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모든것

[명산 명품 산행로] 지리산 동부

박상규 2009. 6. 15. 16:53
[명산 명품 산행로] 지리산 동부
중산리~천왕봉~장터목~백무동 12.9㎞
'갈증이며 샘물인' 천왕봉을 향하여
투박·수수하나 황홀한 길…김종직도 이미 이 길을 탐했다

“저게 천왕봉 아이가?”


“아이다, 천왕봉이 저리 가깝나.”


“여기서 5㎞가 넘는데 보이겠나.”


중산리 두류동 탐방안내소 주차장에서 짐을 꾸리던 산꾼들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올려다보니 우락부락한 정상 바위지대가 보이는 게 천왕봉이 틀림없었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가 있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中山里)는 말 그대로 지리산 허리춤을 차지한 마을로 천왕봉이 동네 뒷산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천왕봉을 찾기도 한다. “천왕봉 맞아요!” 아는 척을 하려다 그만뒀다. 그들이 찾는 지리산 최고봉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것이 맞겠다 싶어서다.


▲ 천왕봉으로 마지막 한 발자국! 예로부터 천왕봉은 백두산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소통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지리산관리공단 중산리분소를 지나 법계교에 이르니 쏴~ 계곡소리가 시원하다. 어제는 지리산에 모처럼 비가 내렸다. 3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대피소의 식수가 부족하던 차에 찾아온 단비였다. 내심 눈이 쏟아지기를 기대했지만 따뜻한 겨울은 지리산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덕분에 지리산은 오랜만에 목을 축였고, 지리산에 목마른 산꾼들은 어둑새벽부터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지리산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갈증이며 샘물이고, 샘물이면서 갈증이다.


초보자들은 지리산 멋에 홀딱 빠질 것


지리산 전체 등산로 중에서 당일 코스로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리산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지리산 동부 지역의 중산리~천왕봉~장터목~백무동 코스를 선정했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투박하고, 천왕봉에서 장터목까지의 능선 길은 황홀하다. 또한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수수하다. 세 가지 길을 하나로 엮으니 초보자들은 지리산의 멋에 홀딱 빠지고, 경험자들이라도 제법 지리산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겠다.


법계교에서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천왕봉과 한동안 눈을 맞춘다. 천왕봉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왠지 마음이 천왕봉처럼 넓어지는 느낌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씨가 거처를 곡성에서 중산리로 옮긴 것도, 남명 조식(1501~1572년)이 덕산동에 산천재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천왕봉을 올려다본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 (왼쪽부터) 천왕봉 턱밑에 자리 잡은 법계사. 최근에 다소 요란한 중창불사가 있어 소박한 맛이 사라졌다. / 천왕샘에서 시원한 약수를 들이켜면 악명 높은 천왕봉 오르막이 두렵지 않다.

법계교를 건너니 ‘우천 허만수’ 비석이 앞을 막는다. ‘지리산 산신령’으로 유명한 허우천(1916~?)은 천왕봉을 바라보는 것으로 부족해 아예 입산해 버렸다. 그는 진주 출신으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지만 지리산에 대한 애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한국전쟁의 전운이 채 가시도 전에 절대 고립지역이었던 세석고원에 올라 움막을 짓고 20여 년을 살았다. 당시만 해도 미개척의 원시림이었던 지리산의 등산로를 정비하고, 수많은 조난자를 보살폈다. 통천문에 처음으로 나무다리를 설치한 이도 바로 허우천이었다.


