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모든것

오지의 산 태평산 (590.9m)

박상규 2009. 6. 16. 12:50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 강짜를 부려서 무엇 하나 / 인생 일장춘몽인데 /   산행을 하면서 살아보세.’

태평가를 흥얼거리며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의 태평산을 찾아나섰다.

여삼리에 살던 할배, 그 할배 때 백두대간 상의 두타·청옥산에 있는 마을 하 장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오는 길에

산삼 씨앗 서너 알을 얻어다 심은 것이 오늘날 장뇌삼 집단재배마을이 되었다는 것이다.

▲ 여삼리 큰마을 삿갓봉에서 본 여삼 마을과 태평산.
삿갓봉, 동무산, 수리봉, 횟골산, 절름쟁이산, 선구산, 태평산들에 둘러싸인 여삼리는 4개의 연못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넷심’, 웅덩이 같은 돌리네 속에 있어 ‘여심’이라 불러왔으나 현지명은 여삼리라 부르고 있다.

태백여성산악회 권영희 회장과 이영숙씨는 원점회귀산행 들날머리로 택한 여삼리 장뇌삼전시관 건너편 생활문화회관 앞에서 동쪽으로 뚫린 경운기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오른편에는 두충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고, 길 왼편 마을이 내려다뵈는 비탈은 도라지 밭이다. 노인회관 뒤켠 절름쟁이산(437m) 숲속에서 ‘삣 삐요쿠 삐이요, 삣삐요코 삐요’ 유리창 깨지는 목청으로 연속해 울어대는 꾀꼬리 노래를 들으며 주능선 마루턱에 이른다. 진입금지라는 푯말과 함께 경운기 길은 고개를 넘어가 버린다.

▲ ① 태평산 정상. 숲에 가려 조망이 시원치 않다. / ② 태평산에 많이 있는 백선. / ③ 여삼리에서 재배하는 장뇌삼.
여기서 고개를 넘는 포장길을 버리고 오른쪽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자 다시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가는 좁은 숲길이 보인다. 이것이 태평산을 쉽게 오르는 능선길이나, 취재팀은 능선을 넘어가는 길이 궁금하여 그대로 직진한다.

고광나무 눈부시게 꽃을 피워 짙은 향을 풍기고, 쪽동백나무는 흰 낙화를 보여준다. 양치식물들이 가는 길을 덮었다. 계곡 건너에서는 ‘쪽박 바꿔주우, 쪽박 바꿔주우’ 애걸하는 두견, 머리맡에서는 ‘붕붕, 붕붕’ 벙어리뻐꾸기가 노래한다.

산삼이 나타날 것 같은 골짜구니를 돌아 지능선으로 올라서다 일광욕을 즐기는 꽃뱀 유혈목이를 만났다. 옛날에는 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어금니에 치명적인 독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뱀을 보지도 않은 권영희 회장은 땅에 발이 붙어 꼼짝 않고 눈감고 섰다. 이 놈은 눈 밝은 이영숙씨가 발견한 것이나, 필자는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뱀은 두 번째나 세 번째 지나는 사람을 공격한다고 한다.

철쭉나무, 개옻나무, 생강나무들이 들어찬 지능선 날등의 숲을 헤치며 주능선쪽을 올려다보며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아까 지나쳤던 능선으로 갈 걸.” 들머리를 떠난 지 1시간30분을 잡아먹고서야 능선 첫 번째 봉에 닿았다. 이제부터는 능선의 희미한 길을 놓치지 않도록 신경쓰며 간다. 굴참나무 빼곡하고 굴직굴직한 금강소나무들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섰다. 이끼 머금은 바위들도 나타난다. 운향과 식물 백선은 담홍색으로 얼룩얼룩 꽃을 피워 어두컴컴한 숲에서도 눈에 잘 뛴다.

▲ ① 창밭골 중간에서 만난 임도. / ② 여삼리 마을회관 앞 장승. 동쪽 시멘트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 ③ 정원석 같은 바위 위에 청순한 자태로 피어 있는 목련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권영희 회장. / ④ 양치식물인 고비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동남으로 가던 능선이 북동으로 방향을 틀며 정원꾸미기에 안성맞춤인 괴석들이 능선 따라 도열한 자연공원이다. 풍화된 바위틈에 주먹 크기의 흰꽃이 신선처럼 옷을 걸쳤다. 백작약? 산작약? 목단인가? 비틀린 쌍소나무도 섰다. 

