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산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고개가 조령이라 부르는 새재이고 남쪽의 이화령은 일제때 새로 닦은 길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이화령을 문경새재로 잘못 알고 경우가 많다. 이화령(梨花嶺)도 일제때 일본인들이 지형도를 만들면서 한문을 잘못 사용했다. 본래의 이화령은 한문으로는 伊火嶺 이다. 새재에는 본래 관문이 없었으나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들의 제의에 따라 선조와 영의정 유성룡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선조26년(1593년)에 새재 세군데에 관문을 쌓자는 안이 나왔고, 새재의 지세에 밝은 충주출신 수문장 신충원이 관문을 쌓게 되었다.
오늘의 새재는 1974년부터 3년에 걸쳐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에 누각을 올리는 등 옛모습대로 복원했고, 10km의 오솔길을 확장하여 공원화했다. 새재에서는 광해군5년(1613년) 4월에 상인이 도적에게 은 수백냥을 탈취당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도적이 많이 출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새재를 넘으려면 옛날에는 도적에게, 지금은 공원관리사무소에 돈을 바쳐야 고개를 통과할 수 있다.
조령산 등산은 이화령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체로 조령산 등산을 할 경우 이화령에 사람들을 내려 놓고 그리고 버스를 다시 되돌려 절골 입구 신풍마을 조령휴게소 주차장에서 조령산을 넘어오는 등산인들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백산의 등허리인 이화령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뚜렷한 산길을 따라 1시간 가량 올라가면 동쪽 조령제1관문으로 뻗어내린 능선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를 밟게 된다. 이 삼거리에서 대개 휴식을 취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쉬는 것보다는 불과 3 - 4분 거리인 억새밭까지 더 올라가는 것이 좋다. 삼거리에서 조금 더 올라간 억새밭 한가운데에 샘터가 있다. 조령샘을 뒤로하면 키를 넘는 억새밭을 지나 어둠침침한 잣나무밭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급경사를 이뤄 다소 힘이 드는 잣나무밭 수림속을 뚫고 10분 거리에 이르면 100여평쯤 되는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에서 북쪽 정상을 바라보며 7 - 8분 가량 올라가면 '백두대간 조령산'이라 음각된 돌비석이 반기는 정상이다. 정상에서 북으로는 톱날인듯 날카로운 조령산 주능선 너머로 신선봉 마패봉 그리고 멀리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 방향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는 부봉 월항삼봉 만수산 포암산 등이 그림인듯 펼쳐져 보이고, 동으로는 마치 초가지붕처럼 보이는 주흘산이 손에 잡힐듯 시야에 와닿는다. 주흘산 아래로는 상초리에서 혜국사로 이어지는 새로 닦은 차도와 함께 제1관문에서 제3관문으로 이어지는 문경새재길이 실낱처럼 내려다 보인다.
정상에서의 하산길은 북쪽 능선길로 40분이 소요되는 안부 갈림길에 이른 후 서쪽 아래 신선암을 바라보며 절골로 내려서면 된다. 그러나 절골 하산로는 등산이들의 발길이 너무 잦아 신선함이 다소 퇴색된 것이 흠이다. 이 때문에 절골로 내려서는 안부에서 북으로 1km 거리인 신선암 동쪽의 아름다운 암봉을 넘어 새로운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서 서북쪽으로 패어내린 한섬지기계곡길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한섬지기계곡길은 아직 태고적 자연미가 살아 있는데다 마치 초록빛 융단을 깐 듯한 산죽군락과 맑은 계류가 은빛 구슬을 쏟아내리는 널찍한 반석지대가 나타나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조선 숙종 45년 6월 실록 기사에 새재의 수목이 무성해서 관의 제목으로 쓰기 위한 밀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 조령산 일원의 울창한 수림을 알 수 있는데, 바로 한섬지기계곡 수림 속을 걷다보면 수백년 전 세월로 거슬러 올라간 신비감에 도취되게 된다. 그만큼 한섬지기계곡은 수림이 빽빽하기 이를데 없다. 이화령을 출발, 정상과 신선암 동쪽 암봉을 넘어 한섬지기계곡으로 내려서는 총 산행거리는 약 10km로, 산행시간은 4시 간30분에서 5시간이 소요된다.
