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산(785m)은 경북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에 위치하며 구만동계곡은 계곡등반의 묘미를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벼락듬이, 부석듬이, 아들바위, 상여바위, 상투바위, 송곳바위, 병풍바위, 얹힌바위, 흔암 등 천태만상의 바위는 흡사 설악산 천불동 같고, 물살에 씻긴 매끈한 바윗돌과 넓은 암반은 지리산 백운동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특히 40m의 통수골폭포의 왼쪽 바위 벼랑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면 펼쳐지는 적요한 계곡 풍경은 두타산 문간재를 넘어서 영원동에 들어간 것 같은 아득함에 누구나 넋을 잃고 마는 풍경이다. 구만동이 알려지지 않고 고스란히 비경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웃의 명소들과 지형적 특성이 큼직한 문 구실을 해준 덕분이다.
지리산 뱀사골이 심원계곡을, 가야산 해인사가 백운동을, 덕유산 구천동이 마학골을, 오대산 상원사와 적멸보궁이 신선골을, 설악산 천불동이 둔전골을 꼭꼭 숨겨 두었듯이 운문사 석골사계곡과 재약산 얼음골, 가지산 호박소 등의 명소가 엄청난 흡인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빨아 들였기에 구만산의 구만동이 고스란히 보존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계곡 입구에 유명한 약물탕이 있어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을 붙들었을 뿐더러 큰 바윗돌까지 계곡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계곡 중간에 통수골폭포와 병풍암이 더 이상 오르는 것을 막고 있어서이다.
구만산을 가려면 먼저 밀양으로 가는 것이 좋다. 밀양 시외버스 주차장에서 얼음골이나 남명 가는 버스를 타면 반 시간이 안되어 산내면 소재지인 송백리에 닿는다. 울산쪽에서는 언양을 경유해 석남터널을 넘어오는 버스가 있다. 산내국교 뒷담을 돌아 양촌 마을을 지나면 구만동에서 흘러나오는 개울과 만나는데,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줄지어 있고 봉의들과 구만산 능선의 벼락듬이가 어울려 수려한 풍광을 연출한다. 송백에서 40분이면 조그만 구만사 절에 도착하는데, 소형 승용차는 여기까지 들어갈 수 있다. 절 주변의 계곡은 큰 바위들과 절벽이 어울려 있고 5m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약물탕이 있어 여름이면 찬 물맞이를 위해 사람의 홍수를 이룬다.
구만약물탕은 300m나 되는 높이에서 바위틈 사이를 비집고 흘러 내린 물이 떨어지는 곳으로, 물이 너무나 차가워 3분 이상은 천하장사도 버틸 수 없다고 마을 사람들은 자랑이 대단하다. 이곳 약물탕은 예부터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졌다. 천불동과 흡사한 20리 계곡의 구만동은 임진왜란 당시 구만 명의 사람들이 난을 피해 들어와 숨어 있었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20리가 넘는 골짜기안은 암반과 바위, 소와 담이 어울려 산악미가 빼어난 곳이다. 등산로는 약물탕 옆의 바위벽을 타 넘어 계곡을 건너 왼쪽으로 통수골폭 밑까지 잘 나 있다. 하지만 구만동에 들어와 길 따라 구만산에 오르는 것보다 물살에 씻기고 햇살에 마른 매끈한 바위를 밟고 개울을 징검다리 건너듯, 또는 강변의 자갈밭을 거닐 듯하며 가는 즐거움은 유별나게 좋다. 아예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40분 정도 걸어 통수골폭포까지 가면 구만동 계곡등반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통수골폭포는 높이 40m의 2단으로 나누어진 직폭인데, 좌우에는 100m가 넘는 바위벽이 200여m나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아무리 둘러봐도 나아갈 길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길은 좌측 너덜지대를 200m 올라 큰 소나무 바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병풍암 허리를 껴안듯이 돌아나가게 되어 있다. 폭포 위는 이 세상 사람들이 한번도 들어오지 않은 듯한 적막함에 휩싸여, 아득한 세월의 무상감을 느끼게 하는 비밀스러움이 감돈다. 다시 계곡을 따라가면 10분이 안되어 오른쪽 90도 방향으로 큰 골이 나타나는데, 구만산 정상은 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길도 좋고 경치도 멋지다. 물론 계곡의 원류를 따라 끝까지 오를 수는 있으나 길이 없고, 휘돌아 올라 정상까지는 한 시간 이상 걸린다.
