서 보면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함양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이 산은 항상 서리가 내린다고 하여 서리산, 한자로 상산(霜山)이라고 표기한다. 이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봉우리가 항상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작한 지형도에는 상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오봉산은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 장군이 왜구와 벌인 황산(荒山) 전투에 앞서 장병 5천 명을 매복시켜 대파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직도 바위봉 중간에 장군대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함양의 옛 이름인 천령(天嶺)은 이 산의 지맥에 솟은 천령봉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내던 성스러운 산이다.
팔령재~성산~정상~천령봉~뇌산 코스
오봉산은 등산로와 하산로가 다양하게 연결된다. 이번 등로는 팔령재에서 시작해 성산(흥부) 마을~도경계 능선~능선 삼거리~오불사 갈림길~오봉산 정상~옥녀봉~천령봉~천령샘~뇌산 마을로 내려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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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녀봉, 천령봉 능선 너머로 백운산, 괘관산 등 함양의 산이 조망된다. / 삼봉산~법화산을 잇는 능선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성채처럼 이어간다. 그 뒤편으로 지리산도 장엄한 모습을 아슴푸레하게 드러내고 있다.
- 산행 들머리인 성산 마을 버스정류장은 경남과 전북의 도계로, 함양에서 남원으로 넘나드는 24번 국도 상의 팔령재(八良峙) 고갯마루다. 옛날부터 중요한 교통로의 역할은 물론이고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였으며, 고려 말과 임진왜란 때 왜병이 함양 사근산성(沙斤山城)을 함락시키고 전북 운봉으로 진격하는 것을 방어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런 관계로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팔령산성터(八嶺山城·도기념물 제172호)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 고개는 해발이 513m로 남쪽으로는 삼봉산의 들머리가 되고, 북쪽으로는 오봉산과 이어진다. 흥부 출생지란 표지석과 함께 흥부가족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마을로 들어선다. 장승이 먼저 반겨주고 뒤이어 흥부와 관련된 시설물들이 곳곳에 표지판과 함께 설치돼 있다. 이 마을이 남원시 인월면 성산 마을로, 일명 흥부마을이라 일컫는 곳이다.
마을 앞 소류지를 오른편에 두고 진행방향 맞은편의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산판도로를 만난다. 등산로는 벌목지를 지나 왼편 능선 자락으로 이어진다. 소나무가 짙게 들어찬 숲속으로 열리는 산길은 경사가 제법 가파른 편이다. 30여 분 된비알을 치고 나서야 겨우 첫 봉우리에 올라설 수 있다.
이제부터는 평탄한 능선길로 바뀌면서 주변 조망도 약간 더듬어볼 수 있다. 곧이어 10여 분이 지날 즈음 갈림길 이정표(오불사, 팔령 입구, 오봉산)를 만난다.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오봉산의 다섯 봉우리도 확연하게 보인다. 완만하던 산길은 곧 바위지대를 형성하고 함양군에서 설치해 놓은 폭 좁은 철계단과 로프를 이용해 내려서면 안부 갈림길(오봉산 0.73km, 오불사, 팔령 입구 2.45km)이다.
길은 다시 왼편으로 약간 우회하여 이어지다가 날등으로 올라서면 조망이 좋은 공터를 만난다. 제법 운치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여름철에는 뙤약볕 아래 그늘을 만들어주는 좋은 쉼터가 될 것 같다. 오봉산 정상은 이곳에서 한 번 더 살짝 내려섰다가 오르게 되는데, 상봉에는 함양군에서 설치한 정상표석(오봉산 871.0 m 함양군)이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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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속을 벗어나 능선길로 바뀌면서 주변 조망도 볼 수 있는 갈림길. /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다섯 암봉은 멀리서 보면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 상봉에서의 조망은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오른편으로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는 봉우리는 아찔하면서도 정겹다. 바위봉으로 연결되는 산행로도 있지만 겨울철에는 위험하다. 특히 눈썹바위, 장수바위, 숨은벽 일대는 함양의 산다운산악회가 개척한 암벽코스가 있다. 최근에는 함양쪽으로 뻗은 암릉에 대구등산학교 총동창회에서 태조리지를 개척해 관심 있는 클라이머들의 구미를 당기게도 한다.
시야를 넓히면 동쪽으로는 옥녀봉, 천령봉이 능선으로 잇닿아 있고, 왼편으로 백운산, 괘관산 등 함양의 산은 물론이고 함양읍 전경도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투구봉에서 삼봉산, 법화산을 잇는 능선이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성채처럼 이어간다. 그 뒤편으로 지리산도 장엄한 모습을 아슴푸레하게 드러낸다. 북쪽 정면 가까운 거리에는 연비산(842.8m)이 빼어난 자태를 뽐낸다. 오봉산 정상에 서면 주변의 산청과 남원에 속한 산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덕유산, 기백산, 가야산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산은 남원과 함양의 경계에 있는 산이지만 함양의 산이나 다름 없다. 정상표석을 비롯해 이정표는 물론 위험지역에 설치한 철계단이며 모든 시설물들이 함양군에서 설치하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또 산행로 역시 함양쪽으로 많이 개발돼 있는 것도 그 한 예라 하겠다.
하산은 오봉산을 뒤로하고 왼편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잠시 후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급경사 내리막이 나온다. 눈이 쌓인 겨울에는 상당히 조심해야 할 곳이다. 곧이어 이정표가 있는 가재골 갈림길 안부에 닿는다. 이제 도계를 지나 완전히 함양 지역으로 접어든다. 능선길로 직진하면 완만한 산길이 소나무숲 속으로 이어진다.