※ 겨울철 초봄 산행시 유의점은 정상에서 절골 갈림길에 이르는 급경사 능선길에 항상 눈과 얼음이 덮여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4발 아이젠과 스패츠 그리고 보조자일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이화령에서 조령산 신선암봉 깃대봉을 거쳐서 조령(세재)3관문으로 내려서는 구간에 급경사에는 자일이 빈약하게 설치된곳이 있으므로 주의하여야한다.
○ 이화령 - 조령샘 - 헬기장-정상 - 946 - 갈림길 - 마당바위(5시간 소요)
○ 이화령 - 조령샘 - 헬기장 - 정상 - 한섬지기계곡 (약 10km 5시간)
○ 이화령 - 조령샘 - 헬기장-정상 - 깃대봉삼거리 - 조령 제3관문(7시간소요)
[촛대바위릿지]
조령산 정상에서 서쪽 방향 절골로 벋은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을 촛대바위 릿지라 말하며 능선 중간에는 암봉이 줄지어 서있다. 이 능선은 절골에서 조령산 정상까지 가파르게 올라치며 중간에는 암봉이 있으나 위험구간에는 굵은 밧줄이 설치되어 노약자가 아니라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있는 코스이다. 별도의 특별한 장비가 필요치 않으며 초반부터 급경사를 이루기에 바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양손 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새들도 날다가 쉬어 간다는 조령산 정상께에서 서북쪽으로 흐르는 촛대바위리지는 초보자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산에 막 입문한 왕초보들도 경험자와 동행한다면 아주 즐겁게 등반할 수 있는 코스인 것이다. 촛대바위리지는 등산의 묘미인 야영생활과 걷기, 암릉, 그리고 조망 좋은 정상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인근의 산꾼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코스다. 절골을 출발해서 촛대바위, 정상까지 이르는 산행시간은 '왕초보'일 경우 3시간쯤 걸리며, 하산까지 한다면 총 산행시간 4시간에서 5시간이면 충분하다.
조령산(鳥嶺山·1,017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을 나누는 백두대간 마루능선을 이루는 산이다. 조령산은 신선봉(神仙峯·967m), 마패봉, 주흘산(主屹山·1,106m) 등 경관이 수려한 산들로 주변이 이루어져 있으며, 조령산과 신선봉 사이 안부에는 그 옛날 영남지역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다니던 가장 유명한 큰 고개의 하나인 조령(鳥嶺)이 있다. 조령은 대간 상에 최초로 뚫린 고갯길인 하늘재(계립령)를 대신하여 조선 태종 14년(1414)에 열린 새로운 고개로 새(new) 고개라는 뜻의 새재(New Road) 라고도 부른다. 이 조령을 품고 있는 웅장한 산이 조령산이다. 특히 조령산을 중심으로 북쪽은 월악산·문수봉·소백산 등으로 이어지는 고봉이 연속되며, 남쪽은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조령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해발도 높지만 해발 529m의 이화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조령산 등산코스는 여러 개가 있는데, 조령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긴 능선이 촛대봉 리지다.