90도 방향의 동쪽 골은 숲이 무성한 계곡에 암반을 타고 흐르는 맑은 개울물이 특징이다. 이 골을 15분 정도 오르다보면 멋진 초원이 나타난다. 제법 완만한 경사에는 상수리나무들이 쭉쭉 뻗어 수림을 이루었고, 그 아래에는 소백산 비로봉 초원처럼 한 자 정도의 풀들이 밭을 이루고 있어 지척인 구만산 꼭대기를 포기하고 편안히 앉아 놀고 싶도록 정겨움이 깃든 곳이다. 15분 정도 초원을 걸어 능선에 이르면 구만산 정상은 10분 거리에 있다. 통수골폭포에서 정상까지는 40분 걸린다. 산정의 서쪽 능선상에서 동쪽으로는 억산, 운문산, 재약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 정각산의 수없이 뻗어내린 지맥들이 산내천으로 흘러드는 모습도 수려하다.
구만산 정상에서 시간이 충분하면 북쪽으로 15분 내려가서 동쪽으로 가보도록 한다. 진달래 군락지대를 통과하여 인재에서 인곡 계곡의 기도원을 통과해 계곡을 따라 오르면 억산 정상까지 3시간에 닿는다. 구만산정에서 하산도 구만동으로 하고 싶으면 남서쪽 조그만 능선을 타고 간다. 20분 정도면 오를 때 지났던 구만동계곡 입구로 내려선다. 권하고 싶은 코스는 위의 두 코스보다 당일산행으로 알맞은 남쪽 능선의 727m봉을 거쳐 봉의저수지로 내려서는 코스인데, 1시간이면 된다. 봉의저수지는 깊은 인곡 골짜기의 맑고 풍부한 계곡물이 전부 모여 맑기가 그지없으며 넓은 호수 수면에 비친 맞은편 북바위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호수 주변의 초원에는 흑염소가 뛰어놀고 강태골들이 앉아 있는 한가로운 목가적 풍경이 땀 흘려 하산한 등산인에게 포근한 고향의 맛을 안겨 주어 피곤이 삽시간에 달아나게 한다. 봉의저수지에서 밀양~언양간 국도까지는 20분 안에 닿을 수 있다.
구만산 - 억산 - 운문산은 하루 산행으로 무리고, 1박2일의 여정을 잡아 기도원 위의 깊은 계곡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이어 억산으로 올라 비경의 대비골로 빠지든가 서남쪽 능선의 사자바위를 지나 석골사나 운곡으로 내려설 수 있다. 또 능선을 계속 타고 운문산을 올라 남양이나 청도 운문사로 내려가는 등 다양한 길을 택할 수 있다. 이렇게 1박2일의 코스를 잡으면 고찰과 숨겨진 멋진 계곡, 아기자기한 바위능선, 장쾌한 조망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누구에게나 권할 만하다. 이밖에도 구만동의 서쪽 청도에 속해 있는 육화산(675m)의 장수골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하루에 많은 산을 가보고 싶은 사람은 구만산 서남쪽에 있는 보두산, 낙화산, 중산, 장군봉, 용암봉, 소천봉 이렇게 여섯 산봉을 하루에 다녀올 수 있다. 구만산 주변은 유명한 얼음골, 호박소, 석골사, 석남사, 표충사 등이 지척에 있어 산행 후에 편안히 둘러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