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사람냄새나는 옥계시장

박상규 2009. 7. 10. 13:47
 

▲ 옥계시장에 가면 잔치국수와 막걸리 한 잔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시장은 그리움이다. 세월을 담은 어머니 얼굴에 대한 그리움이고, 가벼운 주머니가 부끄럽지 않던 어린 날에 대한 그리움이다. 도시의 좁은 골목까지 침투한 대형 마트들 때문에 시장에 대한 아련함은 더욱 진하다.

 

 집 앞에 들어선 마트에서 아무 느낌 없이 ‘유기농’ 상표가 붙은 상추를 고르다 문득 시장이 떠올랐다. 시장 할머니와 손도 한번 잡아보고 주전부리도 하면서 오래된 향이 풍기는 아날로그의 맛을 만나고 싶어졌다.

아무리 바빠도 시장에 가서 사람 냄새를 좀 맡아야겠다 싶었다. 어느새 차는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의 오일장, 옥계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4일, 9일에는 모두 모여 옥계장터로

 현내리의 옥계시장은 끝자리 4일과 9일에 열리는 재래시장이다. 규모는 작지만 마을 사람들의 웃음과 물건들이 오가는 삶의 현장으로, 100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유서 깊은 시장이다.

 

 옥계시장에 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시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시장을 좋아하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후배는 시장에 가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선배, 강원도 옥계면에 오일장이 서는데 거기 부꾸미가 맛있어. 소소한 재미도 있고. 한번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하는 게 아닌가. 역시 텔레파시가 통하는 이는 따로 있다.

 

 의기투합한 그와 함께 옥계시장에 도착한 것은 아침 8시. 막 장이 열리고 있었다. 까만 비닐봉지와 채소를 손에 든 할머니들은 미용실 앞에 하나둘 자리를 잡고, 농기구를 파는 아저씨는 큰 천막을 치고 있었다. 이 시간 가장 바쁜 곳은 김이 솔솔 나는 찐빵 가게. 트럭 뒤에서 아저씨는 부지런히 도너츠를 튀겨내고 트럭 앞에서는 아주머니가 찐빵을 뒤집고 있었다. 동글동글 아기 엉덩이처럼 생긴 찐빵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허기진 배를 달래려 한 입 베었다가 뜨거워서 화들짝 놀랐다.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장 보러 나온 아주머니, 손자에게 줄 주전부리를 사면서 곱디고운 분홍색 지갑에서 1000원짜리를 조심스레 꺼내는 할머니, 장사는 뒷전으로 미루고 사람 만나는 재미에 빠진 할머니, 막걸리를 받아가는 할아버지까지 도시에서는 보지 못하던 소박한 풍경에 가슴이 맑아진다.

 

▲ 멋진 예술작품뿐 아니라 동해를 한 품에 안을 수 있는 예술정원 ‘하슬라 아트월드’

 

 본격적으로 시장을 둘러볼 시간. 옥계시장은 바닷가가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농산물이 더 많다. 마늘과 매실, 달래, 버섯과 파, 콩이 주류를 이룬다. 옥계시장에서 유명한 것은 마늘과 매실. 통이 굵고 단단한 것이 특징인 옥계 마늘은 옥계시장의 인기 상품이다.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그러하듯, 시장의 매력은 상품보다는 사람 구경에 있다.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쪽에서 흥정이 일어나면 옆에 있는 할머니들이 모두 훈수꾼으로 변한다. 평소 잘 먹지 않는 술이지만, 매실을 보자 매실주가 동해 매실을 한 되 사기로 했다.

 

 큼지막한 됫박에 5000원이란다. 한 되를 달라고 하니, 흥정을 구경하던 할머니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서울에서 온 아가씬데 한 됫박 더 줘. 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 하며 은근슬쩍 작고 까만 손을 집어넣어 한 주먹 더 주신다. 흥정하던 아주머니도 못 이기는 척 웃어넘긴다. 시장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재미와 따뜻함. 한없이 행복한 표정과 미소로 할머니에게 화답한다.

 

시장 한복판에서 막걸리 한 사발

 옥계 장날의 풍경 중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옥계 막걸리다. 6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옥계 막걸리는 지하 생수로 빚어낸 순수 전통 막걸리로, 사람들에게 고향의 냄새를 느끼게 하는 지역특산물이다. 옥계 막걸리의 특징은 텁텁하고 거칠다는 것. 알코올 도수도 다른 막걸리가 5도 정도인 것에 비해 8도로 센 편이다.

 

▲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강원도 옥계시장.

 

 운 좋게 만난 양조장 주인은 “막걸리는 막걸리다워야지. 우리 건 더 쓰고 떫어. 그래도 마시고 나면, 제대로 막걸리를 마셨다는 기분이 들지. 다 취향이야. 젊은 사람들은 좀더 연한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바꿀 생각은 없어”라며 막걸리 철학을 들려줬다. 백발이 성성한데도 피부가 고와 ‘관리 비결’을 물어보니 “순전히 막걸리를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답이 돌아왔다.

 

▲ 60여 년 전통의 옥계 막걸리 양조장.

 

 옥계 막걸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침 시간인데도 입안에서 막걸리가 감겼다. 옥계 장터 중심에는 새마을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길거리 포장마차가 장터를 찾는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있었다. 수수부꾸미 1000원, 잔치국수 2000원. 후배와 옥계 막걸리 한 병에 수수부꾸미와 잔치국수를 시켜놓고 ‘진정한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넘겼다. 착한 가격에 맛있는 잔치국수, 쫀득한 분홍색 수수부꾸미까지 시장의 또 다른 묘미는 부담 없이 맛보는 먹을거리에 있다.


아름다운 동해 품은 헌화로

 옥계시장에서 마음이 풋풋해졌다면, 주변에 있는 금진리 옥계해수욕장에도 가보자. 100년 이상 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끼고 있어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아직까지는 호젓하지만 휴가철이 되면 깨끗하고 넓은 백사장을 찾아온 관광객 때문에 작은 마을이 시끌벅적해진다.

 

 옥계시장에서 정동진도 멀지 않다. 정동진과 옥계시장을 연계해 돌아볼 예정이라면, 꼭 헌화로 드라이브 길을 거쳐 가는 것이 좋다. 옥계시장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길에 있는 헌화로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로, 동해안의 절경과 바다의 푸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길이다.

 

 헌화로라는 이름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수로 부인의 이야기 중 어느 노인이 수로 부인에게 꽃을 바쳤다는 헌화가에서 나왔다고 한다. 헌화로는 왼쪽에는 기암절벽이, 오른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드라이브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 옥계시장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헌화로. 

 

 옥계시장 방면 헌화로가 시작되는 금진항은 1960~70년대 풍광을 간직한 작은 항구로,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회를 즐길 수 있다. 또 금진항에서는 헌화로 앞 8~9m의 해안절벽과 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하는 선상유람선이 출발하기도 한다.

 

 금진항 부근에는 온천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금진온천이 있다. 금진온천의 물엔 항암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셀레늄과 희귀성 미네랄이 들어 있어, 입소문으로 찾아온 온천 마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여유가 있으면 하슬라 아트월드를 찾아보자. 하슬라 아트월드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만들어진 예술정원으로, 찬찬히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하슬라’는 신라시대 때 강릉의 이름으로, 멋진 예술작품뿐 아니라 바다를 한 품에 안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바다카페’를 비롯해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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