수안보에서 문경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전통 한지로 유명한 괴산군 연풍면 신풍리가 나온다. 신풍리에서 조령산 방향으로 좁은 동넷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행 시작점인 기(氣) 수련원이 나오는데, 이 원극기수련원 바로 아래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수련원을 출발해 임도를 따라 300~400m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조그만 무덤이 나오는데, 이곳이 절골을 통해 조령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 촛대봉리지로 가는 갈림길이다. 이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임도를 벗어나 무덤쪽 산길로 접어들면 낙엽송으로 이루어진 숲길이 나오고 조금 오르다 보면 소나무숲으로 이루어진 멋진 등산로로 이어진다. 가파른 산길을 30여 분 오르다 보면 조그만 바위들이 나오고 15분 정도 더 올라서면 능선에 설 수 있다. 능선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는 연풍면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왼쪽으로는 조령산의 여러 능선들과 신선봉, 마패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능선 산행을 하다보면 2~3m 높이의 바위벽이 나타난다. 이 바위벽에는 나일론 로프들이 매달려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암벽으로 이어진 능선을 계속 오르다가 3~4m 높이의 암벽을 내려서면(로프가 매어 있음) 큰 바위벽이 나온다. 이 바위벽 왼쪽에 조그만 소나무 있는데 그 소나무 위쪽 크랙을 이용해 3~4m 등반해야 한다. 다 오르면 바로 뒤편 바위틈으로 3~4m 내려가야 하는데 매어져있는 자일을 이용하여 클라이밍 다운하는 것이 안전하다. 벽을 내려서면 다시 암릉으로 이어지며 이곳을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우회했던 길과 다시 만나 양옆의 멋진 소나무가 어우러진 완만한 바위능선길이 나오고, 이 능선길을 조금 걷다보면 전망 좋은 널찍한 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 앞쪽에 우뚝 솟은 바위가 촛대바위다. 촛대바위는 조령산 신선암에서 암벽등반을 하면서 쳐다보면 꼭 뾰족한 촛대처럼 느껴져 촛대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경치 좋은 널찍한 바위에서 다리쉼하고 바로 20여m 바위벽을 내려가야 하는데, 이곳에도 나일론 로프가 매어져 있다. 이 로프를 이용해 클라이밍다운해도 되고, 아니면 바위벽의 소나무를 이용하여 하강해도 된다. 이 바위벽을 내려서 오른쪽으로 조금 우회하면 촛대바위로 올라가는 경사가 완만한 바위벽이 나온다. 이 바위벽에도 로프가 매달려 있다. 이 로프를 이용해 바위벽을 올라서면 바로 촛대바위다. 촛대바위를 지나면 멋들어진 소나무숲과 암릉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계속 이어지고 10여 분 더 걸으면 5~6m 바위벽을 내려가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도 나일론 고정로프를 잡고 클라이밍다운하면 된다. 이곳을 지나 소나무와 철쭉나무가 뒤섞인 능선길이 나오면서 암릉은 끝난다. 이후 10여 분 더 내려가다 왼쪽 갈림길로 접어들어 30분이면 절골 야영터로 내려선다. 야영터에서 계곡을 따라 30여 분 더 내려가면 등산 시작점인 수련원이다.
갈림목에서 계속 능선을 따라 40여 분 더 오르면 1,017m의 조령산 정상이다. 조령산 정상에서 조령 제3관문쪽 백두대간 주능선을 따라 10여 분 걷다보면 왼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 하산길로 20여 분 내려가면 옛날 절터(상암사터)가 나타나고, 20여 분 더 내려가면 조령산 절터 야영장(신선암 암벽등반하는 산악인이 이용하는 야영장)에 닿는다. 물줄기 두 가닥이 만나 수량이 넉넉하고, 소나무숲이 우거진 아늑한 야영장이다. 야영장에서 계곡을 따라 30여 분 내려가면 수련원에 도착한다. 조령산 촛대봉코스는 소나무와 철쭉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암릉등반 초보자들도 좋은 경치를 즐기며 산행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코스다.
1. 신풍리~기도원~기수련원~무덤~능선~촛대바위~갈림길~절골야영장~기수련원 <3시간30분 소요>
2. 신풍리~기도원~기수련원~무덤~암릉~촛대바위~조령산 정상~상암사터~절골야영장~기수련원 <4시간 소요>
3. 이화령~조령산 정상~촛대봉능선~무덤~기수련원 <4시간 소요> [월간 산 글·사진= 김영식 충북산악연맹 전무이사]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인 조령산은 행정구역상 충북 괴산군 연풍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속한다. 백두대간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맑은 날 정상에서는 속리산 문장대, 월악산 영봉, 주흘산 등을 볼 수가 있다. 조령산 서쪽의 절골에서 시작하는데 들머리는 절골마을을 지나 첫번째 무덤 위로 오르는 길이다. 절골마을까지 차량 접근이 가능하고 야영지 조건이 좋아 1박을 한 후에 산행해도 좋다. 도중에 샘이 없으므로 물은 야영지에서 준비하면 된다.
