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봉
광산의 갱도 막바지를 뜻하는 막장을 닮은 계곡의 끝에 서 있다하여 이름 붙은 막장봉은 기암괴봉과 낙랑장송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 산이다. 달팽이 바위, 이빨바위, 삼형제바위 등 이름도 독특한 기암과 비탈 곳곳을 장식한
소나무가 만들어 내는 한 폭의 수묵화는 탄성을 절로 나게 한다. 이 산은 서쪽의 장성봉과 한 줄기로 이어져 있으
며 북으로는 칠보산을, 남으로는 대야산을 마주보고 있다.
괴산 막장봉 등산지도
진안 마이산
마이산은 1979. 10. 16.전라북도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면적은 17.221km2로 큰편은 아니다. 구역으로는 진안읍 5개리, 마령면 4개리에
걸처 있으며 많은 문화재와 볼거리를 기지고 있다.
마이산은 산 자체가 국가지정 명승 제 12호로 지정되었고,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 m의 암 마이봉과 667 m의 숫 마이봉의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있으
마이산은 산 자체가 국가지정 명승 제 12호로 지정되었고,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 m의 암 마이봉과 667 m의 숫 마이봉의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있으
며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말귀를 닯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며 대홍수시 모래 자갈등이 밀려 호수를 메우고 물의 압력 의하여 이루어진 수성암이며 약 6 ~ 7천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며 대홍수시 모래 자갈등이 밀려 호수를 메우고 물의 압력 의하여 이루어진 수성암이며 약 6 ~ 7천
만전 지각 변동에 의하여 융기되어 마이산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되고 있으며 자연이 많든 최대의 걸작품이다.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 m의 암 마이봉과 667 m의 숫 마이봉의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 m의 암 마이봉과 667 m의 숫 마이봉의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
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또한,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리우는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또한,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리우는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이르기를 "우리가 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납시다"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는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것을 듣고 등천이 틀린것을 안 남신이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것을 듣고 등천이 틀린것을 안 남신이
화가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 이꼴이 되었구나"하고 여신으로 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 버리고는 그자리에선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다
한다.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기는 하지만 마이산을 진안쪽 북에보면 아닌게 아니라, 동편 아빠봉에 새끼봉이 둘 붙어 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기는 하지만 마이산을 진안쪽 북에보면 아닌게 아니라, 동편 아빠봉에 새끼봉이 둘 붙어 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
러워서인지 수치심에서인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라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마이산 등산지도
마대산
마대산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비경지대를 간직한 산으로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과 충북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대산 서쪽 아래로는 고씨동굴 앞을 흐르는 남한강의 수려한 풍광과 북으로 흐르는 옥동천이 남한강으로 합수되어 보기드문
비경을 연출한다.
영월 마대산 등산지도
마니산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에는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마니산 등 400m 이상의 4개산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솟아 있는데
그 중 제일 높은 산이 마니산이다. 〈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태종실록〉 등 조선 초기에 발간된 문헌에는 머리산, 우두머리산이란
뜻의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嶽)으로 쓰여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마리산이라는 이름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오랫 동안 마니산
이라 불러왔는데 새삼 마리산이라고 하여 혼동을 줄 필요는 없을 것같다.
마니산은 비교적 낮고 수도권에 가까운 거리에 있어 친정을 찾는 기분으로 편하게 찾을 수 있다. 해발이 낮더라도 주능선이 암릉으로 되어
마니산은 비교적 낮고 수도권에 가까운 거리에 있어 친정을 찾는 기분으로 편하게 찾을 수 있다. 해발이 낮더라도 주능선이 암릉으로 되어
있으니 등산의 묘미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산이다. 동남으로 가느다랗게 뻗은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망망한 서해를 조망할 수 있다.
조국순례 안내판이 있는 '개미허리'에서 98개의 계단길을 올라가면 사적 제 136호인 '참성단'(塹星壇)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매년
개천절과 전국체전때마다 성화가 채화된다. 참성단은 단군 왕검 재위 51년(BC2283년)에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이 마리산에 쌓은
제단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고구려.신라.백제의 여러 왕들이 이 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고려 공민왕 때와 조선 인조.숙종 때
각각 보수되어 현재 이른다. 이 단은 화강석을 쌓아올려 만든 것으로, 밑부분은 둥글고 윗부분은 사각형이며, 높이가 총6m에 달한다.
참성단 위에 오르면, 동쪽으로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남쪽 아래로는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넓은 바다가 발아래로 펼쳐지고,
동남쪽 멀리 인천시가지가 아득히 보인다. 정상 서쪽 산기슭에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년)에 창건했다는 정수사와 함허대사(涵虛大師)가
수도하였다는 함허동천이 자리잡고 있다. 함허동천에는 1백여m의 암반위로 물이 흐르고, 암반에는 함허대사가 새겼다는 '涵虛洞天'(함허동천)
이란 글자가 음각 되어 있다. 외침을 자주 받았던 고려가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 보려고 강화도에서 크게 불사를 펼쳤던 까닭인지 강화도에는
내력 있는 절이 많다.
전등사,정수사외에 적석사,백련사,청련사등이 있으며, 어부가 건져 올렸다는 나한천진석상을 모신 석모도의 보문사와 목은 이색 화개사, 선원사도
전등사,정수사외에 적석사,백련사,청련사등이 있으며, 어부가 건져 올렸다는 나한천진석상을 모신 석모도의 보문사와 목은 이색 화개사, 선원사도
그 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을 오르내리는 중에 강화도의 갖가지 보물을 구경할 수 있어
강화 마니산/정족산 등산지도
미시령~신선봉~마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