오봉산을 떠나 옥녀봉까지는 1시간 이상이 소요되지만 오르내림이 크게 심하지 않은 산등성이를 따라 걷게 된다. 솔가리가 푹신하게 깔린 부드러운 숲길은 호젓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상 암봉에서 느꼈던 걸출함과는 판이하다. 그러고 보니 이 산은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부드러운 육산이다.
30분이 지날 즈음 헬기장이 있는 750m봉을 넘어 이정표(오봉산 정상 1.2km, 하산길 1.6km)가 있는 두 번째 가재골 갈림길(삼거리)을 만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오른편의 하산길로 가면 가재골로 빠지게 된다. 옥녀봉은 표시가 없지만 나뭇가지에 리본이 많이 달려 있는 왼편 길로 들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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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봉산은 성스러운 산으로 함양의 옛 이름인 천령(天嶺)도 이 산에서 비롯되었다. / 천령봉에 이르면 함양읍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 소나무숲 길은 다시 마사토가 드러난 오르막으로 바뀐다. 한동안 이어지던 오르막이 끝날 무렵 길 왼편에 커다란 바위를 만나고 곧이어 이정표(옥녀봉 0.95km, 천령봉 3.45km, 오봉산 2.55km)가 서있다. 이정표를 지나 잠시 내려서는 듯하던 산길은 다시 한 번 올려치게 되는데, 조망이 시원한 바위에 올라선다. 지나온 오봉산의 또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지안재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또렷하게 잡힌다.
바위 사이로 빠져나와 로프를 잡고 오르면 옥녀봉이다. 상봉에는 ‘옥녀봉 793.0m 함양군’이라는 표석이 있고, 안내판의 설명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옥녀봉에서부터는 고도가 점차 낮아지고, 완만하게 내리닫던 산길은 마을 뒷산처럼 나지막한 야산으로 바뀐다.
천령봉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다소 헷갈릴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묘 3기를 차례로 지나면 간벌지대가 나타나면서 우측 산비탈에 조립식 건물도 보인다. 대규모 밤나무단지를 개간하고 있다. 곧이어 오른편에 널찍한 산판도로가 보이지만 산판도로를 따르면 안 된다. 계속 직진하면 소나무숲 속으로 편편한 길이 나타난다. 이 구간에서 산길은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므로 주의해 능선길을 잘 찾아야 한다.
묘 1기를 지나 밋밋한 둔덕길로 넘어서면 다시 산판도로가 나온다. 이 길로 얼마 못가서 만나게 되는 이정표(천령봉, 오봉산)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천령봉은 이제부터 아예 산판도로와 이정표는 무시하고 계속 능선을 따라 진입하면 10분이 채 못 돼 닿는다.
정상 넓은 터에는 정상석(천령봉 556.0m, 함양군)과 석재로 잘 다듬은 채화대가 있다. 이 채화대는 함양 군민 축제인 천령제 때 성화를 점화하는 곳.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서면 함양 읍내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하산은 이정표(천령봉, 하산길(뇌산) 1.0km, 오봉산)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뇌산 마을로 향한다. 연이어 나타나는 이정표를 지나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천령샘에 이른다. 이 샘터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임도가 나오고, 산비탈의 시멘트길로 접어들어 곧장 뇌산 마을 승강장에 닿으면서 산행은 끝난다. 마을 어귀에는 보호수와 오봉산 등산안내판이 서있다. 24번 국도까지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10분 정도.
- 산행길잡이
○팔령재~성산(흥부)~도경계 능선~능선 삼거리~오불사 갈림길~정상~옥녀봉~천령봉~천령샘~뇌산 <5시간30분 소요>
○팔령재~팔령~주능선~능선 삼거리~오불사 갈림길~정상~가재골~상죽림 <3시간30분 소요>
○상죽림 버스정류장~오봉산 등산로 안내판~임도~바위전망대~바위봉~정상~헬기장~이정표 삼거리~옥녀봉~천령봉~삼산리 삼휴 <5시간 소요>
교통
함양읍에서 산행들머리가 되는 팔령재까지는 시외버스터미널(055-963-3281)에서 삼정·백무·등구 방면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는 자주 있는 편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택시(개인택시 함양군지부 전화 055-963-3354) 이용도 가능하다.
산행이 끝나는 뇌산 마을에서 함양읍까지는 함양교통(함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전화 055-963-3745~6) 군내버스가 1일 4회(07:40, 11:10, 13:40, 17:40) 운행.
- 서울→함양 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 ARS)에서 1일 11회(08:20~24:00) 운행.
서울→함양 서초동 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1일 5회(08:40~16:10) 운행.
부산→함양 서부시외버스터미널(051-322-8301~2)에서 8~20분 간격(05:40~19:41) 운행.
대구→함양 서부시외버스터미널(053-656-2824~5)에서 1일 15회(06:33~19:40) 운행.
대전→함양 동부시외버스터미널(042-624-4451)에서 1일 8회(07:50~19:20) 운행.
숙식(지역번호는 055)
산행들머리인 팔령재에 닿기 전 가재골농원(963-9952)이 있다. 함양군이 지정한 토속음식점으로 노부부가 3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토종닭, 오골계, 청둥오리, 흑염소, 흑돼지 등의 요리를 맛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으면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숙박이 가능하다. 인근에는 동서장여관(963-3320)도 있다.
함양읍내에는 장급 여관을 비롯해 식당도 많아 숙식 해결이 용이하다. 흑돼지 삼겹살로 유명한 읍민각(963-6262), 오곡밥으로 이름난 늘봄가든(962-6996), 연(蓮)으로 만든 수제비가 일품인 하늘바람(962-8700), 쇠고기국밥이 전문인 대성식당(963-2089), 어탕밥과 어탕국수가 유명한 조센집(963-9860) 등은 함양읍내에서 알아주는 별미집이다.
/ 글 사진 황계복 부산시산악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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