[등반길잡이]
조령산 촛대바위리지는 산에 입문한 지 얼마 안되는 사람도 리지등반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암릉이다. 초입의 완경사를 제외하고는 급경사이므로 처음부터 무리하게 오르면 초보자는 시작부터 지칠 수 있다. 완급조절을 잘해야 한다. 필요한 장비로는 20m 보조자일 1동과 예비 테이프슬링 3m를 준비하면 된다. 안전벨트나 기타 개인 암벽장비는 없어도 된다. 전구간이 어렵지 않은 초급자용이지만 만약을 위해 반드시 경험자를 동반해야 한다. 촛대바위를 지나면 좌측으로 난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들이 나오는데 비상시 절골로 내려가는 탈출로로 이용하면 된다. 초입에서 촛대바위까지는 경험자들의 경우 2시간, 초급자를 포함한 4인의 경우 3시간쯤 걸린다. 촛대바위에서 조령산 정상까지는 30분에서 1시간쯤 걸린다. 정상에서는 조령3관문과 이화령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백두대간 줄기 중간중간에 동쪽의 1관문인 주흘관과 서쪽의 절골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조령산에는 등산코스가 여럿 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코스가 조령제3관문을 출발하여 성터를 지나 정상을 거쳐 이화령으로 빠지는 종주 코스다(약 6시간 소요). 능선 종주코스 외에도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절골코스, 촛대봉코스, 한섬지기계곡코스, 한섬지기북릉 - 813m봉 - 정상코스, 제1관문 위 마당바위 기점 코스 등 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다양한 코스 가운데 절골 - 촛대봉암릉 - 정상 - 신선암 남쪽 절골로 이어지는 코스를 권한다. 아기자기한 암릉을 타고 정상에 올라 충주 문경 일대의 산을 둘러본 뒤 정상에서 북릉을 타고 신선암 안부로 내려선 다음 아늑한 절골을 따라 내려가면 산행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령산 산세를 웬만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형적인 원점회귀형 코스이기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에도 편리하다. 이 코스는 5시간 정도 걸리는데, 겨울철 암릉에 눈이 많이 쌓여 있을 때는 보조자일을 꼭 지참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신선암으로 내려서기 전 능선을 타고 조령(약 3시간 소요), 813m봉 - 한섬지기코스(약 2시간 소요)도 권한다. 대부분의 코스가 바위지대를 지날적이 젖고 빙판 진 구간이 많으니 겨울철 조령산을 찾을 때는 보조자일과 아이젠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이화령 - 조령산 - 신선암봉 - 조령(3관문) - 마패봉 - 탄항산 - 하늘재(16.6km) : 백두대간]
이화령에서 올라 조령을 넘어 하늘재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방향이 여러번 바뀌고 암릉이 자주 나타나서 주의가 필요하다. 조령산에서 조령3관문까지는 용아릉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가파른 형세가 불끈불끈 치솟아 있다. 대간의 좌우로는 무척 가팔라 능선 자체가 거대한 성채처럼 보인다. 조령3관문에서 하늘재까지는 다소 평이한 등산로다. 간혹 어려운 구간이 나타나지만 한두 곳만 조심하면 무리없이 운행할 수 있다. 조령산 암릉 특히 3월에는 해빙기라 눈이 녹아 암릉이 완전히 빙판길이 된다. 여름에도 암릉은 초보자에게 무리일 수 있을 정도로 험하다. 경험자를 필히 동반해야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이화령휴게소, 조령샘, 조령관(제3관문), 약수터, 동암문 서쪽 100m 아래 계곡, 하늘재이다.
이화령에서 하늘재까지는 17km 정도 되지만 부지런히 걸으면 11시간 정도 걸려 종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암릉이 험하니 무리하지 말고 이화령에서 조령까지, 조령에서 하늘재까지 1박2일로 나눠서 하는 게 좋다. 이화령에서 문경새재 마루인 조령관(제3관문, 643m)까지는 6시간 정도 소요되고, 조령관에서 하늘재까지는 5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겨울이나 악천후시는 자일을 준비해야 한다. 운행시간도 곱으로 늘어날 수 있다. 조령관에서는 식수와 간식을 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새재 길을 내려서면 조곡관을 거쳐 주흘관에 이르고 도중에 태조 왕건 촬영장을 구경할 수 있다.
