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in&Out 레저] 가을이 호수에 몸을 던졌다
11월의 충주호 추천 드라이브 코스 4
남으로 남으로 줄달음질 치다 깊고 푸른 물에 홀려 주저앉았다. 가을은 호수로 뛰어들며 걸친 옷을 남김없이 벗고 있다. 몸을 던지는 것은 가을만이 아니다.
물이 산을 품고 산이 물을 감싼 여기서 산과 물과 하늘은 하나다. 산을 넘되 이기려 않고 멀어도 부드럽게 돌아간다. 풍경 속으로 난 길은 한 굽이 돌면 숨 막히고 또 한 굽이 돌면 눈부시다. 브레이크 페달에 자주 발이 올라간다. 할리 데이비슨이 흐르고, 승용차가 달리고, 세레스도 간다. 장터 지나 완행버스가 가고, 도회사람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가고, 아내를 태운 농부의 경운기가 간다. 그러나 나는 이 길에서 저물녘 지게 지고 훠이훠이 집으로 가는 촌로의 다리보다 뭉클한 것을 만나지 못했다. 호수에 물이 차고 길이 나며 그리 됐다. 사람들은 지금 툇마루에 앉아서 팔도에서 오는 차들을 구경한다. 지나가는 이들은 눈앞의 풍경에 감탄할 뿐 땅의 옛일에 관심이 없다. 있던 것들은 사라져가고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간다. 보석 같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시라는 삼거리에 걸린 현수막이 얄궂다. 쌀 시장 개방에 낙담한 농민들은 거둬들인 볏 가마를 시청 마당에 부려놓았다. 분노는 단풍보다 붉은 스프레이 구호로 담벼락에 남았다. 길 위에서 낭만은 현실과 엇갈린다. 그런데 어쩌자고 나는 눈앞의 풍경에 자꾸 마음이 가는가. 아기자기한 바위산인 금월봉은 금강산의 축소모형 같다. KBS 촬영장을 지나면 번지점프장과 인공암벽장이 있는 만남의 광장이다. 바로 앞에 162미터나 치솟는 수경분수가 있다. 이달 15일이 지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구경하지 못한다. 어깨 기대고 늘어선 짚단 위로 겨울이 어른거린다. 36번 도로는 호수와 월악산 사이를 숨바꼭질하며 달린다. 용천 삼거리에서 3번도로로 바꿔 타면 곧 수안보다. 월악산 국립공원을 통과하는 597번 송계계곡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당신은 바보다. 지릅재에서 한수까지는 더 그렇다. 길가 과수원에서 따서 파는 사과엔 고랭지의 서늘함이 담겼다. 입구에서 받은 입장료 1600원을 30분 안에 통과하니 되돌려준다. 미륵사지와 덕주사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사람들의 발길 뜸해진 겨울이 되어서야 제 물색을 찾았다. 시린 물가에 일렁이는 억새가 하얗다. 수산(5, 10일) 덕산(4, 9일)장을 맞춰가면 더 좋다. 청풍문화재단지에는 이 지역의 역사, 수몰의 추억과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단지에서 가장 높은 망월산성 망월루에 오르면 호수 일대가 다 내려다보인다. sbs 촬영장.청풍대교.청풍나루가 바로 아래고 수상분수가 호수 너머로 보인다. 마을 길의 철 늦은 코스모스가 화사하다. 따는 이 없는 감이 한때 집터였을 뜰에 가지 휘어져라 달렸다. 샛길까지 포장돼 그 사이로 솔솔 빠져 다니는 재미가 그만이다. 밭에는 잎 따낸 담뱃대가 꼿꼿하다. 아낙들은 서리 맞은 콩을 거두고 사내들은 내다 팔 무를 뽑아 트럭에 싣고 노인들은 마당가에서는 도리깨질을 한다. 멍석에 널린 노란 콩과 빨간 고추가 짧아진 햇살 아래 빛난다. 아빠 나 남자친구 생겼어요. 그래? 언제 소개시켜 줄래. 가족 간의 못다한 이야기가 술술 나올 것 같다. 월악산의 유명세에 가려 그렇지 금수산도 그 못지않다. 제천 사람 허영호가 여기서 산을 처음 배웠다. 이에스클럽리조트(043-648-0480) 앞의 이른 아침 물안개는 살 떨리는 감동이다. 회원 아니라도 입구에서 신분을 확인하면 산책할 수 있다. 있던 나무와 바위를 최대한 살린 자연 속 정원이다. 멋진 대사를 준비해 커피숍에 앉아 보라. 사랑 고백이어도 좋고 사랑 다짐이어도 좋다. 