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모든것

[명산 명품 산행로] 변산반도

박상규 2009. 10. 29. 17:47

 

 

 

[명산 명품 산행로] 변산반도

 

남여치~쌍선봉~월명암~직소폭포~내소사 9km

어미 잃은 새끼처럼 울고 있었다. 가슴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선 슬픔, 그것이 툭 터져나와 망망대해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흐느낌을 넘어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심하게 출렁이는 낙조의 울음빛에 지나던 이들도 모두 발길을 멈춘 채 넋을 잃고 보았다.

고사포해변의 노을이 너무 짙어 짠내는 눈물이 되고 바다는 상주의 눈시울이 된다. 대책 없이 솔직하게 감정을 토해내는 바다 앞에서 길손이 할 수 있는 건 말없이 소주를 들이켜는 일. 이생진 시인의 말처럼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아침이 되자 일찍 일어난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널부러진 우릴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왠지 쑥스러워진 우리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산으로 숨어들었다.


▲ 1 낙조대에서 봉래구곡으로 이어진 바윗길. 봉래구곡을 중심으로 많은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어 내륙의 깊은 첩첩산중에 들어 온 것 같은 분위기다. 2 사자동계곡의 저수지. 계곡을 더 오르면 선녀탕과 직소폭포를 만난다. 3 낙조대에서 본 서해바다. 터가 좁고 나무가 높아 변산 제일의 서해 전망대라는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4 재백이고개에서 관음봉삼거리로 이어진 암릉길. 변산반도는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져 시원한 풍경을 연출한다.
쌍선봉 들머리인 남여치다. 산꾼의 마음에 드는 들머리다. 가게나 장사치가 없는 한적한 고갯마루에 서너 대의 차를 댈 작은 터가 있다. 그리곤 바로 숲,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는 어둑어둑한 숲이다. 숲속은 기운이 다르다. 새벽의 한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서늘하다. 에어컨 따위에 비할 수 없다. 아무리 피겨요정 김연아가 눈웃음 쳐도 말이다.  

그러나 남여치의 유래를 알면 기분이 찝찝해진다. 남여치(藍輿峙)는 조선시대 이완용이 전라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여(藍輿)를 타고 낙조대에 올라 서해 낙조를 보고 쌍선봉에 올랐다 해서 그리 전한다. 여기서 ‘남여(藍輿)’는 벼슬아치들이 타던 지붕 없는 가마를 말한다. 입산했으면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제 발로 걷는 게 도리이거늘 너른 임도도 아닌 좁고 가파른 산길을 억지스레 가마로 올랐다니, 산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훗날의 행실을 가늠할 수 있다.

울창한 오름길이지만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없다. 그러나 변산반도의 나무가 유명했던 때도 있었다. 고려 때 이규보는 “변산은 우리나라 재목창(材木倉)으로 궁궐을 수리할 때 항상 재목을 베어내지만 아름드리 나무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며,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큰 소나무가 치솟아 해를 가렸고 산중에는 좋은 경작지가 많으며 땔나무와 조개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될 만큼 풍족하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풍부했던 변산의 나무는 해방 전후로 피폐해졌다. 일제강점기 말 대동아전쟁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많은 수목이 벌채되었으며 해방 후 무허가 도벌이 극심해 월명암 주변의 20~30m나 되는 아름드리 낙락장송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예로부터 변산에 유명한 것이 세 가지로 변재(邊材), 변청(邊淸), 변란(邊蘭) 삼변(三邊)을 꼽았다. 변재(邊材)는 변산의 소나무를 이르는 것이며, 변청(邊淸)은 변산 곳곳의 바위벼랑 벌집에서 따는 꿀을 이르는 것으로 질이 좋기로 유명해 왕실에도 진상되었다고 한다. 변란(邊蘭)은 변산에 자생하는 난으로 보춘화(報春花)를 이르는 말이다. 보춘화는 일찌감치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난이다. 그래서 춘란(春蘭)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변재가 거덜나면서 변청도 고갈되었고 변란도 트럭으로 가져갈 정도로 무분별하게 캐가면서 보기 어렵게 되었다.

초록으로 빽빽한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 만난 갈림길 이정표, 쌍선봉을 우회해 지나쳐왔다. 오름길에 집중한 나머지 길을 못 봤나 생각하며 뒤돌아 능선에 올라 정상에 섰다. 헬기장이지만 나무가 높아 월명암이 살짝 보일 뿐이다. 산행 시작 후 처음 만난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이다. 몰랐는데 햇살의 힘이 강력하다.