고개를 오르는 3번 국도는 조령산 자락을 넘나들 듯 구비구비 돈다. 세월 따라 강천이 변하듯 이화령(548m)도 새롭게 들어선 터널(99년 준공)에 임무를 모두 떠 넘긴 탓인지, 국도에는 차 한대 보이지 않는다. 북쪽으로 난 등산로 입구에 접어들기 전에 '영남의 관문 이화령' 이 새겨진 표지석을 만난다. 이화령과 조령3관문 사이에 위치하는 조령산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며 백두대간의 한 맥을 형성하고 있다. 등산 안내판 앞을 출발하여 능선 옆 사면으로 잘 나 있는 길을 따라 너덜지대를 지나서 자그마한 돌탑들이 있는 비탈을 가로지른다. 얼어붙은 길은 조심하지 않으면 크게 자빠질 판이다. 산은 이상할 정도로 적막감이 돈다.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더욱 평온함을 부채질한다.
30여분 정도 가볍게 발길질을 하자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위로는 폐타이어로 축을 쌓은 헬기장이 평원을 이루며 눈에 파묻혀 있다. 몇 발자국 밟아 보았던 마루금을 이탈하여 비탈면에 있는 등산로를 오르다 좌측으로 돌자 곧바로 조령샘(870m)이다.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한 조령샘은 겨울임에도 마르지 않고 호수를 통해 물이 흐른다. 식수를 챙기고 얼음이 깔린 완만한 등산로를 오르자 마루금을 앞에 두고 소나무 수림지대가 나타난다. 빽빽한 소나무 숲을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오르는 이곳은 '깔딱고개' 라고 불릴 정도로 올라서기에 힘이 부친 곳이다. 가파른 설사면은 북을 치듯 심장 박동을 몰아세우며 거친 숨을 쉬게 한다. 9시10분이 되어 전망이 좋은 두번째 헬기장에 도착했다. 눈에 덮인 평지는 커다란 커니스를 이룬다. 남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백화산의 마루금이 하얀 선을 이루며 지리산을 향해 가고 있다.
백두 대간은 태백산을 거쳐 소백산에 이르고 문경권에 접어들어 대미산과 포함산을 비롯해 부봉, 조령산, 백화산, 희양산, 대야산 등 수많은 산자락을 빚어냈다. 이 산자락의 세 곳에 고개가 있으니, 이미 지나온 이화령이 첫째이고, 또 하나는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에 있는 새재이며, 마지막이 관음리의 하늘재이다. 이 고개들은 문경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막바지 힘찬 걸음을 하자 조령산 정상(1,026m)이다. 정상다움을 만끽하지 못할 평이한 봉우리다. 눈을 파헤치자 정상의 표지석은 끝머리만 살짝 보일 뿐이다. 1m 넘게 쌓인 눈은 커니스를 이루고 있다. 그만큼 바람이 세찬 곳이 조령산 줄기다. 바람에 흔들리는 무수한 표지기가 이채로울 뿐이다.
동쪽으로 조령 제1관문에 내려서는 방향으로 서원대학교 산악부에서 세운 고 지현옥 산악인을 추모하는 비가 눈에 띈다. 북동쪽으로 부봉 6개의 암봉이 아름답게 솟아있다. 조령산 정상을 지나 잠시 내려서 왼쪽 능선으로 이어진 백두 대간을 따라 지나간다. 눈덮힌 칼날능선이 산의 멋을 한껏 부리며 취재진을 유혹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이었던가? 감상에 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취재팀은 거친 암릉을 겹겹이 누른 빙판길을 내려서며 삶과 사의 기로를 넘나들 듯 정신을 바짝 차릴 수 밖에 없었다. 다들 시도 때도 없이 빙판 위에 쌓인 눈덩이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대로 미끄러진다. 착용한 아이젠도 무릎까지 쌓인 눈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계곡에서 솟구치는 매서운 바람에 쫓겨 미끄러지듯 사납게 날을 세우고 있는 비탈길을 내려가 914m봉을 지난다.
