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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박상규 2009. 9. 7. 22:34
 

 

거제는 크게 북쪽은 유적지, 남쪽은 비경을 품은 관광지로 나눌 수 있다. 유적지는 14번 국도를 따라 북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돌아보면 된다. 통영과 거제도 사이의 좁은 해역인 견내량(見乃梁) 길목을 건너 20여 분을 달리면 고현에 자리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한국전쟁 중 유엔군에 포로가 됐던 공산군을 수용했던 곳이다. 당시 거제도 인구는 10만 명. 하지만 전쟁 포로는 무려 17만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 옛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던 포로수용소는 2002년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 등 자료와 기록물을 바탕으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거듭났다.

면면히 흐르는 역사 앞에 여미는 옷깃

포로수용소를 오가다 보면 시청 옆에 있는 고현성(古縣城)을 보게 된다. 거제에 남아있는 수많은 성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웅장하다. 조선 세종 30(1448) 때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기록에 의하면 경상도민 2만여 명이 동원되어 9년여에 걸쳐 둘레 2000m, 높이 7m로 쌓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원형에 가까울 만큼 남아 있었으나, 유엔군이 관할하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서면서 성벽을 뜯어다 수용소 경비막사를 짓는 데 사용했다. 현재는 서남쪽 부분 600m 정도만 옛 모습을 간직한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안 중심부에 거제시청이 자리하고 있다. 고현성에서 14번 국도를 타고 가다 북쪽으로 향하면 칠천도라는 새끼섬과 맞닥뜨린다. 이곳이 바로 임진왜란 당시 원균의 조선 함대가 대패한 칠천량(漆川梁) 해전의 현장이다. 선조 30(1597) 원균은 함대 170여 척을 이끌고 왜군의 함대 600여 척과 10일간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싸움에서 조선 수군은 거북선·판옥선 등 150여 척이 격침되고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칠천도를 빠져나와 1018번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옥포만에 닿는다. 칠천도 앞바다가 조선 수군 최대의 패전지라면 이곳은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첫 승리를 얻은 옥포대첩의 현장이다. 파도가 높지 않고 조수 간만의 차가 적은데다 1113m의 수심으로 조선소 부지로는 최적의 입적 조건을 갖춘 이곳에 지금 대우조선소가 들어서 있다.

 

 

 

 

 

하늘과 바람과 바다가 키운 섬

옥포에서 동쪽 맞은편은 장승포이다.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20여 분쯤 가면 지심도에 닿는다. 지심도는 원시림에 가까운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하다. 동백꽃이 피었다가 떨어질 때면 숲길에 빨간 주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한여름에도 하늘 높이 솟아오른 아름드리 해송과 빼곡한 상록수림 그늘로 숲길은 시원하다. 지심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해군기지였다. 일본 해군은 이 섬에 막사, 병원, 배급소, 포대(砲臺), 포진지, 탄약 창고 등 다양한 군 시설을 만들었고 그 흔적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포대는 4개 모두 대마도 쪽의 바다를 향해 구축되어 있으며 남쪽(해금강), 북쪽(부산·진해), 동쪽(대마도) 등이 적혀 있는 방향 지시석이 있다. 광복이 되면서 주민들이 다시 이주, 현재 14가구 중 12세대 20여 명이 밭농사와 과수원, 민박으로 생활하고 있다. 지심도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특유의 어로방법이 있다. 대나무 끝에 매단 큼직한 그물로 뜰채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뜰채낚시인데, 주민들은 이 재래식 낚시장비를 ‘반대(반두)’라고 부른다. 뜰채낚시를 바다에 던져놓고 새우나 홍합 부스러기 등의 밑밥을 던져 놓으면 이를 먹기 위해 물고기가 몰려든다. 이때 그물을 들어 올리면 된다. 잡히는 어종은 놀래미, 우럭, 볼락, 자리돔 등 다양하다.

 

 

