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모든것

천주산 달천계곡

박상규 2009. 7. 13. 17:26

하늘의 선녀와 땅의 신선이 몰래 입맞춤하는 곳...

▲ 울창한 동굴을 이룬 숲과 널찍한 바위 위로 티없이 흘러내리는 물이 아름다운 달천계곡
ⓒ2005 이종찬
하늘이 땅에 숨겨놓은 계곡에는 수정처럼 맑은 감로수가

그대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산을 아는가. 그대는 하늘이 사람들 몰래 땅에 숨겨놓은 아름다운 계곡을 휘감고 흐르는 수정처럼 맑은 감로수를 마셔본 적이 있는가. 아무리 큰 가뭄이 들어도 결코 마르지 않는 하늘의 감로수가 키워낸 빼곡한 숲, 땅의 다람쥐와 하늘의 꾀꼬리가 못 다한 사랑을 달래며 진종일 눈을 맞추는 그 계곡에 가본 적이 있는가.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지금, 그 계곡에 가면 그 누군가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처럼 매달린 갈색 꿀밤(도토리)이, 그 누군가가 내게 보내는 사랑의 결실처럼 투둑투둑 떨어지고 있다. 지금 그 계곡에 가면 진종일 세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발을 담근 밤나무가 푸른 가을하늘이 떨구는 사리 같은 알밤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금세 툭툭 터져버릴 것 같은 그 알밤송이 아래에는 고인돌 같은 널찍한 바위들이 거울처럼 맑게 흐르는 계곡물에 알몸을 씻고 있다. 그 알몸을 흘깃흘깃 훔쳐보는 벚나무와 떡갈나무가 부끄러운 듯 단풍을 물들이고 있는 그 계곡에는 군데 군데 고인 초록빛 소(沼)들이 푸른 하늘을 담은 채 선녀를 부르고 있다.

그래. 어쩌면 계곡 곳곳에 잔잔하게 고인 초록빛 소(沼)들은 하늘산을 지키는 땅의 신선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소에 비친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은 땅의 신선을 잊지 못해 몸부림이 난 하늘의 선녀들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저 소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하늘의 선녀들과 땅의 신선들이 몰래 입맞춤하는 것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달천계곡 가는 길에는 군데군데 단풍이 든 나무가 제법 있다
ⓒ2005 이종찬

▲ 달천계곡으로 올라가는 길목 곳곳에 피어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의 물봉선
ⓒ2005 이종찬
천주산 꼭대기에 암장을 하면 가뭄이 든다

16일(금) 오후 4시에 찾은 천주산 달천계곡(경남 창원시 북면 외감리). 그날 달천계곡은 여름과 가을을 사이좋게 물고 있었다. 달천계곡 들머리,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진 오솔길에는 지키미처럼 우뚝 선 느티나무와 벚나무들이 연지곤지를 찍고 있었고, 그 느티나무 옆에 빼곡하게 선 붉은 소나무들은 진초록빛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하늘의 기둥이라는 뜻을 지닌 천주산(天柱山, 638.8m). 천주산은 남해고속도로 동마산 나들목 왼쪽에 우뚝 솟아나 있는 창원의 진산이다. 이 산은 함안의 작대산(648m, 태초에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이 산만큼은 작대기 길이 만큼 물에 잠기지 않았다 해서 이름 지어진 산)과 봉우리를 가운데 두고 북쪽 능선과 연결되어 있다.

천주산의 주요 능선은 남북으로 우뚝우뚝 솟아나 마금산 온천(뷱면 온천)까지 이어져 있으며, 동쪽 능선에 아름다운 달천계곡을 숨기고 있고, 그 꼬리는 마산 쪽으로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이 산은 언뜻 바라보면 산세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담하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등산을 해보면 겉보기와는 훨씬 다르다. 울창한 삼림 곳곳에 기기묘묘한 바위와 깊은 계곡을 숨겨놓고 있다는 말이다.

