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가슴으로 보는 여행 DMZ

박상규 2009. 7. 13. 17:09
 

 

 

총탄과 캐터필러 자국의 폐허 - 노동당사

TV∙신문∙잡지등 여러 매체에서 자주 봐왔던, 서태지가 비둘기를 날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했던 그 건물이 눈앞에 떡 버티고 있다. 막상 실물로 보니 화면으로 볼때보다 훨씬 나이 들고 기력이 쇠해보이는 늙은 정치인 같은 인상을 풍기는 건물이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2001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많은 고초를 겪어왔을 이 건물은 실제로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듯 위태로워 보였고, 출입을 금지한채 보강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이곳이 북한 땅이었던 1946년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철골을 쓰지 않은 콘크리트 구조로 현재 남한에 남아있는 유일한 북한 건축물이다. 당시 반공산주의 인사들을 무자비 하게 고문하고 양민을 학살하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건물 뒷편 방공호 안에서는 철사줄에 매달린 유골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정문까지 이어지는 시멘트 계단에는 전쟁당시 사용했던 미군 셔먼탱크의 폭 만큼 부스러진 흔적이 보이는데 탱크를 밀고 올라갈때 생긴 캐터필러 자국이라고 한다. 미군이 정문 앞까지 탱크를 몰고가 실제로 포탄을 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맞은편인 건물 뒷쪽에는 굉장히 큰 구멍이 나 있다. 그리고 건물의 기둥과 외벽에 남아있는 무수한 총탄 자국을 보면 교전이 치열했거나, 아니면 이 건물이 얼마나 큰 분노의 대상이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다.

 

공사중인 관계로 내부에 들어갈수는 없었지만 밖에서도 얼핏 보이는 내부 벽면에는 예의 그 '○○○ 왔다감' 따위의 한심하다못해 경멸스럽기 까지한 낙서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어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이태준 문학비

사실 나는 이곳에서 설명을 듣기 전까지 이태준이라는 문학가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저서를 찾아봤지만 역시 내가 아는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그를 일컬어 '한국문학의 금자탑', 또는 '한국단편의 완성자'라고 한다는데, 나는 왜 그를 모르고 살았을까? 그가 북으로 갔기때문에? 월북 작가에 대한 해금이 발표되기 전이었던 나의 학창시절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이 실리지 않았기 때문에?

몇년전에 민통선 대마리 마을에 북으로간 문학가를 기리는 문학비와 이 흉상이 세워졌는데 누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한쪽 어깨가 없어 비대칭이고, 어정쩡한 느낌을 준다. 이 흉상은 마을 노인회관 앞마당에 놓여 있는데 여기서 또 한가지 특이한점은 노인회관 건물의 모양이다.

 

외형으로만 보면 대충 보기에도 노동당사 건물을 쏙 빼 닯았다. 왜 하필이면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모습을 재현해 놓았을까? 역시 '잊지말자! 6∙25' 일까? 마을 회관옆의 넓은 평야위로 날아가는 기러기떼가 평화롭게 보인다.

 

 

 

 

 

 

승일교

다리 한가운데 서서 내려다보는 눈 덮힌 한탄강은 아름다웠다. 전혀 다른 모양의 다리 두개가 이 강물위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주황색 철제 아치형 다리는 한탄교이고, 낡은 시멘트 다리는 승일교이다.

승일교는 두개의 교각이 고전적인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특이한점은 이 두개의 교각을 하나는 북에서, 또하나는 남에서 세워 완성했다고한다. 사연인즉, 1948년 북한이 착공을 했는데 교각 1개가 세워졌을때 전쟁이 났고, 전쟁중에 남한이 교각 하나를 더 세웠고, 전쟁이 끝난후 시멘트를 깔아 완성한것이다. 이 다리의 이름이 승일교인것도 남북의 합작품이라는 의미로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지은것이라고 한다.

 

한탄교는 승일교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승일교를 보존하기 위해 1996년에 세워진 다리다. 현재 승일교는 차량은 지날수 없고, 걸어서 건널수는 있다. 전쟁의 산고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일까? 한탄교에 서서 승일교를 보고 있자니 강물에 비친 아치는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했다.

 

 

 

 


 

 

 

 

 

한탄강 중류지점 강 한가운데에 약 10여미터 높이로 솟은 바위(고석)가 있고 그 바위를 마주보는 비탈에 누각이 있는데 원래 신라시대에 지어졌지만 6∙25전쟁때 소실된것을 1971년에 재건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반짝반짝 빛나는 철제 난간때문인지 옛스러운 정취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조선 명종때에는 임꺽정이 이 계곡에 숨어지내며 조공물을 탈취했다고 한다. 고석정 관광단지 안에는 임꺽정 동상과 그 이름을 딴 음식점들이 있다. 여행 일행중 알게된 다른 참가자는 '고석정 계곡은 가을이야말로 절경'이라며 때를 맞춰 꼭 다시 찾아볼것을 권했다.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키로' -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

민통선 안에는 메기매운탕으로 유명한 <전선 휴게소>가 있다. 백골부대에 한번 면회를 갔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먹어본 메기매운탕에 반해 면회를 핑계삼아 또 찾아갈 만큼 맛있는 집이라고한다. 얼마전에 그 집 매운탕을 맛볼 기회가 있었지만 놓쳐버렸다. 아무튼 이 전선 휴게소에도 우리의 분단 현실 상징하는 문화유산이 있다.

 

이 다리는 철원에서 내금강까지 운행했던 금강산 전기철도의 교량이다. 1926년에 세워졌고, 전쟁중에 끊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폭 2.5m, 길이 100여미터로 걸어서 건너볼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다리끝까지 가봤더니 출입을 통제하는 철조망이 쳐져있었는데 계속 걸어가면 어디가 나올까, 혹시 언젠가는 걸어서 건너가는 여행상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다리위를 걷다가 강건너펀에서 인기척에 놀라 펄쩍 뛰어 달아나는 고라니를 봤는데 너무 날쌘 녀석이라 아쉽게도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백골부대 최전방 멸공OP

멸공OP(Observation Post - 관측소)에서 내려다보니 남쪽으로는 드넓은 철원평야가, 북쪽으로는 한탄천과 이름모를 북한땅들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관측소 유리창 위에 커다랗게 써 붙여진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에 자꾸 시선을 빼앗기며 대대장님의 브리핑을 듣고난뒤 신기한 남의 나라 구경하듯 창밖에 멀리 떨어진 북한 땅을 구경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월정리역.

현재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서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달렸던 227km의 경원선 구간중에 중간지점쯤 되는 역이다. 시골 간이역 같은 텅빈 역사를 통과하면 북쪽을 향하고 있는 끊어진 철길위로 누구나 한번쯤 보고 들었을 '철마는 달리고 싶다' 문구의 간판이 있고 뒷편에는 전쟁당시 폭격으로 부숴진 북한의 화물열차의 잔해가 발갛게 녹슨채 역시 북쪽을 향해 놓여있다.

 

 

 

 

 

 

 

 

 

 

 

가슴으로 봐야하는 여행 DMZ

아직 해도 떠있고, 어디든 더 둘러봐도 좋겠다 싶은데 급하게 일정이 마무리 됐다. 민통선의 출입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눈으로 보는 관광은 많이들 해보셨을겁니다.

DMZ는 눈이 아닌 가슴으로 봐야하는 관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