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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요정’ 나도수정초 만나다
김영선 선배와 숲해설사들이 엎드려 사진을 찍고 있다. 멀리서 보면 흰 버섯 같은데 다가서서 보면 고무로 만든 것 같은 섬세한 순백의 꽃이다. 여느 꽃과 모양새가 확연히 틀리다. 나도수정초라는 희귀식물이며 숲해설사들도 처음 본단다. 낙엽의 부엽 성분에 의존해서 살아가기에 부성생물이라고도 하며 그늘진 곳에서 발견된다 하여 ‘숲 속의 요정’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요정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투명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돌아가며 연신 사진을 찍는다. 금원·기백은 이렇듯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덕유산과 지리산 같은 유명산 사이에 있어 찾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단조로운 걷기가 지루해질쯤 열린 경치가 반가운 전망데크다. 넘어야 할 기백산 바위봉우리가 뾰족하여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발아래엔 시흥골이 부드러운 굴곡을 이루며 흘러내렸다. 싱싱한 초록물결 너머엔 황석산과 거망산이 막강한 성벽처럼 한 세상을 막고 있다. 긴 마루금을 바라보면 토끼 귀처럼 뾰족 튀어나온 쌍봉에서 시선이 멈추게 된다. 황석산이다. 감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눈으로 충분히 음미할 만한 풍경이다.
- ▲ 용추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에서의 휴식 같은 저녁을 즐긴다.
- ▲ 용추계곡을 대표하는 명물인 용추폭포의 위용.
- ▲ 용추계곡 상류 트레킹은 시원하고 짜릿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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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던 바위 봉이 눈앞이다. 우회로가 있지만 바위를 오른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바윗길로 들어선 것이다. 잔잔한 슬랩이 이어지지만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다. 경치보다 눈길을 끄는 건 흑염소다. 아랫마을에 흑염소를 키우는 곳이 있고, 몇 년 전까지 야생염소가 없었던 걸 감안하면,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야생성을 갖게 된 듯하다. 암수 한 쌍이 위태로운 바위를 잘도 오르내린다.
금원산 쪽을 되돌아보면 정상에서 거창으로 흘러내린 사면에 둥근 슬랩지대가 보인다. 금원암 혹은 원암이라 불리는 금빛 원숭이를 가두었다는 바위다. 멀리서도 대번에 눈에 띌 정도로 큰 바위다.
- ▲ 용추사 철다리를 지나 상류로 간다. 수심이 얕은 편이라 계곡 트레킹에 알맞다.
- ▲ 용추폭포 상류의 화려한 암반지대.
- ▲ 누룩덤 옆 암봉에서 본 금원산 줄기. 금원~기백은 부드럽고 우아한 몸짓의 산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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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봉을 내려가는 길이 위태로워 다시 되돌아가 우회로로 지나간다. 기백산의 진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누룩더미를 닮았다 하여 ‘누룩덤’이다. 누룩반죽을 닮은 바위가 맷돌처럼 여럿이 포개져 있다. 밑단을 받치고 있는 바위가 하나만 빠져도 누룩덤이 무너져 큰 산사태가 날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도 흔들림 없다. 마치 거인이 공들여 쌓은 돌탑 같다. 다만 곳곳에 염소 똥이 쌓여 있어 냄새가 진동해 오래 머물긴 어렵다.
누룩덤을 내려와 150m만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 왔다는 성취감은 짜릿하지만 경치의 스케일은 누룩덤에 밀린다. 도숫골로 산을 내려선다. 기백산의 옛 이름은 지우산(智雨山), ‘비의 징조를 안다’는 뜻이다. 기백산의 구름이나 안개의 변화를 보고 사람들이 날씨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지우산에서 날씨를 가늠한다. 먹구름이 오는 것인지 가는 것인지, 읽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