신풍리와 새재주막으로 나눠지는 갈리길에 다다른다. 제3관문까지는 4km나 남아 있다. 벼랑을 내려서며 붉게 힘줄이 돋아날 듯 밧줄에 매달린 팔뚝이 파르르 떠는 순간 가가스로 위험구간을 벗어난다. 조령산에서 뻗어온 줄기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백두 대간의 한 맥임을 과시한다. 주흘산은 동쪽에서 두 팔을 벌려 깊은 품을 내보이며 뛰어내리면 감싸 안아줄 것만 같다. 바위의 홀드를 잡고 넘어서니, 태조 왕건 촬영장이 장난감처럼 내려다보인다. 70도 정도 경사를 이룬 비탈길을 내려선다. 내뻗는 발길마다 조바심과 안도감으로 철로를 달리는 기차 바퀴처럼 박자를 맞추며 거친 숨을 몰아쉬게 한다. 드디어 눈앞에 잘록이를 사이에 두고 신선암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내려가는 게 문제네" 장병희 사진기자의 말대로 조령산의 빙릉은 생명까지도 위협할 양 위험천만하게 취재팀을 몰아세우고 있다.
길이 눈에 묻혀 오로지 표지기만 보고 마루금을 지나간다. 어느새 눈앞에 신선암봉의 바위자락이 치마를 두른 듯 펼쳐진다. 가파른 신선암봉을 오르자 산죽이 한아름 주위를 반기며 정상으로 이끈다. 정상을 지나 바위틈을 비집고 몇 개의 거봉을 넘어, 굵은 밧줄을 타고 암벽을 오르자 신선봉이다. 내려서는 길은 매한가지다. 몸은 미끄러지고 나무를 붙들며 제동을 건다. 오르락내리락 하던 중 갑자기 40m 가까이 내리뻗은 가파른 설사면이 나타난다. "여기가 가장 위험해요. 사고가 많이 나거든요." 박경일씨 주의에 따라 조심한다. 급격한 비탈은 온통 눈과 빙판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밧줄에 힘을 주고 내려서자 평평한 안부가 길을 연다. 다시금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3시가 다 되어 부봉을 마주하는 전망 좋은 바위에서 산줄기를 올려다본다. 북쪽으로는 월악산의 중봉, 영봉, 만수봉, 포암산, 부봉이 보인다. 깃대봉에서 우측으로 회전하여 널찍한 전나무숲을 통과하자 조령산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인적이 없이 자그마한 통나무집만 '오서옵쇼' 하고 반길 뿐이다. 휴양림을 빠져 나오자 조령관(조령3관문)이 바로 위다. 밤 새워 눈 내린 새재를 오르는 길이 미끄럽다. 산 아래는 비가 내렸던 터라 기대하지 않던 설화가 조령산 주변의 풍경을 운치있게 한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라는 의미에서 새재라 불리는 이 재는 백두 대간의 조령산의 넘어,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 경상도에서 공물을 거두어 낙동강 가의 나루에서 배에 싣고 문경까지 올라와 문경에서 짐승이나 사람 등에 짐을 지워 새재를 넘어 충주까지 가져다 주면, 충주에서는 다시 배로 남한강을 따라 한양으로 실어 갔던 것이다. 그런 만큼 문경새재는 높이가 642m인 고개로 험했지만, 그때에는 경상도의 물산을 주로 실어나가던 지금의 경부고속도로에 견줄 만한 길이었다. 조령3관문 성벽을 좌로 두고 돌아 등산로가 백두 대간을 따른다. 10여분 오르자 묘지가 눈에 덮여 있다. 단숨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던 마패봉 정상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바위는 축축이 젖어 해빙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잘록이를 지나자 바위를 올라서는 짧은 줄이 매어있다. 힘겹게 중심을 잡으며 바위를 올라선다. 그러나 암벽 위에 또 하나의 밧줄이 꽁꽁 얼음에 얼려 있다.
