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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 사이. 이 무렵이 되면 동해 쪽에선 속이 꽉 차오른 대게가 미식가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대게’ 하면 경북 영덕 아닌가. 그래, 3월엔 동해 파란 바다가 반기는 영덕 강구항으로 가보자.
그곳에서 고소하고 살살 녹는 대게 속살 맛을 보리라. 하지만 어찌 대게 맛에만 빠지겠는가.
영덕에서 강구항까지 이어지는 산행 내내 빼어난 바다 조망이 펼쳐지는 고불봉이 있거늘.
겨울과 봄 사이는 대게의 계절이다. 대게는 기온이 내려가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맛볼 수 있으나 속살이 꽉 차고 담백한 맛을 보려면 2~3월이 가장 좋다. 일단 대게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덕 대게’를 떠올린다. 물론 이웃의 포항과 울진 앞바다에서도 대게가 잡히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영덕=대게’로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 ▲ 1 영덕 강구항 경매 풍경. 이른 아침 위판장에선 매일 아침 대게 경매가 이루어진다.2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대게 낚시체험<사진=영덕군청 제공>.3 강구항의 여명. 어부들이 잡아온 대게를 크기별·품질별로 정리하고 있다.5 대게를 잡아온 어부들이 배에서 대게를 내리고 있다.6 영덕대게의 원조로 알려진 축산면 차유마을.7 구한말 ‘태백산 호랑이’로 이름 날린 신돌석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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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대게’로 명성이 높은 강구항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어귀에 있는 강구항(江口港)은 지금은 영덕 대게로 이름 높지만, 1997년 방영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외지인의 발길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항구였다. 낙동정맥 동쪽에 치우쳐 있고, 고속도로가 연결되지 않아 접근이 쉽지 않은 탓이었다.
강구항이 항구로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본이 자국민의 어업기지로 만들기 위해 축항공사를 하면서부터다. 광복 후엔 대게 통조림 가공공장이 생겨 대게의 집산지가 됐고, 현재는 강구항 주변으로 영덕 대게 전문식당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어느 바다나 마찬가지지만, 강구항 사람들의 활기 찬 기운을 느끼려면 이른 아침에 위판장을 찾을 일이다. 항구 너머로 붉은 햇덩이가 떠오를 무렵이면 밤새 거친 바다에서 조업한 배들이 하나 둘 부두로 들어선다. 만선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에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갯짓하며 환영한다. 대게잡이 어선도 매일 아침 항구로 들어온다.
대게들이 위판장 콘크리트 바닥에 허연 배를 드러내고 크기별·품질별로 도열되면 영덕 대게를 표시하는 빨간 리본을 다리에 붙잡아 맨 뒤 경매가 시작된다. 손가락으로 입찰값을 표시하는 ‘수지 호가 경매’다. 이내 상인들의 눈짓과 손짓이 바빠진다. 상인들이 손가락으로 입찰가를 정하면 경매인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상인의 번호를 불러 낙찰을 알린다.
대게를 고를 땐 다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녀석을 택해야 한다. 싱싱하지 않으면 살이 말라붙어 속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크기가 똑같다면 무겁고 다리가 긴 녀석을 고르는 게 좋다. 속이 훨씬 알차다. 그렇지만 꼭 큰 녀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작은 녀석 여러 마리라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큰 녀석은 물게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배를 눌러봐서 물렁물렁한 것은 물게이니 피하고, 단단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10만 원 정도면 한가족이 맛볼 수 있어
또한 게뚜껑 위에 검은 팥알 같은 갑낭이 많은 녀석을 고르는 게 좋다. 이는 게와 공생하는 일종의 기생충으로 게딱지로부터 풍부하게 영양분을 공급받았다는 증거인데, 대게의 영양 상태가 양호할수록 많다.