그 한마디에 당신의 삶이 바뀔지도 모른다. 깎아지른 절벽 위 정방사 뜰에서는 소백산맥과 하늘이 맞붙는 풍경이 내다보인다. 사성암은 지리산을 보고 정방사는 월악산을 본다. 그런데 여기 함부로 올라가지 말라. 머리 깎는 일 생겨도 책임 못 진다. 솟대공원(043-653-6160)은 새로운 문화명소다. 20여 년 동안 솟대만을 고집해온 조각가 윤영호씨가 제천시의 지원을 받아 8월에 문을 열었다. 전시관 안팎에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의 작품이 300여 점 전시되어 있다.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는 희망의 안테나였던 솟대가 이곳에서 물과 산과 사람을 이어주고 있다. 뜰에 무리지어 핀 키 큰 토종 백일홍이 반갑다. 옥순대교 전망대 건너편의 옥순봉과 구담봉은 단양팔경 중 으뜸이다. 잔돌이 튀어 다닥다닥 바닥을 때리고 뽀얀 흙먼지가 폴폴 날리며 차를 따라온다. 호수를 돌고, 숲을 지나고, 계곡을 건너고, 고개를 넘는다. 구절양장은 강원도에만 있지 않다. 아르고스처럼 눈이 여럿 없는 게 유감이다. 길은 놓아 키우는 흑염소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곳곳에 낚시명소가 숨어있다. 입소문 듣고 아는 사람들은 귀신같이 찾아온다. 금성에서 충주호리조트까지 가는 1시간 반 동안 만난 차는 석 대. 길이 좋아 바닥 낮은 승용차도 걱정 없다. 포장하지 말고 그냥 놔두었으면 좋겠다. 저녁나절에는 지는 해를 품에 안고 달릴 수 있다. 오후 4시 넘어서 길에 들면 조심하자. 산골의 밤은 빠르다. 충주댐을 건너 계명산 뒤를 돌아 마지막재에 서면 충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호반 곳곳에 콘도.펜션. 리조트.모텔이 있다. 어디를 가도 하룻밤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충주댐이 생기고 월악산 아래 수산에서 손님을 맞던 두부집 할머니가 지난 7월 증발했다. 단골들은 당황했다. 가만 보니 대문에 전화번호가 붙어있었다.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은 충주 시내. 그렇게 떠나시면 어떡해요. 얼마나 궁금했는지 아세요. 어휴 배고파 얼른 밥 주세요. 눈에 익은 얼굴들 만나 반갑기는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소댕에 산초기름을 듬뿍 둘러 구워내는 차진 두부 맛은 변함없다. 묵은 김치, 삭힌 청양고추, 부추와 깻잎을 비벼낸 야채도 여전하다. 두부에 골고루 얹어 먹어유. 매콤한 고추를 손수 잘라주는 손에 정이 철철 넘친다. 두부 갖고는 모자라잖어유. 할머니가 갖은 양념을 넣어 밥을 볶는다. 자박하게 끓인 된장이나 비지장과 함께 먹으면 허리띠 구멍 두 개가 금세 늘어난다. 할머니는 떠나온 동네를 잊지 못한다. 수산집 뒤란에서 보면 별이 얼마나 밝은 줄 알아유? 느릿하고 투박한 말로 들려주는 고향얘기가 저릿하다. 살림집을 고쳐 만든 가게다. 분위기 가리고 깔끔한 것 따진다면 딴 데 가시라. 삼원초등학교 후문 옆 개울가에 있다. 산초두부 7000원, 두부전골 1만원. 043-855-5061. 석쇠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어 고기를 태우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옆의 가마에서 찜질을 한 뒤 들르면 기쁨 두 배다. 목살 1인분 7000원. 숯가마 이용료 어른 6000원. 043-653-5502.
충주.제천 글=안충기 기자< |
'여행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피는 봄에 가 볼만한 여행지 (0) | 2009.07.11 |
---|---|
강원도 영월의 명소 (0) | 2009.07.11 |
변산반도 내소사, 직소폭포, 관음봉... (0) | 2009.07.11 |
봉평의 겨울 (0) | 2009.07.11 |
겨울축제 (0) | 2009.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