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잡는 과메기 맛 눈길 잡는 해안 절경
동해 영일만의 동쪽 끝에는 호미곶이 기다린다. 호미곶에서 구룡포항을 거쳐 경주 땅의 감포와 대왕암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동해안 남부에서 첫손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그저 자연풍광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내가 나고 자란 이 땅에 대한 소회와 의미, 옛 선인들의 역사와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매력이다. 포항 땅에 들어서자마자 발길을 유혹하는 곳은 죽도시장이다. 특히 바닷가 사람들의 남다른 생활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추천할 만한 여행지다. 삶의 의욕을 되찾고픈 사람, 겨울철 별미인 과메기를 제대로 맛보고 싶은 사람, 싱싱한 해산물을 저렴한 값에 배불리 먹고 싶은 사람들은 죽도시장을 그냥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동해안 최대의 어시장이자 재래시장으로 꼽히는 죽도시장은 언제나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서는 과메기를 비롯해 문어 고등어 아귀 상어 개복치 곰치(물곰) 도치(심퉁이) 도루묵 양미리 명태 대게 고래고기 등 우리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국제협약에 따라 포경업이 금지된 뒤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고래고기가 미각을 자극한다. 하지만 굳이 무언가를 맛보거나 사지 않더라도 왁자한 장터를 구경하는 일은 신선한 재미다.
포항시내에서 호미곶으로 가려면 31번 국도를 타고 구룡포 방면으로 가다 동해면 소재지 부근에서 925번 지방도로 갈아타야 한다. 여기서 호미곶까지 20여 km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끊임없이 구불거림과 오르내림이 되풀이되는 꼬부랑길이다. 길의 굴곡이 잦아들 즈음 완만하고도 부드러운 언덕이 눈앞에 펼쳐진다. 제주도 어느 바닷가 구릉지를 닮은 이 땅덩이가 바로 한반도 남녘의 동쪽 끝인 호미곶.
유일무이한 호미곶의 등대박물관 관람 필수코스 동쪽으로 툭 불거진 호미곶은 한동안 동해의 아침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곳으로 알려졌다. 근래 들어 울산 간절곶의 일출시간이 호미곶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새해 첫날 해돋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현재 호미곶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등대와 함께 유일무이한 등대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6층 건물 높이인 호미곶 등대는 1903년 12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혔다. 등대 옆에는 1985년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등대박물관이 있어 등대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호미곶을 뒤로하고 구룡포항으로 가는 해안도로에서 만나는 작은 포구와 갯마을의 풍경은 아늑하고 정겹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는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바닷가 곳곳에 과메기 덕장이 빼곡하게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름철 내내 피서 인파로 들끓던 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도, 갯바위에 위태롭게 올라앉은 민가의 비좁은 마당도 온통 과메기 덕장으로 탈바꿈했다.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과메기에는 웬만한 건강식품 못지않게 단백질, 핵산, 비타민, 무기질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 구룡포항에서 경주 대왕암까지의 동해안은 31번 국도가 이어진다.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풍광이 시 한 구절이나 영화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서정적이다. 길게 휘어진 모포 해변과 아담한 양포항을 지나면, 어느덧 경주 땅의 감포항을 지나 봉길리 해변에 이른다. 이 해변 앞바다에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이 있다.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돼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높고 귀한 뜻이 서려 있기 때문인지, 대왕암 주변의 바다에는 유난히 안개가 자주 깔린다. 짙은 안개에 휩싸인 대왕암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광경은 경외감과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봉길리 초입의 대본삼거리에서 14번 국도를 따라 경주 쪽으로 0.5km쯤 가면 감은사지 어귀에 도착한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682년 완공했다는 감은사의 옛터에는 한 쌍의 삼층석탑(국보 제112호)만이 우두커니 서 있다. 현재 대대적인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제 모습을 감상하기 어렵다. 대본삼거리에서 감은사지 어귀를 지나 포항시내로 들어가는 14번 국도변에는 골굴사와 기림사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석굴사원인 골굴사는 무술을 통해 수행하는 선무도의 본산이다. 그래서 ‘한국의 소림사’라 불리기도 한다. 골굴사에서 십 리쯤 떨어진 기림사는 광복 전까지만 해도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고찰이다.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대적광전(보물 제833호)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기림사의 녹록지 않은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절집 분위기도 차분하고 한갓진 편이다. 특히 느티나무 우거진 초입의 숲길이 운치가 그윽해 자분자분 걸으며 사색하기에 좋다. |
'여행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가 갈라지는 원시의 갯벌 섬 (0) | 2009.07.13 |
---|---|
3색 절경의 동해안 고성여행 (0) | 2009.07.13 |
‥철새들의 화려한 群舞…예술이 따로 없네 (0) | 2009.07.13 |
명주(銘酒) 한잔으로 따뜻해지는 겨울여행 4선 (0) | 2009.07.13 |
붉은 노을 토해낸 바다위 연꽃 (0) | 2009.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