대게로 차릴 수 있는 요리는 찜·회·매운탕·튀김 등 다양하다.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살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찜이 최고다. 게다리를 떼어내 속살을 빼먹고 나중에 등딱지에 담겨있는 게 장(臟)에 밥을 비벼 먹으면 별미다.
강구항 북쪽의 축산면 경정리 차유마을은 영덕군에서 지정한 대게 원조마을이다. 마을에서 보면 북쪽에 죽도산이 바다로 툭 튀어나와 있는데, 죽도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죽도산의 대나무와 흡사해 대게, 즉 죽해(竹蟹)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이곳의 대게는 다리가 길고 토실토실하며 껍질이 얇고 살이 많으며 속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여 박달대게라 부른다.
대게는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 하여 붙여진 이름. 한문으로는 죽해(竹蟹)라 쓴다. 대게는 우리나라 동해안 전역에서 서식하며, 특히 함경북도 연안의 냉수역 지대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나 특히 많이 잡히는 곳은 구룡포에서 죽변항 앞바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세 개의 거대한 바다 속 섬이다. 후포항 앞바다 20km 해역에 있는 ‘왕돌잠’, 영일만 위쪽 칠포 앞바다 9km쯤의 ‘무화잠’, 영덕 축산항 앞바다 7km쯤의 ‘신바위’가 그곳이다. 이곳을 이른바 ‘대게 벨트’라 한다.
수심이 5~200m 정도의 대륙붕을 이루고 있는 이 바다 속 섬들은 양질의 모래가 바닥에 깔려 있고, 한류와 난류가 만나 연중 10℃ 안팎의 수온을 유지해서 대게가 대량 서식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갖췄다. 결국 동해의 대게 벨트에서 잡은 ‘진짜’ 대게라면 어디서 잡혔든 맛이 거의 비슷하다는 게 미식가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영덕 어부들은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 앞바다의 연안 해저는 개흙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해양환경이 타 지역 것보다 다리가 길고 속살이 많을 뿐 아니라 맛이 쫄깃쫄깃한 고품질의 ‘영덕 대게’를 만드는 것이라며 자랑한다.-
대게 맛이 최고로 좋은 3월에 축제 열려
2~3월의 박달대게는 11월보다 살이 더 많고, 장이나 속살, 다리 부위 어디든지 맛이 훨씬 좋다. 그래서 영덕군은 매년 4월에 지품의 복숭아꽃 잔치와 연계해 열었던 대게축제를 올해부터는 보름 정도 앞당겨 대게 속살 맛이 최고조에 이르는 3월 20일(금)부터 22일(일)까지 사흘간 강구 삼사해상공원, 강구항 일원, 대게원조마을(차유) 등지에서 연다.
‘2009 대게고을 영덕-대게천지 한마당’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영덕 대게 원조마을 축원제과 개막식을 시작으로 불꽃놀이, 열린 음악회, 대게 낚시체험, 대게 요리대회, 대게잡이배 승선체험, 대게 가마솥탕 등 관광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로 펼쳐진다. 특히 축제기간 내내 오전·오후 두 차례 열리는 ‘영덕대게 깜짝경매’ 행사는 10만 원이 넘는 박달대게를 2만∼3만 원 정도의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축제 기간이 아닐 때도 대게철 주말엔 보통 3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강구항에 찾아들어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영덕 대게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도로는 주말마다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는다. 따라서 이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이 찾아들 것으로 보이는 축제 기간엔 강구항 주변으로는 아예 차를 갖고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빼놓을 수 없는 바닷가 낭만 드라이브
영덕대게를 맛본 뒤엔 주변 해안을 둘러보자. 강구항 남쪽의 삼사리 바닷가 언덕에 있는 삼사해상공원엔 이북 5도민의 망향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 세운 망향탑과 지품면에서 채취한 천하제일 화문석 등이 있다. 또 안쪽엔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과 민족대화합을 기원하는 무게 29톤의 경북대종이 걸려 있다.