천주산에는 예로부터 신기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누군가 이 산 꼭대기에 몰래 무덤을 쓰게 되면 지독한 가뭄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산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까닭없이 가뭄이 계속 이어지면 이 산 꼭대기에 올라 누군가 암장을 한 무덤이 있는지를 샅샅이 뒤졌다고 한다. 하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성스러운 기둥산에 무덤을 썼으니 천벌이 내릴 수밖에.

▲ 달천계곡을 감싸고 있는 밤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알밤송이
ⓒ2005 이종찬

▲ 선녀와 신선이 몰래 사랑을 나누는 계곡
ⓒ2005 이종찬
계곡 곳곳에 막아놓은 시멘트둑 꼴 사나워

한 발짝 걸을 때마다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꿀밤(도토리)을 주으며 달천계곡으로 올라가는 길. 세찬 물소리가 들리는 달천 계곡 주변에는 알밤을 주렁주렁 매단 밤나무와 마악 단풍빛을 머금고 있는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등이 계곡을 꼬옥 숨겨놓고 있다. 마치 자신들의 비밀스런 알몸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울창한 숲이 내뿜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끝없이 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계곡을 한 마리 은어처럼 거슬러 오른다. 계곡 중간쯤에 이르자 곳곳에 달천계곡으로 내려가는 비좁은 비탈길이 뚫려 있다. 그 비탈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서자 고인돌처럼 반듯한 바위들이 촘촘촘 들어차 수정처럼 맑은 물을 매끄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울창한 숲이 동굴을 이룬 계곡 저만치에는 초록빛 물을 담은 소(沼)가 짙푸른 하늘을 끄집어 당긴다. 금세 '나뭇꾼과 선녀'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그 아름다운 소에 천천히 다가가 나그네의 얼굴을 은근슬쩍 비춰본다. 거기 낯선 얼굴이 하나 담겨 있다. 세상살이에 찌들어 잔주름이 잔뜩 그어진 핼쓱하고도 가여운 얼굴. 저게 누군가. 저 얼굴이 정말 나그네의 얼굴이란 말인가.

그때 그 낯 선 얼굴 하나를 담은 소가 잔주름을 일으킨다. 소도 오욕칠정에 찌든 그 얼굴을 보기 싫다는 투다. 아니, 선녀와 신선이 몰래 입맞춤을 나누는 이 신성한 곳에 속세의 먼지가 덕지덕지 낀 나그네의 얼굴을 감히 비추지 말라는 투다. 더구나 소가 일으키는 잔주름에 이리저리 마구 구겨지는 그 얼굴은 더욱 슬프고 초라하게 보인다.

▲ 달천계곡 곳곳에 피어난 갈대꽃
ⓒ2005 이종찬

▲ 이 아름다운 계곡에도 어김없이 시멘트둑이 놓여 있다
ⓒ2005 이종찬
근데, 저것들은 또 무엇인가. 소에 비친 초라한 나그네의 얼굴보다 더욱 흉측스럽고 꼴 사납게 보이는 저것들. 누가 감히 이 아름답고 신성한 계곡 곳곳에 시멘트둑을 둘러쳤을까. 갑자기 화가 치민다. 커다란 쇠망치만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저 시멘트둑을 모조리 깨어버리고 싶다. 하여튼 사람의 손만 닿았다 하면 대자연이 남아나는 것이 없다.

안타깝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을 순식간에 망쳐놓다니. 하긴, 삼라만상 중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 했던가. 수천 수만 년을 끝없이 이어온 대자연의 질서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사람. 그렇게 대자연의 질서가 무너지니,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곳에서도 비만 오면 산사태가 나고, 장마가 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숨을 포옥 내쉬며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설마, 좀 더 깊은 계곡에 가면 시멘트둑이 없겠지'혼잣말을 지껄이며 깊은 계곡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다리 하나가 나온다. 근데 그 다리도 나무로 만든 다리가 아니라 시멘트 다리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그 깊은 계곡에도 시멘트 다리가 아름다운 계곡을 짓이겨놓고 있을 줄이야.

