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짧아서 더 아련한 깊어서 더 그리운 가을

박상규 2009. 11. 6. 22:14

 

 

 

 

 


문수보살이 깃들어있다는 충북 영동의 반야사는 ‘지혜를 구하는 절집’이다. 까마득한 암봉 위에 아슬아슬 들어선 반야사의 암자 문수전에서 내려다본 석천계곡이 가을색으로 가득차 있다.


위의 큰 사진이 문수전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라면, 왼쪽 작은 사진은 문수전을 올려다본 모습이다. 반야사로 드는 길에 떨어진 단풍이 차마 밟기 주저될 만큼 화려하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계절입니다. 가을 여행의 진수는 단풍이라지만,

            가을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어디 단풍만이겠습니까. 서늘하고 청명한 대기와 수묵화같이 피어나는 아침 안개,

            가을걷이가 끝난 논두렁에 가지런히 놓인 볏짚. 낙엽을 모아 태우는 구수한 내음. 잎을 다 떨군 감나무 가지에 가득
            매달린 감의 주홍빛 선명한 색은 또 어떻고요. 이런 풍경들이야말로 ‘진짜 가을’에 어울리는 것들이지요.
            이런 가을 풍경 앞에 서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촉촉하게 적셔집니다.

            가을은 다른 계절보다 짧게 허락돼 있어 더 각별합니다. 이맘때면 늘 마음이 바쁩니다. 당도하자마자 곧 떠나버리고
            마는 가을을 어디서 맞이하고 또 배웅을 해야할지…. 바쁘게 ‘가을을 전망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선 길이었습니다.

            되도록 인파들로 북적이지 않는 호젓한 곳을 찾았습니다. 떠들썩한 행락지의 분위기보다, 때론 쓸쓸하게 느껴질
            정도의 호젓한 분위기가 가을을 맞이하고 또 보내는 데 더 걸맞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그곳에 가을을 굽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암자가 있습니다. 호젓한 가을의 정취로 가득한 절집
            ‘반야사’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석천의 물가에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반야사에서 석천을 끼고 더 가서 타박타박
            계단길을 따라 깎아지른 벼랑을 오르면 ‘가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암자 문수전이 있답니다. 석천의 맑은 물가에서
            올려다보는 벼랑 위의 문수전 모습도 빼어나지만, 문수전에 올라 단풍잎 곱게 물든 계곡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풍경을 내려다보는 맛이야말로 최고였습니다.

            꼭 반야사로 가는 길만은 아닙니다. 충북 영동 땅에는 지금 ‘가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산에는 울긋불긋 단풍들이 물들었고,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진 감나무에 매달린 주홍빛 감은

            가을볕 아래 말랑말랑 홍시가 돼가고 있습니다.

가을걷이가 막 끝난 논은 이불을 덮은 듯 포근한 볏짚을 덮고 있습니다. 화룡점정과도 같은 정자가 서있는

            월류봉도 가을색으로 완연하고, 영국사의 1000년 묵은 은행나무도 이제 샛노랗게 물들고 있답니다.

            저물녘 금강변의 작은 정자 관어대에 오르면 석양에 강물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잘게 부서집니다.

            그 강변을 따라 구불구불 나있는 505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강 건너 적벽에 단풍이 물든 풍경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길에서는 굽이를 돌 때마다 물새들이 퍼드덕 날아올랐습니다. 내친 김에 한때 위세가 당당했지만
            지금은 초라해진 추풍령의 옛 이야기를 따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가을에는 쨍하고 선명한 풍경이 마음을 잡습니다. 그건 가을의 화려함 때문인 듯 싶습니다.
            아 참, 이즈음 영동에는 말랑말랑한 연시감이 한창입니다.
            스르르 아이스크림처럼 입 안에서 달콤하게 녹던 봉시 감 맛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영동·김천·상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