강축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드라이브 코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일출 광경이 빼어난 창포 해맞이공원, 24기의 웅장한 풍력발전기가 휙휙 돌아가는 풍력발전단지 등의 볼거리가 있다. 영덕 대게 집산지인 강구항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거리인 대진해수욕장까지는 동해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낭만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대진해수욕장이 있는 영해엔 송천이 빚어놓은 넉넉한 농토를 기반으로 한 부유한 씨족마을이 많다. 영양 남씨가 400여 년간 거주해온 집성촌으로 고택 30여 동이 보존되어 있는 영해 괴시리 전통마을이 대표적이다.
도곡리엔 ‘태백산 호랑이’로 이름 날리던 신돌석(申乭石·1878~1908년) 의병장의 생가와 유적지가 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항일의식이 남달랐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듬해 영해에서 의병 300여 명을 규합했다. 평해면에서 다시 3,000여 명의 의병을 재편하고 여러 차례 일본군과 접전해 경상도·강원도 일대와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기습전으로 많은 적을 사살해 큰 전과를 올렸다.
1907년 12월 서울 공격을 목적으로 13도의 의병이 연합하기로 하고 양주에 모였을 때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외되자 의병을 이끌고 영해로 돌아와 항전을 계속했으나, 결국 현상금을 탐낸 고종사촌인 김씨 삼형제에게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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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숙박
같은 영남권이 아니라면 당일로 영덕까지 다녀오기란 쉽지 않다. 만약 1박2일로 다녀오려면 강구항 주변의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이튿날 아침에 항구 구경하기가 수월하다. 항구와 가까운 삼사해상공원에도 동해해상호텔(054-733-2222), 삼사파크모텔(054-733-3001), 그랜드비치모텔(054-733-6030), 글로리모텔(054-733-6450) 등의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대게 원조마을인 경정리의 차유마을에 태흥모텔(054-734-6711), 문경민박(054-732-4944)이 있다.
칠보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칠보산 자연휴양림은 고래불해수욕장과 대진해수욕장을 잇는 명사20리 동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개의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고 전망대에서 동해안 일출을 볼 수 있다. 시설이용료는 숲속의 집 4만~8만 원. 야영장 2,000원, 야영데크 4,000원. 입장료 1,000원. 주차료 승용차 3,000원. 문의 054-732-1607 www.huyang.go.kr
>>별미
대게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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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강구항엔 풍물거리를 포함해 200개가 넘은 대게 전문식당이 있는데, 가격은 한 마리에 1만 원에서 18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어디든지 가장 쉬운 방법은 손님이 많은 식당을 고르는 것이다. 게는 수족관에 보관하고 며칠만 지나면 속살이 마르기 때문에 손님이 많을수록 회전이 빨라 게가 싱싱할 확률이 훨씬 높다.
강구교 앞에 자리한 대게종가(054-733-4147, 080-733-3838)는 강구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식당. 집채 만한 대게 조형물과 입구에 붙은 ‘전통문화 명인장의 집’이란 글귀에서 대게 요리로 자부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대째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소스는 이 집만의 자랑거리. 다 먹고 나면 등딱지에 참기름을 넣어 밥을 비벼준다. 대게 가격은 마리당 5만~10만 원 정도로 다양한데, 성인 한 명이 보통 5만 원 정도 예상해야 한다.
>>교통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안동→진보→지품→영덕→강구항 <4시간 30분 소요>
서울→영덕 동서울터미널에서 매일 9회(07:00~18:00) 운행. 4시간 20분 소요, 요금 2만5,200원.
부산→영덕 동부터미널에서 매일 7회(07:05~16:35) 운행. 3시간 소요, 요금 1만2,400원.
부산→강구 동부터미널에서 매일 3회(07:52~11:10) 운행. 3시간 소요, 요금 1만1,700원.
대구→강구 동부정류장에서 매일 30~40분 간격 수시(04:30~19:24) 운행. 요금 1만1,800원.
