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함양 상림과 연꽃

박상규 2009. 7. 13. 15:33
여름 숲에서 초록을 입네
눈을 씻고… 머리를 씻고… 가슴을 씻고

함양 상림의 연꽃밭에서 자라고 있는 네가래

함양 상림에 조성된 연못에 피어난 연꽃

함양 상림 근처의 소나무 군락지.
# 길에 서서 도라지 꽃의 보라색 물결을 내다 본다.

경남 함양군 병곡면 월암마을은 지금 온통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꽃들로 가득하다.
최근들어 각 지자체들이 볼거리를 만든다며 대단위 지역에 꽃밭을 조성해놓은 곳은 많지만, 이곳 1만평의 밭에 심어진 꽃은 ‘관광용’이 아니다.
오로지 수확을 위해 심어둔 도라지가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다.

이곳의 도라지는 다른 곳들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줄기도 굵고, 키고 크다. 대부분이 5년이 넘었고, 10년이상이 된 것들도 흔하다.
하지만 도라지 수확시기는 아직도 멀었다. 약용으로 쓰기 위해서 21년을 길러야 비로소 도라지 뿌리를 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삼도 6년이 지나면 수확하는데, 도라지를 수확하기 위해 거의 한 세대에 육박하는 21년을 기다리는 셈이다.

그저 마냥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3년이면 도라지를 심은 땅의 지력이 다해 다른 밭으로 옮겨심어야 한다.
그냥 그 자리에 심어서 놔두면 3년이면 다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21년산 도라지를 캐려면 3년단위로 도합 6번을 옮겨심어야 하는 것이다.

너른 밭에 서서 도라지꽃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섯개로 벌어진 꽃잎은 하나씩 나뉘지 않고 한데모여 화려한 양산처럼 펼쳐진다. 꽃송이의 맥은 마치 핏줄처럼 뻗어있다.
꽃술 또한 정갈하기 그지없다. 도라지로 가득한 밭을 내려다보면 마음이 순해지는 느낌이다.
하나 하나의 화려함보다는 밭 가득 펼쳐지는 선명한 보라빛, 흰빛으로 마음을 휘어잡는다.

# 여백이 꽃을 더 아름답게 한다… 함양 상림의 연꽃

함양에 들렀다면 상림을 빗겨갈 수 없다. 함양 사람 누구든 ‘가볼 만한 곳’을 물으면 상림을 단연 첫 손으로 꼽는다.
신라시대 함양 태수였던 최치원이 거창과 함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위천의 범람을 막기위해 조성했다는 인공림 상림은 말그대로 ‘천년의 숲’이다.
그 숲은 단연 낙엽지는 가을이 최고지만, 여름의 짙은 녹음의 맛도 그에 버금간다.
2만여 그루의 낙엽활엽수의 녹음이 워낙 짙어서 숲 속은 어둑어둑하다.
서늘한 기운마저 감도는 울창한 숲그늘 사이로 나있는 흙길을 타박타박 걷는 맛이 그만이다.
숲속의 정자인 사운정이나 함화루에 올라 숲의 향기를 맡다보면 눅눅한 마음까지 뽀송뽀송해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지만, 입장료도 없다.

상림 옆에는 함양군이 조성해 놓은 연꽃 밭이 광활하다.
홍련부터 조세핀이며 갖가지 이름을 가진 연꽃이며 수련들이 앞다퉈 꽃을 피워올렸다.
꽃 안쪽의 밝은 색조의 꽃술이 마치 등불을 켜놓은 듯 환하다.
고요하게 물 위에 봉오리를 내민 연꽃들은 활짝 피면 핀대로, 봉오리를 접으면 접은대로 운치가 느껴진다.
펼쳐진 연꽃에서는 절정의 순간이 느껴지고, 두손을 모은듯 올린 봉오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준다.
절정의 시간을 넘어 꽃잎이 하나둘씩 떨어진 것 조차도 애처롭다.

이렇게 연꽃 앞에 서면 무더기로 피어난 것보다 청초하게 한송이씩 피어난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된다.
여백이 주는 맛이 살아나서일까. 꽃이야 다 같은 꽃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심상이야 다 다르겠지만,
와글와글 무리지어 경쟁하듯 피어나는 다른 꽃보다 하나 둘씩 꽃대를 올리는 연꽃에서는 더 깊은 품격과 정신이 느껴진다.

상림에서 병곡면 쪽으로 가다가 위천 건너편으로는 쭉뻗은 금강송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맵시있게 자란 송림 숲의 운치가 그만이다. 이곳은 진양 하씨 문중 소유의 숲이다.
상림이 낙엽활엽수로 이뤄진 숲이라면, 이쪽은 소나무로 가득한 숲이다.
비록 규모는 훨씬 적지만 솔숲 그늘에서는 상림과는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 함양에서 지리산 자락을 밟고 오도재를 넘어가다.