그렇게 지리산과 더불어 살던 허우천은 1976년 6월, 그가 60살이 되던 해에 홀연히 사라졌다. 당시 지인들에게 “이제 지리산으로 영원히 들어가니 한 달 내 오지 않으면 내 소지품을 모두 불태우라”는 말을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그가 왜, 어디로 떠났는지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가 칠선계곡의 비경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그 언저리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중산리 계곡으로 들어서니 푸릇푸릇한 산죽이 반갑고, 참나무와 박달나무에 생기가 돈다. 나무마다 뿌리에서 빨아올린 물을 우듬지로 보내는 중이다. 간밤에 내린 비를 봄비로 알았는지, 나무와 풀들은 새싹을 밀어 올릴 준비로 분주하다. 그러한 약동이 가득한 계곡은 봄의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칼바위를 지나 철다리를 건너서니 갈림길이다. 왼쪽 계곡 길은 장터목산장, 직진하는 길은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돌계단과 나무계단이 번갈아 이어진 된비알을 인내심을 가지고 오르다 보면 둥그스름한 바위가 앞을 막는다. 망바위다. 1489년 4월 중산리로 해서 천왕봉에 올랐던 김일손도 당시 세존암(世尊巖)이라 불리던 이 바위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망바위에 올라서니 천왕봉은 잡목에 가려 희미하고, 건너편 연하봉과 촛대봉이 잘 보였다.


▲ 로터리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이어진 투박한 길에는 군데군데 전망 좋은 암반이 있어 지루하지 않다.

투박한 길이 감춰둔 보물들


망바위부터는 완만한 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슬쩍 고개를 내미는 천왕봉을 바라보다가 긴 나무계단에 올라서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도도한 천왕봉이 유감없이 펼쳐지고, 그 왼쪽 가슴에 웅크리고 앉은 법계사도 잘 보였다. 이 언덕을 내려서면 로터리 대피소다. 이곳 대피소에서 순두류와 망바위에서 올라온 길이 만나 천왕봉을 함께 오르게 된다.


1400m가 넘는 법계사는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했기 때문에 예로부터 지금의 로터리 대피소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찾는 사람이 뜸한 소박한 암자풍의 사찰이었는데, 최근에 다소 요란한 중창불사가 있어 안타깝게도 호젓함이 사라졌다. 거대한 바위 위에 다소곳이 올라앉은 2.5m의 삼층석탑만 둘러보고 곧바로 내려와 버렸다.


법계사 입구에서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한동안 돌계단과 쇠줄 난간이 이어진다. 땀을 뚝뚝 흘리며 묵묵히 비탈을 오르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 남녘의 산들이 해일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삼천포의 남해가 찰랑찰랑 넘실거린다. 이 감동적인 조망이야말로 투박한 중산리 코스가 감춰둔 보물이다.


▲ (위) 고객과 함께 지리산을 찾은 블랙야크 진주 갤러리아 타임월드점의 서은정씨(오른쪽). / (아래) 천왕봉 직전 마지막 300m의 깔딱고개는 진득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개선문 앞에서 진주의 산꾼들이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며 조망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산이 보이는지 궁금해 그 옆에 슬쩍 끼었다. “12시 방향의 뾰족한 산이 하동 금오산, 왼쪽으로 두 봉우리가 봉긋한 것이 진주 월아산, 그 너머 길쭉한 능선이 삼천포 와룡산이오.” 이두희(진주SDT클럽)씨가 가리키는 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물었다.


“혹시 진주에서 천왕봉이 잘 보이나요?”


“그럼요. 날이 좋거나 눈이 쌓였으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아입니까.”


지리산 동부 지역은 진주를 으뜸 고을로 함양, 산청, 하동 등지를 포괄한다. 이들 지역에서 천왕봉은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는 하늘을 떠받치는 천왕봉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진주에 유독 산꾼이 많은 이유 중에 천왕봉이 기막히게 보이는 것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커다란 입석 바위인 개선문(凱旋門)은 지리산 동쪽 지역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관문이다. 통천문처럼 신비스럽고 위엄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이곳으로 들어가면 마치 개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이름으로 개천문(開天門)이라 하는데, 통천문처럼 천왕봉으로 들어간다는 뜻을 살려 개천문으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