비경을 품고 수만 년을 버틴 해금강

장승포에서 명사해수욕장이 있는 남부면 대포까지의 길은 해안선을 끼고 돈다. 해안도로는 파도의 리듬을 타고, 바다를 향해 나갔다가 파도에 밀리듯 산을 타고 든다. 학동에서 해금강 입구까지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힌 곳으로 길 양 옆에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굵고 힘차게 서 있다. 2월 말부터 3월 초에 길을 지나면 붉은 동백숲과 도로변에 피어난 갖가지 야생화로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이 동백숲에는 ‘세계 4대 미조(美鳥)’인 천연기념물 제204호 팔색조가 산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 해금강은 거제에서 가장 높은 노자산(565m)이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갈곶해안의 끝이다. 산줄기가 삐죽 튀어나와 달리다가 바다를 앞에 두고 직각으로 꺾였다. 두 개의 큰 바위섬이 서로 맞닿고 있어 금강산의 해금강을 연상케 해서 붙인 이름이다. 마치 칡뿌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원래 이름은 ‘갈도(칡섬)’였다. 중국 진시황제의 불로초를 구하려는 서불이 동남동녀 3000명과 함께 찾았다는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씨가 새겨질 정도로 약초가 많다 하여 약초섬이라고도 불렀다. 갈곶에서 유람선을 타면 해금강 비경이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사자바위, 해와 달이 뜨는 일월봉, 그리고 돛대바위, 미륵바위, 신랑각시바위, 거북바위 등 천태만상의 바위들이 바다 위에 흩뿌려져 있다. 바위 꼭대기에는 흙 한줌 없이 오랜 세월을 버틴 천년송이 고결하게 서 있다. 파도가 절벽에 부딪힐 무렵 유람선이 십자동굴에 들어선다. 짙푸른 바다 위로 햇살이 떨어진다.

 

 

파도와 몽돌소리의 이중주

계속 차를 몰면 여차해변까지 간다. 거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는 여차에서 홍포로 이어지는 길이다. 대부분 왕복 2차선의 아스팔트 도로이고, 중간쯤의 34㎞ 구간만 비좁은 시멘트길과 울퉁불퉁한 흙길이 뒤섞여 있다. 그 길에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쪽빛 바다에 징검다리처럼 둥실둥실 떠 있는 섬들이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온다. 대병대도, 소병대, 가왕도, 다포도, 매물도가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망을 보던 망산에 오르면 긴 몽돌해변과 아담한 포구를 품은 여차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로 열린 남쪽 말고는 모두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 양쪽으로 길게 뻗은 산자락은 두 팔을 크게 벌려 바다를 껴안는 형상이고, 그 아늑한 품에 깃들인 바다는 비취빛을 띤 채 잔잔히 일렁인다. 여차마을에도 어김없이 몽돌해변이 있다. 학동몽돌해변보다 유명세도 덜하고 규모도 작아 크게 붐비지 않는다. 송림을 병풍삼아 지치도록 푸른 물결이 하얀 포말로 부서진다. 수백만 년 파도에 부딪혀 귀퉁이가 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 위로 파도가 다가왔다가 밀려간다. ‘자그락 자그라락’ 파도가 몽돌 사이를 빠져나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어떤 악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음률이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한 장면을 여기서 찍었다.

 

 

바다 위의 정원, 작은 섬 외도

해금강을 봤다면 외도를 놓칠 수 없다. 장승포항, 구조라항 등 6군데에서 유람선으로 15분이면 닿는다. 외도는 섬 전체가 진귀한 식물과 조형물로 잘 꾸며진 바다 위의 정원이다. 선착장에 내리면 빨간 기와를 얹은 이국적인 정문이 먼저 맞이한다. 아름드리 동백나무와 하늘을 뒤덮은 후박나무, 그리고 섬을 온통 울긋불긋 수놓은 많은 남국의 식물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외도에서 유일한 평지라고 할 수 있는 비너스 가든에는 12개의 비너스 조각이 전시돼 있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최대한 조화를 이룬 이 정원에 서면 해금강과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의 맨 위쪽에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회를 찍은 리스하우스가 있다. 사적인 공간이라 들어갈 수는 없다. 꽃들이 뒤덮인 전망대로 가는 길과 이어진 대죽로는 연인들이 나란히 손잡고 걷기 좋다. 대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동섬 주변 정경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아름다운 정원미의 외도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만 해도 척박하고 외로운 바위섬이었다. 여기에는 이창호, 최호숙씨 부부의 30년 지극 정성이 숨어 있다. 2003년에 별세한 이창호씨는 1969년 바다낚시를 갔다가 풍랑을 피해 우연히 외도에 머물렀고, 그것을 계기로 이 섬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엔 밀감 농장, 돼지 사육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결국 30년간 정성을 들여 총 47000평 면적에 1000여 종에 이르는 식물관광농원으로 가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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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중부고속도로(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통영IC에서 빠져 14번 국도를 타면 거제에 닿는다. 고속버스는 남부터미널에서 서울-고현간 매일 33, 서울-장승포간 매일 9회 운행한다. 4시간∼4시간 30분 소요. 6개의 유람선이 해금강과 외도를 들른다. 외도에선 1시간 30분 정도 머문다. 요금은 출발지에 따라 다르며 외도 입장료는 어른 개인 8000.

 

펜션의 섬

거제는 ‘레저와 휴양의 섬’이라는 명성답게 좋은 숙박시설이 많다. 특히 바다가 조금이라도 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펜션이 들어차 있다. 워낙 아기자기한 펜션이 많다 보니 선택하기조차 힘들다. 거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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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남도, 거제의 봄매일신문 200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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