대구→영덕 동부정류장에서 매일 11회(09:00~17:20) 운행. 2시간 소요, 요금 1만2,500원.
※영덕 버스터미널 054-732-7673
※영덕 시내버스 054-732-7374-
산행 내내 동해가 바라보이는 ‘해맞이 등산로’
신세계아파트~고불봉~봉화산~강구항 코스 8km·2시간 30분 소요
영덕엔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병곡면의 칠보산(810m)은 낙동정맥이 백암산을 거쳐 남쪽으로 뻗어내리다가 정맥에서 비켜 동쪽 해안가에 빚어놓은 산으로 바다가 보이는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어 등산인들이 즐겨 찾는다. 또 여덟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 팔각산(633m)은 칠보산보다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옥계계곡과 연계해 제법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 ▲ 1우리나라 최대의 대게 집산지인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하산길.2고불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줄기 너머로 강구항이 보인다. 3운동 삼아 고불봉을 오르고 있는 주민 너머로 영덕 읍내가 펼쳐져 있다. 4고불봉 정상엔 운동기구와 벤치를 비롯해 쉬어가기 좋은 정자도 세워져 있다. 5고불봉 능선의 솔숲길을 사이좋게 걷고 있는 영덕의 중년 부부. 고불봉은 영덕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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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경방기간에도 입산이 가능한 고불봉
대게철을 맞아 벼르고 벼르던 대게 맛을 보러 영덕으로 가려는 독자들을 위해 원래는 두 산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려 했다. 그러나 현지에 문의해보니 두 산 모두 3월 15일부터 5월 15일 사이의 산불경방기간엔 산행이 어려웠다. 특히 경북 동해안은 매년 산불이 발생하는 지역이라 산림청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전혀 산행이 불가능한 칠보산에 비해 팔각산은 화기를 지참하지 않으면 입산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당일 기후 상태가 얼마나 건조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하니 잘못하면 허탕을 칠 수도 있는 일.
그래서 영덕군청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영덕 읍내에 있는 고불봉을 적극 추천했다. 산은 높지 않아도 전 구간의 80%가 파란 동해를 보면서 산행할 수 있는 곳으로, 몇 년 전 영덕군이 ‘해맞이 등산로’로 산길을 다듬어 놓아 어린이도 안전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영덕에서 산행을 시작해 동해를 보며 걷다가 대게 집산지인 강구항에서 산행을 마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물론 산불경방기간에도 항상 입산이 가능한 산이다.
지형도를 놓고 보니 영덕읍 동쪽 우곡리 뒤편에 솟아 있는 고불봉(高不峯·235m)은 낙동정맥의 명동산(812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리며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 물줄기의 북쪽 울타리 역할을 하는 ‘화림지맥(華林枝脈)’이 동해로 잦아들기 직전에 빚은 나지막한 봉우리다. 그 이름을 흔히 ‘높지 않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문헌에 따라 고불봉(高佛峯)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산의 높이가 300m에도 훨씬 못 미치니 어쩌면 산이라 부르기도 쑥스러울 수 있다. 그렇지만 바닷가 산이 대부분 그렇듯 조망이 빼어나다. 종주 코스도 2시간 30분, 아무리 길게 잡아도 3시간으로 가족과 함께 하기에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알맞은 거리다.
영덕팔경 중 ‘불봉조운(佛峰朝雲)’이란 고불봉에 동해의 붉은 해가 떠오를 무렵 새벽 구름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말한다. 영덕 주민들과 오랜 세월을 같이 정겹게 지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는 모함으로 영덕에 유배된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1587~1671년)는 고불봉을 다음과 같이 읊기도 하였다.