개선문을 통과하면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모이는 천왕샘이 기다리고 있다. 간밤에 비가 온 덕택에 제법 물줄기가 굵다. 한 잔 들이켜니 마치 살얼음을 깨고 먹는 것처럼 차갑다. 두 바가지를 더 마시고 이어지는 악명 높은 급경사 돌계단을 단숨에 돌파하니 대망의 천왕봉이다

 

김종직의 천왕봉 조망법


1472년 점필재 김종직은 함양 관아를 떠나 이틀 만에 천왕봉에 올랐는데, 그는 놀랍게도 “먼저 북쪽을 보고, 동쪽을 보고, 다음으로 남쪽, 그리고 서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이 옳다”고 천왕봉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법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북쪽의 덕유산·계룡산·가야산, 동북쪽 팔공산·청량산, 동쪽 비슬산·운문산, 동남쪽 와룡산·백운산, 서쪽 무등산·월출산 등 28개 봉우리를 찾아보았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간 그 옛날에, 그것도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을 때에 지리산에서 사방을 조망하고 많은 명산을 알아보았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이어진 길은 전체적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신갈나무와 산죽이 어울려 호젓하다.

김종직이 가르쳐준 대로 북쪽에서 서쪽까지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덕유산, 하동 금오산, 팔공산, 백운산, 무등산을 겨우 알아보았다. 그나마 김종직이 “동쪽의 팔공산과 서쪽의 무등산만은 여러 산 중에서 제법 활처럼 우뚝 솟아 있다”며 극찬한 두 봉우리를 찾아 다행이다. 비록 많은 산을 찾지 못했지만 장쾌한 조망을 즐기며 내 안에서 솟구치는 활달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선인들이 말하는 호연지기였다.


천왕봉에서 장쾌하게 뻗어내려간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이 길을 걷다 보면 웅장한 산세 때문인지 우리 산악의 조종(祖宗)인 백두산이 떠오른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지리산보다 두류산(頭流山)이란 말을 더 좋아했다. 두류산은 백두산이 흘러 남쪽에 서려 우뚝 솟았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우리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에 대한 인식이 들어 있으며 나아가 지리산이 백두산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소통하는 신성한 공간이란 자긍심이 담겨 있다. 김종직이 “지리산은 중국의 태산이나 숭산보다 빼어난 산”이라고 말했던 것이나, 천왕봉을 “하늘에 닿을 듯 높고 웅장하여 온 산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 마치 천자가 온 세상을 다스리는 형상”이라고 비유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 법계사 위의 너른 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는 진주의 아주머니들. 그들은 동네 뒷산처럼 천왕봉을 오르내린다.

천왕봉을 내려와 통천문을 통과하면서 제석봉 고사목의 멋진 풍경을 상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사목들이 거의 쓰러져 제석봉은 민둥산처럼 황량하고 초라해져 있었다. 4년 전만 해도 제법 고사목들이 늠름했건만…….


장터목산장에서 라면을 끓여 허기를 채우고, 하산 길에 들었다. 길은 제석봉의 옆구리를 타고 돌다가 반야봉을 바라보면서 지릉을 따른다. 산죽 밭을 지나 커다란 바위 아래 ‘백무동 4.3㎞’를 알리는 이정표 아래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앞쪽 나뭇가지 사이로 천왕봉이 보인다.


▲ 제석봉 고사목 지대를 내려오는 서은정, 정훈기씨. 제석봉은 점점 고사목이 쓰러져 황량하게 변하고 있어 안타깝다.

“감사합니다. 구경 잘했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천왕봉과 작별 인사를 나누니 불쑥 쓸쓸함이 밀려온다. 쓸쓸함은 주로 하산할 때 일어나는 묘한 감정이다. 감동적인 산행일수록 그 강도는 더욱 커진다. 매번 찾아오는 이 쓸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참샘에 이르러 약수를 벌컥벌컥 들이켜지만, 까닭 모를 갈증은 풀리지 않는다.


