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에서 27번 국도로 임실을 향해 북행하다가 강진면 갈담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717번 지방도로 길을 잡는다.
고개 하나를 넘어 평지로 내려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사곡리 밭둑에는 이제 마을 사람들에게서조차 잊혀진 남근석 한 개가 서 있다.
정으로 쪼은 자국이 툭툭 난, 높이 1.2m가량의 사각 돌기둥 윗부분에 두두룩하게 턱을 두어 귀두를 표현하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그냥 돌기둥처럼만 보인다.
이 마을에 때따라 풍물가락이 울려 펴졌을 옛적에는 이 남근석에도 사람들의 삶과 기원이 푸짐하게 얽혔을 터이지만 이제는 마을 사람들과의 관련이 모두 끊긴 채 옛이야기처럼 저 혼자 밭둑에 서 있다. 마을에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옛날 마을에 돌림병이 심하고 민심이 흉융해지자 마을 어른들이 마을의 형상이 여자의 음경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마을 입구에 남근석을 세워 지세의 기운을 누르고자 하였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만든 남근석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전북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와 산동리 팔왕마을에 민속자료 14호, 15호로 각각 지정된 남근석이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남근석 앞에 간소한 재물을 차려놓고 절을 하며 빈 다음 남근석을 쓰다듬거나 올라타 배를 대고 비비면서 성교 동작을 하는 예가 있다.
이상의 기자암이나 남근석은 모두 암석의 제상징성 위에 남근의 생식과 풍요의 상징성이 결합된 예라 하겠다.
금성, 청풍, 수산 등 3개면에 걸쳐있는 금수산(해발 1,016m)은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산세가 처음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다. 성내리에 위치한 동산(해발 896m)은 아기자기한 암릉과 기암괴석이 일품이다. 무암사 주면 등산로를 따라 남쪽으로 오르면 산 능선에는 장군바위, 낙타바위, 칼바위가 소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고, 어른 키 두배 만한 거대한 남근석이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하고 있다.
마치 칼로 도려낸듯한 반듯한 바위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있는 옥순봉과 기암괴석의 진수를 보여주는 구담봉은 배를 타야만 볼 수 있는 비경이다. 비단에 수를 놓은듯 수려한 금수산은 또 어떤가. 탑처럼 층층히 쌓여있는 바위, 물속에 머리를 넣은 거북이 형상, 요상한 남근석 등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은 금강산을 유람한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
암석은 생명력, 견고성, 불변성, 생산력, 창조력, 신성성, 장수, 남성 등의 상징성을 지닌다. 따라서 일찍부터 돌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민간신앙이 있어왔다고 보여진다.
묘소의 각종 석물(石物), 경계석(境界石), 공물(供物)로 던져진 돌, 탑(塔), 석불(石佛), 비(碑), 기자암(祈子巖)도 모두 이와 관련이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인들은 석불의 코를 떼어 가루내어 먹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여기서 코는 물론 남성기(男性器)의 상징이 된다.
전국의 석불 및 마애불상의 콧날이 온전한 것이 별로 없는 것은 이러한 민간신앙의 소치이다.
석비(石碑)의 비명(碑銘) 가운데 남성과 관계가 깊은 글자를 파서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하여 자(子)·남(男)·문(文)·무(武)·인(仁)·인(人)·예(禮)·지(智)·용(勇)·검(劍)·필(筆) 등의 글자가 마모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민속 중 기자암이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남근석 가운데 그야말로 '터프 가이' 형의 좇바위에 해당하는 남근석이 임실군 덕치면 사곡리 자경부락에 있다. 1996년은 여성신문에 '성신앙 조형물'에 대하여 연재한 덕택에 유달리 조상들의 성신앙과 성풍속에 관한 강연 요청과 답사가 많았던 해였다.
나의 의도나 전공영역과 관계 없이 성문화에 관한 전문가 아닌 전문가가 되어버린 듯 싶을 정도였다. 1997년 2월 전주 '황토현문화연구회'의 요청에 따라 '한국미술사에 나타난 조상들의 성문화' 강좌와 전북지역 성신앙 민속유적지 답사를 가졌을 때였다. 정읍에서 순창을 돌아 임실군 사곡리에 도착해서 보니 , 아뿔사 마을 앞 들판에 있어야 할 남근석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앞에 세워 놓은 남근석 가운데 가장 힘이 좋게 생긴 터프 가이로 늘상 소개하던 그 물건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남근석이 세워진 주변의 논들은 모두 파헤쳐졌고, 농지정리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답사객들을 풀어 찾아나섰다. 다행히도 마을의 왼편 산기슭의 개울가에서 발견하였는데,두 동강으로 깨져 나뒹굴고 있었다. 그 버려진 현장에 둘러둘러서서 우리는 모두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연실색하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포크레인에 의해 무참히 깨어진 남근석을 보며 지금의 참담한 민족현실을 떠올렸다현재는 복원되어 약간 경사진 비탈논 가운데 서 있다. 사곡리는 임실군의 남서쪽 순창군과 인접한 곳으로 회문산을 끼고 있다. 회문산은 남부군으로 유명해졌지만 원래 길지와 명당이 많아풍수가의 관심을끄는 곳이기도 하다.