조령관 성벽을 밟고 올라선 곳, 마패봉(920m, 일명 마역봉)이다. 감탄사가 연이어 발한다. 곧바로 동쪽으로 급격히 등산로가 휘어진다. 단조로운 설릉이 계속된다. 급경사가 나타나도 어제와 달리 얼음이 눈밑에 깔리지 않아 오히려 눈썰매 노릇을 한다. 동쪽 능선을 밟고 내려서자 성벽이 능선을 흐르는 북암문이다. 성터의 흔적은 눈에 덮여 통로만 움푹하게 남아있다. 바람이 불지만 햇빛은 전날과 달리 따스하다. 북암문을 지나 급경사를 이룬다. 성벽도 한참 따라 오른다. 15분 정도 오르다 내리막이다. 동쪽 능선을 타고 올라 동암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 월항재가 나오고, 서쪽으로 가면 조령제3관문 바로 아래다. 북암문과 달리 높게 쌓인 성벽 아래에서 바람을 피해 간식을 먹고 성벽을 따라 부봉을 향한다. 성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좀더 올라서니 부봉 1봉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동쪽 주흘산쪽 방향 능선을 따라 빙판 길을 오른다. 곧이어 밧줄이 설치된 암벽이 나타난다. 오른편으로 돌아서자 또 하나의 밧줄이 위험한 구간에 설치되어 있다.
능선에 올라서자 1봉부터 부봉이 바위를 둘러서 솟아있다. 959m봉에 도착한 것은 거의 한시가 다 되어서다. 최태영씨의 주의에 따라 급경사길을 조심스레 내려선다. 거의 70도에 가깝다. 그러나 수복이 눈에 덮여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속도는 마치 날샌 제비와도 같다. 그렇게 눈 위를 미끄러지며 내려서니 곧 평천재(월항재)다. 이곳은 동암문이 직선으로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다. 월항 1봉, 2봉을 지나 3봉을 향해 걷는 동안 내내 뒷골이 따갑다. 바로 주흘산이 등뒤에서 활을 겨누듯 웅장한 줄기를 뻗치며 치솟아 기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탄항산(856.7m, 월항3봉)을 오르자 포함산(961.8m, 일명 베바우산)이 하늘을 향해 가득 솟구치며 마치 큰 베를 펼쳐 놓은 듯 하얀 바위살을 드러내며 눈길을 취하게 한다. 월항3봉을 넘어서 바위틈 사이를 지나면 비문을 새기면 맞춤이다 싶을 바위가 한면이 칼로 자른 듯 납작하게 우뚝솟아 있다. 아직 정과 망치의 위협을 받지 않음이 신기하다 싶을 정도다.
잘록이를 지나 완만한 능선을 오르자 하늘재를 앞두고 마지막 봉우리가 봉긋하다. 부풀어 오른 흙이 눈을 녹이고 물을 먹은 모래가 머리를 내미는 폼이 힘든 발걸음을 녹여줄 듯 포근하다. 이파리가 봄을 알리듯 울창하다. 조망 또한 막히는 곳이 없어 멀리 월악산 박쥐봉까지 산세가 그대로 드러난다. 내려서는 길목에 왼편으로 전나무 숲이 울창하고 오른편으로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다. 좌측으로 길을 따라 내려서자 탄항산과 포함산 양쪽의 능선이 내려와 안장을 이루고 있는 하늘재(525m, 계립령)에 발을 들여놓는다. 하늘재는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와 백제의 세력이 북진과 남진을 되풀이한 전략의 요충지로 나라 안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다. 옛 모습을 간직한 성벽이 고개마루에는 남아 있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극명하게 보여주듯, 문경에서 오른 아스팔트는 하늘재 백두대간 마루금을 넘지 못하고 흙길이 되어 충주 땅으로 이어진다. 예 고개의 모습을 간직한 비포장길을 따라가면 대규모의 석실금당이 조성된 국내 제일의 사원인 미륵대원이 나타난다.
이곳 계립령은 바로 문경 관음리에서 충주 미륵리로 가는 재다. 즉 관음세계에서 미륵세계로 가는 길목이 바로 이곳이다. 한편으로는 불교 문화가 전해지는 길목이기도 했던 계립령 주변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어 이곳이 신라시대부터 불교의 한 성지를 이루었음을 보여 준다. 미륵의 세계로 쏠리는 몸을 애써 외면하고, 지나온 흔적이나마 그곳을 넘나들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하늘재를 뒤편에 두고 문경에서 아스팔트를 올라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에 올라탄다. 미륵의 문간에 다다르기를 다음 기회에 나마 기대해보며 관음리의 넓은 맛이 든 평지를 향해 내려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