중산리~천왕봉~장터목~백무동 길, 왜 명품 등산로인가?
천왕봉의 상징성 간직…지리산서 연중 산행 가능한 유일한 코스


▲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길의 마지막 쉼터인 참샘.

“무엇보다 천왕봉이 가깝고, 올라가면서 진주 일대의 산들과 남해 조망이 좋습니다. 중간에 로터리 대피소가 있어 만약의 경우에 대처할 수 있고, 법계사의 역사성도 든든합니다. 천왕봉에서 주능선을 타고 내려오며 제석봉 고사목 지대를 구경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죠.”


15년 넘게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근무하는 지리산 토박이 조대현(39)씨는 여러 이유를 들어 중산리~천왕봉~백무동 코스를 지리산 최고의 당일 산행지로 꼽았다. 아울러 2006년부터 산불예방기간에도 출입이 자유로워 연중 등산이 가능한 점도 큰 매력이라고 지적했다.


“천왕봉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로 중봉이나 하봉에서 천왕봉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그곳에서 보면 천왕봉의 장엄한 모습은 그대로 감동입니다.” 2006년 7월 중산리에 갤러리를 연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씨는 천왕봉~장터목 능선을 추천했다. 이 길을 걸어 봐야 지리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진주에서 작은 문방구를 운영하는 민병윤(52·진주SDT클럽)씨는 10년 넘게 주말마다 지리산을 찾았다. 그래서 지리산이라면 구석구석 손금처럼 훤하지만 천왕봉처럼 좋은 곳이 없었다고 한다. “천왕봉에 일단 맛을 들이면 다른 곳은 좀처럼 발이 가지 않아요. 여기서 물결처럼 흘러가는 주능선을 보는 맛이란 참!”


지난해 지리산 탐방객은 약 280만 명이었다. 그 중 중산리를 통해 산행한 사람은 약 20만 명. 이것은 쌍계사, 뱀사골, 구룡계곡 등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과 성삼재 코스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수다. 성삼재분소에 따르면 탐방객 약 40만 명 중 순수한 산행 인구는 대략 30만 명. 그 가운데 대부분은 지리산을 종주하는 사람들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지리산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당일 코스는 중산리~천왕봉~백무동 혹은 중산리~천왕봉~장터목산장~중산리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산행 길잡이


순두류 자연학습원까지 셔틀버스 이용, 로터리 대피소까지 산행 쉬워져


중산리 두류동 탐방안내소를 출발해 로터리 대피소를 거쳐 천왕봉까지 약 5.4㎞, 4시간쯤 걸린다. 지리산관리사무소 중산리분소를 지나 200m쯤 오르면 법계교를 건넌다. 법계교에서 천왕봉이 잘 보이니 인사를 나누고 출발하자. 이어지는 야영장 삼거리에서 계속 포장도로를 따르면 순두류 자연학습원으로 이어진다. 등산로는 삼거리에서 ‘우천 허만수’ 비석을 왼쪽으로 돌면서 시작된다.


▲ 지리산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장터목 대피소.

중산리 계곡을 따르는 길은 큼직한 돌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아 걸을 때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호젓하고 완만하다. 40분쯤 오르면 등산로 왼쪽으로 칼을 잘라 세워놓은 것 같은 칼바위가 나타나고, 곧 철다리를 건너면서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계곡을 따르면 유암폭포를 지나 장터목으로 이어지고, 로터리 대피소는 직진해야 한다. 30분쯤 줄곧 급경사를 오르면 망바위다. 이곳에 올라 천왕봉, 촛대봉, 중산리 계곡 등의 조망을 즐기며 한숨을 돌린다. 다시 30분쯤 완만한 길을 따르면 로터리 대피소다.


로터리 대피소까지 좀 더 쉬운 길을 원한다면 탐방안내소~순두류 자연학습원 구간을 운행하는 법계사 셔틀버스를 이용하자. 자연학습원에서 로터리대피소까지 2.8㎞로 1시간 20분 가량 걸리는데 길이 전체적으로 순하다. 셔틀버스는 정해진 시간이 없고 인원이 차야 운행한다. 대략 평일 08:00~17:30, 주말 07:00~17:30에 운행한다. 법계사 055-973-1450.