바위 틈새로 미끄러지는 물과 동굴을 이룬 빼곡한 숲

시멘트 다리를 뒤로 하고, 고인돌처럼 널찍한 바위 틈새로 미끄러지는 맑은 물을 바라보며 좀 더 깊은 계곡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심마니가 깊은 산 속에서 산삼을 찾듯이 나도 이 깊은 계곡에서 사람의 손때가 아예 닿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헤맨다. 아니, 시멘트 둑이 없는 그런 계곡, 그저 대자연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찾아 헤맨다.

▲ 널찍한 바위 틈새로 끝없이 흘러내리는 맑은 물
ⓒ2005 이종찬

▲ 이 맑은 물이 바로 감로수가 아닌가
ⓒ2005 이종찬
동굴을 이룬 빼곡한 숲이 덮여있는 계곡은 끝없이 산마루로 이어진다. 이제 산새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괴물처럼 아름다운 계곡을 깡그리 짓이겨놓은 시멘트둑도 보이지 않는다. 귀에 들리는 건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뿐이고, 눈에 보이는 건 계곡으로 가지를 한껏 늘어뜨린 활엽수들과 그 활엽수들이 일찍 떨군 수북한 낙엽뿐이다.

널찍한 바위 틈새를 미끄러지며 끝없이 구슬 같은 물방울을 톡톡 튕기는 맑은 물. 울창한 숲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따가운 가을햇살과 눈이 부시도록 푸른 가을하늘. 초록빛 소에 조각배처럼 떠도는 낙엽들. 그 낙엽배 아래 바닥이 환히 비치는 초록빛 물 속에서 은빛 비늘을 반짝이는 작은 물고기들. 곱고 아름답다. 사람의 손때만 묻지 않으면 이렇게도 곱고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그래. 감로와 하느님이 따로 있던가. 바위 위로 날쌔게 미끄러지는 저 맑은 물이 곧 감로가 아닌가. 울창한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짙푸른 하늘이 곧 하느님이 아니겠는가. 그래. 선녀와 신선은 어디 따로 있다던가. 저 소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저 물고기가 선녀가 아닌가.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경에 들어앉아 은빛 물고기를 바라보는 나그네가 곧 신선이 아니겠는가.

행여, 나그네처럼 달천계곡에 갔다가 선녀와 신선이 몰래 입맞춤하는 모습을 실루엣으로나마 보았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마금산온천(8Km)에도 한번 가보자. 가서 뜨거운 온천물에 온몸을 담근 채 속세의 때를 하나 둘 씻어내고, 입에 넣으면 사각사각 녹아내리는 달콤한 창원 단감(농협 298-8285)과 고소한 맛이 그만인 손두부를 안주 삼아 북면 막걸리를 마셔보자. 돌아오는 길에 철새의 낙원인 주남저수지(11Km)를 둘러보는 것도 여행의 지혜.

▲ 달천계곡에 가면 선녀와 신선을 만날 수 있다?
ⓒ2005 이종찬
한가지 더. 달천계곡 들머리에는130대(요금 없음)쯤 주차할 수 있는 널찍한 마당이 마련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또 달천계곡을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천주산 꼭대기에 올라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나지막하게 읊조려보자. 처음 만나 가슴 깊숙이 새겨진 그 아름다운 사랑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白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진주-남해고속도로-동마산 나들목-창원역-태광주유소 앞 좌회전)-현대약국 앞 사거리 좌회전-마금산 온천 가는 길-외감마을-달천계곡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이나 창원역 앞에서 21-1,2,3번, 90, 90-2번이나 390번 좌석버스를 타고 외감마을 들머리에 내려 황금들판과 단감 과수원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도(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