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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그렇게 또하나의 고개를 넘어며..

박상규 2009. 9. 16. 14:09
 
 
 
지도에는 있으나 인생에는 없는 것 중 하나가 지름길이다.
굽이굽이 고개 넘고 다리 건너다 잠시 지친 걸음 멈추어 들숨과 날숨을 바람에 씻으며 가는 길, 산과 계곡과 고개를 넘나드는 인제의 길 위에서 생각한다. 저 언덕을 다 넘으면 평원이 나타날까, 이 구부러지는 길을 다 걸으면 내달음칠 수 있는 펼친 길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산을 다 넘으면 하룻밤 묵어갈 마을이 나올까. 인제는 그 모든 생의 물음에 대해 고개를 끄덕여준다. 욕망도 겉치레도 미움도 다 내려놓고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하는 인제에는 지름길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 내어 읽으면 입안에서 물길이 흐를 것만 같은 이름, ‘내린천’. 홍천의 내면과 인제의 기린면에 발원하기에 양 지명에서 한 글자씩 따와 붙여진 이름의 내린천(內麟川)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3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을 거스르는 것만 같은데, 피아시계곡에 다다르면 그 느낌은 더해진다. 은빛 백사장과 둥근 돌들이 펼쳐진 피아시계곡 근처에는 피아실마을이 있는데 이파리가 심장 모양을 닮은 피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내린천을 피아실강이라고도 부른다. 구름에 매달려 나뭇잎 흔들어대는 피나무와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피아실강의 어감이 자꾸만 피안(彼岸)을 떠오르게 한다. 고개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따가운 햇살 아래 첩첩 산과 청정한 물줄기와 적요함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곳이 피안이라면 이 물길을 따라 1년쯤 혹은 10년쯤 기꺼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물길은 완만하게 구부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한다. 그 물길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다 보면 현리에서 두 개의 큰 물줄기를 만난다. 내린천의 지류인 방대천과 미산계곡에 흘러오는 물줄기다. 인연은 여기서 갈라진다. 갈림길에서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인연을 예고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꼭 가야할 길이라면 언제든 가게 될 테니까. 그리고 만나게 될 사람이라면 기약하지 않아도 언제든 만나게 될 테니까.
방대천을 거스른다. 아담한 마을들이 이어진다. 방태슈퍼 앞에 잠시 앉아 이름도 모르는 노란 꽃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저기 꽃 너머에서 한 아이가 손을 흔든다. 적요한 정오, 아이는 혼자 집으로 가는 길이었을까. 바람도 없는 들판에서 아이의 다섯 손가락이 꽃잎처럼 흔들린다. 이름도 모르는 꽃과 아이는 내게 그렇게 먼저 웃어준다. 그 무상무념의 풍경 속에서 이름 없어진 나도 그들처럼 손 흔든다. 우리가 모두 세상에 처음 나와 이름도 없이 누군가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그렇게 맨몸의 마음으로 말없이 인제에서의 첫 인연을 맺었다.
아들은 삽으로 땅을 파고 어머니는 그 구덩이에 허리 굽혀 씨앗을 심는다. 느린 호흡이 척척 들어맞는다. 씨 뿌리는 철이 지났건만 모자는 그 너른 밭에 말없이 씨앗을 심고 있다. 어머니를 돕던 아들은 이따금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씨 뿌리는 게 이미 늦은 일은 아닐 거라는 듯. 노란 꽃잎 같은 손을 흔들던 아이도 자라면 제 어미를 도와 흙을 일구며 살게 될까. 고향을 떠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땅과의 인연을 스스로 만드는 이들이란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인연은 결코 저절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인제에선 어딜 둘러봐도 감자밭이다. 여린 살점 같은 꽃, 뚱뚱 감자꽃이 밭마다 다복스럽게 피었다. 감자꽃 앞에 서면 소박한 여인네들을 만나는 듯하다. 땅 밑에선 말없이 자식을 낳아 튼실하게 키우느라 자신을 돌볼 새 없지만, 그래도 남들 앞에선 옷매무새를 정갈히 하는 여리고 소박한 아낙 같은 감자꽃. 그렇게 수줍어 보이는 감자꽃 밭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이 감자도 나이가 들면 우리 쭈그러지는 것처럼 이파리들이 저절로 사그라져. 대신에 땅 속에다 자식 같은 알들을 맺는 거지.”