봉우리 이름이 높은데 높지 않다는 고불봉이라 듣는 이 모두가 괴상하다고 하지만(峯名高不人皆怪) / 늘어선 봉우리 중 가장 높고 특출하다네(峯在諸峯崔特然) / 어디에 쓰이려고 그렇게 구름 위 달 쫓아 홀로이 외롭게 솟았나(何用孤高比雲月) / 아마 좋은 시절 만나서 한 번 쓰일 때는 저 혼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것이네(用時猶得獨擎天)
아마도 고산은 고불봉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하다. 당파싸움이 없는 좋은 시절을 만나면 나라를 위해 든든한 기둥이 되리라는 다짐도 엿보인다.
빼어난 조망이 펼쳐지는 정상
고불봉 산행은 영덕여고 근처에 있는 신세계타운아파트 앞에서 시작된다. 정확한 입구는 신세계타운과 붙어 있는 A대성그린맨션 바로 앞이다. 여기서 고불봉을 올려다보면 산 아래쪽에 왕복 4차선 7번 국도가 보이는데, 산길은 국도 아래의 보행자 터널을 통과해 이어진다. 이렇게 국도 밑으로 통과한 뒤 오른쪽으로 100m 정도 가면 등산로 초입을 알리는 ‘고불봉 0.6km, 강구항 8km’ 이정표가 나온다.
초입은 제법 가파른 길로 30분쯤 발품을 팔아야 한다. 경사진 곳은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었다. 고불봉은 높지 않은 봉우리라는 뜻이지만, 올라칠 땐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렇지만 일단 정상에 올라서기만 하면 그 다음엔 그다지 땀이 날 곳이 없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산불감시탑이 우뚝 선 고불봉 정상에 도착한다. 쉬어 가라고 전망 좋은 곳에 세워놓은 정자 그리고 철봉 등의 체육시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이른 아침임에도 운동하러 올라온 주민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고불봉이 영덕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불봉은 조망이 아주 빼어나다. 우선 동쪽으로는 바다를 배경으로 풍력발전단지가 건너다 보인다. 바람이 많은 지형을 활용해 설치한 풍력발전단지에서는 영덕 군민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고 한다. 24기의 풍력발전기가 일제히 돌아가는 모습은 멀리서도 장하게 느껴진다.
남쪽을 보면, 동대산·바데산 뒤로 내연산 줄기가 길게 이어져 있다. 서쪽으론 오십천 줄기와 영덕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낙동정맥이 산물결을 이루었는데, 아직도 흰 눈이 남아 있는 주왕산과 팔각산이 눈길을 붙잡는다. 또한 북쪽은 화림지맥 너머로 북으로 뻗어간 낙동정맥 마루금이 매우 힘차다.
고불봉 정상엔 ‘강구항 7.4km, 숭덕사1.7km, 신세계아파트 1km’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제 능선길을 본격적으로 걷는다. 산길은 갈림길이 많지 않지만 이정표는 아주 잘 설치되어 있다. 임도와 갈리면서 헷갈리는 곳에선 주능선을 따르면 된다.
이 고불봉 능선 코스는 영덕군이 동해안 최고의 해맞이 산행 코스로 개발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해 2004년 12월에 완성했다. 영덕읍 우곡리 고불봉에서 강구항까지 길이 8km, 폭 1.5m의 해안 등산로를 개설한 것이다. 당시 1억5000만 원의 사업비가 들었다는데, 산행 내내 동해의 푸른 바다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도록 개설되었기 때문에 매년 새해 일출 산행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또한 등산로 곳곳에 정자를 비롯해 벤치·철봉 등 각종 체육편의시설을 갖춰 산행 중 쉬거나 간식을 먹을 때도 아주 편하다. 마치 휴양림의 산책 코스를 걷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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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항까지 전망 좋고 부드러운 산길 연속
고불봉~봉화산~강구항 구간은 동해 바다, 오십천 물줄기와 낙동정맥 산줄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걷기만 하면 된다. 이정표로는 7.4km이지만 표고 차 30~50m를 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지 않다. 산길 역시 매우 널찍하다. 해맞이 등산로일 뿐만 아니라 달밤에도 산행할 수 있도록 배려한 덕분이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거닐다보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금진도로가 나타난다. 예전엔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가야 했지만 최근 이곳에 예쁜 다리를 세워놓았기 때문에 도로로 내려서지 않고도 건널 수 있다. 고불봉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금진교를 건너면 다시 산길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아름드리 해송이 가득 들어찬 숲길이다. 바다 내음과 소나무의 피톤치드가 만나니 기분이 한없이 상쾌해진다. 금진고개에서 30분쯤 걸어 도착한 봉화산(150m). 뒤돌아보면 아까 지나온 고불봉이 먼 데 있는 것처럼 까마득하다. 펑퍼짐한 봉화산 정상엔 삼각점이 박혀 있고 체육시설과 나무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봉화산에서 강구항 가는 길도 정말 여유롭다. 산길은 여전히 널찍하다. 역시 등산로 주변엔 솔숲이 펼쳐져 있어 해풍에 섞인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서자 오른쪽으론 오십천 물줄기가 지척이고, 왼쪽으론 바다가 가깝게 보인다. 강구항이 멀지 않았다는 듯 귀항하는 어선의 엔진 소리도 큼직하게 들려온다.