함양 땅의 서남쪽으로는 풍만한 지리산의 거대한 능선이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가자면 지안재와 오도재를 넘어 마천쪽으로 붙어야 한다.
지안재는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 그대로 볼거리가 되는 곳이고, 오도재는 지리산의 천왕봉이며 중봉 제석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특급 전망대다.

오도재는 남쪽 하동이나 진주, 고성에서 보자면 지리산을 다 넘고서 만나는 마지막 고개였고,
북쪽 함양에서 치자면 지리산을 넘어가는 첫 고개였다.
옛날 함양 마천 사람들은 오도재를 넘어 장터목까지 가서 산청의 시천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했다.
지리산의 장터목이란 이름도 이런 연유로 붙여진 것이다.

오도재를 넘는 길은 지리산을 관통하는 정령치나 시암재처럼 골이 깊지 않다.
오도재 정상의 높이래야 해발 750m. 이 고개를 넘어가면 지리산의 숲이나 자연보다는 산자락에 기대고 사는 주민의 ‘삶의 냄새’가 더 짙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구비구비 넘어가는 길 옆으로 난 다락논들.
비탈면에 일일이 돌담을 쌓아놓고 계단식으로 논으로 개간해 다듬어놓은 다락논은 이곳 마천의 명물로 꼽힐 만하다.

# 서암정사에서 만나는 경이로운 인공미

오도재를 넘자는 것은 지리산 칠선계곡의 서암정사를 가기 위한 것이다.
서암정사는 인근 벽송사의 암자. 벽송사의 주지였던 원응 스님이 6·25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1989년부터 조성했다.
서암정사는 절집에 대한 생각을 뒤집어놓는다.

석굴을 법당으로 삼고있는데다, 곳곳에 돌을 정교하게 쪼아만든 불상들을 세워놓았다.
잘 알려진 절집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서암정사는 온통 인공적인 불사로 채워져있다.
그 ‘인공’이 어찌나 정교하고 정성스러운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절집 입구의 사천왕을 지나 바위를 뚫어만든 ‘대방광문’이란 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특히 굴법당으로 들어서면 탄성부터 나온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굴법당은 불상은 말할 것도 없고 벽이며 천장까지도 섬세한 조각들로 가득하다.
아미타부처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나한, 사천왕은 물론이고, 용이며 구름이며 연꽃 등이 빈틈없이 조각돼 있다.
조각작품이 아니라 마치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의 벽지를 바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굴법당 옆의 연못도 인공적이긴 마찬가지지만 독특한 느낌을 준다.

신라말이나 고려초에 창건됐다가 조선 중종 때 중창됐다는 벽송사는 6·25전쟁의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전란이 한창일 때 벽송사에는 인민군 야전병원이 들어서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절집은 초토화됐으며 이후 새로 중창했지만 옛 흔적은 석탑과 목장승외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 깊은 산속 용추계곡의 맑디 맑은 물

여름날 함양까지 가서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가보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함양 사람들은 여름철 피서지로 사람들이 몰리는 지리산의 계곡보다는 안의면쪽의 용추계곡을 더 쳐준다.
금원산과 기백산, 황석산, 거망산 등 해발 1100m를 넘는 큰 산들로 둘러싸인 용추계곡은 깊은 산을 타고 내려온 맑은 물이 모여드는 곳이다.

용추계곡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물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시퍼런 소를 만난다.
소의 건너편쪽 암벽에는 금방이라도 깃을 치며 날아오를 듯한 매의 형상을 한 매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계곡을 따라서 꺽지소, 용소를 비롯해 깊은 소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멀리서부터 웅장한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용추계곡의 최고의 명소로 꼽히는 용추폭포다. 15m 높이에서 굵은 물줄기가 힘차게 내려꽂힌다.
폭포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튀는 물방울에 옷이 다 젖을 정도.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폭포 아래는 넓은 소 옆에 자리를 깔고 있으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의 한기에다가 폭포가 밀어내는 바람으로
더위는 저만치 달아난다.

용추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일부 비포장길이 이거나 대부분 시멘트 포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깨끗한 2차선 아스팔트포장으로 용추사일주문까지 갈수있다. 
하지만 계곡을 끼고 가는 길인데다 계곡길이라 운전할 때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길 끝에는 용추자연휴양림이 있다. 대부분의 자연휴양림이 계곡이나 산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반해 이곳은 계곡의 최상류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숲이 깊고, 울창하다.
독립된 통나무집인 산막이 깊은 숲과 계곡을 끼고 있어 위치가 좋긴한데 시설은 미비한 편.
콘도형태의 산림휴양관은 운치는 덜하지만, 시설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