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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천상화원이에요. 쉿~, 조용히 걸으세요. 모시나비가 날아가요.”
- ▲ 천상화원이란 이런 풍광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금대봉 북릉 상의 동산 같은 언덕배기에 눈꽃처럼 아름답게 만개한 전호 군락. 이 일대에서는 6월 중순 지는 야생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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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뚫고 나가자 대덕산(大德山·1,307.1m) 초원 산봉이 달덩이처럼 떠오른다. 산봉은 초록빛에 갖가지 야생화로 꽃밭을 이룬 채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 위에 모시나비와 호랑나비가 훨훨 날아다니다 ‘이 꽃이다’ 싶으면 살포시 내려앉았다.
대덕산은 덕스런 산봉이란 이름을 지닌 산답게 웅장함에 부드러움이 더해지고 조망 또한 대단하다. 매봉에서 오전 나절 걸었던 쑤아밭령에서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뿐만 아니라 그 뒤로 함백산(1,572.9m)에 이어 태백산까지도 한눈에 들어왔다.
“눈빛승마가 활짝 피면 여름 산에 눈이 내린 듯 아름다워요”
“오늘은 검룡소주차장 기점 원점회귀 산행이에요. 굴골을 거슬러 쑤아밭령으로 올라서는 길은 지난해 가을 새로 났어요. 아직 매스컴에 알려지지 않은 코스인데 걱정이네요. <월간山>에 소개되면 엄청 몰려들 텐데…. 힘들진 않을 거예요. 주차장 높이가 이미 해발 880m쯤 되니까.”
- ▲ 1 검룡소주차장에서 굴골로 이어지는 현수교. 2 원시적 분위기를 자아낼 만큼 숲과 식물이 우거진 굴골. 3 백두대간을 따라 금대봉을 향해 오르는 등산인. 4 쑤아밭령. 고개를 기점으로 북쪽 물줄기는 한강으로 흘러들고, 남쪽 물줄기는 낙동강 물줄기를 이룬다. 태백시내 쪽 화전 사람들은 창죽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창죽령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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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산악인 김부래(72·숲해설사)씨는 새벽녘 검룡소주차장에 도착해 비박하다 막 깨어난 일행 세 사람에게 쑤아밭령 코스가 알려지면 호젓한 산길이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엄살을 부린다.
검룡소주차장에서 개울 건너 굴골로 들어서는 순간 뻐꾸기 울음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온다. 김부래 숲해설사는 “나 여기 있다”며 짝을 찾는 소리란다. 지금 서울은 영상 32℃. 폭염에 가까운 날씨다. 그러나 백두대간 기슭의 숲은 대기의 뜨거운 기운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여름이 다가오는데도 선선한 봄을 고수하려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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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눈빛승마가 피어 있네요. 저 꽃이 활짝 피면 눈꽃송이 같아요. 한여름 설경처럼 진풍경을 이루죠. 어라 저기 수정난도 있네. 보기 힘든 식물인데-.”
막 꽃봉오리가 피어난 노랑물봉선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짓고, 벌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초록색 잎이 분홍빛으로 변하고 진한 향기를 내다가 잎에 가린 작은 꽃이 수정을 끝내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쥐다래 얘기를 듣노라니 어느 새 쑤아밭령(해발 1,120m), 백두대간이다.
대간에 올라서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울어대는 벙어리뻐꾸기 소리는 산세를 더욱 깊게 꾸며 주고, 금대봉 쪽으로 오를수록 숲 또한 심연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듯 점점 짙어진다. 그러다 아늑한 숲의 분위기에 홀려 엉뚱한 곳으로 내려서다 일행을 만나 방향을 잡은 속초 등산인 부부와 함께 금대봉(金臺峰·1,418.1m) 정상에 올라서자 울긋불긋한 등산객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야생화 천국 금대봉에서만큼은 등산객도 한 명 한 명 야생화나 다름없다.
- ▲ 고목나무샘에서 분주령으로 가던 중 큰앵초가 숲의 여왕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반겨 주었다. 산중에서 야생화를 만나는 것은 산객에겐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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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진짜 야생화 산행”이라는 김부래씨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대봉은 꽃단장한 모습으로 반겨 주었다. 정선과 삼척 일원의 고봉준령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상에서 짙은 숲길로 들어서는 순간 소영도리나무는 빨간 꽃을 복주머니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산림도로로 내려서자 큰앵초가 예쁜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범꼬리 또한 이름처럼 범꼬리 모양의 꽃을 막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