꽃 진 자리에 열매 맺는 것이 아니라 제 뿌리에 실팍한 자식들 매달고 흙에서 살아가는 노인. 그러다가 그 흙 속으로 다시 돌아갈 노인. 그가 내게 건네는 ‘맺다’라는 말은, 무엇 하나 쥐고 있지 못한 내 빈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한다. 애면글면 하면서도 아귀차게 살며 열매를 ‘맺고’ 인연을 ‘맺어’왔을 노인의 삶이 너른 감자밭만큼이나 보얗게 펼쳐진다. 낫질을 하는 그의 눈주름에 땀이 ‘맺혀’ 있다. 낫질 하나 할 줄 모르는 나는 그래서 흙 앞에서도 인생 앞에서도 속수무책이다.
노란 꽃잎 손을 흔들던 아이도 제 스스로 이 땅과 인연을 맺는다면, 언젠가는 이 노인처럼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먼저 다가와 손 흔드는 감자싹들을, 그렇게 산과 들과 강과 맺게 되는 인연들을. 그리고 노인이 내 꽁지에 대고 그랬듯 걱정스런 마지막 말을 건네기도 할 것이다. “밥은 먹고 살어?”라고.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은 이곳은 은둔의 땅이다. 조선시대의 정감록(鄭鑑錄)에 보면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고 하여 불(火)과 물(水)과 난(亂)을 피할 수 있는 3둔4가리에 대한 기록이 있다. ‘둔’은 산속의 평평한 둔덕을 말하는데 인제군 상남면과 맞닿은 홍천군 내면에 ‘살둔(生屯)’, ‘월둔(月屯)’, ‘달둔(達屯)’이 있다. 그리고 ‘가리’는 밭을 갈 수 있는 경작지가 있는 곳을 말하는데 인제군 기린면에 ‘아침가리’, ‘적가리’, ‘명지가리’, ‘연가리’가 있다. 그만큼 이곳은 오지다. 사람이 산다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지형이어서 눈이 내리면 몇 달씩 고립될 정도였다고 한다. 아침에 잠시 밭 갈 정도의 볕이 났다가 금세 사라져버릴 정도로 첩첩 산중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아침가리는 여전히 그 안으로 들어서기 힘들다. 트레킹 코스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없는 길을 만들며 가야 하기에 큰마음 먹지 않고서는 들어서기 힘들다고 하여 아침가리 앞에서 돌아선다. 아직은 인연이 아닌가보다고,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느냐고 중얼거리며. 말없이 육중한 인제의 산과 골짜기는 마치 속내를 잘 보여주지 않는 사람 같다.

만병을 낫게 한다는 방동약수를 한잔 마시고 나와 방동리 마을에 들어선다. 누군가 위에서 내려다보며 정갈하고 소박한 여름 밥상을 차려 놓은 듯 함초롬한 마을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산다. 집집마다 이제 막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는 꽃들이 싱싱하게 피었다. 야생화가 지천인 인제에 사는 사람들은 마당에도 꽃을 가꾸며 산다. 거의 대부분 혼자 사는 노인들이 집을 지키고 있지만 간간이 빈집도 눈에 띈다. 그 집 뒤란에도 여지없이 꽃은 피었다. 마당 한가득 잡초는 웃자라고 그대로 두고 간 장독들 틈에선 꽃들이 피어난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도 금세 숨을 거둔다지만 꽃들은 어디서든 피어난다. 마을 길가에서 가지런히 꽃을 심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해바라기 모종을 심는 중이라고 했다. 집도 아닌 길가에 꽃을 심는 이유를 물으니,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예쁜 꽃 보면서 가라고 심는단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꽃을 심는 마음이 꽃 같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참 많은 사람들이 이 꽃을 바라보며 지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곳을 바라보게 된 인연들이 줄지어 피어날 모양이다.

방동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다. 4, 5, 6학년 아이들이 푸른 트럭을 타고 바람에 머릿결 날리며 온다. 멀리서 보면 분홍빛 하늘빛 옷을 입은 아이들이 꽃처럼 흩날린다. 마을 아이들을 늘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건 그 중 한 아이의 아버지다. 옛 시골 마을에선 내 아이만 자식이 아니고 내 아비만 아버지가 아니었다. 지금도 방동리에선 그렇다. 마을 아이들이 모두 한 집 아이들과 같고 형제들처럼 닮았다. 그래서 더없이 행복해보인다. 사람이 마을을 이뤄 이웃이라는 인연을 맺고 사는 것도 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혼자서는 살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이유도.

