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모든것

봉화 청량산

박상규 2009. 8. 8. 11:02

 

 

봉화 청량산

 

2009. 07. 25.

 

가슴 시린 날에 배낭하나 짊어지고

옆지기와 길을 나섰습니다.


오락가락 안개비 내리던 길섶엔

영롱한 루드토피아 길게 하늘을 이고 피어서 길손을 반깁니다.


긴 시간 운전으로 지쳐갈즈음

봉화 청량산이 낙동강 강물에 투영되어 시야를 즐겁게합니다.


안개비 벗 삼아 입석에서 응진전으로 한걸음 한걸음

땀방울 이슬방울 이마에 옷깃에 스며들듯 두 손 합장하고 오릅니다.


가슴가득 그리움이 고독함이 이슬비처럼 파고들어

힘겹게 밀어 내고 또 밀어내어 청량한 마음 잡초 뽑듯 하나하나 버려봅니다.


힘겹게 버텨온 몇 주간이 땀방울에 눈시울을 적실 즈음

병풍처럼 둘러선 배흘림기둥 같은 금탑봉 아래 앉은 응진전이

어서 오라 반가운 눈인사 하듯 우뚝 섯습니다.


나리꽃, 원추리꽃 울타리 넘어 축융봉 마주 보는 아담한 암자입니다.

딸림 밭에 소복이 달린 복숭아가 발그레한 볼을 보일세라

입사이에서 바람에 속살 내비칩니다.


지나는 산객들을 따라 청량사로 발길을 옮기다 마주선 절을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바위봉이 평풍처럼 둘러선 발아래 고요히 비를 맞습니다.


지나는 길에 산꾼의 집에 들러 구정차 한잔에 담소 나누다보니

이젠 제법 굵은 비가 내립니다.


돌담 지나 마주한 청량하고 고요한 절을 눈 들어 올려다보니

세상 고뇌 가진 사람들 모두모두 내려놓으라. 가슴으로 품는듯합니다.


종각아래 잠시 비를 피하며 약수 한잔으로 갈증난 목을 축이고

돌계단 위로 고고히 서있는 공민왕 친필의 유리보전과

하늘 향해 우뚝 솟은 석탑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청량 사에서 모시고 놀던 옛일을 생각하니

두 갈래 땋았던 뿔(總角)이 이제는 백발이 되었구나.

학등에는 몇 번이나 언덕과 계곡이 변함을 보았던고

남기신 시를 세 번 반복하니 눈물이 가로 흐르네.



거듭 산을 찾아와 오직 나의 사람됨을 깨달으니

물에 떠서 흘러가는 복숭아꽃은 몇 봄을 지났던고

너희들 무리 타년에 나의 감회를 알까 보냐

그 당시 나도 너희들 같은 소년의 몸이었으니?


퇴계 이황의 가문의 산 청량산....

부하의 손에 살해된 비운의 왕 공민왕과 노국 공주의 애환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 있는 산....


잠시 유리보전 약사여래불 앞에 두 손 합장하며

내 삶에 소중한 인연들의 무운을 빌고 빌며 마음 밭에 고운 빛 담습니다.


소나기 퍼붓는 계단을 홀로 한달음에 뒷실고개에 올라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하늘다리에 올라서니 봉우리마다 구르듯 내려앉은 구름사이로 승복 입은 분이

홀로 찬양하며 다리를 건너옵니다.


의상대 전망대에 마주한 풍경은 선계인 듯 발밑으로 안개만 피어나고

육십 중반의 산객이 가슴 벅찬 감동을 들려주고 정이 듬뿍 담긴 귤을

두 손에 가득 담아 줍니다.


절에서 기도 하는 아내가 생각나서 아쉬움 뒤로하고 바쁜 걸음으로

청량사에 당도하니 온몸은 이미 비에 젖은 생쥐모양이라

안심당 바람의 집을 그냥 지나쳐야 하는 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어둠이 내려오는 선학정 그곳에서 기쁨으로 숙소를 찾아 돌아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