봉우리 4개를 넘어 5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니 신갈나무들을 베어버리고 터를 닦은 폐쇄된 헬리포트다. 가시밭 속에 측량봉이 쓰러져 있고 글씨가 보이지 않는 삼각점(삼척 426?)이 있는 태평산 정상이다(N 37°22′50.5″ E 129°09′31.4″). 정상의 조망은 눈 감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산은 동쪽 주능선으로 잠시 내려선 안부를 지나자 묘 잔등 같은 첫번째 봉에서 511m봉~안항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버리고 오른쪽 558m봉 방향의 남남동으로 뻗은 주능선으로 방향을 튼다. 약 6분여 내려가자 소사나무 들어찬 만물상 같은 작은 바위들로 이룬 봉을 지나 물 쏟아지듯 하는 급경사 능선이다. 죽죽 곧게 뻗은 아름드리 황장목을 눈요기하는 맛에 힘든 줄 모르겠다. 백선이 군데군데 꽃을 피웠는데 돌리네에 쓴 묘 주위에서 백선이 군락을 이뤄 장관이다. 여기저기 돌리네가 형성되어있어 주능선 찾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정상에서 30분 소요에 창밭골 안부에 닿았다. 안부에서 주능선을 버리고 서쪽 창밭골로 내려간다. 옛길이 있었던 곳에 이제는 사람의 왕래가 끊긴 지 오래 되어 정글이 되었다. 아예 계곡의 돌을 밟으며 내려가는 것이 더 수월하다. 약 30분 창밭골을 따르자 물이 나타나며 된통 반가운 임도가 마중한다. 이후부터는 고생스러웠던 창밭골을 놓아두고 임도 오른편 길을 걷는다.

임도는 470m봉을 끼고 돌아 여삼리로 간다. 길가에는 오동나무도 많고 주인 잃은 복사나무도 많다. 구불구불 470m봉 서쪽 끝부분 능선의 산불감시초소를 돌아 북으로 산모퉁이를 돌자 여삼 마을이 발아래 있고 지난달 소개한 삿갓봉~동무산~횟골산~절름쟁이산이 비행기를 타고 보는 듯하다. 그 뒤로는 근산(504.8m), 또 그 뒤로는 두타산, 청옥산을 지나는 백두대간이 시야를 압도한다.

서서히 고도를 낮춰가는 임도를 걸으며 정상에서 맛보지 못한 조망을 만끽한다. 임도를 따른 지 1시간여에 임도는 끝나고 여삼리 마을 포장길과 만났다. 오른쪽 도로 따라 모퉁이를 돌아 오르자 돌탑 쌓은 국시터재 말랑이다. 오른쪽 아래는 땅이 푹 꺼져버린 돌리네다. 큰 마을 입구의 솟대를 지나자 꾀꼬리의 태평가를 들으며 처음 출발했던 마을회관이다.
산행길잡이

여삼리 생활문화회관~(2시간)~태평산~(30분)~창밭골 안부~(30분)~임도~(1시간)~국시터~(15분)~생활문화회관

교통

삼척 시외버스터미널(033-572-2085)에서 여삼리행 시내버스 하루 4회 왕복 운행(07:00, 09:00, 14:00, 16:00). 40분 소요. 여삼리 큰마을에서 곧바로 돌려 삼척으로 간다(07:40, 09:40, 14:40, 16:00)

숙식(지역번호 033)

여삼리에는 여관과 식당이 없다. 장뇌삼 구입이나 숙식 문의는 노인회장 정연기 (70·017-376-4897, 033-572-4897)에게. 장뇌마을 회장 백동현(011-364-4913, 033-572-4913).

삼척시에 낙원장여관(576-0164), 대원모텔(546-0125), 팰리스호텔(575-7000) 등이 있고, 향토식당(574-8686), 해뜨는집(574-8683), 부일막국수(572-1277) 등에서 식사 해결.


/ 글·사진 김부래 태백 한마음산악회 고문·태백여성산악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