▲ 중산리와 천왕봉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 로터리 대피소.

로터리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약 2㎞, 2시간 가량 걸린다. 줄곧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뒤를 돌아보면 남녘의 산들이 일대 장관을 이룬다. 개선문을 지나면 곧 천왕샘이다. 천왕샘에 물이 있으면 운이 좋다. 샘은 얼음처럼 차가워 갈증 해소에 그만이다. 천왕샘을 지나 악명 높은 돌계단을 약 300m 오르면 천왕봉 정상에 올라붙는다.


천왕봉에서 장터목까지는 1.7㎞, 1시간쯤 걸린다. 지리산 주릉이 물결 치는 황홀한 구간이다. 되도록 천천히 풍경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걷는 것이 좋겠다. 천왕봉에서 통천문을 지나 제석봉까지는 제법 가파르다. 제석봉 직전에서 잊지 말고 천왕봉을 돌아보자. 구상나무가 가득한 웅장한 풍경이 장관이다. 이제는 대부분 쓰러진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를 내려오면 장터목 대피소다.


장터목에서 백무동까지는 5.8㎞로 3시간쯤 걸린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화장실 뒤로 이어진다. 제석봉 옆구리를 따르다가 줄곧 지릉을 타고 내려온다. 신갈나무와 산죽이 뒤덮인 호젓한 숲길이다. 장터목에서 2시간쯤 내려오면 참샘, 다시 30분 더 내려오면 하동바위를 지나 백무동 야영장이다. 중산리분소 055-972-7785. 함양분소(백무동) 055-962-5354. 로터리대피소 055-973-1400. 장터목대피소 010-2833-1915.


>> 교통


서울에서 중산리로 가려면 우선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함양 원지행 버스를 탄다.


서울→원지 06:00~21:00 30분~1시간 간격 버스 운행. 심야우등 22:10, 24:00. 소요시간 3시간 10분, 요금 2만 원.


원지터미널(055-973-0547)→중산리 06:50~21:40 약 1시간 간격 버스 운행.


진주시외터미널(055-741-6039)→중산리 06:20~21:10 약 1시간 간격 운행. 원지에서 중산리까지 택시요금 3만 원 선. 진주에서 중산리까지 택시요금 5만 원 선.


부산사상터미널→중산리(진주 경유) 06:10, 08:20, 10:20, 12:15, 14:10, 16:05, 18:20, 18:55.


백무동→동서울터미널 07:20 08:50 11:30 13:30 14:50 16:00 18:00. 백무동→동대전은 18:30에 한 번 출발.


백무동→함양 08:30~17:40 약 30분 간격 운행.


동서울→백무동은 8:20, 10:30, 13:20, 15:20, 17:30, 21:00, 24:00. 문의 함양지리산고속 055-963-3745.


>> 숙박


중산리에서 가장 높은 두류동 탐방안내소 주차장 앞 용궁산장(055-973-8646)과 천왕봉의 집(055-972-1155)이 권할 만하다. 두 곳 모두 단골 산꾼이 많은 집이다. 민박 2인 3만 원. 용궁산장은 주인 아주머니가 싹싹하고 직접 담근 장으로 만든 우거지해장국(6,000원)이 일품이다. 이곳에서만 나온다고 자랑하는 당귀김치도 별미다.


탐방안내소에서 2㎞ 아래인 버스정류장에서 다리를 건너면 시설 좋은 펜션들이 있다. 통나무산장(055-291-6301)은 차를 바로 옆에 댈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의 통나무방이 8동 있다. 4~5인실 6만~8만 원. 최근에 개업한 지리산뷰캐슬(055-973-2250)은 천왕봉 조망이 좋다. 2~4명 7만~10만 원.