월명암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난다. 돌계단 위 대웅전 마당에서 삽살개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든다. 검둥이와 누렁이가 다가와 애교를 부린다. 일행이 삽살이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동행한 이는 일촌산악회 김소라씨와 성신여대산악부OB 임영화씨다. 암자 치곤 건물도 많고 큰 편이다. 보살에게 낙조대 가는 길을 물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능선에 올라 닿은 낙조대는 이름만큼 화려하진 않다. 폐쇄된 코스여서인지 나무와 풀이 높아 시야가 탁 트이지 않는다. 2~3명이 서서 서쪽 해변 일부만 볼 수 있을 정도다.

고사포해수욕장을 둘러싼 해안방풍림과 하섬이 보인다. 새우 모양을 닮았다 하여 하(鰕)섬이라 불리며 매월 음력 보름이나 그믐쯤에 바닷길이 열려 해수욕장에서 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약 2km의 바닷길이며 조개나 낙지 등을 잡을 수도 있다.

낙조 대신 보름달빛 속으로 열리는 물길을 상상해 본다. 은밀히 들어와 변산을 슬쩍 껴안고는 스르르 놓아주었다가 다시 껴안길 반복하는 바다는 변산을 무척 사랑하였던 게다. 그래서 동쪽을 뺀 서·남·북에서 변산을 꼭 안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산에 가 닿을 수 없는 운명을 아는 바다는 저녁이 되면 산을 향해 붉디붉은 그리움을 토하고 있는 게다.

봉래구곡으로 내려서는 길, 산이 변한다. 조망 없는 평범한 육산에서 첩첩산중의 바위산으로 변한다. 산도, 사람도 겉만 봐선 알 수 없다. 시간을 두고 걸어서 들어가 봐야 안다.

암릉의 등껍질을 드러낸 심상찮은 산이 사자동계곡을 두고 빙 둘러 솟았다. 해안가에서는 몰랐던 숨겨진 산 세상, 근처에 바다가 있다고 예상하기 힘든 산촌이다. 내려서는 길 곳곳에 암릉이 전망터를 내준다. 어떤 곳은 채석강처럼 켜켜이 쌓인 바위의 생김새가 악어 등껍질처럼 깔려 있다. 의자 삼아 앉으니 진짜 가시방석이다.

자연보호헌장탑부터는 운동화 신은 관광객이 많은 계곡길이다. 저수지 옆으로 난 숲길이 초여름 산행의 열기를 잠시나마 식혀준다. 그러나 계곡을 오를수록 땡볕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수심이 깊어 ‘익사위험’표지판이 있는 계곡은 마르고 말라 걸어서 지날 수 있을 정도이며, 계류에서 동떨어진 소의 물은 흐르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여 썩고 있다. 선녀탕은 반석이 푹 파인 두 개의 둥근 소로 되어 있는 것이 정말 선녀의 욕탕처럼 생겼다. 가뭄이 극심한데도 각각 2m와 3m의 수심을 이룬다.

직소폭포는 안내판의 사진을 보는 게 더 낫다. 벽을 타고 물이 약간 흐르는 절벽이다. 물이 흘러야 할 계곡에는 풀이 자라고 있다. 변산 지역은 지난해 가을부터 가뭄이 이어져 현재 소나무가 말라 죽고 있다.

폭포를 지나자 숲이 좋다. 햇살이 뜨거운 계단을 헉헉거리며 막 올라와서 더 그럴 것이다. 고요함이 흐르는 시원한 나무 그늘 속에서 푹신푹신한 흙을 밟는 것은 그 자체로 휴식이다. 숲을 따르는 냇물은 가만히 멈춰 있다. 그래서 더 조용하다.

재백이고개를 지나자 길이 가파르다. 꾸역꾸역 오르면 이에 대한 보상과도 같은 전망바위가 곳곳에 있다. 남쪽 곰소만 풍경은 아낌이 없다. 정 많은 시골 촌부처럼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준다. 갯벌과 바다, 둥그스름한 능선이 어울려 부드러운 풍경이다. 저곳 사람들은 아무도 싸우지 않고 아무도 속이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깊은 산속에서 그런 마을을 만나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취재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마을 사람이 될 테다.

관음봉삼거리에서 내리막길을 따르자 내소사 전나무숲이다. 쭉쭉 뻗은 훤칠한 나무가 늘어서 있다. 햇살이 비추자 산뜻한 솔 향기가 숲을 메운다. 잔잔한 풍경 소리가 흐르는 오후의 전나무숲. 걷고 있는 건 나인데 숲이 내게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