적가리로 향한다. 산꼭대기에서부터 바람이 능선을 타고 내달려온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8.9킬로미터에 달하는 청정 적가리를 품은 것은 방태산이다. 방태산휴양림으로 들어서면 ‘너른바위’가 넓은 마당처럼 펼쳐져 있다. 새하얀 바위에 앉아 풀빛 물살과 물가에 핀 자줏빛 매발톱꽃을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 위로 금세 시간이 후루룩 지나가 버린다. 그 위의 ‘이단폭포’는 옛 이름이 ‘이폭포저폭포’다. 위쪽 15미터의 이폭포는 널찍한 소를 이루다가 그 아래 약 3미터의 저폭포가 된다. 물가에도 풀숲에도 매발톱꽃은 지천이고 무당개구리들은 짝지어 헤엄치기에 여념이 없다. 두 단의 폭포 소리에 귀를 씻고 다시 길을 따른다.

참나무, 피나무, 박달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가 빼곡하고 야생화와 야생동물들이 많기로 유명한 방태산은 주봉인 주억봉(해발 1,443미터)에 닿기까지 세 개의 표정을 보여준다. 방태산의 첫 표정은 온순하다. 나지막한 톤으로 오붓하게 말을 건넨다. 높은 활엽수들이 다붓다붓 모여들어 단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의 숲길을 내주기도 한다. 그 길을 지날 땐 오롯하게 혼자가 된다. 산을 오를 땐 동반자가 여럿이어도 앞뒤로 걷게 되니 늘 산과 나만 남게 되듯 방태산은 끝끝내 나를 혼자이게 한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다리를 네 개 건너고 나면 방태산의 두 번째 표정이 드러난다. 눈 속엔 힘이 가득하고 입은 앙다문다. 급경사의 산길을 어서어서 가라고 다그친다. 너무 가팔라서 몇 걸음만 떼도 숨이 몸 안에 꽉 차버릴 즈음엔 나무뿌리들이 계단을 만들어 몸을 받쳐준다. 이제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싶어 주저앉고 싶어질 때, 산은 세 번째 표정을 보여준다. 방태산이 웃는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었냐는 듯 손으로 얼굴의 땀을 훔쳐 주는 방태산의 능선. 육중하면서도 부드럽고 편안한 능선은 세상살이에 지친 새끼가 찾아든 어미 호랑이의 길쭉한 등허리 같다. 이 능선은 해발 1,200미터를 넘나들며 10여 킬로미터 이어진다. 키 낮춘 나무들과 야생화들이 그 고원에 화원을 차려놓는다. 그러나 급경사 길의 끝에서 주억봉까지는 그 능선의 일부이기에 10분 정도 걷게 된다. 주억봉에 서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면 인제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사방이 빙 둘러 산이다. 북으로는 설악산과 점봉산, 남으로는 개인산이 둘러져 있어 바라보고 있으면 불끈불끈 뛰는 산의 맥을 짚은 듯 가슴이 두근댄다. 어우러지는 산들을 보며 생각한다. 또 올라서야 할 수많은 산들과, 힘겹게 정상에 섰을 때의 기쁘고도 적막한 울컥거림에 대해서.





지난밤엔 작달비가 내렸다. 날이 조금쯤 갠 현리의 아침은 부산스럽게 시작됐다. 마을 아낙들은 모두 모여 장떡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사내들은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돌린다. 마을 잔치가 있다며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가 나를 주저앉히고는 후다닥 밥상을 차려낸다. 나그네도 불러 세워 내남없이 밥 먹이는 사람들, 옛날 풍경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현리는 아직도 뜨끈한 밥 냄새를 풍긴다.

지난 밤 길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아침에 또 만났다. 어둔 밤, 내가 길을 물었을 때 수줍어 하며 길을 가리키던 기린중학교 아이들. 꿈이 너무도 많아 미래의 길을 더듬고 있던 아이들. 어제의 그 아이들은 단정히 교복을 차려입고 졸린 눈으로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또 인제에서의 하루가 시작됐다.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늘 내일이 먼저 왔듯, 지난밤의 비는 아직 말끔히 그치지 않았다.