버스정류장 아래쪽의 지리산덕산관광휴양지(055-972-6269)는 식당, 숙소, 찜질방을 갖추었다. 휴양지 내 한식당 가야정은 한방백숙과 흑돼지수육을 잘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 주말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4~6인 가족숙박실 5만 원~12만 원.


하산 지점인 백무동은 오래된 민박집이 대개 펜션으로 바뀌었다. 느티나무산장(055-962-5345), 장터목펜션(055-963-3434), 옛고을펜션(055-963-4037)이 계곡과 가깝고 시설이 좋다. 숙소는 대개 2~4인 3만~5만 원. 그 중 장터목펜션은 주인이 택시 영업도 겸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펜션에 주차하고 택시로 성삼재로 이동, 주능선 종주를 마친 다음 다시 백무동으로 하산해 펜션에서 식사까지 한 후 차량을 회수해 가는 이들이 많아졌다. 백무동~성삼재 택시요금 4만 원.


>>명소


산천재 | 아침저녁으로 천왕봉을 바라본 남명 조식의 거처


산천재는 남명 조식이 말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처사로서 은둔한 남명이 지리산 자락을 돌다가 마침내 천왕봉이 잘 보이는 산천재에 자리 잡은 것은 환갑의 나이였다. 그는 이곳에서 72세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머물며 정인홍, 곽재우, 조종도 등 수많은 인재와 제자를 길러냈다. 남명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는데, 퇴계와 달리 실천을 더 중시했다.


▲ 남명 조식이 말년에 기거한 산천재.

남명은 아침저녁으로 천왕봉을 바라보며 그것을 닮아가고자 했고, 마침내 경상우도에서 천왕봉처럼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산천재는 시천면 덕산동의 덕천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중산리로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 들러 웅장한 천왕봉을 올려다보는 것이 좋겠다.


천왕사 성모상 | 천왕봉으로 되돌아가야 할 ‘지리산 산신’


▲ 천 년 동안 천왕봉 정상을 지켰던 성모상.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천년 동안 자리를 지켰던 성모상이 우여곡절 끝에 천왕사에 모셔졌다. 1970년대에 이 석상을 우상이라 간주한 모 종교 신자들이 두 동강을 내 천왕봉 아래로 굴러 떨어뜨렸다. 그 후로 성모상은 자신의 본래 자리인 천왕봉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높이 약 1.2m, 너비 50㎝의 앉은 자세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이 성모상은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특이한 돌로 만들어졌다. 보는 각도에 따라 얼굴은 조금씩 다르지만 투박하고 순수해 보인다. 성모상은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인 위숙왕후의 상 혹은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 또는 삼신할미상과 마고할미상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이 성모상을 ‘지리산 산신’으로 보고 있다. 천왕사는 중산리 버스정류장에서 800m 떨어져 있다.


임소혁 사진갤러리 | 지리산 사계와 구름 등 400여 점 전시


중산리에는 ‘지리산 사진작가’로 유명한 임소혁씨의 사진갤러리가 있어 오가는 이들에게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갤러리는 식당과 민박집들만 즐비해 황량하기 그지없던 중산리에 유일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 중산리의 유일한 문화공간인 임소혁 사진갤러리.

1, 2층으로 나뉜 전시관에서는 역동적이고 다양한 지리산의 구름, 섬진강의 수려한 물줄기, 야생화와 연초록 원시림, 지리산의 사계 등 약 400여 점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그 밖에 왕시루봉에 살던 시절 묵었던 숙소(A텐트) 전경을 포함해 손때 묻은 등산장비, 낡은 카메라 도구, 매킨리에서 사용했던 마운틴 스키, 온몸이 찌그러진 수통, 방향감각을 잃은 나침반까지 다양한 소품도 만날 수 있다. 갤러리 위치는 중산리 버스정류장 옆 2층 건물. 개관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1000원. 문의 055-973-5199.


/ 글 진우석 산악전문작가
  사진 허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