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 이상원
어릴 적에
눈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빛과
강둑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꽃을 바라보면서
괜스레 울적해지곤 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밤이 되니
이제 곧 또 한 살을 먹는구나 하는 허전한 생각이 들고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어느 누가
저 바람 속 소리없이 지나가는 세월을
마디마디 끊고 맺으며
백살도 안되는 나이를 셈하게 만들었는지..
고향 강변에
침묵으로만 서 있는 앞산처럼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하얀 구름 안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예쁜 들꽃이나 초롱초롱 빛나는 맑은 별들과
기인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나이테가 늘어가면서도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여유도 없이
마음만 왜 그리 급해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닮아가는 듯
눈물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아버지 계신 청산만 보아도 목이 메이며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높은 울타리에 걸터앉아 시들어 가는 노오란 호박꽃이랑
메마른 길섶의 짓밟힌 질경이 같은 들풀이나
바위틈에 끼어 겨우겨우 목숨 부지하는
키 작은 소나무가 더욱 더 애틋하게 다가오고
성당문을 나서며 티없이 웃던 어린 장애아의 맑은 얼굴이
콧등을 시큰하게 하고 내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날이 갈수록
삶의 지혜는 보이지 않고
여린 눈물샘만 가득 고여있는데
알록달록한 돗자리 위에서
분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맞으며
온 몸에 남아있는 것 죄다 토해내고
쭈글쭈글해진 몸이 되어버린
기다란 고추의 그 검붉은 빛깔이
오늘따라
왜 그렇게 섧고 아름답게 보이는지요.
성큼 다가선
초가을, 나도 몰래
파란 하늘에 빨간 줄 하나 그으며
그리움 싣고 마음 껏 날아다니는
한마리 고추 잠자리가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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