회문산의 높고 큰(德 ) 지세와, 재(峙 )를 많이 넘어야 한다 해서 덕치면이 된 것이다. 이곳은 노령산맥의 동쪽 경사면으로 전라도지역으로 보아서는 깊은 산악지대이고 곳곳에 분지를 이룬 지형이지만, 옛날에는 동서를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덕치의 북쪽에 인접한 강진은 순창에서 전주로 가는 27번 국도와 태인에서 임실로 가는 30번 국토가 만나는 지점이고, 남쪽으로 순창과 남원으로 나 있는 717번 지방도로가 만나는 곳이다. 특히 신라 때에는 경주에서 당나라와 교역하는데 주요 무역항이었던 줄포를 내왕하는 주요 요충지이기도 했다.
섬진강 상류인 이곳은 인근 강진에 섬진강 다목적댐을 막아 거대한 운암호가 형성되어 , 본래 지녔던 계곡 계곡의 아름다운 정취는 잃어버렸다. 임실군에서도 가장 오지가 덕치이다. 서쪽으로는 회문산이, 동쪽으로는 원통산이, 남쪽으로는 용골산 이 둘러 있고, 북쪽 강진에는 필봉산과 백련산이 가로막고 있다.
강진 갈담에서 현포로 가는 지방도로를 따라 2km남짓 남쪽으로 내려오면 사곡리가 나온다. 동쪽의 원통산을 배경으로 그리 크지 않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섬진강의 상류인 사곡천이 회문산 기슭을 따라 흐른다.
원통산 아래에는 서쪽 회문산을 향하여 세 개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고, 세 곳 마을과 이어있는 논밭의 들판 한중심에 남근석이 우뚝 서있다. 이 남근석도 현재는 동제가 없으며 밭두렁가에 외롭게 박혀 있다. 해질녘 이 남근석에서 원통산을 바라보면, 가운데 등그레한 산능선과 원통산 자락의 형국이 영락없는 여근곡을 연상시켜 준다 (위쪽사진:뒤로 보이는 산이 원통산 전경). 도로가에서 남근석을 향해가다 윈통산의 중심과 잘 맞추어 보면 남녀 성기가 정확하게 만난 지점도 발견하게 된다. | |
|
|
부산의 제왕바위
성교 형상을 한 것으로는 부산 남구 감만동의 제왕바위 등이 있고, 말 모양으로는 종로구 부암동의 붙임바위 등이 있다.
강력한 남성을 상징하는 말바위에 여자가 올라타고 엎드려 성교 동작을 취하면 잉태할 수 있다고 하며, 부암동의 부암(附巖: 붙임바위)이란 바위 표면을 둥근 돌로 문질러서 표면의 움푹 파인 부분과 돌을 밀착 시킨다는 말로 이는 모의적 성행위의 상징으로 돌이 밀착이 되면 잉태할 수 있다고 한다. |
용골산의 여근바위
용골산의 주변의 유래도 재미있다. 내룡마을에서 장구목재 못미처 오른편에는 옹씨들이 3백여호가 살았다는 집터가 있는데, 섬진강의 '두무쏘'에서 잉어를 잡아먹고 모두 죽었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장구목은 옛날에 지역주민들이 왕래하던 큰 길목이었으며, 원래 이름은 그 주변에 장군의 명당이 있어서 '장군목'으로 불려졌는데, '장구목'으로 이름이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내룡마을의 장구목가든 앞 냇가 가운데에는 큰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는 자라바위가 있고, 내룡마을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좋은 곳은 화강암으로 구성된 '요강바위'이다. 요강바위는 어른 1명이 들어갈수 있는 항아리처럼 움푹 패인 구멍이 있어, 옛날에 어른들이 소변을 보던 요강처럼 생겼다하여 요강바위, 또는 용이 승천하려고 용트림을 하던 '용틀바위'로 불린다고 한다. 또한 이 바위의 상단부에는 연꽃모양을 한 돌출부 3개가 있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있는 토끼같기도 하고, 또는 여성의 성기를 빼어 닮은 모습을 한 기암괴석이다. 바로 옆에는 자라모양의 자라바위가 있고, 강한 가운데 물결 무늬를 이룬 거대한 너럭바위위에는 여인들이 목욕을 한 뒤,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