진동계곡으로 간다. 눈이 많아서 겨울엔 설피를 신어야 갈 수 있다는 설피마을과 바람이 너무 강해서 소가 날아갈 정도라는 쇠나드리벌판을 지난다. 백두대간의 한 자락인 점봉산으로 들어선다. 등산로 입구에서 보랏빛 각시붓꽃이 곰배령(해발 1164미터)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해발 500미터 쯤에서 등산로가 시작되어서인지 완만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흙길엔 때죽나무 흰 꽃이 한바탕 울음을 운 듯 쏟아져 있다.


흰 꽃을 피운 사상자는 조금만 건드려도 싸리눈 같은 꽃잎들을 소리 없이 떨군다. 경사진 길이 거의 없어서 산행이라기보다는 꽃 산책 나온 듯하다. 계곡물도 완만히 흐른다. 거기, 눈에 열이 많아서 차고 맑은 물에만 산다는 열목어(熱目魚)가 노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엄나무 이파리들이 손가락을 쫙 펴고 초록빛 별천지를 만든다. 이토록 맑은 숲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계곡을 벗어나자 길은 숲으로 바짝 다가선다. 키 큰 활엽수 그늘마다 왕관 모양의 관중과 반음지 식물인 속새가 삐죽삐죽 올라와 있다. 햇빛 드는 자리마다엔 졸방제비꽃이 피었고 얼레지와 천남성은 이미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노란 꽃잎 속에 흰 꽃잎이 잔잔한 감자난초도 속새 곁에 함께 피었다. 워낙에 산이 깊어 다른 곳에 비해 개화 시기가 늦다보니 위로 오를수록 봄꽃들을 만난다. 이 산에 자생하는 식물이 900여 종에 달한다니, 보고도 이름 모르는 식물들이 더 많다. 식물들과 숨을 바꿔 쉬며 쉬엄쉬엄 두 시간을 오르자 키 큰 층층나무를 마지막으로 하늘이 활짝 열린다. 드디어 곰배령 평원이다. 수천 평은 되지 싶은 능선이 발 디딜 틈 없이 꽃으로 그득하다. 바람이 너무 세서 나무들은 살 수 없지만 이 여린 들꽃들은 제 몸을 바람결에 맡기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마음의 유연성을 갖고 살아가는 일이 때론 자유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샛노란 꽃을 암팡지게 피운 미나리아재비와 연분홍빛 쥐오줌풀이 다붓이 모여 바람에 몸 맡기고 아늘아늘 춤춘다. 이름과는 사뭇 다르게 생긴 미나리아재비, 이름은 좀 뭣한 쥐오줌풀, 벌레가 올라앉은 엉겅퀴, 단단한 자줏빛 꽃을 피운 요강나물. 꽃과 꽃들은 그렇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서로 색의 조화를 맞추며 살아간다.






우리나라 신화에 나오는 여신 중 생불할망은 꽃으로 아이를 점지한다. 동서남북 중앙의 어떤 꽃을 부녀자에게 건네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별이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에 따르자면 우리는 모두 점지된 꽃의 운명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점지한다는 꽃들 사이에 누워 하늘을 본다. 구름도 그들과 아주 오래된 사이라는 듯 가까이 내려와 색을 맞춘다. 우리가 이렇게 제 각각 다른 얼굴과 다른 마음과 다른 이름을 가지고도 조화롭게 살고 있는 건, 생불할망에게 덤으로 받은 꽃의 조화로운 심성 때문이 아닐까.
산에서 내려오는 길엔 오를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나무 아래 핀 작은 꽃들을 보느라 못 봤던 하얀 함박꽃들이 아담스럽게 피어 있다. 지난밤 내린 비가 흙길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는데, 함박꽃나무도 하늘도 수면에 얼굴을 비춰보고 있다. 나도 얼굴을 비춰 본다. 길 안에 또 길이 있다.