봉화산을 떠난 지 10분쯤 만에 강구항이 시야에 들어온다. 강구항 건너편으론 삼사해상공원도 보이고. ‘강구등대 0.4km, 강구교회 0.4km’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에서 강구등대 방향의 왼쪽 길로 내려서니 이내 강구항을 감싸고 있는 방파제와 등대가 반갑다. 강구항을 내려다보는 풍광으로는 이곳이 참 좋다. 볕 따사로운 봄날 여기에 앉아 강구항을 내려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마지막 산길은 가파른 경사면의 손바닥만한 텃밭 사이로 이어진다. 이어 언덕길에 있는 ‘새천년 기념 마을숲’ 기념비를 지나면 대게 전문식당이 가득한 강구항에 닿는다. 항구 전체를 뒤덮은 대게찜 내음. 자, 이제 대게찜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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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영덕 읍내 동쪽에 솟은 고불봉(235m)은 그다지 높지 않은 봉우리다. 등산로도 매우 단순한 편이다. 신세계아파트~고불봉~봉화산~강구항 코스는 8.4km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 외에도 숭덕사~고불봉~강구항 코스는 7.3km로 2시간 소요, 신세계아파트~고불봉~하금호 코스는 4.7km로 1시간 30분 소요.
고불봉 산행 초입은 영덕에서 제일 높은 신세계아파트를 끼고 올라선다. 정확히 말하면 신세계아파트 옆에 있는 A대성그린맨션 앞이다.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있다. 차량 통행이 없는 마을길이므로 갓길에 주차해도 괜찮다.
만약 대게축제에 맞춰 고불봉을 찾았다면 영덕에서 강구항까지 이어진 신세계아파트~고불봉~강구항 코스를 적극 추천한다. 산길은 초입의 고불봉 오르막길만 조금 가파를 뿐 전체적으로 널찍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산행이 크게 힘들지 않다. 뿐만 아니라 내내 바다가 보이는 조망도 좋다. 물론 강구항에서 시작해 신세계아파트에서 끝나는 반대 코스로도 산행이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산행을 끝낸 후 별미를 찾아나서는 게 순서에 맞지 싶다.
※영덕군청 산림경영과 054-730-6311
>>숙식
강구항엔 용궁민박(054-733-3938), 매일민박(054-733-4322), 에덴하우스(054-564-8560) 등 민박집이 수십 채 있다. 강구항엔 대게뿐만 아니라 갖가지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는 식당도 많다.
>>교통
자가 운전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안동→진보→지품→영덕 <4시간 20분 소요>
택시 산행이 끝난 뒤엔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영덕에서 강구항까지 9,000원. 강구콜택시(054-733-5164), 영덕택시(054-734-2447), 영덕콜택시(054-734-0444), 영덕콜택시(054-733-1990).
/ 글·사진 민병준 르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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