겨울이면 덕장마다 황태들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마르는 용대리 황태마을. 이 햇빛 쨍쨍한 여름에도 황태들은 볕에 나와 누워 있다. 노랗게 몸을 펴고 다시 한번 몸 말리고 있다. 황태를 너는 아주머니들의 바쁜 손놀림을 보다가 미시령계곡 따라 샛령을 넘는다.
샛령, 미시령, 마등령, 한계령, 단목령, 조침령. 인제에서 고성, 속초, 양양으로 가기 위해선 모두 령을 넘어야한다. 그 많은 고개에 사람들은 길을 내고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고개를 넘으며 산사람 마음과 바닷사람 마음 사이의 언덕에도 길이 났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은 모두 그렇게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서로의 언덕을 넘으면서.
한계령을 넘는다. 한계령 정상에 서니 해발 920미터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산 정상에서 늘 바다를 꿈꾸게 하는 ‘해발’이라는 말. 한계령 정상에서 그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바다’가 없었다면 ‘산’이 없었을 거란 말처럼 들린다. 마치 ‘네’가 없었다면 ‘내’가 없었을 거라는 말처럼. 모든 것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고리로 엮여 어우러져 있다는 말처럼.
한계령 정상은 인제와 속초의 경계선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고개를 넘으며 인제가면 언제 오냐고 했던 인제를 떠난다. 세상의 수많은 고개는 사람이 있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개를 넘고 넘고 또 넘는, 그렇게 고개 넘으며 수많은 것들과 인연을 맺는 게 살아가는 일인 것 같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하나라는 말을 오래도록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길은 길로 이어져 인연을 맺으니까 말이다.





인제를 얘기할 때 무엇보다 먼저 거론되는 곳이 내린천이다. 내린천은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의 점봉산, 가칠봉, 오대산, 계방산 등 산줄기에서 발원해 소양강과 합류하는 인제읍 합강교까지 흘러내리는 약 61킬로미터의 하천으로 홍천군 내면(內面)의 ‘내’와 인제군 기린면(麒麟面)의 ‘린’자가 합쳐져 이름 붙여졌다. 큰 강처럼 휑하니 넓지도, 좁은 계곡처럼 답답하지도 않은 물줄기가 푸른숲과 적당한 크기의 자갈과 바위 사이사이를 아름답고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것이 정말 ‘하늘에서 내린
 

천’답다. 인제읍에서 31번 도로를 통해 현리를 지나 내린천변을 천천히 몇 번 왔다갔다 해보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래프팅이 있을 때는 ‘꽝’이다.



휴양림 조성으로 인해 자연과 숲이 파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는데 방태산 휴양림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보존시켜 조성해보고자 애쓴 흔적이 많은 곳이다. 휴양림을 관류해 흘러내리는 계곡 주변은 적가리골이라 하는데 옛날부터 난을 피해 숨을 만한 피난처의 한 군데로 꼽혔다. 피나무, 박달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등으로 이루어진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한여름에도 어두컴컴하고 계곡 물은 차서 들어가기 힘들 정도다. 휴양림의 숙소인 산림휴양관 바로 앞에 있는 널찍한 마당바위는, 사이사이로 계곡물이 얕게 흘러내리니 온 가족 피서지로 ‘짱’이다. (방태산자연휴양림 033-463-8590)


‘야생화’하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곳이 바로 이 점봉산 곰배령이다. 4월 얼레지를 시작으로 9월 산국류까지 수많은 야생화들이 쉬지 않고 피고지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해발 1164미터의 곰배령, ‘천상의 화원’이라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님을 체험할 수 있다. 거기까지 오르는 산길과 숲길은 또 어떤가. 고개에 이르는 두 시간여 동안 함박꽃을 시작으로 감자난초, 나리난초, 천남성, 관중, 속새, 붓꽃, 매발톱, 미나리아재비, 쥐오줌풀, 수수꽃다리 등등 나무·풀·꽃들이 잘 놓아 기른 정원처럼, 때론 중생대 원시림처럼 쉴새 없이 이어진다. 또 모테미풀, 한계령풀, 노랑무늬붓꽃, 금강초롱, 칼잎용담, 홀아비바람꽃 등 보호식물도 50여 종이 넘는다니 정말 놀랍고 귀하고 착한 숲이자 숲길이고 고개다. 곰배령을 포함한 점봉산 일대의 식물은 900여 종, 우리나라 전체 식물 종수의 무려 20%에 이른다. 1982년부터 산림청에서 천연림 보호구역으로 지정, 입산을 통제하고 있어 사전에 신고해 허락을 받아야만 이 숲길과 고개와 산을 오르고 볼 수 있다. 나라에서, 정말 이렇게 잘하는 일도 있다니! (입산 문의: 인제군 국유림 관리소 033-463-8169)





글 정 영

2000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낼 때가 되었건만 사람과 풍경과 정들을 찾아 산·들·바다를 찾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

사진 이요셉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을 사진, 노래, 영상 등을 통해 알리는 버드나무(www.birdtree.net / www. lovenphoto.com)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